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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로 돌아왔다-99화 (99/205)

< 99화. 슬기로운 유학생활 >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세인트 버드 하이스쿨에 다닌지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암막 커튼을 걷어 날씨를 확인해본다.

“와우.”

사실은 날씨 확인은 핑계고, 잠이라도 깰 겸 아파트 조망을 잠시 감상하려는 거다.

콘도가 위치한 헬스 키친을 비롯, 맨해튼 전경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벌써 한 달 째 보는 풍경인데 너무나도 멋지고 환상적인 광경이었다. 정말 이 조망 하나만으로도 비싼 집값이 아깝지 않게 느껴진다.

잠시 멍 때리다가 시간을 확인, 아침 식사 준비를 시작한다.

코리아 타운에서 구매한 한국 반찬과 햇반 등을 꺼내 한식으로 식사를 한다. 처음에는 미국에서 토스트, 핫케이크, 스크램블, 소시지 같은... 전형적인 미국 가정식으로 때우려고 했는데 느끼하고 입에 안 맞더라.

한국 사람은 밥심이지!

현지 적응이고 나발이고 때려치우고 그냥 내 방식대로 살기로 했다.

난 김치 없이는 밥 못 먹어!

식사를 마치고 등교 시작.

노란색 스쿨버스를 타고 학교에 도착해서 반을 찾아가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대략 30분 정도.

요즘은 CNN 뉴스나 현지에서 인기 있는 방송, 드라마 등을 많이 보려고 노력한다. 그들 문화를 알아야 커뮤니케이션은 물론, 작업도 수월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영어 공부 목적이 더 크고.

학교에 다니면서 느꼈다.

내 영어 실력이 아직도 많이 부족한 수준이라는 것을.

하지만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하면 하는만큼 실력이 늘더라.

이게 어려서 좋은 점 중 하나였다.

뇌가 싱싱하고 체력이 좋다는 것.

그래서 한 달 만에 교과목을 어느 정도 쫓아갈 수 있게 됐다.

그래. 학교생활에 큰 문제는 없다.

아주 사소한 것 딱 한 가지를 빼놓고는.

그게 뭐냐면....

“민! 좋은 아침이야!”

“오늘 빌보드 차트 갱신된 거 확인 해봤어? 아직도 맨해튼 드리밍이 1위야! 이거 잘하면 차트 신기록 세울 수도 있겠는데?”애들이 너무 귀찮게 군다.

내가 알기로 유학 간 사람들이 가장 힘들어 하는 부분이 바로 현지 친구 사귀는 거라고 들었는데... 난 그런 거 못 느꼈다.

가만히 있어도 우르르 몰려오더라.

한 백인 친구가 물었다.

“아이작 이스트가 센트럴 파크에서 라이브 공연을 한다고 하더라. 알고 있었어?”

“GMA 특집 말하는 거지?”

“역시 아는 구나!”

“너도 출연해?”

“같이 무대에 서는 거야?”

얘들은 한국 애들보다 평균적으로 덩치도 크고 어른스럽게 생겼지만 하는 행동들은 다 똑같다.

게임, 연예인 이야기에 환장하고....

난 담담히 대담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네.”

“우와!”

“그러면 GMA만 두 번 출연하는 거야?”

“굉장하네! 역시 슈퍼스타는 뭔가 다르구나!”

아무래도 얘들이 뭔가 바라는 게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너희들 공연 구경하러 올 거야?”

“응! 주말이잖아!”

“무조건 가야지! 아이작 이스트 뿐만 아니라 요즘 대세들 다 온다잖아!”

기대감이 점점 커진다.

이러다 눈에서 레이저 발사하겠다.

“공연 끝나면 내 휴대폰 번호로 연락해. 그 날 레이지도 같이 온다니... 사인이랑 사진 촬영할 수 있도록 해줄게.”

그 말이 끝나게.

“우와!”

“정말? 정말 아이작 이스트하고 같이 사진 촬영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난 레이지도? 좋아. 무조건 간다!”

함성이 울려 퍼진다.

소리가 어찌나 큰지, 복도에 있던 애들이 빼꼼 얼굴을 들이밀고 쳐다볼 정도였다.

난 엄중히 말했다.

“대신 내가 시키는 거 토달지 말고 해. 통제 잘 따르라는 이야기야. 그래야 이번 공연 말고도 다른 좋은 기회 계속 줄 수 있을 테니까.”

“물론이지!”

“개처럼 짖으라면 짖을 수 있어!”

“시키는 다 할게!”

떡밥의 질만 좋으면 애들 낚고 조련하는 게 이렇게 쉽다.

그리고 사실 이런 건 원래 다니던 학교에서도 많이 해보던 것들이라 그리 어색하지 않았다.

