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01화 (101/205)

< 101화. 주목 받다 >

무대에 오르기 전, 아이작이 말했다.

“지난번에 네가 코리아타운에서 사왔던 그 치킨 이름이 뭐였지? 짭짤하면서 달콤했고 뼈도 다 발라져 있었던....”

“맛짱 순살 바비큐 치킨이요?”

“응. 그래. 그게 먹고 싶군.”

“맞아. 그게 참 맛있었어.”

“아아, 한 입에 쏙쏙... 계속 들어가더라고.”

입맛을 다시는 아이작과 밴드 멤버들.

뭐야, 날더러 어쩌라고?

“설마 점심 때 그거 먹자고요?”

“괜찮은 아이디어 아냐?”

이 사람들이...누가 점심 때 순살 바비큐를 먹어?

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 여기 미국이지.’

치킨과 햄버거와 감자튀김의 나라!

아무래도 아직 미국 생활에 완전히 적응하지 못한 모양이다.

흘끔 무대 아래를 바라본다.

굿모닝 아메리카 엔지니어와 연출팀이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황급히 휴대 전화를 꺼내 저장된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누군가 전화를 받는 순간.

“안녕하세요. 아이작 이스트 팀입니다. 잠시 후 점심시간에 자리랑 음식 예약 좀 하려고 하는데... 네. 메뉴는 그렇게 하면 충분할 것 같아요. 지금 리허설 끝나면 바로 갈게요.”

순식간에 예약을 마치고 슥 쳐다보며 묻는다.

“됐어요?”

“바로 이거지!”

“민은 참 눈치하고 행동이 빨라서 좋다니까.”

“사랑스러운 녀석.”

다들 기분이 한 것 올라갔다.

[ 아이작. 리허설 시작해도 되겠어요? ]

“물론이죠! 어디, 신나게 가 봅시다!”

아이작의 우렁찬 외침과 함께 음악이 시작된다.

저렇게 굉장한 아저씨들이 치킨 하나 때문에 컨디션이 좋아하지는데... 순수하다고 해야 할지 단순하다고 해야 할지.

리허설을 마치자 바로 예약한 치킨 집으로 향한다. 사실 이곳은 치킨만 파는 곳은 아니고, 다양한 한국 요리와 집반찬을 판매하는... 뉴욕 한인 유학생들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어서 와요. 민! 리허설 잘 했어요?”

“덕분에요. 다들 치킨 먹을 생각에 기운이 넘치더라고요.”

한인 사장님 내외가 날 반갑게 맞아준다. 아르바이트생들도 모두 한국인.

고국에서 온 어린 유학생이자 연예인인 나를 이 사람들은 첫 방문 때부터 굉장히 반갑게 맞아줬다. 내 사진과 사인이 큼직하게 박혀 있는 벽면 자리에 앉는다.

“오, 여기 봐. 민이 있어!”

“우리 막내가 한국에서 슈퍼스타라고 했던가? 이거 보니 새삼 실감나는군.”

“음? 스타라고? 직업이 귀염둥이 아니었어?”

이 아재들, 큰 목소리로 시답잖은 농담을 즐겁게 해댄다.

“자, 요리 나왔습니다!”

“와우!”

“잠깐! 이거 사진 촬영 좀 하자고! 나 sns에 올려야 해.”

예약을 한 덕분에 금방 요리를 받을 수 있었다.

아재들이 먹고 싶어 했던 치킨 외에 탄산음료와 불고기, 샐러드 같은 음식들이 가득하다.

그렇게 우리의 점심 식사가 시작됐다.

“저, 가시기 전에 사진 촬영과 사인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아재들은 기분 좋게 주인아저씨의 부탁에 응했다. 현재 가장 핫한 뮤지션들과의 촬영에 성공한 주인아저씨가 음식 가격을 대폭 할인해줬다.

그리고 또 하나.

“이거 가져가요!”

“네?”

“집에서 먹는 반찬 좀 몇 개 담았어요. 어린 나이에 혼자 타지 생활하려니 힘들잖아요.”

반찬도 공짜로 사주셨다!

한 달 동안 무조건 하루에 한 번씩 방문했던 보람이 있었어!

... 라고 하기에는 너무 큰 선물이군.

좋아.

“제가 다음에는 레이지라는 친구 데리고 올게요.”

“레이지?”

“신예 래퍼인데, 지금도 굉장한 유망주지만 얼마 후에 엄청 크게 될 친구에요.”

“오오!”

“이 집 인테리어 할리우드 스타들 사진하고 사인으로 도배시켜보자고요.”

“하하하!”

유쾌한 웃음과 인사를 뒤로 하고 가게를 나섰다.

그리고 다시 센트럴 파크 대기실로 향했다.

“아이작. 민!”

“오, 이게 누구야?”

“레이지 아니야?”

우리 대기실에 레이지가 방문했다.

