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화. 레이지 임팩트 (1) >
와, 진짜 미친 새끼네.
래퍼 사이먼 블랙을 처음 보자마자 들었던 생각이었다.
“이 친구가 그 친구야?”
“응. 내 가장 친한 친구. 민이야. 인사해.”
레이지가 친구랍시고 소개해 준 흑인 래퍼는 두툼한 돈 뭉치를 손에 쥐고 등장했다. 레스토랑에 있던 모든 이들의 시선이 쏠린다.
녀석은 자리에 앉더니 제일 먼저 그 돈뭉치를 턱 내려놓는다. 이어 손목에 차고 있던 황금색 롤렉스를 비롯하여, 초고가의 시계와 보석 팔찌를 하나하나 풀어 보란 듯 올려놓고 마지막에 페라리 차키를 올려놓는다.
그 놈의 떠그라이프.
“멋진데?”
레이지는 말만 그런 게 아니라 진심으로 부럽고, 멋지고, 굉장하다는 표정으로 상대를 리스팩한다.
난 영원히 이 흑인 래퍼들 특유의 문화.
그러니까 간지에 살고 죽는 그런 걸 이해할 수 없을 것 같다.
이것들은 빌보드 1위도 못해본 것들이 허세는 정말... 쯧쯧!
레이지가 친구를 본격적으로 소개하려했다.
“이쪽도 내 친한 친구야. 누구냐면....”
“알아. 사이먼 블랙. 믹스 테이프 오비디우스(Ovidius)를 감명 깊게 들었어.”“오오오!”
“와우.”
두 사람이 꽤나 놀란 얼굴이다.
사이먼 블랙이 선글라스를 벗고 상체를 내게 기울이며 묻는다.
“그걸 들어봤다고?”
“고대 로마의 시인 푸블리우스 오비디우스 나소의 작품들을 주제로 한 랩이라니, 일단 소재가 굉장히 신선했지. 그걸 트라이브 콜드 퀘스트 느낌의 얼터너티브 힙합으로 표현한 게 특색 있었어. 굉장히 펑키한데 지적이었지.”
한 마디로, 보이는 것처럼 생각 없는 미친놈이 아니라는 것이다.
“.......”
멍하니 날 바라보던 사이먼 블랙은.
“와하하!”
웃음을 터트린다.
굉장히 유쾌하다는 얼굴이었다.
“아니, 그것까지 안다니... 혹시 나 만난다고 공부라도 해온 거야?”
난 얼굴을 찡그렸다.
방금 그 발언에 아주 살짝 인종 차별적인 냄새가 살짝 났기 때문이었다.
그가 내 표정으로 보고 황급히 손을 젓는다.
“어, 잠깐만! 나 지금 동양인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으로 농담을 한 게 아니야! 정말 신기해서 그랬다고. 하이스쿨에 재학 중인 한국 출신 소년이 나에 대해 그렇게 정확히 알고 있다니, 입장 바꿔 생각해봐. 너 같으면 안 신기하겠어?”
입장 바꿔서?
확실히.
사이먼이 갑자기 한국에 나타나서 별빛의 숲 팬이라며, 배경 지식을 줄줄 읆으면 신기하긴 할 것 같다.
내가 표정을 풀자 사이먼이 손을 치켜 드는 시늉을 한다.
“와우, 어린 친구랑 대화하며 이렇게 진땀 흘리기는 처음이군.”
“민을 얕보면 안 된다고 말했던 이유를 이제 알겠지? 나이는 우리보다 어려도 훨씬 어른스럽단 말이지.”
“그래.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만만치 않은 친구야.”
능글맞은 미소에 나조차도 웃음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유쾌한 미친놈이었다.
식사 후 이동한 곳은 사이먼과 레이지.
미친 떠그라이프 듀오가 만든 아지트란다.
비싸고 핫한 장소로 유명한 소호에 있었는데 사실상 힙합 클럽 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었다.
스테이지에 라이브 밴드와 래퍼들이 공연하고 있었고, 그 아래에 수많은 이들이 가볍게 몸을 흔들며 음악을 즐기는 중이다.
우리는 2층 VIP룸으로 올라가 깨끗하고 조용한 장소에서 그 광경을 내려다봤다. 테이블에 각종 음료와 칵테일 같은 것들이 가득했다.
“워워!”
그때 무엇 때문인지, 레이지가 사이먼을 만류한다. 무슨 일인가 싶어 고개를 돌렸더니.
‘헐.’
품에서 유리병을 꺼내드는데, 그 안에 대마 뭉치가 있었다.
