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94화 (94/205)

< 94화. 엔 플라워 출격 (1) >

“나 학교 다녀올게!”

이른 아침.

식사를 마친 서연이가 등교하는 모습을 보며 말했다.

“쟤 양궁 진짜 좋아하나봐.”

“네가 뭘 몰라서 그러는 거지. 서연이 쟤는 싫어하는 거 안 하는 성격이야.”

“그런가?”

“잘 생각해 봐. 근래에 네가 이것저것 해준 게 많은데도 절대 애교 같은 거 안 부리잖아. 다른 집 동생들 같았으면 난리 났지 벌써.”

엄마의 말에 집안에 웃음이 터졌다.

뭐, 서연이 문제는 그렇다 치고.

이제 해결해야 할 게 두 가지 정도 남았다.

난 부모님을 보고 진지하게 물었다.

“어제는 서연이한테는 물었을 때, 아빠랑 엄마는 어때?”

식탁에서 마주보고 앉아 있던 두 분이 의아한 표정을 교환한다.

엄마가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식당 일, 대리 운전. 이거 계속할 거야?”

그제야 내 말 뜻을 이해한 두 분의 반응은....

“엄마는 식당일 하는 거 좋아해. 네가 아무리 돈 잘 번다고, 그런 것까지 관여하면 안 되지.”

“사람이 일을 해야 활력이 있지. 아무리 자식이 컸다고, 팔자 좋게 놀면서 떠먹여 주는 게 받아먹는 게 그게 부모가 할 짓이냐? 막노동을 하더라도 아빠는 일 계속 할 거다. 내 몫은 하고 살아야지!”

그래. 두 분은 이런 분이지.

그렇다면 질문을 조금 바꿔 볼까?

“엄마는 식당 조금 더 넓고 목 좋은 곳으로 진출시켜 볼 생각 없어? 확장 이전 같은 거 말이야.”

“확장 이전?”

“이사할 집이 있는 청담 로데오 거리 쪽 상가를 임대해도 좋을 것 같고, 아니면 신사동 가로수 길 진짜 괜찮아. 장기적으로 보면 거기가 핫해질 거야. 거리도 그리 안 멀고.”

“청담 로데오 거리? 신사동 가로수 길?”

어리둥절한 표정.

아빠는 답답한 듯 말했다.

“인마. 네 엄마는 그렇게 말하면 잘 몰라. 서울에서 그렇게 오래 살았으면서도 가본 곳이 그리 많지 않은 사람이야.”

“아....”

갑자기 먹먹해진다.

그만큼 여유가 없이 지냈다는 것이다.

전남 여수 출신의 어린 소녀가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서울에 건너와서 아빠를 만날 때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이 살았으니까.

그리고 그것은 아빠 역시 마찬가지.

벌교에서 주먹으로 날리던 남자가 이른 나이에서 독립해서 혼자 먹고 살아보겠다고 막노동부터 온갖 험한 일만 해왔다.

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물었다.

“일 같은 거 다 때려치우고 국내와 전 세계 여행 다니며 남은 일생 편하게 놀고먹을 생각은 없지?”

“미쳤나봐.”

“이게 돈 좀 벌더니 정신이 나갔나? 넌 인마. 엄마 아빠를 뭐로 보고 그런 소리를 하냐?”

일고 가치조차 없다는 반응.그러면 근무 환경만이라도 바꿔주는 것이 최선이겠다.

“그러면 아빠랑 엄마 둘이 같이 좀 크게 고기 집이나 횟집 같은 거 해보는 거 어때? 엄마는 주방 홀 관리하고 아빠는 자재 같은 거 관리하면서....”

“싫어!”

“나보고 네 엄마랑 일을 같이 하라고? 그건 못하겠다.”

두 분 모두 질색한다.

그래, 그럴 것 같더라.

난 잠깐 고민 후 말했다.

“일단 엄마 확장 이전 건부터 고민 좀 해보자.”

생각보다 뉴욕에 일찍 가게 되었기에, 그 전에 가족을 위한 교통정리를 최대한 깔끔하게 해두고 싶었다.

‘집은 좋아졌으니 일하는 환경만 정리되면 더할 나위 없겠지.’

등교 하자마자 노트를 펴놓고 엄마가 특별히 잘하는 요리들을 쭉 나열해 본다.

‘냉면, 국수 같은 면 요리. 그리고 돼지, 소고기를 활용해 만드는 요리도 굉장히 잘하시지.’

엄마가 예전부터 했던 이야기가 떠올랐다.