아이작 이스트에게 문자가 왔다.

[ 수업 언제 끝나? ]

[ 한 시간 후에 끝나요. 왜요? ]

[ 알았어. ]

이 인간 뭐야?

그런데 방과 후, 문자의 이유를 알게 됐다.

교문 앞에 이상하게 애들이 많고 함성 소리도 들리더라.

혹시나 싶어 다가가니....

“민! 기다렸어! 빨리 타!”

아이작 이스트가 기다리고 있었다.

빨간색 페라리에 기댄 채.

나와 함께 나왔던 몇몇 친구들이 흥분한 얼굴로 소리친다.

“아이작 이스트가 너 데리러 온 거지? 맞지?”

“우와! 나 진짜 좋아하는데...!”

이것들, 무슨 생각하는지 너무 잘 드러나잖아.

미국 하이스쿨 잼민들의 기대감을 외면할 수 없었던 내가 다가가서 말했다.

“친구들한테 사인 좀 해줘요.”

“그럴까? 좋아. 줄 서!”

“우와아아!”

무려 십 여분 동안 팬 서비스를 해주고 자리를 떠났다.

“친구들 많이 사귄 모양이네. 적응 잘하는 것 같아서 안심이다.”

“아이작 덕분이죠. 우상처럼 여기는 애들이 굉장히 많더라고요.”

“하하! 그래? 내가 백인들에게도 인기가 있었나?”

“커뮤니티 돌아다녀보니 백인뿐만 아니라 모든 인종에게 골고루 인기가 있더라고요. 굉장하던데요?”

아이작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러는 동안 아이작 이스트의 연습실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밴드 멤버들이 손을 풀고 있었다.

다들 한 덩치, 인상하는 흑인 아저씨들이다.

“학교에 가서 민 데리고 온 거야?”

“이봐, 아이작! 지금이라도 솔직히 말해. 사실 숨겨진 자식 맞지?”

“맞다니까. 그게 아니고서야 저렇게 지극정성 수가 없지!”

나 역시 농담으로 받았다.

“아무래도 더 이상 숨기는 게 불가능할 것 같은데, 이렇게 된 이상 그냥 아빠라고 부를까요?”

유쾌한 분위기 속에 연습이 시작됐다.

이번 GMA 센트럴 파크 라이브에서 난 세 개의 포지션을 담당할 예정이다.

서브 건반, 코러스, 보컬.

총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이번 공연에 많은 스타급 뮤지션들이 총출동하는데, 아이작은 엔딩을 맡았고, 총 세 곡을 열창할 예정이다.

거기에 내가 동원되는 것이다.

비록 백업이라지만, 뮤지션으로 그런 무대에 선다는 것은 굉장히 영광스러운 일이다.

연습이 끝날 무렵.

“민!”

드레드 머리를 깔끔하게 묶어 올린, 굉장히 패셔너블한 흑인 미남자가 입장한다.

“레이지!”

뉴욕 공항에 아이작과 함께 날 마중 나와줬고, 이후로 꾸준히 챙겨주는 래퍼 레이지였다.

아이작, 밴드 멤버들하고 먼저 인사를 한 뒤 나를 가볍게 끌어안으며 속삭인다.

“연습 끝났지?”

“응. 한 번만 더 하면 끝이야.”

“저녁 식사 같이 하자. 내가 너를 위해서 끝내주는 곳을 예약해뒀어.”

“좋아. 기다려.”

마지막 곡은 맨해튼 드리밍.

마이크를 들고 나온 나는 보컬로서, 서브 래퍼로서 최선을 다해 아이작의 무대를 서포터 한다.

중요한 것은 튀지도, 그렇다고 너무 죽지도 않는 것.

적당한 존재감을 유지하며 아이작의 무대를 빛내주는 것이 내 역할이었다.

이게 생각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원래 재즈 음악을 하던 사람이라 그런 지 아이작의 공연은 즉흥성이 강하다. 멀쩡하게 랩, 노래 잘하다가 뜬금없이 밴드 멤버들과 잼을 하더니 스캣을 하고... 아주 난리를 친다.

그런데 그게 엉망진창이 아니라, 굉장히 멋있고 오묘하며 예술적이다. 오늘날 그래미 수상자 아이작 이스트를 있게 해준 특징 중 하나였다.

내가 그것을 맞춰야 하는 것인지.

난 밴드 멤버도 아닌데....

초창기에는 고생이 많았는데 지금은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 정말 노력 많이 했다. 그리고 내가 이 정도 되니까 아이작도 나에게 이런 기회를 제공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연습이 끝났다.

자리를 깨끗하게 정돈하고 레이지와 돌아가려는데.

“레이지!”

“......?