그런데 혼자가 아니었다.

“어어?”

뒤따라 들어온 사람을 보고 아이작과 아재들이 일제히 굳어 버렸다.

무려 빌보드 여왕의 행차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이에요. 아이작. 저번 그래미 시상식에서 인사 했었죠?”

“아아, 그, 그랬지.”

“그때도 말했던 것 같은데...개인적으로 아이작 팬이에요. 특히 이번 맨해튼 드리밍은 하루에 최소 서너 번 이상은 듣고 있는 것 같네요.”

그렇게 말하며 슬쩍 나를 쳐다보는 그녀.

아이작이 놀라서 묻는다.

“민을 알고 있어?”

“잘 알죠. 사실 얼마 전 곡을 좀 달라고 요청했는데 거절당했어요.”

“......!”

그 말에 모두가 놀라 나를 바라본다.

심지어 레이지까지도.

“그런 일이... 아니, 왜 거절한 거야?”

“무려 레이나의 부탁인데 어째서....”

“신의를 지켜야 한다던데요.”

“음?”

“한국 소속사에서 걸 그룹을 런칭하는데 거기 친구가 포함된다고... 그 총괄을 자신이 맡기로 했데요. 그리고 아이작과 레이지의 신곡 문제도 있고....”

음, 사실 뒤에 붙인 말은 덧붙인 핑계일 뿐인데....

“........!”

순간 날 향한 모두의 시선이 심상치 않게 변했다.

“그래. 그러고 보니 차기작도 같이 해보자고 지나가는 말로 언급 하긴 했지. 그런데 그것 때문에 레이나의 제안을 거절할 줄이야.”

아이작은 꽤나 감동 받은 얼굴이었다.

레이지도 마찬가지.

... 아, 양심이 찔린다.

그때 레이나가 충격 발언을 한다.

“그래서 앨범 발매일정을 미루기로 했어요.”

“......!”

놀라는 사람들.

그도 그럴 것이, 어감이 마치....

“저 때문이에요?”

“민 때문이 아니야. 내 욕심이지.”

나 때문 맞네.

아, 이거 난감하다.

그녀는 지금까지 일 년에 정규 앨범 한 장을 발매하고, 싱글 위주로 활동하는 기조를 10년간 지켜왔다. 그녀의 철두철미한 디스코그래피 관리야말로 오늘날 빌보드 여왕을 있게 해 준 원동력이다.

그런데 내 일정 때문에 앨범 발매 일정을 무너뜨린다는 것은....

“언제 끝날지 알 수 없고 제 곡이 레이나를 흡족하게 해줄지 장담도 못하는데, 정말 그렇게 할 거예요?”

“한 곡으로 안 되면 두 곡, 그래도 안 되면 네 곡.”

그녀는 슥 웃었다.

“단 한 번에 날 만족시켜줄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아. 하지만 민, 너는 맨해튼 드리밍과 Don’t Touch Me 같은 음악을 연달아 만든 천재 소년이야.”

그녀는 위험한 미소를 지었다.

“내 방식대로 들들 볶으면서 가르치다 보면... 날 만족시킬 수 있는 곡을 뽑아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어떻게 생각해?”

그녀의 시선에 전율이 흘렀다.

날 본인 밑에 두고 가르치겠다고?

저 빌보드의 여왕이?

“좋은 기회야! 우리하고 약속은 신경 쓰지 말고 무조건 제안을 승낙해!”

“맞아. 이런 기회 없어!”

아이작과 레이지가 같이 흥분해서 날 부추긴다.

“후후.”

얼떨떨한 얼굴로 아무 대답도 못하는 내게 고혹적인 미소를 보낸 그녀가 말했다.

“승낙한거지? 아이작. 민의 현지 매니지먼트가 블랙 로즈 맞죠?”

“응. 맞아!”

“공연 끝나고 바로 계약 전문 보낼 테니 가급적 신속한 처리 부탁할게요.”

“맡겨 둬!”

레이나는 살랑 살랑 손을 흔들었다.

“제가 오프닝 담당이라 이만 가봐야겠어요. 민, 또 보자.”

우아한 향기를 남기고 떠난 그녀.

“우오오! 이게 무슨 일이야? 그 도도한 검은 여왕이 이렇게 누군가를 갈망한 적이 없었잖아?!”

“제가 알기로도 처음 있는 일이에요. 저 레이나가 자기 앨범 발매 일정까지 미루겠다니... 세상에!”

대기실이 난리가 났다.

나도 당혹스럽다.

사실 거절한 시점에서 레이나와의 음악적 인연은 끝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 인연의 끈이 이렇게 다시 이어질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이렇게 된 이상 미리 고민 좀 해봐야겠다.

그녀에게 어떤 프로듀싱이 어울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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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신히 입장했어!”

