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02화 (102/205)

< 102화. 텐 믹스 (1) >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방송사 직원들에게 부탁해서 친구들을 대기실로 데려올 수 있었다.

“우와아!”

한국과 미국 잼민이들의 차이점을 발견했다.

한국 애들은 좋아하는 연예인을 발견하면 얼어붙어 버리거나, 감정 표현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으아아! 아이작, 저 정말 당신 사랑해요! 빅팬이라고요!”

“말도 안 돼! 내가 아이작 이스트를 만나다니... 엑스칼리버를 든 아서왕을 직접 만난 기분이야!”

얘네들은 온갖 미사어구까지 곁들여서 칭찬을 하고 난리도 아니다. 하긴, 그 정도나 되니 주변 사람들까지 동원에서 이목을 끌고 그 난리를 쳤겠지.

그리고 이에 대한 아이작의 반응 역시 남다르다.

“역시, 그럴 것 같았어. 왜냐고? 내 팬들은 유난히도 열정적인 부분이 있거든.”

이 같은 반응을 굉장히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후후, 아주 뜨겁군.”

미국 잼민이들이나 아이작 아저씨나.

내가 보기에는 텐션이 참 위험할 정도로 높은 사람들이다.

아, 적응 안 돼.

한국 가고 싶어.

“민! 레이지나 다른 스타들도... 어떻게 안 될까?”

“난 레이나하고 촬영하고 싶어!”

“어, 나는 영국 밴드 핫 플레이하고...!”

이것들.

아이작하고 해줬으면 만족할 줄 알아야지, 욕심이 생긴 모양이다. 나에게 엄청 눈치를 주는데... 그래. 까짓것!

너희들이 오늘 내게 감동을 줬으니 나도 힘 좀 써보지 뭐!

“잠깐 다녀올게요!”

“빨리 와!”

난 애들을 데리고 스타들이 머물고 있을 대기실 탐방에 나섰다.

“오늘 정말 꿈만 같은 날이었어!”

“고마워. 평생 오늘 일을 잊지 못할 거야!”

전부는 아니지만, 대부분 스타들에게 사인과 사진 촬영 받는 것에 성공했다. 참 쿨하게 해주더라. 대기실까지 찾아와서 그런 부탁하면 불편한 기색 보일 법도 한데....감격해서 고마움을 표시하는 애들에게 말했다.

“너희들 어떻게 돌아갈 거야? 아침 식사도 아직 안 했지?”

“응? 그야 뭐....”

“쯧, 기다려 봐.”

난 점심 식사 때 방문했던 치킨 집에 다시 예약 전화를 했다. 그리고 구글 지도로 위치를 공유해 주고 말했다.

“돈 지불 했고 음식도 미리 주문해놨어. 너희들 사진도 보내놨으니까 가면 주인아저씨가 알아보고 음식 차려 줄 거야. 먹고 가.”“.......!”

눈이 휘둥그레지는 아이들.

서로를 보며 아무 말을 못한다.

“왜 그래?”

“아니... 이렇게 해주는 거야?”

“친구끼리 그렇게 해줄 수도 있지. 뭐가 문제야?”

애들이 울컥한 얼굴로 한 마디씩 한다.

“이것이... 코리아?!”

“어우, 나 방금 울 뻔 했어.”

“내가 찾아봤는데 이게 한국인이 말하는 정이라는 거래.”

“쩡?”

“아니, 정! 아무튼 울림이 있는 단어야!”

재미없는 농담을 굉장히 진지하고 오랫동안 주고받는 꼴이라니.

“빨리 가라. 나도 철수 하는 거 도와야 해. 내가 막내라서 이렇게 오래 농땡이 피우고 있으면 안 되거든.”

“아 맞다! 빨리 가 봐! 내일 학교 나오는 거지?”

“물론이지. 내일 보자고.”

애들과 헤어지고 돌아오니 이미 철수 준비를 마친 뒤였다.

아이작이 자상한 얼굴로 말했다.

“적응은 잘 하고 있는 듯 보이는구나. 친구들과 굉장히 친해 보여.”

“좋은 애들이에요.”

“그렇게 보이더구나. 너도 무심한 듯 보이지만 실은 얼마나 잘해주려 노력하는지도 보였고.”

“그렇게 보였어요? 전 사실 누구에게나 항상 친절하고 헌신적인 사람인데.”

“그래. 하하.”

그날 공연은 그렇게 끝났다.

@

레이나는 정식으로 블랙 로즈를 통해 내게 곡, 프로듀싱 의뢰를 했다. 그리고 블랙 로즈는 한국 소속사인 JJ 엔터테인먼트에게 사실을 전달했다.

콘서트 다음 날 저녁 대표님이 연락해오더라.

[ 야, 너 미쳤어? ]

“아니,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에요? 미쳤냐고요? 어디, 정말 미쳐볼까요?”

[ 그러면 안 되지, 인마! 말장난하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해. 너 레이나 곡 의뢰 거절했었다면서? 텐 믹스 프로젝트 때문에. ]

“어, 그랬었죠. 그게 왜요?”

