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화. 친구 엄마 찬스! >
아침부터 머릿속이 복잡했다.
창가 너머, 푸른 하늘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는데.
“민차르트 뭐해? 곡 구상해?”
등 뒤에서 반지희가 쾌활하게 말을 걸어온다.
최명중도 함께였다.
“조금 복잡한 일이 있어서.”
“무슨 일인데?”
“.......”
“언니한테 말해보렴. 혹시 내가 도움이 되어줄 지도모를....”
“우리 엄마 식당 강남 목 좋은 곳에 이전시켜드리고 싶은데 적당한 장소 없을까?”
“........”
반지희가 스르르 시선을 피한다. 내가 빤히 쳐다보니 어색하게 웃으며 변명했다.
“우리 엄마 아빠가 가진 건물들은 이미 임차인들이 있어서....”
그럴 것 같더라. 그래서 최명중을 바라본다. 일말의 기대감을 담아서. 이 녀석도 금수저도 부모님이 굉장한 분들이 혹시...?
“아버지, 어머니가 서초와 한남동에 빌딩을 하나씩 가지고 계시긴 한데 기업들이 임대하는 중이라 고기 집이 들어 올만한 곳이 아니야.”
굉장히 침착하게, 어마어마하게 부러운 소리를 해댄다.
서초와 한남이라니... 대한민국 1급지들 아냐?
내 처지와 비교하니 절로 한숨이 터져 나온다.
“마음에 드는 곳은 권리금이랑 임대료가 지나치게 비싸고, 미래 가치를 따져 보자니 당장 몇 년이 고비거나 마음에 드는 곳이 없고... 미치겠고만.”
“마음에 드는 곳은 강남일 테고, 미래 가치 따지는 곳은 어딘데?”
지희의 해맑은 질문에 난 순순히 대답했다.
대답해준다고 얘가 뭘 어떻게 할까 싶은 생각에.
“성수동이랑 연남동.”
“흠. 차라리 홍대입구는 어때?”
“거기는 이미 지나치게 비싼 곳이라서... 마음에 들기는 하는데 과연 조건에 부합한 곳이 있을지 모르겠네.”
“강남 아니면 홍대라... 업종은 그대로 가져가고?”
“아니, 고기 전문점으로 바꿀 생각이야.”
“일단 기다려봐. 우리 엄마한테 도움을 청해볼게.”
“어머니?”
“우리 엄마가 그냥 혼자 부동산 투자하고 그런 게 아니라 커뮤니티 모임, 꽤 큰 것도 운영하고 계시는데 그 인맥이 장난이거든.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너라면 도와주실 듯?”
“나? 내가 뭐라고.”
“베스트 프렌드잖아.”
반지희의 눈이 불길한 반달을 그린다.
“이번에도 부정해 보시지?”
“.......”
“우리 베프야, 아니야?”
“.......”
“빨리 대답해. 5초 준다. 5, 4....”
“베프지. 최고의 친구지.”우리는 좋은 친구!
맞아 맞아!”
“그렇지? 난 또 나만 그렇게 생각한 줄 알았지. 호호호!”
“하하하.”
반지희 망할 계집애.
“멍청이들.”
지켜보던 최명중은 우리 둘이 한심해서 못 견디겠던지 결국 자리를 떠나 버렸다.
야! 내 입장이라면 너는 안 그럴 것 같냐?!
@
그날 방과 후,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최명중, 반지희와 함께 청담동 명품거리로 향했다.
세계적인 명품 샵들이 줄지어 입점해 있는 곳으로, 대한민국 부동의 1급지다.
여기에 땅과 건물 가진 사람들이 진짜 알짜배기 부자라던데...지희 부모님이 이런 곳에도 건물이 있었어?
“여기도 우리 엄마 건물인데 명품 회사 디o이 10년 장기로 임대 중이야.”
무심하게 가리키는 곳은 가장 화려한 외관을 자랑하는 명품샵 입점 건물!
명중이는 담담하지만 나는 너무 놀라워서 입이 쩍 벌어질 지경이다.“여기는 아빠 꺼. 저기는 삼촌 거.”
대체 뭐하는 집안이야?
도착한 곳은 사거리 한복판, 바로 작년에 기존 건물을 허물고 쌓아올렸다는 최신식 건물이다.
1층에 스o벅스가 굉장히 큰 규모로 입점한 상황이고, 윗층도 병원, 유명 외식업체 등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캬, 나도 저런 건물 하나 가질 수 있다면 더 이상 소원이... 그런데 지희의 발걸음이 그쪽을 향하는 게 아닌가?
어? 설마? 설마....
“다 왔어. 들어가자.”