레이지가 내 눈치를 보며 사이먼에게 말했다.
“아무리 어른스러워도 아직 미성년자야. 그리고 한국은 대마가 불법이란 말이야. 배려 좀 해줘.”
“오, 이런 그걸 몰랐네. 미안. 내 실수야.”
다시 품에 집어넣고 붉은색 소파에 앉은 그는 턱짓을 하며 말했다.
“지금 무대서 랩 하고 있는 녀석 잘 지켜 봐. 우리 친군데 분명 핫하게 될 녀석이니까.”
느릿한 드럼 비트와 베이스 기타, 피아노 반주.
구성은 굉장히 조촐한데 랩이 심상치 않았다.
어떤 개X끼가 이 x신 같은 비트를 틀었어?
X 같아. 집어치워.
무슨 랩이 아니라 화풀이를 하는 것 같다.
감히 내 롤렉스를 훔치려고 해?
X이나 처먹어!
싸우고 싶어서 괜히 시비를 거는 것 같기도 하고.
하지만 분명히 범상치 않은 실력자다.
난 그제야 그가 누군지 떠올릴 수 있었다.
‘레드 트라이브.’
브루클린 출신 래퍼.
오토튠을 굉장히 잘 쓰고, 트랩 비트 기반 싱잉 랩 열풍을 일으킨 주역 중 한 명이다.
‘이때부터 미친놈이구나.’
절로 초록동색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사이먼 블랙, 레이지, 레드 트라이브.
세 명이 성향이 참 비슷하다.
오늘을 화려하게 살자!
지금 이 순간이 내 인생에 가장 중요한 시기다!
뭐 이런 좌우명으로 살아가는 인간들.
“우와와와!”
공연이 끝나자 사람들이 열광적으로 환호하며 앵콜을 외친다.
그는 힘들어 죽겠다는 듯, 손을 내저으며 말한다.
“한 시간 날뛰었으면 할 만큼 했잖아! 오늘은 여기까지야. 다음 주 이 시간에 또 보자고!”
쏟아지는 야유에 당당히 가운데 손가락을 치켜 들고 퇴장한 그는 잠시 후, 2층 VIP룸에 나타난다.
“헤이.”
“오늘도 끝내주던데?”
사이먼과 레이지가 친근하게 인사를 한다.
난 잘 몰랐는데, 이 세 명은 아마 이때부터 사실상 의형제지간이었던 것 같다. 한 눈에 보기에도 보통 친분이 아니다.
“이 친구가 민이야. 네가 좋아 죽는 맨해튼 드리밍 작곡가. 내일 발매될 레이지의 그 음악을 만들어 준 장본인.”
사이먼의 소개에 잭.
훗날 레드 트라이브라는 이름의 슈퍼스타가 날 바라본다. 심상치 않은 눈빛으로 다가온 그는.
“와우.”
감탄사를 첫 마디로.
“내가 드디어 미친 천재와 만나게 되는 군. 편하게 잭이라고 불러.”
가볍게 그가 내민 주먹에 내 주먹을 부딪치며 물었다.
“랩 네임 있어요?”
“음? 아직 없는데....”
아, 이 시기에는 아직 그런 게 없었나?
그러면 내가 숟가락을 좀 얹어볼까?
“무대 봤어요. 스테이지를 아주 광기로 물들이더군요. 그리고 저 사람들을 당신의 열렬한 추종자로 만들었죠. 레드 트라이브 어때요?”
“레드... 트라이브?”
멍한 얼굴로 반복해서 되뇌던 그가 밝은 표정을 지었다.
“아주 좋아. 레드 트라이브라... 전율이 흐르는군!”
우리 대화를 지켜보던 사이먼과 레이지가 축하를 건넨다.
“역사적인 순간이야. 친구로서 축하하지 않을 수가 없어. 너 지금 굉장한 천재에게 인정받은 거라고.”
“레드 트라이브. 잭. 네 이미지랑 굉장히 잘 어울려. 다음 앨범부터는 그 랩 네임을 쓰도록 해.”
시간이 지나며 VIP 룸이 가득 찼다.
전부 이 세 명의 친구들인데 잠시 후 발매될 레이지 싱글을 함께 축하하기 위해 몰려온 것이다.
레이지가 내게 물었다.
“민. 얼마나 남았지?”
“한 시간 후.”
“떨린다. 진짜 떨려.”
내가 더 떨린다.
지금 자리에 모인 이들이 하나 같이 범상치 않은 이들이기 때문이었다.
이미 모델, 배우, 가수, 프로듀서 등등.