“민이 아직 미성년자라는 거 잊지 마. 술 같은 거 먹이지 말고, 이상한 애들 소개시켜 주지 마. 마약은 근처에도 가지 못하게 해. 끝나면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 줘. 알겠지?”

아이작이 레이지에게 충고한다.

레이지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더니 반문했다.

“갑자기 궁금해져서 묻는 건데, 민이 아이작의 숨겨진 자식이라는 농담이 사실이었어요?”

레이지는 이 시기에도 이미 유명한 신예였다.

뉴욕에서 슈퍼카 굴릴 재력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난 오렌지 색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앞에 일순 굳어 버렸다. 내 표정을 보고 그는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며 묻는다.

“멋지지? 오늘 드디어 출고 됐어. 너를 제일 먼저 시승시켜 주는 거야.”

“아니... 어제까지만 해도 이 차 아니었잖아? 아우디 R8 어디 갔어?”

“팔았지.”

“왜? 그 좋은 걸?”

“촌스러워서... 아무튼 타! 이놈 포효 소리 한 번 들어봐야지!”

레이지는 다 좋은데... 돈을 참 물 쓰듯 펑펑 쓴다는 단점이 있다. 손목에 차고 있는 건 미국 힙합 스타들의 필수품이라는 롤렉스. 신발은 조던 한정판. 옷은 스트릿 브랜드 최강자라는 슈프림 한정판이다.

차에 탑승하자 레이지가 날 보며 씩 웃는다.

그리고.

[ 우우우웅! ]

“어우....”

우렁찬 시동음에 절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돈 있는 사람들이 괜히 슈퍼카에 환장하는 게 아니란 말이지.

내 반응이 꽤나 만족스러웠던 레이지가 으스대며 말한다.

“내가 이것저것 손을 좀 봤어. 가장 중요한 사운드 시스템도 내 취향대로 완전히 갈아버렸는데... 들어봐.”

울려 퍼지는 것은 본인이 데뷔 전 발매했던 믹스 테이프 수록곡.

“가자고!”

볼륨을 높이자 묵직한 드럼 비트가 신명나게 울려 퍼진다. 이런 게 처음에는 참 익숙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나도 꽤나 즐기게 됐다.

그래, 슈퍼카 드라이브에 힙합 음악이 빠지면 섭섭하지!

내가 리듬을 타며 선창하자 레이지가 놀랐다는 얼굴로 묻는다.

“알고 있었어?”

“그럼 누구 음악인데, 외웠지!”

보란 듯 랩을 쏟아내니 레이지도 흥이 올라 함께 랩을 한다.

뉴욕 밤거리를 질주하며 좋은 친구와 음악을 즐기는 이 순간이 너무나도 행복했다.

@

도착한 곳은 맨해튼 스카이라운지 레스토랑이었다.

안내 받은 자리를 확인한 순간 반문했다.

“이 자리에 누가 또 오는 거야?”

“친구 소개해주겠다고 했잖아.”

의미심장한 미소.

“너무 놀라지는 마.”

“......?”

곧 그 말의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시선을 독식하며 등장한 여인.

레이나.

21세기 빌보드 차트의 여왕이라 불리는 팝스타.

‘아, 그러고 보니 둘이 잠깐 사귄 적이 있다고 했었는데... 이 시기였나?’

미모, 실력, 스타성... 모든 분야에 정점을 찍었고, 존재 그 자체로 치트 캐릭터인 전 세계 수많은 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었다.

아찔한 미소를 띠고, 우리 자리에 다가온 그녀는 레이지와 포옹하며 인사한다.

저건 누가 봐도 사귀는 사이다.

‘내일 뉴스 제대로 터지겠네.’

이후 레이지가 날 소개한다.

“이 친구는 민. 이쪽은... 뭐, 말 안 해도 알지? 내 여자 친구 레이나야. 인사해.”

레이나가 먼저 다가와 가볍게 포옹해준다.

그러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나이는 어리지만 자기를 가장 잘 이해해주는 친구라고 그러더군요. 정말 보고 싶었는데... 만나서 반가워요.”

그녀의 미소를 바로 코앞에서 마주하는 순간, 나도 모르게 아찔함을 느껴 버렸다.

그녀의 또 다른 별명이 떠올랐다.

검은 여왕.

단순히 유명한 흑인 여성 스타라서 나온 말이 아니다.

독보적으로 아름답고 기품이 있어서 붙여진 것이다.

‘내가 직접 본 사람 중 제일 예쁜 여자가 주세아였는데, 그 애를 한순간에 잼민이로 만들어 버릴 정도의 존재감이야.’

그야말로 압도적!

이 순간, 나는 내 앞에 새로운 운명이 펼쳐지기 시작했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검은 여왕과의 인연이라니.

내 인생, 대체 어디로 흘러가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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