나중에 여력이 된다면 고기 집을 크게 하고 싶다고.

‘냉면, 막국수, 고기, 이 세 가지 조합이 또 일품이란 말이야.’

이 세 가지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음식점을 만들어볼까?

엄마, 그리고 오랜 시간을 함께 일해 온 주방 아주머니들이라면 잘 해낼 것 같다.

‘그렇다면 내가 집중적으로 봐야 할 것은 바로 상권.’

역시 강남이 좋겠지?

압구정동은 지금도 별로지만 시간 지날수록 더 안 좋아질 테니 제외.

논현, 신사, 청담... 이쪽은 이미 용담호혈이다.

‘현 시점에서 가장 좋은 선택지는 역시 성수동.’

2014년.

그러니까 바로 이 시기에 성수역 앞에 위치한 폐공장이 거대 카페로 성공적인 변신을 하며 상권의 흐름이 바뀌게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주차 공간까지 넉넉하게 잡고 건물과 땅을 확보해서 일을 진행하는 게 훨씬 나을 수도 있지.’

땅값, 건물 값 오를 것을 고려하면 더더욱 그렇다.

‘누가 알았겠어? 차후 성수동이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 되리라는 것을 말이지.’

연예인, 기업인, 정치인... 그밖에도 돈 좀 있다는 신흥 부자들이 성수동에 몰려든다.

판교의 대형 IT 기업, 그리고 유명한 패션 기업들이 몰려 들며 제 2의 실리콘 벨리 명성을 판교로부터 빼앗아 오기까지 한다.

‘성수동은 지금이 가장 저렴할 때야. 오늘 끝나면 좋은 부지 찾아서 임장 가봐야지.’

방과 후, 택시를 타고 성수동으로 이동하며 생각했다.

‘사실 여윳돈만 충분하면 가로수 길 그 건물을 지금이라도 확보해두고 싶긴 한데 말이지.’

세계적인 IT 기업 애플이 20년 통임대 조건으로 600억을 선납했다는 전설의 그 건물!

참고로 해당 건물주는 그 후 맞은편 건물을 추가 매입했다고 한다. 그걸 보며 얼마나 부럽고 배가 아프던지...!

지금은 어렵지만, 나중에는 신사역, 도산대로, 논현동... 이런 유명한 1급지에 건물 한 채 정도는 마련해두고 싶다.

이런 건 사실 돈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볼만한 로망 같은 것이 아니던가?

진짜 발에 땀나도록 성수동을 돌아다녔다.

‘확실히 명성에 비해 그리 살기 좋고 쾌적한 동네는 아니야.’

사실 성수동은 느낌 있는 카페로 유명한 동네지, 맛집이나 이런 곳으로 유명한 곳은 아니다.

‘소비력 있는 사람들이 먹을 만한 맛집이 없다. 라고 누군가 평가했었지?’

그 말에 와 닿는다.

서울 숲 전체를 돌아다녔는데, 아 반드시 여기서 고기 집을 해야겠다! 갈망이 드는 곳이 없었다.

‘고민이 많아지네.’맛에 자신이 있다면 이런 부분이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어쨌든 이곳은 젊은 신흥 기업들이 엄청나게 이전할... 가능성 하나만큼은 굉장한 곳이니까.

‘역시 부동산은 발품이야.’

조금 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확장 이전을 부동산 투자와 함께 가려고 했지만 따로 떼서 구상하는 방향도 고려해야 할 것 같다.

내일은 강남을 돌아다녀볼까?

그 다음 날에는 펜데믹 상황에서도 상권이 크게 흔들리지 않고 더 발전했던 연남동을 가보는 것도....

@

그러나 내 이런 계획은 다음 날 바로 뭉개져 버렸다.

[ 학교 끝나고 바로 내 집무실로 와. ]

대표님이 불렀기 때문이다.

집무실에 도착하니 대표님이 질문을 던지신다.

“너 요즘 뭐하고 다니냐? 어제는 회사도 안 나왔더라? 아직도 이사 때문에 바빠?”

“그게 아니라 유학 가기 전에 엄마 식당도 좀 괜찮은 곳으로 옮겨드리고 싶어서 상권 분석 다니고 있었어요.”

“.......”

대표님이 날 묘한 표정으로 보신다.

“왜요?”

“예전부터 느끼긴 했는데, 너 진짜 남다른 면이 있구나?”

“음, 확실히 제 나이에 부동산 관심 갖고 돌아다니는 게 흔한 일은 아니죠.”

