< 92화. 가족을 위한 결정 >
인천 공항 출국장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표님이 전화를 받더니 나에게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야, 지금 공항에 사람들 몰려왔다는데?”
“왜요? 누구 유명한 아이돌이나 해외 스타 같이 왔데요?”
혹시 같은 비행기에 타고 온 건가?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나를 대표님이 황당하다는 듯 바라본다.
“너 뭐하냐?”
“제가 아는 얼굴이면 미리 가서 싸인 받아두려고요.”
“.......”
“왜요?”
“그게 너란다.”
이번에는 내가 잠시 할 말을 잃었다.
“누구요?”
“너라고. 너.”
“.......”
“너 미국 활동하는 사이에 팬이 급작스레 늘어났는데 심지어 열정적이기까지 해서... 그 사람들이 너 환영해 주겠다고 공항까지 마중 나온 거래.”
“정말요? 와....”
“일단 기다리라고 했으니 연락 올 때까지 여기에 있자. 그냥 나가면 무슨 일 벌어질지 모르니까.”
출국장 문이 열리는 순간 펼쳐진 엄청난 인파에 나도 모르게 몸이 굳고 말았다. 내가 생각하던 것보다도 많은 인파가 몰려와 있었다. 순간 두려움, 혼란, 공포감이 밀려오기 시작했고 눈앞이 어질거렸다.
“야, 괜찮아?”
“으... 빨리 이 자리를 떠나고 싶어요.”
“기다려 봐. 네 매니저가... 저기 있네.”
곧 세상에서 누구보다 듬직한 아군이 등장했다.
“제 뒤에 꼭 붙어요.”
가죽 재킷을 입고, 선글라스를 착용한 최명규 매니저님! 그런데 무슨 매니저가 아니라 경호원 같은 느낌이다. 어쨌든 마음은 든든했다.
내 주위를 함께 온 남자 매니저들이 둘러 싼 채 이동을 시작했다.
출국장을 넘어서는 순간.
[ 와아아아 ― !!! ]
“.......!”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함성이 내 온몸을 짓누른다.
이를 악물며 인파를 외면하고, 빨리 발을 움직이려는데.
“야, 야무리 그래도 너 좋다고 몰려온 팬들이야. 손 정도는 흔들어줘야지.”
“......!”
대표님의 한 마디에 정신이 들었다.
그래. 생각해 보면 아무리 좋아하는 가수라도... 본인의 일정까지 미뤄가며 이곳에 마중 나오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저 중에는 이 순간을 위해 지방에서 힘들게 올라온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하...!”
억지로 미소 지으며 인파를 바라본다.
그리고 손을 흔들었다. 그 순간.
[ 파파팟! ]
선글라스가 아니었다면 감당하기 어려웠을 정도의 플래시 세례가 쏟아진다.
[ 민아! 수고했어! ]
[ 너 보려고 부산에서 왔드아아아! ]
[ 난 제주도에서 왔쒀어어어! ]
그래. 저렇게까지 반겨주는 팬들을 외면하는 건 연예인으로서 도리가 아니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나름 엄청난 결단과 각오를 내린 채 최명규 매니저님에게 말했다.
“사인 할 수 있는 펜 좀 있으면 주세요.”
“괜찮겠어요?”
“괜찮아야죠. 팬들이 있잖아요.”
“그러면 너무 벗어나지 말고 제 옆에 꼭 붙어 있어요.”
매니저님들의 도움으로 팬들에게 다가가 사인 등의 팬서비스를 시작한다. 열광하던 사람들은 창백하게 질린 얼굴과 식은땀을 보고 깜짝 놀라 반문한다.
“헉! 괘, 괜찮아요? 어디 아픈 거 아니에요?”
“괜찮아요. 괜찮아...하하....”
“.......”
“사인해드릴게요.”
가까이에서 내 상태를 확인한 팬들은 하나 씩, 열광하던 것을 멈추고 걱정스런 표정을 보낸다. 애써 웃어주고, 선물도 받아주고, 사인과 셀카 촬영도 해주는 동안 수시로 공포에 엄습해온다.
그래도 꼭 참고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팬 서비스를 해준 뒤 자리를 떠났다.
승합차에 탑승하고서야 안도감이 밀려온다.
몸과 마음이 빠르게 진정되는 게 느껴졌다.
마주편에 앉아 있던 대표님이 날 걱정스레 보며 말한다.
“너 그래서 어떻게 하냐? 앞으로 더 유명해지면 지금과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인파가 계속 쫓아다닐 텐데.”
“그래도 많이 나아진 거예요. 오늘은 꽤 오랜 시간 팬 서비스까지 해줬잖아요.”
“야, 그게 뭐가 나아진 거야? 팬들이 너 가까이에서 보고 경악을 하더라. 나중에 함성 소리 확 잦아든 거 못 들었어?”
“그랬어요?”
“너 상태 확인하더니 서로 막 자중하고 그러더라고. 나중에 공항이 조용하더라. 다들 너 막 걱정스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웅성이고....”