“내가 뭐랬어? 새벽에 움직여야 입장이라도 노려볼 수 있다고 했지?”

“제이콥이 조금만 더 늦장을 부렸다면 바깥에서 손가락이나 빨아야 했을 거야.”

어퍼 이스트사이드에 위치한 성 세인트 버드 스쿨 학생들은 현장의 뜨거운 열기에 잔뜩 질려 버렸다. 대부분이 모범생이었던 터라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았던 것이다.

반면 일행 중 몇 안 되는 인싸, 미식축구 팀 주장 제이콥은 잔뜩 신이 난 표정이었다.

“굉장해! 바로 내가 생각했던 분위기야.”

얼마나 기다렸을까?

마침내 굿모닝 아메리카가 방송과 함께 콘서트가 시작됐다.

오프닝은 놀랍게도.

“레이나다!”

“으아아아아!”

모범생들마저도 열광하게 만들 빌보드의 여왕!

수많은 댄서, 밴드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랐지만 그 존재감은 독보적이다.

세계적인 모델을 연상케 하는 장신의 키와 환상적인 비율. 결정적으로 모델들에게는 없는 환상적인 몸매 라인!

아예 종족 자체가 다른 느낌이다.

인간이 우월하게 진화한다면 분명 저런 비주얼일 것이다.

무대가 시작되는 순간 5천 명이 넘는 관객이 일제히 광기에 빠졌다. 제이콥과 친구들도 카메라가 돌건 말건, 정신 줄을 놓고 함성을 내지른다.

이어 다른 스타들의 무대가 시작된다.

레이지도 있고, 영국 출신 슈퍼 록 밴드도 있었다.

캐나다에서 건너 온 음원 깡패 래퍼도 열창을 한다.

굿모닝 아메리카 특집에 걸맞은 최고의 공연이 쉴 틈 없이 이어지고 마침내 마지막 순서가 다가왔다.

[ 자, 전 세계를 뒤흔들고 있는 가장 핫한 음악의 주인공이 엔딩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

[ 여러분 환호하세요. 아이작 이스트입니다! ]

환호 속에서 제이콥과 친구들이 퍼뜩 정신을 차렸다.

“시작한다!”

“발견하는 순간 우리가 여기 있다는 것을 알리는 거야!”

“우리가 응원하러 왔다는 걸 보여주자고!”

잠시 후 아이작 이스트와 밴드 멤버들이 무대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 중에 유별난 존재감을 드러내는 순백의 동양인 소년이 있었다.

제이콥과 친구들이 난동 아닌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민! 민! 미이이이인!”

“우리 왔어! 민! 여기 좀 봐!!”

이게 무슨 일이야?

눈살을 찌푸리던 주위 사람들이 외침을 소리를 듣고 피식 웃는다.

그러더니 물었다.

“저기 무대에 있는 동양인이 너희들 친구야?”

“네? 네! 맞아요! 같이 하이스쿨에 다니는 친구에요!”

“이름이 뭐라고?”

“민이에요! 민! 민!”

“오케이 알았어!”

곧 구호가 시작된다.

“민! 민! 민! 민!”

“응?”

무대를 준비하던 중 갑작스런 콜이 들려왔다.

내 이름인데?

무슨 일인가 싶어 쳐다보니.

“와아아아!”

함성이 울려 퍼진다.

그 순간 원인을 알 수 있었다.

“어어?”

친구들이 있었다.

지긋지긋하던 잼민이 들이 이렇게 반갑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정말 날 응원하겠다고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왔구나! 하하하!”

기쁨이 뇌리까지 차오르는 순간 공황증이고 나발이고 싹 사그러든다. 나도 모르게 무대 앞으로 나가 친구들을 가리키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를 번갈아 살펴보던 관객도 사정을 파악한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때 아이작이 다가와 내 목에 팔을 휘감더니 묻는다.

“친구들이 응원 온 거야?”

“네! 저기 있어요!”

“어디... 오, 하하하. 이거 참 재미있는데?”

아이작도 손을 흔들어준다. 그 순간 애들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는데 하필 그 모습이 카메라에 담기고 잇었다. 무대 위에 설치된 거대한 전광판에 그 모습이 중계된 것이다.

그 순간 나도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어, 이거 지금 미국 전역에 중계되고 있을 텐데...?

그 순간 나도 모르게 오른손을 모아 살짝 웅크리며 초승달 모양을 그렸다. 그리고 엄지를 내밀어 모인 뒤 쿨하게 돌아섰다.

아이작이 묻는다.

“방금 그 제스쳐는 뭐야?”

“한국의 친구들에게 메시지 보낸 거예요. 이 손 모양이 초승달을 표현한 거거든요. 팀 이름은 문 라이트고.”

“아하.”

아이작이 씩 웃었다.

“방송을 보고 있다면 굉장히 기뻐하고 있겠군.”

“그랬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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