“그것도 그렇고... 뭐, 그게 중요한 건 아니지. 곧 엔 플라워가 컴백하거든. 프로모션 관련해서 부탁 좀 하고 싶은 게 있어서 불렀어.”

“그 전에 궁금한 게 한 가지 있는데... 혹시 엔 플라워 먼저 활동하고 텐 믹스 프로젝트가 이어서 진행되는 건가요?”

“그렇지. 텐 믹스야 기간을 미뤄도 사실 아무 문제  없지만 엔 플라워는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되거든. 준비도 완벽하게 다 끝났는데 머뭇거릴 이유도 없고.”

“다 끝났어요? 이제 정말 출격만 남은 거예요? 그러면 미니 앨범 패키지 샘플로 이미 나왔겠네요?”

“야! 진정 좀 해.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불렀다고 했잖아. 천천히 다 알려줄게.”

살짝 들떴다.

입봉도 했고 데뷔도 했는데 내가 만든 음악이 실제 음반으로 나온 적은 아직 없었다. 그런데 내가 통으로 작업했던 앨범이 발매된다고 하니 급격히 달아올라 버렸다.

속을 가라앉히고자 찬물을 쭉 들이킨다.

음, 좀 나아진 것 같군.

“준비 됐어요. 이제 하나씩 말씀해 주세요.”

“먼저 부탁 한 가지만 하자. 너 엔 플라워 홍보 활동에 협조 좀 해줘라.”

“방송 출연 같은 거 말하는 거예요?”

“응. 컴백 쇼케이스 날짜 잡혔거든? 게스트로 출연도 좀 해주고, 예능, 토크 프로그램 한 군대도 같이 나가줘.”

“굳이 그럴 필요가 있어요? 엔 플라워가 신인이나 무명 그룹도 아니고, 우리나라 탑 티어 걸 그룹이잖아요.”

“지금은 입지가 좀 위태롭잖아. 바로 이전에 발매됐던 앨범 성적이 그렇게 좋지는 않았었으니까.”

확실히, 근래에 엔 플라워는 하락세에 접어 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컨셉이 먹혔는데 비슷한 게 반복되니 질려하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그 동안 확 튀는 히트곡이 없었던 이유도 있었다.

“이번 컴백으로 확실히 이미지 변신을 하겠다는 것이군요.”

“많은 게 바뀌었잖아. 컨셉, 추구하는 음악 장르, 안무, 그리고 메인 프로듀서까지.”

“그렇죠.”

“가장 중요한 게 바로 마지막 부분이야. 이번 프로듀서인 너는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빛나는 맨해튼 드리밍의 작곡가라는 것. 그 덕을 톡톡히 보고 싶다는 거지.”

뭐, 원래 총괄 프로듀서 비용에 홍보에 대한 부분까지 책정되어 있으니 협조야 당연한 거다.

그게 아니라도 가수가 잘 되면 프로듀서 본인에게도 좋은 일이니 적극 나서는 게 좋다.

“제 덕을 보겠다? 민망한 건 둘째 치고, 전략 자체는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일단 러블리 큐티 원툴이었던 엔 플라워의 많은 부분이 저로 인해 바뀐 건 사실이니까요.”

“그러면 수락한 걸로 알고 다음 용건으로 넘어갈게. 너 텐 믹스 프로젝트에서 빠지는 걸로 결론 났어.”

“네? 왜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다른 건 몰라도 그 프로젝트만큼은 적극 참여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일단 주세아의 참가가 확정된 프로젝트였고, 내가 만든 <블루 웨이브>가 데뷔곡으로 사용될 예정이며, 틈을 노려 폭탄 멤버를 제거하고 그 자리에 반지희를 채워 넣을 예정이었기 때문.

내가 어떤 마음으로 텐 믹스 프로젝트를 기대하고 있었는데 날 빼겠다니....

그런데 이어지는 말에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너 유학 다음 달 초로 결정 됐어.”

“아....”

“사실 조금 더 여유를 주는 게 좋지 않을까 고민도 했는데, 블랙 로즈, 그리고 잭슨 스튜디오 측에서 해달라는 거 다 해줄 테니까 너 빨리 보내라는 요구를 강하게 해오고 있거든. 오늘 아침에도 독촉 전화 받았다 야.”

“하, 이 놈의 인기 때문에 피곤해지네요."

“그러게 말이야. 아무튼 그런 것도 있고, 올해 끝나기 전에 최대한 빨리 넘겨 버리는 게 네 적응을 위해서도 좋을 것 같아서.”

“그러면 학교도 결정된 거겠네요?”