“하하....”
“기자들도 있었는데 오죽하면 다음을 기약하는 게 가능했겠냐. 한 눈에 봐도 상태가 심상치 않으니까 빨리 병원에 데려가 보라고 눈치 주고 그러더라 야.”
“일단 자주가는 병원부터 가겠습니다.”
운전 중이던 최명규 매니저님의 묵직한 한 마디.
뭐라도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고, 선물도 주고 싶었는데 도저히 여력이 없었다. 온 몸에 힘이 없었기 때문에.
눈을 감고 곧장 수마가 밀려왔다.
아, 피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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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돌 커뮤니티와 SNS가 소란스러워졌다.
공항에 마중 나온 팬들을 대하는 김민의 모습 때문이었다.
[ 애가 인파를 발견하자마자 꽁꽁 얼어붙었는데...? ]
┗ 안 그래도 얼굴 희고 가녀린 애가 더 창백해졌네.ㅠㅠ;;;
┗ 김민 공황장애 진짜 심각하네. 저 정도면 중증인데...?
┗ 병원 다녀서 많이 나아진 게 저 정도라고? 아니, 그러면 이전에는 얼마나 더 심각했다는 거야?
출국장에서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팬 서비스 해주겠다며 가까이 온 순간 찍힌 사진들은 하나 같이 심각해 보였다. 툭 치면 당장이라도 쓰러져 버릴 것만 같은 애처로움이 가득했다. 그런데 그 모습이 보호본능을 강렬하게 자극했다.
[ 애가 참 장하네. 본인 힘들어도 팬 생각해서 저렇게까지 용기 내다니... 저게 참 힘들 거든. 나도 공황장애 있어서 잘 알아. ]
[ 저 상태가 죽을 듯 무섭고 어지러운... 딱 그런 상태임. 나도 겪어봤음. ]
[ 괜찮다고, 끌어안으며 토닥토닥 해주고 싶다ㅠ.ㅠ ]
특히 마지막 떠나는 장면.
출입문으로 쏟아지는 빛을 뒤로하고, 팬을 돌아보며 애처롭게 웃는 모습은 마치....
[ 무슨 죽을 장소로 떠나는 사람 같네;; ]
┗ 드라마나 영화에서 불치병 주인공이 죽음을 각오하고 마지막 수술하러 떠나는 장면 아님? ㅠ.ㅠ
┗ 급 아련해진다....
┗ 아냐! 우리 민이 보내지 마!
┗ 이래 뵈도 금의환향 한 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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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뒤 약까지 처방 받았다.
대표님이 물었다.
“어쩔래? 바로 집에 갈래? 아니면 잠깐 회사에 들릴래?”
현재 시각은 오후 네 시.
집에 가기에는 애매한 시간이지만....
“엄마 가게에 갈 게요.”
“그래. 그게 낫겠다. 오늘은 집밥 먹으면서 푹 쉬어.”
“어머나!”
“어어?!”
손님들, 주방 아주머니들. 그리고 엄마까지.
모두가 나를 보고 크게 놀란 모습이다.
엄마를 보니 뭔가 싹 씻겨 내려가는 기분이 들었다.
난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엄마! 나 미국 다녀왔어!”
식사 중이던 손님들이 모두 나가고, 엄마는 잠시 문을 닫았다.
“배고프지? 밥 차려줄까?”
“응!”
엄마가 차려준 밥을 한술 뜨니 온 몸이 짜릿하다.
미국에서도 한식을 챙겨먹긴 했지만...사실상 주식은 기름진 고기 요리와 감자튀김. 혹은 빵 같은 것들이었다.
현지에서 먹는 한식도 나름의 맛이 있지만, 아무래도 집밥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식사를 하며 많은 이야기를 했다.
미국과 영국에서 경험한 일.
특히 영화 출연을 하게 된 부분에서 엄마가 살짝 눈을 흘긴다.
“너는 애가 어쩌면 그럴 수가 있니? 언질이라도 해주지. 그런 중요한 이야기를 뉴스를 보고 알아야 겠니?”
“확정된 이야기도 아니었고 잭슨 스튜디오에서 비밀을 당부해서....”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가족인데....”
“하하....”
“너 저녁에 서연이 보면 잔소리 들을 각오 좀 해야 할 거다. 애가 무슨 크게 배신이라도 당한 듯 굴더라.”후후, 그 부분에 대한 대처는 이미 준비해놨지!
저녁 시간에 맞춰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 집에 가서 씻고 자야겠어.”
“그래. 먼 길 오느라 피곤할 텐데 어서 가서 자.”
모자와 마스크를 꾹 눌러쓰고 홀로 집으로 가는 길이 참 이상하게 느껴졌다.
집 앞에 도착하니 더욱 그랬다.
‘언제까지 이런 빌라에 살아야 하는 거지?’
물론 계획은 이미 다 마련되어 있었다.
비트코인과 이더리움의 가치가 최고조로 뻥튀기 된 그 순간!