무심하게 문을 열고 스0벅스가 아니라 건물 입구 안으로 들어간다. 엘리베이터 앞에서 최상층 버튼을 누른다.
“엄마 회사 사무실이 이곳에 있거든.”
이쯤 되니 묻지 않을 수 없다.
“어머님이 누구니?”
킹덤 컬렉션.
지금도 충분히 규모가 있는 패션 잡화 도매 기업이다.
중요한 건 이 회사가 가지고 있는 온라인 편집샵 브랜드, ‘아트 시티’다. 시간이 지나면 엄청나게 성장해서 해당 분야에서는 독점 수준의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이 기업의 창업주이자 오너 민희선 대표.
“어서 오렴!”
굉장히 단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이 미인분이 오늘 우리를 초청한 반지희의 어머니시다.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셨다.
“드디어 만나게 됐네요! 우리 통화 몇 번 했었죠? 지희와 친구들한테도 이야기 많이 들었어요.”
“말씀 편하게 해주세요.”
“그래도 될까요?”
“물론이죠! 친한 친구 어머니신데요.”
“고마워. 그러면 그렇게 하도록 할게.”
명중이에게는 굉장히 친근하게 말을 건네셨다.
“너 진짜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구나. 거 봐. 내가 뭐라고 했니? 꾸미면 굉장히 멋있어 질거라고 했지?”
집안끼리의 친분이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끈끈한 모양이다.
“앉아서 잠시 기다리렴. 내가 주스라도 가져다줄게.”
역시 어머니라 그런지 딸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사실 우리 딸이 가수 연습생에 합격했다는 소식 듣고 굉장히 놀랐지 뭐니? 친구들하고 뭔가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그다지 가망성이 없다고 생각했거든.”
“뭐? 엄마! 나한테는 잘 될 거라며, 열심히 해보라고 응원해줬잖아!”
“그거야 딸이 꿈을 위해 도전하다니 격려 차원에서 한 소리고, 냉정하게 가능성을 평가해보면 글쎄... 네 언니라면 몰라도.”
“무슨 엄마가 이래? 친구들 앞에서 날 이렇게 깎아내릴 수 있는 거야?”
딸의 항의를 무시하고 나를 보며 물으신다.
“네가 생각하기에는 어떠니? 우리 지희, 정말 가수로 데뷔하는 게 가능할 것 같니?”
그 말에는 지희도 화를 억누르고 내 말에 주목했다.
내가 이런 이야기를 확실히 해준 적은 없었으니까.
난 확신을 담아 말했다.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리고 지희를 보며 말했다.
“일단 지희 성장 속도가 굉장해요. 재능이 있다는 뜻이죠. 열의도 뜨겁고 의지가 굉장하니 근 시일 내에 좋은 소식을 접할 수 있을 겁니다.”
“......!”
밝아지는 표정.
아무리 친하고 농담도 자주하는 친구사이라지만, 일에 있어서는 엄격한 나였다. 지희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내가 무언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것을 본인도 느꼈을 것이다.
지희 어머니도 굉장히 기뻐한다.
“정말 잘 됐다! 사실 요즘 우리 지희 달라지고 성장하는 모습 지켜보는 재미로 살고 있단다.”
어머니는 들뜬 얼굴로 목격담을 말씀하신다.
“친구들하고 놀기 바쁘던 애가 어느 날 갑자기 책을 사서 읽기 시작하더구나. 하나 같이 좋은 책이었어. 읽기만 하고 끝이 아니라 독후감을 써서 인터넷 올리고. 시나 수필 같은 것도 꾸준히 써서 올리고....”
어머니가 의미심장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그거 전부 민이 네가 시킨 거라면서?”
“네.”
“숙제 검사도 굉장히 철저히 한다고 하던데... 이유가 궁금하구나.”
“뮤지션으로서 경쟁력을 높일 필요가 있었던 게 첫 번째 이유였는데, 막상 시키고 보니 글에 자질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나름 커리큘럼을 만들어서 전문적인 작사가 트레이닝을 시작한 거예요.”
“그렇구나. 하지만 내가 진짜 궁금한 건 그게 아니야. 그렇게까지 해주는 이유가 알고 싶은 거지.”
“......”
“아무리 친구라도 그런 걸 챙겨주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거든. 흔하지도 않고. 그래서 묻는 거야. 의도가 궁금해서.”
난 담담하게 대답했다.
“지희는 제가 발굴한 제 아티스트니까요.”
“아...!”
터져 나오는 탄성.
어머니뿐만 아니라 지희와 명중이도 놀란 모습이다.
“지희가 자기 예쁜 것 하나만 믿고 설쳐대는 아이였다면 저도 외면했겠죠. 하지만 자기가 선택한 길에 있어 누구보다도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임하는 아이였어요. 그 증거가 어머니께서 직접 목격하신 것들이죠.”
