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05화 (105/205)

< 105화. 텐 믹스 (4) >

깊은 밤.

장진영은 자택의 거실 소파에 앉아 노트북에 열중하고 있었다.

“재미있네. 이런 걸 하고 있었다니....”

[ 희아의 레몬 테라스 ]

메인 화면에 걸려 있는 것은 파스텔 톤의 예쁜 타이포그래피였다.

바로 반지희의 블로그였였다.

“좋은 책도 많이 읽었고 감상문도 열심히 썼고....”

뿐만 아니라 시, 단편 소설, 수필, 작사 습작도 많았다.

‘글에 재주가 있구나.’

뿐만 아니라 좋은 멜로디를 구성하는 능력도 갖추고 있다.

‘탑 라이닝이라....’

작곡도 분업화 된 세상이다.

가수가 부르는 멜로디 라인을 따는 사람을 가리켜 탑 라이너라 부른다.

‘편곡은 그 친구가 했네.’

문 라이트 오디션 때 봤던 꽃미남 학생.

김민과 반지희가 속한 반의 반장이라고 했던 최명중.

둘이 많은 작품을 협업했는데 관련 게시글에 뮤튜브 채널이 링크되어 있었다.

내친 김에 최명중의 뮤튜브도 확인했다.

주로 브이로그 위주였는데....

‘영상 만드는 솜씨가 갈수록 발전하고 있어.’

어린 친구들이 자기 개발이 이렇게 열성적이라니.

‘민이 녀석의 영향인가?’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은 것이 확실해 보인다.

최명중의 편곡과 반지희의 멜로디 구성에 김민의 흔적이 어렴풋이 담겨 있었다.

‘그것 참....’

절로 미소가 나온다.

정말 장한 아이들이 아닌가?

‘그래서 더 고민이야.’

오늘 오후에 있었던 반지희의 오디션을 떠올렸다.

@

“달이 되어. 불러 드리겠습니다!”

현란한 클래식 기타 음색과 통통 튀는 피아노와 베이스 연주가 울려 퍼진다.

“좋은데?”

“인디 밴드 감성이군요.”

흥겨운 리듬에 맞춰 몸을 들썩거리는 제작진들.

노래가 시작되었을 때.

“.......!”

장진영을 비롯한 모두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그대를 지켜볼래요.

달이 되어.

그대를 지켜줄래요.

굉장히 독특한 음색과 발성.

어린아이 특유의 혀 짧은 소리와도 비슷했는데, 보컬에 그루브가 가득 실려 있어 특별한 느낌을 선사한다.

스쳐 지나갈 뿐이라도.

지켜볼 수 있다면 행복할 수 있어요.

지켜주고 싶어요.

그 미소를 바라보고 싶어요.

맑고 깨끗하며 톡톡 튀는 피아노 반주가 수줍지만 남다름 감성을 지닌 소녀의 이미지를 연상시킨다.

더 놀라운 것은 노래를 부르는 반지희의 태도였다.

보통은 눈을 감고 혼자만의 세계에 몰입하기 마련인데.

‘똑바로 쳐다보고 있어.’

사람들의 반응을 살피듯, 크고 맑은 눈동자로 정확히 바라보고 있었다. 노래를 부르는데 무리를 하는 듯한 기색도 전혀 없다.

본인의 역량을 완벽하고 만들었다는 뜻이다.

깔끔한 스트링 사운드의 추가로 더욱 경쾌해지는 후렴구에서는 살랑 살랑 어깨를 흔들며 가벼운 안무를 선보이기도 한다.

“아하하! 잘한다! 좋다!”

“귀엽고 사랑스러운데요?”

“이거 진짜 내 감성에 딱 맞아! 너무 좋아. 귀여워!”

제작진은 좋아서 박수치고 난리 났다.

이에 자신감을 얻은 건지, 반지희는 눈을 찡긋하거나 수줍게 눈을 흘기는 등, 범상치 않은 표정 연기로 끼를 흘린다.

‘그래. 문 라이트 애들이 저 표정 연기를 굉장히 실감나게 잘 했어!’

바로 저거다.

압도적인 포스의 주세아와 함께 하면서도 본인의 매력과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이유!

본인의 매력과 캐릭터를 확실히 알고 그것을 부각시켰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이것은 타고난 것에 더해 특별한 트레이닝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는 요소였다.

‘민이 녀석... !’

생각할수록 아쉽다.

저런 인재들이 대거 찾아왔는데 주세아 한 명에게만 빠져서....

마침내 <달이 되어> 무대가 끝났다.

“와아아!”

“정말 잘한다!”

“바로 이거야! 더 이상 볼 거 없겠네요 저 친구로 가죠!”

이미 결과는 나왔다.