그리고 나의 애플, 아마존 등. 미국의 초대형 테크 주들이 빛을 발하는 바로 그 순간이 우리 집의 운명이 바뀌는 날이다.
준비도 완벽하고, 계획도 잘 진행되고 있었는데....
‘미국에서 좋은 곳에서만 머물다 와서 그런지 이게 참....’
굉장히 작고 초라하게 느껴진다.
난 미국으로 떠나면 대표님이 마련해 준 좋은 집에서 머물게 될 테지만, 우리 가족은 최소 2,3년 이상은 저 낡은 빌라에서 계속 거주해야한다.
‘강남 3구는 이 시기에도 비싸지. 하지만 판교는 어떨까?’
강남과 접근성이 굉장히 좋고, 2020년경에는 아파트 평균 시세가 어지간한 고급 강남 아파트를 씹어 먹어 버릴 정도로 폭주하는 동네다.
‘확인해볼까?’
판교 역 바로 근처에 있는 아파트의 현재 시세를 확인해본다.
‘12억이네.’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했을 때 최고 평수 실거래 가가 40억 이었다.‘지금 사놓고 계속 버티기만 해도 큰돈을 버는 셈이야.’
문제는 서연이 학교였다.
‘역시 강남이 좋겠지?’
청담동에 위치한 한강변의 브랜드 아파트 시세를 확인해본다.
현재 최고 평수 현재 시세가 14억에서 15억에 형성되어 있다.
‘내가 마지막으로 확인한 실거래가가 30억 수준이었지?’
판교 매물에 비하면 상승세가 살짝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청담동이고 한강 뷰였다.
판교역 부근도 인프라가 굉장히 좋아지긴 하지만, 그래도 청담동에 비할 바는 아니지.
고민하다 보니 어느 새 집에 도착.
내부를 둘러보니 생각이 더욱 굳혀진다.
‘돈 많이 버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집에는 좀 쓰는 게 좋겠다. 가족을 위해서.’
내가 떠나고 나면 세 식구가 이 낡고 좁은 빌라에서 몇 년을 더 살아야 한다.
몇 년 만 참으면 좋은 곳에 갈 수 있다고?
반대로, 소중한 우리 가족보고 몇 년을 더 이런 곳에서 지내게 하라는 건가?
그렇게 생각하니 답이 나온다.
어차피 빌보드 1위로 큰 수익이 예상되는 상황 아닌가?
‘그래. 까짓 거... 청담동 한강뷰 아파트로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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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오랜만에 등교했다.
“노아 실사화 영화에 출연한다면서?”
“더 가디언지에 너 단독 인터뷰 실렸더라. 너 진짜 출세했구나!”
음, 이제 이런 분위기도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다.
‘최민석 녀석 안 보이는 거 보니 정말 일이 크게 났던 모양이네.’
나야 얼핏 전해듣기만 해서 자세한 상황은 몰랐지만, 최명중의 설명을 들어보니 난리도 아니었다는 모양이다.
그 녀석, 하교 길에 괴한으로부터 습격도 당했다고....
반지희도 첨언했다.
“비난 여론도 워낙 강했지만, 최민석이 전학 간 게 그 문제 때문만은 아니야. 수시로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고... 심지어 다른 학교 애들이 학교 앞까지 찾아오고 그랬거든.”
“... 그 정도였어?”
“분위기 진짜 험악했어. 심지어 우리 학교 상급생들이 민석이 붙잡아서 어디론가로 끌고 가고 그러던데....”
굉장히 심각했던 모양이다.
나만 괴롭힌 게 아니라 다른 아이들에게도 몹쓸 짓을 많이 해왔다니 자업자득이라 할 수 있었다.
방과 후.
곧장 대표님 집무실로 달려가서 어제 내가 결심했던 사항들을 논의했다.
“청담동 한강뷰 아파트라....”
“가능할까요?”
“충분히 가능하지. 맨해튼 드리밍 저작권료 정산이 시작되면 한 달 수익만으로도 사고도 남아.”
“... 그 정도예요?”
“사실 나도 빌보드 차트에 올라본 적이 없어서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명색이 기획사 사장 아니냐? 수집해 놓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유추해보면 어느 정도 답은 나와.”
“그, 그러면 금액이 대략 어느 정도 될까요?”
“말했지만 정확한 수치는 아니야.”
“그러니까 대략적으로만....”
“대략, 50억 정도?”
순간 난 할 말을 잃어 버렸다.
한참 후에야 더듬거리며 물었다.
“고, 곡 하나 연 매출이 50억이나 나온다고요?!”
“음, 내 말을 잘못 이해한 것 같은데....”
“네?”
대표님이 피식 웃으며 말씀하신다.
“연 매출이 아니라 월 매출을 말한 거야.”
사고 회로 정지.
“월 50억 이상 나올 거라고. 최소 월 50억!”
“.......”
“거기에 네 기존 저작권료와 활동 수익까지 고려하면 청담동 한강뷰? 야, 그거 아무것도 아니야.”
“........”
“그래서, 사고 싶은 곳이 정확히 어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