이미 셀레브리티인 이들도 있고, 차후 어떤 계기로 유명세를 탈 미래의 슈퍼스타도 있다.
가장 중요한 건 모두 한 덩치, 한 인상하는 흑인들이라는 것이다.
나만 동양인이고, 그리고 미성년자였다.
그럴 필요가 없다는 건 알지만, 괜히 위축된다.
“나 왔어! 안 늦었지?”
“레이나!”
마침내 검은 여왕까지 도착!
“민! 역시 여기 있었구나.”
레이나의 아는 척에 모두의 시선이 쏠린다.
아는 사이였어?
혹은.
어떻게 알아?
이런 의문을 담고 있다.
레이나는 바로 내 옆자리에 앉더니, 길고 가느다란 팔로 내 목을 감싸며 말했다.
“민이 바로 내 다음 앨범 프로듀서야.”
“와우...!”
“레이나의 프로듀서?”
“이거....”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거물이었잖아?
나에 대한 시선이 달라지는 순간이었다.
시간이 점점 다가올수록, 레이지의 얼굴에 여유가 사라진다.
“5분 남았어.”
5분 후.
나와 레이지가 같이 작업한 싱글이 공개된다.
나도 떨려 미치겠다.
아이작 이스트 때와는 또 다르다.
그래미 수장자인 아이작과 비교하면 레이지는 아직 신예일 뿐이다.
본인은 곡에 대한 애정이 굉장하고, 나름 자신감도 보여 왔지만 사실 결과는 까봐야 아는 것이다.
“1분 남았어.”
이때부터는 모두가 시계만 보고 있었다.
그리고.
“Ten! Nine!”
마침내 시작된 카운트다운.
레이지의 검은 얼굴이 이상하게 새하얗게 질린 것처럼 보인다.
그만큼 긴장했다는 뜻.
그리고 그건 아마 나도 별반 차이 없겠지?
“Two! One!”
침묵.
내 옆에 앉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레이지를 대신해, 내가 휴대폰을 확인한다.
스포티파이, 애플 등등.
Rage - Don’t Touch Me!
커버, 곡, 가사... 모두 이상 없이 공개 된 것을 확인했다. 즉시 음악을 스피커 모드로 재생. 볼륨을 최대한 키운다.
인트로가 쩌렁 쩌렁 울려 퍼지는 순간.
“와아아아!”
“축하해. 레이지!”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환호를 터트린다.
“큭...!”
머리를 감싸 쥔 채 부들 부들 떨던 레이지는.
“드디어 내 시대가 왔다! 자 죽여 버리겠어! 으하하하하!”
벌떡 일어나더니 미친 놈 마냥 소리를 질러댄다.
이어 나. 그리고 레이나를 격렬하게 포옹하고 어깨에 팔을 휘감으며 소리친다.
“싱글 발매 기념 파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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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의 두 번째 미국 진출작. 레이지의 발매! ]
한국 언론이 굉장히 떠들썩했다.
김민의 미국 진출작이자 히트곡이었던 맨해튼 드리밍에 이은 두 번째 작품이 발매될 것이다.
인터넷에 벌써부터 곡 리뷰가 올라오고 있었다.
[ 이게 그 곡이지? 김민 뮤튜브 할렘 여행기에서 갱스터들하고 대화하다가 삘 받아서 만들었던 그 곡. ]
┗ 나오자마자 계속 반복해서 듣는 중. 이거 진짜 개쩌네.
┗ 갱스터들의 이야기를 이 이상으로 슬프고 처절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싶은데... 내 이야기도 아닌데 눈물이 난다. 그리고 이걸 한국인 소년이 만들었다는 걸 정말 믿을 수가 없다.
맨해튼 드리밍이 맨해튼에 거주하며 그 안에서 각자의 꿈을 펼쳐나가는 이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담았다면....
Don’t Touch Me!는 빈민들의 어둡고 암울한 삶을 가슴 시린 감성으로 담아냈다.
애원, 비명, 총소리로 끝나는 엔딩은 리스너에게 큰 충격을 선사한다.
픽션이 아닌 팩트.
동화가 아닌 현실.
김민이 지금까지 보여온 음악들과 굉장히 상반된 분위기였다.
이 순간, 여론의 관심은 하나에 몰려 있었다.
[ 그래서, 과연 이 곡은 빌보드 몇 위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
중요한 것은 성적!
더 극단적으로 말하면 이번 곡도 과연 빌보드 1위를 할 수 있을지.
수많은 언론과 네티즌이 가장 관심 있어 하는 부분이었다.
곡에 담긴 가능성, 미래 가치에 주목하는 이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아직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