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00화 (100/205)

< 100화. 신의를 지키기로 하다. >

다음 날.

예상했던 그대로의 상황이 펼쳐졌다.

“믿을 수 없어! 레이나 대체 뭐야? 네가 어떻게 레이나를 만난 거야?”

“말도 안 돼. 레이나라면 검은 여왕이라 불릴 정도로 굉장한 팝스타잖아!”

“남자라면 반할 수밖에 없는 조건을 모두 갖춘 미녀라고! 얼굴도 예쁘고 몸매도 좋고 가슴하고 엉덩이도...!”

평소 달라붙던 애들뿐만 아니라 얼굴도 잘 몰랐던 애들까지 몰려와서 난리를 피운다.

그런데 웃긴 건 그 중에 여자들도 있었다는 것이다.

레이나의 인기가 얼마라 국민적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야.”그때 누군가의 등장에 소란에 잦아든다.

190cm는 넘을 듯한 거구에 조각처럼 잘 생긴 백인 미남.

그 뒤에 다른 거구들도 있었지만 이 녀석의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세인드 버드 하이스쿨 미식축구 팀 주장 제이콥.

학교 최고의 인싸에 엄청난 영향력을 가진 녀석의 등장이었다.

모두의 이목이 녀석에게 집중된다. 순간 당혹감을 보이는 듯 했지만, 곧 평정심을 되찾은 제이콥이 내게 말한다.

“너 혹시 레이지랑 친해?”

... 응?

이 녀석은 그 쪽(?)이었어?

다른 애들도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이봐, 지금 이런 상황에서 레이지를 찾는다고?”

“혹시...?”

녀석이 버럭 소리친다.

“이상한 소리 하지 마! 그리고 나 그런 농담 싫어 해. 한 번만 더 지껄이다가 걸리는 녀석, 아주 가만 두지 않겠어!”

민망함에 벌게진 얼굴이 새삼 매력적으로 보인다.

녀석을 빤히 쳐다보던 내가 물었다.

“레이지 팬이었어?”

“응? 아아....”

괜히 눈치를 살피며 수긍하는 제이콥 녀석.“왜? 어떤 점에 반한 거야?”

“........”

“팬으로서 말이야.”

“아, 그러니까... 친구 따라서 레이지 콘서트에 갔던 적이 있었는데 그 광기 넘치는 카리스마에 완전 팬이 되어 버렸지.”

그래. 이게 랩 스타 레이지를 만든 근본 중 하나였다.

무대 위에서 보여주는 광기 넘치는 카리스마.

그래서 레이지는 남녀를 불문, 광적인 팬을 굉장히 보유한 스타였다.

난 대답 대신 스마트 폰을 꺼내 영상 통화를 걸었다. 잠시 후.

[ 오, Min! 아침부터 웬일이야? 혹시 내가 보고 싶었어? ]

“우리 학교 최고의 아웃풋이 네 팬이라고 찾아오기에 영상 통화라도 시켜줄까 하고. 시간 좀 괜찮지?”

[ 물론이지. 누군데? 어디 보여줘 봐. ]

주위를 빼곡히 둘러싼 애들이 숨죽인 채 우리를 보고 있었다.

“어? 아아... 저, 그....!”

[ 네가 내 팬이야. 이봐 반가워. ]

“바, 반가워요! 저, 정말... 진짜로 팬이에요! 저 뉴저지에서 했던 콘서트도 몇 번 갔어요!”

[ 그래? 하하하! 아침부터 기분 끝내주는데? ]

레이지 녀석 유쾌한 성격만큼이나 팬 서비스 역시 굉장히 좋다. 우리 학교 미식 축구부 팀 주장이 디즈니랜드에 놀러간 어린애 같은 얼굴로, 들떠서 팬심을 고백하는 모습이 꽤나 흥미로웠다. 다른 애들도 감상은 비슷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짧은 팬 서비스 타임이 끝나고.

[ 오늘 데리러 갈게. 레이나가 할 말이 있데. ]

“나한테? 음, 알았어. 아, 오늘 2교시 밖에 안 하니까 12시 정각에 오면 될 거야.”

[ 오케이. 잠시 후에 보자고 형제. ]

“Yup!”

우리만의 인사로 통화를 마치고 나니.

“우와아아아!”

“들었어? 오늘은 레이지가 데리러 온데!”

“레이나가 민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잖아. 그게 뭐겠어?”

“역시 빌보드 1위 작곡가!”

환호하고 난리도 아니다.

난 극락을 맛본 표정의 제이콥에게 말했다.

“너도 이번 센트럴 파크에서 열리는 GMA 페스티벌에 와. 거기 레이지 참여할 예정인데 같이 사진 촬영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줄게.”

“저, 정말?”

“사인 필요하면 시디 같은 거 미리 준비해 둬.”

“아, 알았어! 정말 고마워!”

그러더니 녀석이 주위에 선포를 한다.