어머니와 명중이는 내 말에 깊이 수긍하며 고개를 끄덕인다.
당사자는 민망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는 중이고.
“결정적으로 일개 고교생에 불과했던 저를 의심 없이 믿고 따라줬어요. 제가 어떤 것을 시켜도 최선을 다해서 이뤄냈죠. 그때 이미 우리 관계가 성립된 거예요. 친구. 그리고 프로듀서와 아티스트.”
난 진심을 담아 말했다.
“지희에 대해서는 더 이상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제가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많은 사람이 존경할 수 있는 훌륭한 아티스트로 키워낼 테니까요.”
대화는 자연스레 본론으로 이어졌다.
“우선 네 이야기를 듣고 싶구나.”
난 즉석에서 프레젠테이션을 시작했다.
현재 식당의 위치, 업종, 주요 고객 구성.
“그리고 제가 생각하는 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면과 고기.
메뉴를 최대한 간소화하고 특징을 부각시켜 경쟁력을 꾸준히 높여가겠다는 내용.
마치 투자 회사를 상대로 브리핑을 하는 것처럼 요점 위주로 설명을 이어나간다.
어머님의 분위기 역시 달라졌다.
날카롭고 묵직한 분위기.
귀로는 내 말을 경청하며, 눈으로는 내 표정과 반응을 상세히 관찰하신다. 덕분에 난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한 채 설명을 마칠 수 있었다.
어머님은 빙긋 미소 지으며 날 칭찬하셨다.
“정말 생각이 깊구나. 부동산 시장의 흐름을 정확히 짚고 있어. 상권 분석하는 솜씨도 상당한 편이고.”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메뉴를 간소화하고, 특징을 부각시켜서 승부를 보겠다. 여기에 좋은 상권을 확보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문제는 음식 솜씨인데....”
그 말에 반지희가 기다렸다는 듯 나섰다.
“민이 어머님 음식 솜씨 진짜 좋아! 오죽하면 나하고 친구들도 식당 단골이 되었을 정도라니까?”
“그 정도야?”
“못 믿겠으면 같이 가서 저녁 식사 하면 되지!”
“오, 그런 방법이 있었네.”
날 보며 물으신다.
“그래도 될까?”
난 빙긋 웃었다.
“손님은 언제든 환영이죠.”
함께 식당으로 이동했다.
지희 어머니의 갑작스런 방문에 우리 엄마는 살짝 놀란 듯 했지만 그것도 잠시 뿐.
“앉아 계시면 바로 음식 맛있게 해서 가져다 드릴게요.”
평상시처럼 홀을 정리하고, 주방으로 들어가 요리를 시작하신다.
면과 고기를 위주로 메뉴를 주문했다.
냉면, 막국수, 돼지갈비찜과 소고기 스테이크 덮밥!
“역시... 엄마, 어때? 진짜 맛있지?”
“응! 깜짝 놀랐어. 내가 알고 있는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야!”
반응은 굉장히 좋았다.
엄마의 솜씨를 믿고 있긴 했지만 그래도 내심 조마조마했던 참이었다.
이제 안심하고 식사해도 될 것 같다.
“드리고 싶은 말씀이 있는데, 시간은 언제가 좋을까요? 말씀해 주시면 제가 맞춰서 다시 방문 드릴게요.”
정중한 요청에 대한 우리 엄마의 반응은 다음과 같았다.
“잠시 기다려 주세요.”
그러더니 바로 가게를 닫아 버리시는 게 아닌가?
그리고 앞치마와 마스크, 조리용 모자를 벗고 깨끗하게 치워진 자리에 앉으신다.
“이제 됐어요. 무슨 일이시죠?”
와, 우리 엄마 굉장히 쿨하다!
다들 감탄한 눈치였다.
그때 지희 어머니의 시선이 느껴졌다.
눈치 있게 그간의 일을 간략하게 설명한다.
오늘 왜 지희 어머니를 모시고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까지도.
“아....”
엄마가 먹먹한 표정으로 날 바라본다.
“민이가 이전에도 확장 이전 제안을 몇 번 하긴 했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신경 쓰고 있었을 줄은 몰랐어요.”
“효심도 깊고, 무엇보다 지혜롭고 현명해요. 설마 그런 자리에서 전문적인 수준의 브리핑을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
날 향해 빙긋 웃어준 지희 어머니.
그리고 우리 엄마에게 진지하게 제안하신다.
“제 지인 중에 요식업을 크게 하시는 분이 계세요. 컨설팅을 받아보시는 것이 어떨까요? 제가 도와 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