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화. 레이지 임팩트 (3) >
2. Don’t Touch Me! - Rage
무려 2위!
“우와와와!”
“해냈어!”
서로 마주보고 함성을 내지르던 나와 레이지가 힘차게 두 손바닥을 부딪친다.
그것을 기점으로 신나는 파티 음악이 VIP룸 전체를 시끄럽게 울린다.
[ 펑! ]
샴페인이 여기저기서 폭발했고.
[ 휘이익! ]
“다들 정신 똑바로 차려! 지금부터 날이 밝을 때까지 파티다!”
레드 트라이브의 그 한 마디에 광란의 질주가 시작됐다. 정신없이 어울려 기뻐하던 나는 사방에 가득한 술 내음에 뒤늦게 정신을 차렸다.
아차! 나 미성년자잖아!
새벽에 이러면 안 될 텐데...?
“뭐하고 있어? 민! 빨리 춤 좀 보여줘!”
“그래! 가만히 있지 말고 춤 춰 보라고!”
... 에라 모르겠다!
가즈아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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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까지 놀다가 그대로 학교로 직행.
“으어어...!”
책상에 앉자마자 그대로 뻗어 버렸다.
“오오, 민! 어제... 으엑?!”
“.......!”
언제나처럼 내게 다가오던 친구들이 깜짝 놀라 뒤로 물러난다.
그 중 한 명이 묻는다.
“너 밤새도록 술 마신 거야?”
“... 아니. 난 안 마셨어.”
“그런데 왜 이렇게 술 냄새가....”
“술이 가득한 곳에서 술 맞으면서 춤추며 놀다보니....”
“진짜 안 마신 거지?”
“진짜야. 그런데 피곤해서... 좀 자야겠다.”
정신이 몽롱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고, 누구하고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건지 도저히 분간이 안 된다.
체력, 체력이 다 떨어졌어.
“... 드르릉!”
친구에 의해 깨어났을 때, 이미 그 날 수업은 모두 끝난 상황이었다.
... 무슨 마법에 걸린 기분이네.
학교 교문에서 망할 떠그 라이프 3인방에 납치당했다.
레이지, 레드 트라이브, 사이먼 블랙.
금 목걸이 차고, 롤스로이스에 기댄 체 온갖 이목을 잡아 끌고 있더라.
저런 것들을 친구라고....
도저히 아는 척 할 수 없어서 몰래 빠져 나가려다가 붙잡히고 말았다.
“실망이야. 우리가 부끄러워? 왜 몰래 도망치려고 하지?”
분기를 토하는 레드 트라이브 녀석에게 내가 진지하게 말했다.
“뉴욕 경찰이신 아버지 생일 때 우리 꼭 좀 초청해줘. 오늘 이 모습 그대로 아버지 근무하는 경찰서 앞까지 찾아가서 깜짝 파티 해드릴 테니까.”
“........”
대답을 못하고 슬며시 창밖을 바라보는 레드 트라이브.
녀석이 뉴욕 경찰로 수십 년을 근무해 온 아버지를 굉장히 존경하면서, 또한 무서워한다는 사실을 알고 던진 말이었다.
난 운전 중인 사이먼 블랙에게 물었다.
“이 롤스로이스는 뭐고 날 데려가는 곳은 어디야? 슬슬 설명해 줄 때가 되지 않았어?”
조수석의 레이지가 날 돌아보며 허세 가득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날 빌보드 2위 뮤지션으로 만들어 준 최고의 프로듀서에게 보답을 해주러 가는 길이지.”
갑자기 불안해진다.
이것들이 무슨 작당을 하고 있는 거지?
도착한 곳은 소호의 편집숍.
“어? 여기....?”
그냥 흔하디흔한 곳이 아니라 굉장히 유명한 곳이다.
뉴욕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샐럽들이라면 모두 한 번씩 거쳐 갔다는 그 장소!
심지어 회원제로 운영되는 곳이다.
당연히 이 떠그라이프 3인방은 회원 카드를 가지고 있었... 잠깐만!
“잭. 넌 뭐야? 이 두 명은 납득하겠는데 넌 그 카드 가지고 있으면 안 되잖아?”
잭이 깜짝 놀라 반문한다.
“뭐? 어째서?”
“넌 아직 안 유명하잖아!”
“........”
당황해서 멍 째리는 잭과 좋다고 웃는 두 녀석.
마침내 도달한 장소는 노출 콘크리트를 절묘하게 활용한 인테리어의 매장이었다.
기존 브랜드숍에서 찾아보기 힘든, 이 매장을 운영하는 디자이너가 직접 만든 제품들이 가득하다.
손님들도 하나 같이 범상치 않아 보인다.
“여, 레이지! 빌보드 싱글 차트 2위의 주인공!”청바지에 새하얀 티셔츠, 조던 시카고 하이를 착용한 거구의 흑인 남자가 인사를 건네온다.
사이먼, 잭, 그리고....
“오오, 이 친구가 바로 그 유명한 천재 소년이야?”
“민이야. 우리 친구니까 얼굴 똑똑히 기억해두고 당장 빌어먹을 회원권 하나 만들어서 가져 와.”
회원권 때문에 무시를 당한 탓인지 잭의 표정이 살벌하다. 거구의 흑인 남자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너희들 친구라면 회원권을 받을 자격이 있긴 하지만... 이 친구는 옷에 그다지 신경 쓰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은데?”
참고로,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은 저렴한 스파 브랜드 제품이었다.
레이지가 피식 웃으며 말한다.