“앞으로 민을 괴롭히는 녀석이 보이면 나한테 혼날 줄 알아! 알았어?”

“우우우!”

유쾌한 야유 소리에도 아랑곳없이 내게 윙크를 해보이고 퇴장하는 제이콥.

잠시 후 수업이 시작되어서야 비로소 한숨 돌릴 여유가 생겼다.

레이나가 나한테 할 말이 있다고?

설마...?

레이나가 함께 마중을 오지는 않았다.

“같이 오고 싶어 했는데 오전에 방송 스케줄이 있어서, 그래도 점심은 같이 먹을 거야.”

이동한 곳은 허드슨 리버 앞에 있는 고층 타워 몰.

“여기 101층에 있는 레스토랑이 요즘 굉장히 핫한 곳이야.”

“와 봤어?”

“응. 레이나가 투자한 곳이거든.”

“아하....”

외벽이 통 유리창으로 되어 있어 뉴욕 전역을 한 눈에 볼 수 있고, 내부는 굉장히 호화스럽게 꾸며져 있는 레스토랑이었다.

입구에서부터 난 넋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말... 굉장한데?”

“내가 예상했던 반응 그대로야. 아주 마음에 들어.”

일전에도 느꼈지만.

뉴욕 스카이라인에 위치한 라운지 레스토랑들은 뷰도 그렇고 내부 인테리어가 한국 업장들과 여러모로 차원이 다르다.

이런 곳에 투자를 받아 업장을 차리고 핫 플레이스로 키워낼 정도라면 오너, 혹은 메인 쉐프의 솜씨가 이미 세계적으로 공인된 수준이라는 것이다.

“레이지.”

“이런, 여왕께서 행차하셨군.”

그때 레이나가 등장.

막 스케줄을 마치고 왔는지 머리부터 발끝까지 무대 전용으로 세팅이 되어 있었다.

갈색으로 염색한 웨이브 진 머리를 길게 늘어뜨렸고, 검은색 스냅백을 거꾸로 돌려서 착용했다. 박시한 검은색 농구티에 핫팬츠, 그리고 스니커즈.

무엇보다 길고 탄력 있는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힐이 아니라 스니커즈를 신었는데 저렇게 길수가 있다니... 비주얼이나 몸매도 그렇고, 아예 종족 자체가 다른 것 같다.

가벼운 포옹으로 환영 인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았다.

새삼 느낀다.

슈퍼스타는 아무나 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는 센트럴파크까지 홀로 이동했다.

레이지와 레이나는 같이 놀러 가자고 말했지만 내가 그렇게 눈치 없는 사람이 아니다. 이제 막 교제를 시작한 연인이 오붓한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데, 용건 끝났으면 알아서 빠져줘야지.

센트럴 파크에 온 것은 다른 이유가 아니다.

레이나의 제안 때문에 머릿속이 복잡해졌기 때문이다.

[ 슬슬 새 싱글을 준비하려고 생각 중이야. 네 곡을 한 번 받아보고 싶어. ]

내 곡을 쓰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주면, 앨범 수록 여부를 스텝들과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다는 뜻이다.

레이나 같은 경우, 딱히 리드를 띄우지 않아도 메일 수백 개의 데모 곡을 받는다.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수많은 뮤지션들이 그녀가 자신의 곡을 불러주기를 원한다.

문제는 레이나의 곡 고르는 안목이 굉장히 까다롭다는 것.

설사 톱 뮤지션이 선물한 곡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가차 없이 까버리는 것으로 유명하다. 이 문제로 방송에 나와 하소연을 한 스타 뮤지션들이 한 둘이 아니었다.

‘만약 내 곡이 그녀 앨범에 실리게 된다면...?’

작곡가로서 굉장히 영예로운 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시도할 가치는 차고도 넘치지.’

평상시라면 주저 없이 수락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대답을 미룬 이유가 있었다.

‘내가 에버 가든 데뷔 앨범을 만들어야 한다는 거지.’이미 선약이 있다는 게 문제였다.

JJ 엔터테인먼트와 뮤직 넷 합작, 걸그룹 데뷔 프로젝트 텐 믹스.

이 프로그램의 최종 선발자들이 모여 결성할 팀이 바로 에버 가든이다.

바로 며칠 전, 회사에서 나에게 정식으로 요청했다.

에버 가든의 데뷔 미니 앨범을 만들어 달라고.

본래 내 역할은 데뷔 싱글로 확정된 <블루 웨이브>를 준 것으로 끝날 예정이었다. 하지만 엔 플라워 네 번째 미니 앨범이 80만장을 돌파했고, 맨해튼 드리밍이 지금까지 빌보드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을 감안해서 나에게 맡긴 것이다.

네 곡을 추가로 더 작업해야 하고 패션, 안무, 아트 컨셉에 더해 녹음까지 디렉팅 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곧 시작될 연기, 보컬 트레이닝까지 고려하면 당분간 쉴 시간조차 없을 것이 분명하다.

레이나의 제안은 거절해야 한다.