[ 그러면 안 되지! 무려 레이나의 의뢰였는데... 그런 건 무조건 받아들였어야지! ]

“흠.”

[ 네가 무슨 생각으로 거절했는지는 잘 알겠어. 감동 받은 것도 사실인데 한 편으로는 또 이런 기회가 왔을 때 엉뚱한 선택을 할까봐 걱정되어 하는 말이야. 만약 다음에도 이런 식의 선택의 기회가 온다면 너 자신의 이득을 먼저 챙겨. 그 정도는 우리가 얼마든지 양보해줄 수 있어. 알겠어? ]

“그건 그때 가서 봐야 알죠. 그리고 사람이 어떻게 이득 하나만 보고 움직일 수 있겠어요?”

난 당당하게 말했다.

“전 제 마음이 시키는 곳을 따라 움직일 거예요!”

[ 하여튼 저 황소고집... 그러면 어떻게 할 거야. 예정대로 텐 믹스 걸 그룹 데뷔 앨범도 네가 프로듀싱할거야? 가능하겠어? ]

“해봐야죠.”

[ 그러지 말고 그냥 곡 하나만 더 추가로 쓰는 것 정도로 하고 나머지는 레이나에게 집중하는 게 어때? 그쪽에서 한곡만 달라고 요청한 것도 아니니... 어떻게 될지 모르잖아. ]

“그쪽에서 제 작업 끝날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했어요. 저에게는 텐 믹스 프로듀싱이 더 중요하니까 그 작업은 예정대로 진행할 거예요.”

@

텐 믹스 첫 방송이 시작됐다.

트렌디한 댄스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연습생들의 모습이 인트로 영상으로 펼쳐진다.

화면이 전환되고, 그 동안 JJ 엔터테인먼트 걸 그룹 런칭 히스토리가 쭉 나열된다.

이어 텐 믹스 로고가 큼직하게 박혀 있는 핑크색 스튜디오에서, 한껏 꾸민 대표님이 프로그램에 임하는 각오를 말한다.

[ JJ 엔터테인먼트의 미래를 견인할, 더 나아가 KPOP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그룹을 만들고 싶습니다. ]

열 명의 출연자들이 한 명씩 소개된다.

과즙처럼 상큼한 누구~

이런 식의 짧고 개성 있는 소개 문구와 함께.

주세아는 중간에 등장했다.

원래 처음과 마지막 차례가 가장 임팩트 있는 법이지만....

‘와우, 엄청나네.’

주세아를 본 순간 앞 뒤, 다른 참가자들은 머릿속에 들어오지도 않는다. 그 한 명의 존재감이 워낙 막강하기 때문에.

이거 다 함께 군무를 펼치는 광경이 다각도에서 보여진다. 분량은 공평했다.

누구라고 연출에 특별히 더 신경 써 주는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세아에게만 계속 시선이 간다.

내 친구라서 특별히 관심이 가서 그런 게 아니라 냉정하게 봐도 그렇다.

일단 비주얼부터가 불공평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혼자서만 압도적인데 춤 솜씨도 남다르다.

한없이 유연하고 부드럽다고 갑자기 신체 부위를 강하게 퉁기고, 박자를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그루브감은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한다.

텐 믹스 로고가 큼직하게 떠오르며 본방이 시작된다.

디지털 미디어 시티에 위치한 뮤직 넷 사옥.

어두운 스테이지에 열 명의 연습생이 걸어 나온다.

신기하고 어리둥절한 얼굴들.

카메라 마사지를 받기 전이라 그런지 다들 굉장히 풋풋하다.

주세아만 빼고.

곧 조명이 켜지고, 맞은 편 작은 무대 위에 장진영 대표가 올라서서 소녀들을 바라본다.

장진영 대표가 마이크를 들고 말한다.

[ 지금부터 너희가 신경 써야 할 것은 딱 하나야. 팬덤. ]

웅성이는 소녀들에게, 장진영 대표는 담담히 설명을 이어나간다.

[ 경연의 초점은 너희가 어떤 매력으로 팬덤을 얼마나 많이, 튼튼하게 구축했느냐를 볼 거야. 아이돌에게 가장 중요한 게 팬덤 규모라는 건 너희도 알고 있지?  ]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거나 짧게 대답한다.

[ 이것을 끌어 모을 수 있는 능력을 평가하는 자리라는 거지. 때문에 춤, 노래 실력만이 중요한 게 아니야. 캐릭터가 얼마나 매력적인가. 우리는 이것 하나만 볼 거야. 자, 그러면.... ]

본격적으로 첫 미션을 시작하려던 대표님이 멈칫한다.

그리고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 깜빡했다. 너희 데뷔 앨범 총괄 프로듀싱을 해 줄 사람이 이거 꼭 강조해 달라고 했는데.... ]

총괄 프로듀싱?

어리둥절해하는 소녀들에게 장진영이 의미심장한 미소로 말한다.

[ 민이 말하는 거야. ]

김민!

10주 넘게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중인 맨해튼 드리밍의 작곡가이며, 엔 플라워에게 진정한 전성기를 가져다 준 슈퍼 프로듀서였다.

