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화. 텐 믹스 (3) >
‘이, 이게 뭐야?!’
친구가 보내 온 기사 링크를 확인했을 때, 최가련은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 텐 믹스 최가련을 고발합니다. ]
자신도 가입되어 있을 정도로 거대한 여성 커뮤니티 게시글을 인용한 기사였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원본을 읽어본다.
학창 시절 수시로 두들겨 맞았고, 돈도 빼앗겼고, 온갖 조롱을 당했다는 내용. 심지어 담배를 피거나 남자 애들하고 술을 마신 뒤 오토바이를 타고 다녔던 내용까지 상세히 적혀 있었다.
‘누구지? 대체 누가 이런...!’
떠오르는 얼굴이 많았다.
숙영이, 미호 등등.
“아아, 하필이면 이럴 때...!”
[ 벌컥! ]
“야, 이게 무슨 소리야?”
그때 방문이 열리며 당혹감이 가득한 외침이 울려 퍼진다.
배정 받은 숙소를 함께 사용하는... 7년차 연습생 정소민이었다. 참고로 최가련 보다 두 살 위의 언니였다.
그녀가 안 그래도 큰 눈을 부릅뜨며 자신의 휴대폰을 내밀어 보인다.
“이거, 설명해.”
학교 폭력 고발 관련 기사였다.
“나, 나는...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한 탓에 입술이 떨어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무슨 일 있어요?”
결국 모든 연습생들이 거실에 모였다.
최가련은 홀로 소파에 앉아 하얗게 질린 얼굴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어떻게 된 거냐면....”
정소민이 모두에게 사정을 설명하고 기사와 게시글 원문 링크까지 보냈다.
“........”
거실에 잠시 침묵이 흘렀다.
모두들 고발 내용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이거 빼박인데?”
“지금 원본 게시물 댓글이 당시 사진과 메신저 캡쳐본이 증거 자료로 올라오고 있어요! 아무래도 이거 사실인 것 같아요!”
“그런데 학폭위가 뭐 약자예요?”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단순 폭행이 1~3호 처분인데 여기 보니까 5호 처분이라고 되어 있네?”
정소민이 학폭위 처분에 대해 설명했다.
“내가 알기로 이 정도면 변호사 선임 비용이 성인 형사 사건 수준으로 들어. 참고로 언어적 성희롱이 4호, 강제 추행이 6호 처분이야. 얼마나 심각한지 알겠지?”
이 고발 사건이 빼도 박도 못할 진실이라는 것이다.
그때 어린 연습생이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물었다.
“그런데 소민 언니는 그런 걸 어떻게 그렇게 잘 알아요?”
“엄마가 이쪽 전문 변호사고 아빠가 검사야.”
한 마디의 설명에 모든 게 납득된다.
정소민은 최가련을 노려보며 낮게 깔린 음성으로 말했다.
“솔직히 말해. 너 이거... 사실이지?”
@
최가련은 회사 임원, 텐 믹스 제작진이 모여 있는 회의실로 불려갔다.
장진영 대표기 가늘게 뜬 눈으로 물었다.
“해명해 봐. 일단 고발한 사람은 너에게 심각한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고, 증거자료까지 공개한 상황이야.”
“아녜요! 제가 일방적으로 때린 게 아니라 서로 싸운 거였어요! 정말 억울해요!”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오열을 하는 최가련.
그러나 누구도 동요하지 않았다.
“학폭위 5호 처분은 넘어간다고 쳐. 이건 어차피 조사하면 금방 밝혀질 문제니까.”
출력물을 앞으로 내민다.
눈물을 닦고 내용을 확인한 최가련의 얼굴이 다시 하얗게 질렸다.
생각지도 못했던 과거의 흔적들이었다.
욕설, 협박, 학교 선생님과 친구, 장애인을 비하한 대화 내용 등등.
“이건 어떻게 설명할래?”
“하, 합성이에요! 조작이에요!”
“그러면 이건?”
추가로 제시한 출력물은 SNS를 통해 당시 친하게 지내던 남자애들과 주고받은 성적 농담 대화가 담겨 있었다.
“이, 이것도...!”
“조작이라고?”
“.......”
마지막으로 제시된 출력물은....