‘하지만 레이나잖아. 빌보드의 여왕이잖아! 그런 그녀가 나한테 밥까지 사주면서 곡 좀 달라고 부탁했는데... 이걸 거절하라고?’

결국 문제는 내 욕심이다.

빌보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팝 스타의 커리어에 내 곡을 올릴 수 있을지 모를 찬스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거절 해야겠지?’

아쉽긴 하지만 이게 맞는 것 같다.

‘욕심 때문에 신의를 저버리지는 말자.’

그날 밤.

나는 레이나에게 장문의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내가 현재 처한 상황을 상세히 담아서.

이렇게 끝내고 나니 마음이 후련해졌다.

그래. 이게 맞았던 거야.

한 줄기 미련까지 깨끗이 지워 버린 채 책상 앞에 앉았다.

이제부터는 에버 가든을 위해 전심전력을 쏟아 부어야 할 시간이었다.

@

주세아가 개인 톡으로 사진 한 장을 툭 보냈다.

“오오...!”

보자마자 탄성이 절로 터져 나왔다.

좌측으로 고개를 돌린 채 시선을 아래로 깔아 내린 컨셉이었다.

화려하고 관능적인 비주얼이 정신을 멍하게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다.

음, 내가 얼마 전 레이나의 비주얼이 세아를 잼민이로 만들 정도로 압도적이라고 표현 했었지?

그 말 취소다.

KPOP 아이돌 끝판왕 소리를 듣기에 부족함이 없는 비주얼이다. 아직 어려서 그렇지, 잘 성장하면 레이나와 또 다른 매력을 선보일 것이 분명하다.

[ 이거 텐 믹스 프로필 사진이야? ]

[ 어때? ]

[ 역시 미모는 주세아가 최고다. ]

[ (수줍게 웃는 토끼 이모티콘) ]

경쟁 자체를 무의미하게 만드는 비주얼이었다.

[ 이번 주에 녹화 시작이라고 했지? ]

[ 수요일이 첫 녹화. 다음주 화요일 밤 11시에 첫 방송. ]

그러면 홍보는 진작하고 있었겠네.

바쁘게 지내다 보니 통 신경을 쓰지 못했다. 괜히 미안해진다.

[ 준비하는데 힘들거나 문제되는 일은 없고? ]

[ 다이어트가 좀 힘들어. ]

[ 네가 다이어트 할 게 뭐 있다고.... 넌 아무리 먹어도 살 잘 안찌는 체질이잖아. 오히려 안 먹으면 금방 빠지면서. ]

[ 아닌데. 나 방심하면 살 팍팍 빠지는데.... ]

[ 아니야. 넌 적당히 먹으면서 관리하는 쪽이 좋아. 장점을 살려야지. ]

[ 무슨 장점? (어리둥절해하는 토끼 이모티콘) ]

이런 말 해도 되나?

[ ??? ]

[ 뭔데? 빨리 말해 줘. ]

잠시 머뭇거리니 빨리 말하는 듯 물음표 세례로 압박을 준다.

아무리 친하다고 해도 또래 여자애한테 글래머...라는 단어는 언급할 수는 없고.

[ 넌 청순가련한 타입은 아니야. 오히려 건강미 넘치는 탄탄하고 볼륨감 있는 몸매가 장점이지.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해. PT 받는 거 추천. ]

왠지 대답이 없다.

음, 최대한 돌려서 표현한 건데... 조금 무례했나?

그런데 잠시 후 날아온 답변은.

[ 알았어. 잘 먹고 운동도 열심히 할게. 내일 회사에 부탁해서 PT도 받을 거야. ]

반지희 같았으면 저질이니 뭐니 난리 부르스를 쳤을 텐데, 역시 세아는 착해서 좋게 받아주는구나!

“민! 도착했어!”

대화하는 동안, 차가 센트럴 파크에 도착했다.

그렇다.

오늘은 바로 굿모닝 아메리카 센트럴 파크 특집 콘서트가 있는 날이었다. 나는 이른 아침부터 블랙 로즈에서 보내준 차를 타고 이동하는 길이었고.

‘겁나 많이 왔네!’

창밖을 바라보니 수를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 많은 관객이 이미 집결해 있었다.

[ 도착했다. 나 이제 공연하러 갈게. 너 포함해서 모두들 너무 그립고 보고 싶다. 언제든 수시로 연락해! ]

세아와의 문자를 황급히 마무리하고 휴대폰을 주머니에 집어넣는다.

“후우우....”

잠시 심호흡 좀 하고.

드르륵!

문을 열고 내리는 순간 이목이 집중된다.

“어?”

“잠깐,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데...?”

시선을 받으며 매니저와 황급히 이동. 아이작 이스트와 레이지, 밴드 멤버들이 머물고 있는 임시 대기실에 들어간다.

“민!”

“마침 왔네. 바로 올라가서 리허설 하면 되겠어.”

“지금 올라갈 건데, 괜찮지?”

난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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