하지만 장진영은 웃을 수 없었다.

“저 어때요? 잘 했어요?”

반짝이는 눈동자로 결과를 기대하는 소녀.

“응. 아주 잘했어.”

“와아!”

칭찬에 기뻐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반지희를 보고, 장진영은 속으로 생각했다.

‘그룹으로 가져가기에 너무 아까운데?’

@

장진영이 고민하는 이유였다.

‘지희는 솔로로 데뷔시키고 싶은데....’

작사, 작곡, 거기에 유니크한 보컬과 캐릭터가 확실히 드러나는 표정 연기까지.

그룹으로 쓰기에는 너무나 아까운 친구였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이 문제는 민이하고 상의를 좀 해봐야겠어.’

@

대표님으로부터 지희의 오디션 영상을 받았다.

[ 이거 어떻게 생각하냐? ]

난 대답했다.

“귀척 쩌네요. 재수 없어.”

[ 이거 네가 프로듀싱 해준 거 아니야? ]

“곡에 관여하지는 않았어요. 피드백 해주고, 방향성 정도만 알려준 거지.”

[ 그게 프로듀싱이지 뭐야 인마. ]

“아무튼 이게 왜요?”

[ 사실.... ]

사정을 듣고 나서 단호하게 말했다.

“얜 그룹으로 넣어야 해요. 솔로로는 한계가 있어요.”

[ 응? 그게 무슨 소리야? ]

“그룹으로 넣으면 세계적인 걸 그룹의 리더가 될 수 있는데, 솔로로 돌린다면 이 좁은 한국 시장에서만 유명해지고 끝일 테니까요.”

[ ........ ]

대표님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왜요?”

[ 아니... 지희가 그렇게 굉장한 인재였어? ]

“그게 아니라, 지희와 세아가 뭉쳐 있을 때 드러날 케미 때문에 그러는 거예요. 아이돌 그룹에서 굉장히 중요한 부분이잖아요. 언니스, 막내스. 이런 거.”

[ 아아.... ]

“제가 왜 문 라이트라는 팀을 조직하고 훈련시켜서 다함께 오디션을 보게 했는데요. 제 눈에는 그 케미가 정말 완벽해 보였거든요. 초등학교 때부터 줄곧 함께 해 온 최고의 친구들만이 가질 수 있는 그런 케미.”

[ ....... ]

“역사에 길이 남을 걸 그룹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세아 한 명에게 정신이 팔려 버린 대표님이 그걸 걷어차 버린 거죠.”

[ 그만해 인마. ]

“하, 팬들에게 미안해 죽겠네. 어쩌면 빌보드를 장악할 수 있는 대한민국 최초, 최고의 걸그룹이 탄생할 수 있는 기회였는데 누구 때문에 정말....”

[ 그만하라고 인마! 나도 속 쓰려 죽겠으니까! ]

“그러라고 한 말이에요. 아니, 방송 보니까 회사 정예들이 주세아 한 명에 잡아 먹혀서 맥을 못 추네. 한 명 말고 이름도 제대로 기억이 안 나요. 최가련.”

[ 그만 하라니까 정말...! ]

“무슨 아이돌 연습생이 방송 데뷔 2화 만에 연예면이 아니라 사회면에 나올 수가 있는 건지... 얘 대표님이 뽑은 애라면서요?”

[ 야! ]

대표님과 잠시 말장난을 하다가 시간을 확인하고 진지하게 말했다.

“정 대표님이 그런 생각이라면 그룹 인지도가 어느 정도 생겼을 때 지희 솔로 앨범 내주시면 되죠.”

[ 지희만? 그러면 다른 애들이 뭐라고 할 텐데.... ]

“다른 멤버들도 해주면 되죠. 특히 세아는 팀으로도 멋지지만 홀로 퍼포먼스를 선보일 때 포스가 정말 어마어마할 거예요. 갠 잘만 훈련시키면 혼자서도 빌보드 갈 수 있는 애라니까요?”

[ 빌보드씩이나...? ]

“하, 아직도 제 안목에 대한 믿음이 부족하시군요. 두고 봐요. 앞으로 인재 보이면 절대 대표님에게는 안 넘겨줄 테다."

[ 팀 케미라.... ]

대표님은 내 말은 무시하고 생각에 잠기셨다.

나도 장난을 멈추고 진지하게 말했다.

“세아가 어지간해서는 다른 사람들과 잘 섞이지 않아요. 다른 게 아니라 세아가 너무 잘 나서 그래요.”

[ 지금도 벌써 느낌이 안 좋더라. 애들이 세아 엄청 경계하고 질투하는 것 같던데.... ]

“세아 단점 아닌 단점이 그거에요. 혼자 너무 잘 나서 시기 질투를 많이 받는데, 그걸 중화시킬 수 있는 언변이나 성격 같은 것을 가지지 못했어요. 홀로 고고하다는 거죠.”