“학폭위 결과 통보서야. 인터넷에 누가 유출한 자료긴 한데... 네가 가해자로 적혀 있어. 이것도 조작이야?”
“.......”
최가련을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 광경을 무심하게 지켜보던 장진영 대표가 왼편에 앉아 있던 정장의 중년 남자에게 말했다.
“법무법인에서 서류 원본 확보하고 학교장 직인 확인해주세요.”
법무법인이라는 단어에 눈에 띄게 움찔한다.
장진영 대표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잘 선택해. 끝까지 부정하고 억울함을 호소했는데 사실로 밝혀지면 이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지는 거야.”
“.......”
최가련은 뚝뚝 눈물을 흘릴 뿐이었다.
“텐 믹스 하차 하자.”
“......!”
휘둥그레진 눈으로 고개를 치켜드는 최가련.
“일단 프로그램에서만 하차하도록 하자. 진상이 밝혀지면 그때 추가 제제를 하던가 하고.”
“........”
“만약 네가 말한 게 사실이고 저들이 악의로 널 음해했다는 게 밝혀지면... 사과하고 무슨 수를 써서라도 널 데뷔시켜줄게.”
“........”
“그런데 고발된 내용 중 하나라도 진실이 있다? 이건 저들뿐만 아니라 회사까지 기만한 거야. 우리도 가만히 안 있어. 너 쫓아내는 것 정도로 그치지 않아. 그러니까 다시 한 번 물어볼게.”
냉정한 말이 비수가 되어 심장을 찌른다.
“아직도 억울해?”
@
[ 최가련 텐 믹스 하차. ]
[ 최가련 손 편지 공개. - 회사와 연습생 동료들. 그리고 팬들을 실망시켜서 미안하다.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가 사죄할 것. ]
결국 최가련은 모든 사실을 인정했고, 텐 믹스는 물론 JJ 엔터테인먼트에서도 떠나게 됐다.
[ 결정이 빠르네. ]
┗ 지금 밝혀진 게 천만 다행...아무것도 모르고 데뷔한 상황에서 폭로 글이 올라왔다면 손해가 막심했을 거야. 소속사와 방송국도 굉장히 난감했을 거고.
┗ 아무리 그래도 너무 매정하게 칼 같이 쳐낸 게 아닌가 싶기도 하고....
┗ 뭐가 매정하냐? 이건 소속사에서 대처 잘 한 거다. 학폭 가해자는 감싸 줄 필요가 없음. 회사 이미지에도 치명적임.
한편 소속사와 제작진은 최가련 후속 주자 선정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다.
“누가 좋을까요?”
“적어도 최가련과 비슷한 급의 연습생을 데려다 놔야 할 텐데....”
한편, 장진영은 고민에 잠겨 있었다.
이정연 팀장이 물었다.
“대표님, 무슨 고민을 그렇게 하세요?”
“아아....”
장진영은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내가 주세아의 강력한 임팩트 때문에 눈이 멀어서 크게 실수했구나. 생각 중이었어요.”
회의실을 가득 채우고 있던 모든 이들의 이목이 집중됐다.
“주세아가 우리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 문 라이트라는 그룹에 있었는데... 친한 친구들하고 KM 오디션 응모하겠다고 조직한 그룹이었어요.”
공개 오디션을 통해 두 명을 제외한 모두를 떨어뜨렸다는 이야기.
텐 믹스 여자 작가가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세아 양 말고 또 한 명이 붙었다니, 그게 누구죠?”
“반지희라는 친구에요. 그 친구도 원래는 떨어뜨리려고 했는데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와 리더십이 묘하게 끌려서....”
“텐 믹스에 올리지 않은 이유는, 실력 때문인가요?”
“포지션이 겹치는 연습생들이 있었거든요. 그 친구들에게 먼저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했어요.”
이해하듯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
“최가련에 뒤지지 않는 인재가 필요하다고 하셨죠? 사실 지금 텐 믹스에 출연 중인 친구들이 바로 우리 회사 정예들이에요. 그런데 첫 방송 보셨죠? 주세아만 확 튀는 거. 다른 애들은 존재감이 아예 사라져 버렸잖아요.”
“아아....”
“압도적이었죠. 1,2차 투표도 사실상 몰표 수준이었고.”