“응. 네 입장에서는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 곳인데, 맨해튼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있는 하이스쿨이야. 그쪽에 거주하는 상류층들이 주로 다니는 곳.”

“와우....”

“원래 이렇게 빨리 입학 허가서가 안 나고, 그런 부유한 학교들은 절차도 굉장히 까다롭기로 유명하거든. 그런데 너는 예외적으로 절차가 굉장히 빠르게 진행됐어.”

“이유가 뭐예요?”

“네 유명세도 있고, 일단 미국 거대 엔터테인먼트 기업 두 곳이 굉장히 나선 것도 있어. 그리고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다니던 학교라더라. 그쪽 학교 인사들이랑 굉장히 잘 안다는 모양이야.”

“감독님께 감사 전화라도 해야겠네요.”

“세 번째 용건, 감독님께 연락이 왔어. 음악 감독 정해졌다고.”

“오, 누구예요? 당연히 헨리 윌리엄스겠죠?”“그렇다더라. 네 말 듣고 바로 가서 섭외 진행했다던데.”

그래. 노아 음악은 무조건 헨리 윌리엄스지.

이 부분은 내가 알던 역사와 달라지지 않아서 참 다행이다. 다시 들을 수 있게 됐어!

그런데 이어진 말이 날 당혹스럽게 했다.

“그런데 바로 그 헨리 윌리엄스가 널 만나보고 싶데.”

“... 저를요? 왜요?”

“감독님이 컨택하는 과정에서 네 이야기를 했다더라. 그 이야기를 듣고.....”

“자, 잠깐만요. 제 이야기라면... 설마 그거 말하는 거예요? 원래 저에게 OST 맡기려고 했었던 거?”

“응. 거기서 네가 강하게 주장했잖아. 노아 OST는 무조건, 무슨 일이 있어도 헨리 윌리엄스라고.”

“그 이야기도 모두 했데요?”

“그랬다는데?”

“.......”

“그것 때문에 그 양반이 너에게 호기심이 생긴 모양이야. 그 자리에서 네가 만든 곡과 출연한 뮤직 비디오를 모두 감상했단다. 그리고 요청했데. 빠른 시일 내에 너하고 자리 좀 만들어 달라고. 본인 스튜디오로 초청하고 싶다며.”

“아....”

“자세한 이야기는 가서 해봐야 알겠지만... 내 생각에는 왠지 협업을 고려하는 것 같아. 그 전에 네가 어떤 사람인지, 어느 정도 실력을 가지고 있는지 확실히 알아 둘 필요가 있으니 만남을 통해 확인해 보려는 것일 테고.”

“.......”

“아무튼 여기까지가 중요한 용건이고....”

대표님은 검은색 배경의 박스 하나를 꺼내 건넸다.

“곧 발매될 엔 플라워 미니 앨범 패키지야.”

“아, 이게 바로....”

한순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검은색 배경에 엔 플라워 영문 이름이 프리즘으로 각인되어 있고 중앙에 진홍빛으로 빛나는 꽃이 피어 있었었다.

왼편 하단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하얀색 글씨가 새겨져 있다.

1. Scarlet Love.

2. Elegy

3. Everyday

4. 또 다시 봄!

깔끔하면서도 고급스러운 디자인이었다.

“열어봐도 돼요?”

“네 증정본이니 마음대로 해.”

박스를 개봉해 본다.

포토북, 메시지 카드, 엽서, 스티커, 포토카드 등의 구성이다.

앨범을 관통하는 하나의 감정선, 시나리오에 따라 다양한 모습과 분위기를 연출한다.

분노, 상처, 극복, 새로운 시작.

네 개의 키워드가 멤버들의 표정 연기와 의상, 아트웍, 디자인 등을 통해 잘 표현되어 있었다.

“굉장히 신경 써서 잘 만들었네요. 돈을 때려 부은 티도 많이 나고요.”

“컨셉과 시나리오, 감정선 까지 워낙 뚜렷하고 개성까지 강하니까 아이디어가 막 샘솟더라. 가장 좋은 구성을 택한 결과가 바로 그거야.”

“내부 반응은 어때요?”

“최고지. 일단 엔 플라워 애들이 가장 좋아해. 자신들의 아이디어가 적극 반영된 작품이기도 하고.”

“대중들도 좋아해줬으면 좋겠네요. 우리 모두가 힘을 합해서 정말 열심히 애정을 갖고 만들었잖아요. 그 노력이 꼭 보상 받았으면 좋겠어요.”

그 말에 대표님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반드시 그렇게 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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