[ 음.... ]

“그런데 그게 지희가 들어가면 다 해결 되요. 개가 진짜 리더십, 분위기 메이킹 능력은 탁월하거든요. 중재 역할을 굉장히 잘 해낼 거예요. 갠 그것만으로도 가치가 있어요.”

[ 그렇단 말이지? 좋아. 알았어. 믿어 본다. ]

통화를 마치고 나니 긴장이 확 풀린다.

됐다!

드디어 오랜 계획이 이뤄졌어!

판만 깔리면 지희는 혼자 힘으로 알아서 잘 해낼 것이다.

더 이상 내가 크게 신경 써줄 필요가 없다는 거지.

‘그건 그렇고....’

맨해튼 드리밍의 순위가 떨어졌다.

빌보드 hot 100 3위.

이번에 1위로 진입한 여성 뮤지션이 워낙 음원 깡패였고 톱스타이긴 했다.

하지만 맨해튼 드리밍의 인기가 변함없었다면 그래도 어떻게든 수성에 성공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레이지의 싱글 발매 시기가 다가왔다는 것이지.’

[ 띠링! ]

[ 출발했어? ]

[ 혹시 안 했으면 집에서 잠시 기다리고 있어. 내가 데리러 갈 테니까. ]

그때 날아온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으로부터의 메시지.

올것이 왔구나.

난 즉시 답변을 보냈다.

[ 집 앞에서 기다리고 있을 게요. ]

달리는 차안에서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흥미로운 소식을 전해줬다.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초고를 완성했다는 연락을 전해왔어.”

“무슨 초고요?”

“잊은 모양이군. 이드라실 외전말이야.”

“아....!”

노아의 캐릭터이자 내가 영화에서 맡은 배역인 요정 마법사 이드라실.

그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한 소설의 초고가 완성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잠깐만.

초고가 완성됐다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다고 벌써....?”

내 놀란 표정을 보고 감독님이 피식 웃었다.

“그래. 내가 처음 그 이야기를 전해 듣고 똑 같은 표정을 지었지. 믿겨지지 않지? 글 늦게 쓰기로 유명한 분이 벌써 원고를 완성했다니 말이야.”

“정말 그래요. 그 분 원래 한 권 쓰는데 늦으면 2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영감을 주체할 수 없었다는 군. 너와의 만남 이후에 캐릭터가 미친 듯이 살아 날뛰기 시작하더니, 빨리 이야기를 쓰라고 괴롭혀댔다나봐.”

“와우... 이거 또 노아 못지않은 명작이 나오는 게 아닌가 모르겠어요.”

슬그머니 물었다.

“초고 봤어요?”

“당연하지.”

“어? 정말요? 어떻게요?”

“영화로 만들지 말지 판단하려면 일단 소설부터 읽어 볼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 말을 듣고 잠시 고민했다.

그렇다면...?

“그것도 영화로 만들어지는 거예요?”

“그렇게 될 거야.”

“우와...!”

이전 생에 없었던 노아 외전!

이드라실의 이야기가 소설뿐만 아니라 영화로도 나온다!

“와, 미치겠다! 어떻게 세상에 이런 일이....”

“그렇게 좋아?”

“물론이죠! 제가 사랑하는 최고의 조합이 노아 시리즈 하나 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게 기뻐서 미치겠어요. 감독님과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뭉친다면 무조건 명작이 나올 수밖에 없잖아요!”

“명작은 무슨, 아직 노아 촬영 시작도 안 했는데.”

“감독님 전작 팬을 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걸요? 믿고 보는 잭슨 감독!”

실제로 영화 팬들 사이에서 돌았던 말이다.

문제는 노아 시리즈 이후에 영화를 잘 안 만들어서....그런데 노아 시리즈 이후에도 영화를 만들게 됐다니, 팬으로서 어찌 좋지 않을 수 있을까?

“믿고 보는...? 하하하!”

내 말이 기분 좋게 들렸던 모양인지 크게 웃음을 터트리신다.

“나하고 계속 영화 하고 싶다면 관리 잘 해야 할 거야.”

“물론이죠. 어차피 감독님이 계속 옆에서 지켜보며 저 만들어주실 거잖아요.”

“그래. 물론이지.”

잠시 후 잭슨 스튜디오 본사 건물에 도착했다.

오늘도 이 안에서 죽음의 일주가 시작될 예정이다.

연기 이론 및 실전 수업.

체력 단련, 무용, 검술 등등....

하지만 난 너무나도 좋다.

배우로서 성장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트레이닝은 늦은 시간까지 멈출 줄 모르고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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