[ 와아...! ]

대부분 연습생이 내 이름을 듣고 들뜬 모습을 보이는 가운데, 주세아는 감정을 파악하기 힘든 무표정을 유지하는 중이다.

[ 민이가 전해달라고 보낸 글이 있었어. 그대로 읽어줄게. ]

헛기침을 하고, 대표님이 내 전언을 그대로 말씀하신다.

[ 여러분 데뷔 앨범을 총괄 프로듀싱하게 된 입장에서, 가장 강조하고 싶은 것은 인성입니다. 아무리 실력 좋고 캐릭터가 매력적이라도, 인성에 문제가 있으면 전 그 사람을 크게 쓰지 않을 거예요. 그리고 그럴 일은 없겠지만, 없어야겠지만.... ]

이 부분에서 대표님이 잠시 인상을 쓰더니 머뭇거린다. 카메라와 연습생들이 의아해한다.

다음 이어질 말이 뭔데 저런 반응이지?

연출이라면 참 대단하다고 말씀드리고 싶은데... 진심으로 당황한 듯 보이니 웃음만 나온다.

[ 경연 중, 과거 안 좋은 행실이 문제되어 논란을 일으키는 사람이 발생했고, 그 논란이 사실로 확인되면 즉시 탈락 처리가 될 겁니다. 그렇게 상실한 기회는 다른 연습생들에게 주어질 거예요. ]

내 전언은 끝.

[ 음. ]

잠시 고심하던 대표님이 내 전언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밝혔다.

[ 나도 공감하고 적극 찬성하는 부분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찔리는 게 있는 사람은 지금 물러날 기회를 줄게. 문제가 되는 부분을 깔끔하게 해결하고 다음 기회를 노리는 게 좋을 거야. ]

카메라가 얼굴을 한 명씩 비춰준다.

그 중에 썩은 사과도 있었다.

‘굉장히 뻔뻔하네.’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듯, 오히려 다른 연습생들의 얼굴을 확인하는 모습이 가증스럽게 느껴진다.

[ 다들 자신 있는 거지? 난 분명 기회를 줬어. 이후에 문제가 벌어지면 프로그램 하차는 물론, 회사에서도 쫓겨날 각오해야해. 자, 다시 묻는다. 정말 모두 자신 있는 거지? ]

[ 네! ]

우렁찬 대답.

장진영 대표는 씩 웃으며 말했다.

[ 자, 그러면 지금부터 첫 미션을 발표할게. ]

이후 열 명의 연습생들은 함께 버스를 타고 숙소로 이동하며 대화를 나눴다.

[ 와, 믿을 수가 없어. 김민 선배님이 우리 데뷔 앨범을 만들어주신다니... 나 진짜 팬이거든! ]

[ 나 선배님 뮤직 비디오 보고 삼척 원평해수욕장 놀러 갔었어! 거기 진짜 좋더라. ]

[ 우리 같이 갔었잖아! ]

주된 대화 내용이 나에 대한 것들이다.

본인들이 나를 얼마나 좋아하고 존경하는지 고백하느라 정신없다.

난 그때부터 썩은 사과를 주시했다.

대화에 참여하지도 못하고, 어딘가 불안해하는 얼굴이다.

[ 와! 숙소 진짜 좋다! ]

[ 깔끔하고 예쁘네! ]

다섯 명씩, 두 팀이 30평대 아파트 한 동씩을 배정 받았다.

당장 그룹으로 데뷔해서 숙소로 사용해도 문제없을 퀄리티였다.

다음 날 열 명의 연습생은 아티스트의 장소인 지하층 연습실로 이동했다.

그 자리에 등장한 것은 지금 가장 핫한 그룹인 엔 플라워의 리더 주아!

그녀의 등장에 모두가 상기된 얼굴이다.

본인들의 롤 모델이 등장한 순간이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의 첫 미션을 도와주려고 왔어요. 지금부터 한 명씩 개인 면담을 할 거예요. 이름 부르는 순서에 구애 받지 말고... 무작위로 부를 테니, 안으로 따라 들어와요.”

연습실 안에 별도의 후계실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그곳에서 첫 번째 미션과 관련한 개인 면담 시간이 시작됐다.

첫 번째 미션 제목은 < 스타성을 증명하라! >

뭐가 되던 좋으니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장기를 펼쳐 보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사람들이란 JJ 엔터테인먼트 전 직원과 아티스트들을 포함한다.

사옥에 큰 규모의 공연 연습실이 존재하는데, 그곳에 모여 열 명은 각자 재주와 매력을 선보이고 1차 투표를 받게 된다.

2차 투표는 시청자 투표.

이것을 종합하여 첫 번째 평가 점수를 매기게 된다.

주아의 개인 면담을 시작으로, 열 명의 연습생이 각자 미션을 준비하는 광경들이 펼쳐진다.

굉장히 열정적이다.

목숨을 걸 각오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 였다.

나 역시 그 과정에 몰입했다.

꿈을 위한 순수한 열정이 내 마음을 강하게 사로잡고 있었다.

이 프로그램.

누가 계획했는지 모르겠지만 정말 잘 만들었다!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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