주세아의 대한 극찬에 장진영이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문 라이트 애들하고 있을 때도 존재감이 강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주변 사람들을 집어 삼켜 버리는 수준까지는 아니었어요. 지금 생각하면 그게 정말 굉장했던 거였는데....”
장진영 대표는 뮤튜브 동영상 링크 하나를 제작진들에게 공유했다.
김민 뮤튜브 채널에 업로드 된 병원 공연 영상이었다.
영상을 확인한 제작진들이 탄성을 터트린다.
“이 친구들이에요?”
“다들 매력적이네! 춤, 노래 솜씨도 뛰어나고 비주얼도....”
제작진이 하나 둘씩 의혹의 눈빛을 보냈다.
“이런 친구들을 떨어뜨린 거예요?”
“다들 지금 어디 있어요?”
장진영은 쓰디쓴 음성으로 대답했다.
“두 명은 LK, 한 명은 네오크루, 한 명은 가수 꿈을 포기 했다 네요.”
“저런....”
누구도 말을 잇지 못했다.
좋은 인재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한 셈이니까.
“안 그래도 민이가 이 문제로 저 질타 많이 했어요. 대표님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느니... 어휴.”
다시 생각해도 절로 한숨이 나올 일이다.
설마 자신이 직접 뽑아서 공들여 훈련시켜 왔던 여성 데뷔조가 이렇게 맥을 못 추리라고는 생각도 못했기에.
텐믹스 프로듀서는 달래듯 말했다.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죠. 이제 눈앞의 문제에 집중합시다.”
다시 회의를 본론으로 돌아왔다.
최가련을 대신 할 연습생으로 누구를 뽑을 것인가?
여성 작가가 아이디어를 냈다.
“더 이상 뒷말 나오지 않도록 공평한 방법으로 뽑는 게 어때요?”
“좋은 생각 있어?”
프로듀서의 말에 그녀는 씩 웃으며 대답했다.
“오디션이요!”
이틀에 걸쳐 오디션이 진행됐다.
대상은 JJ 엔터테인먼트의 모든 여자 연습생이었다.
“너무 긴장하지 말고 한 명씩 장기를 보여줘.”
하지만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텐 믹스 촬영이 진행 중이었기 때문이었다.
공개 오디션 과정을 카메라로 담자는 것 또한 작가의 아이디어였다.
방송 촬영 장비가 가득한 곳에서, 연습생들은 지금까지 갈고 닦아온 장기를 뽐냈다.
‘여기서 반드시 뽑혀야 해!’
‘이번 기회를 놓치면 끝이야!’
대형 소속사의 연습생들이 가장 많이 이탈하는 시기가 신인 그룹 런칭이 결정되었을 때였다.
특히 어느 정도 나이가 있는 연습생들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장기를 모두 펼쳐 보인다. 주어진 시간은 충분했다.
“음....”
“다 좋은데... 흐음.”
세삼 느낀다.
텐 믹스 첫 번째 미션 종합 투표 점수에서 2위를 차지했던 최가련이 얼마나 뛰어난 인재였는지.
‘뭔가 아쉽네.’
‘이 친구도 다 괜찮은데 뭔가가....’얼마나 오디션을 봤을까?
“안녕하세요! 반지희입니다!”
마침내 문 라이트 멤버 중 한 명, 반지희가 등장했다.
내심 그녀를 기대하고 있었던 제작진이었지만, 누구도 내색하지 않았다.
어쨌든 오디션은 공정해야 하니까.
“전 자작곡으로 승부를 보겠습니다!”
기세 좋게 승부라는 단어를 입에 담는다.
모두가 웃는 가운데 장진영 대표는 그러지 못했다.
“자작곡? 지희야. 네가 곡을 쓸 줄 알아?”
“네! 아직 프로 수준은 아니지만요.”
“아니, 대체 언제부터...?”
반짝이는 눈으로, 특유의 상쾌하고 발랄한 에너지를 뿜어내며 대답한다.
“회사에 입사하고 저만의 경쟁력을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 열심히 공부했어요!”
“오오...!”
“저 습작도 많아요! 이거 끝나면 그거 다 보여드릴게요!”
생각지도 못했던 상황에 당황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감도 커진다.
직접 만든 곡을 들고 나온 연습생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계속된 오디션에 지쳐 있던 장진영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래. 어디 한 번 보여줘 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