“워낙 검소한 성격이라서 그래. 그래도 아마 돈은 우리 중에 제일 많을 거야.”
“하긴 빌보드 1,2위 곡을 쓴 장본인이니 충분히 그럴만하지.”
오늘 확인했을 때 Don’t Touch Me! 2위였지?
맨해튼 드리밍이 다시 1위로 반등했더라.
그걸 두고 말하는 것이다.
잭이 첨언했다.
“민 녀석, 오늘 이후로 이곳에 자주 찾아오게 될 거야. 넌 빌어먹을 놈이지만 옷과 액세서리 만드는 능력만큼은 뉴욕에서 최고잖아. 한 번 맛보면 헤어 나오기 어렵지.”
“인정해줘서 고맙다고 해야 하는 건지... 편하게 둘러보라고. 난 가서 회원권을 만들어 와야겠어.”
굉장히 유쾌하고 선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겉모습은 거대 갱단 두목 같이 생겼는데.
“음, 이거 좋네. 저것도 좋고....”
저 녀석들.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옷을 마구 쓸어 담는다.
그런데 워낙 패션 센스가 좋은 놈들이고, 이 매장의 품질과 디자인이 전반적으로 뛰어난 편이라 모두 마음에 든다는 게 문제였다.
뭐, 선물이라니까.
그래서 조용히 입 다물고 졸졸 쫓아다녔다.
그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맨해튼 명품가에 위치한 롤렉스 매장이었다.
사이먼 블랙이 으스댄다.
“민! 지금부터 잘 지켜봐. 두 녀석은 엄두조차 못 낼 내 위용을 증명해 보일 테니까!”
놀랍게도 구매 예약만 몇 달을 기다려야 한다는 롤렉스시계 네 점을 그 자리에서 받아 결제 해버렸다.
롤렉스 매장의 VIP였던 것이다!
“봤어? 내가 이런 사람이야!”
놀란 내 표정에 녀석이 으스댄다.
... 정작 결제는 레이지가 했는데 말이지.
우리는 구매한 제품을 그 자리에 풀어 왼쪽 손목에 착용했다.
레이지가 굉장히 엄숙하게 말한다.
“앞으로 이 시계가 바로 우리 4총사의 상징이야. 어디 다닐 때 반드시 착용하고 다녀야 할 거야. 배신자로 몰려 밤에 총 맞고 싶지 않으면.”
기분이 묘하다.
머잖은 미래.
전 세계 힙합 씬의 슈퍼스타가 될 이 세 명과 이런 순간을 맞게 될 줄이야.
잭 녀석이 진지하게 묻는다.
“이 정도면 우리도 정식으로 크루를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이제야 그런 생각을 하다니, 아직 멀었어. 난 이름도 떠올렸지.”
사이먼 블랙에게 우리의 이목이 집중된다.
“N. W. O”
“오, 뭔가 있어 보이는데? 풀 네임이 뭐야?”
잭 녀석의 물음에 사이먼 블랙이 당당히 대답한다.
“New World Order (신세계 질서).”
“.......”
반응을 보였던 잭은 물론, 우리 모두 황당한 표정이 됐다.
이 자식이 무슨 일루미나티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
“이미 변화는 시작됐어. 그 시작은 민이 미국에서 발표한 두 곡의 음악이야.”
그런데 사이먼 블랙은 진지했다.
“그건 단순한 히트 곡이 아닌 랩 음악의 발전 방향을 제시한 혁신의 상징이야. 특히 Don’t Touch Me! 에서 보여준 멈블, 멜로디 랩의 조화. 모든 음악적 기법을 가리지 않고 동원해서 사람을 한 없이 우울하게 만드는 Emo 비트는 정말이지....”
녀석이 날 보며 말한다.
“넌 모를 거야. 네가 만든 음악들 때문에 지금 이 업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나야 모르지.
학업과 연기 트레이닝에 치여 바쁘게 살고 있는 유학생일 뿐이니까.
사이먼 블랙이 묻는다.
“어때? N. W. O. 이제 좀 다르게 들리지?”
개뿔....
“헛소리 그만하고 Three Fools(세 바보)로 바꿔.”
“뭣!?”
“우리가 왜 바보야? 너무하잖아!”
깜짝 놀라는 사이먼 블랙과 억울한 듯 항변하는 잭.
“하나도 안 너무해! 그리고 왜 은근슬쩍 날 너희 무리에 끼워 넣으려고 하는 거야? 난 너희 같은 욜로, 떠그 라이프 인생들하고 세트로 묶이고 싶지 않다고!”
“그 시계 착용한 순간부터 넌 이미 우리 크루야! 이제 우리는 N. W. O라고!”
“맞아!”
아웅다웅하며 저녁 식사를 위해 이동하는 길.
레이지가 묘하게 조용하다.
왠지 내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뭐야? 너 답지 않게 굴지 말고 하고 싶은 말 있으면 해 봐.”
“으음....”
“무슨 일인데?”
머뭇거리던 레이지가 조심스레 묻는다.
“정말 우리하고 엮이는 게 싫어?”
“응?”
“N. W. O 크루. 난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할 말을 잃은 내게 녀석이 간절하게 매달리기 시작한다.
“같이 하자. 내가 잘할게. 응?
“.......”
얜 또 왜 이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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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지와 스케줄을 하러 다니면서 확실히 체감했다.
“사인해 주세요!”
“팬이에요!”
이 녀석, 진짜 떴구나.
아이작도 물론 스타였지만, 지금 이 녀석과는 결이 달랐다. 아이작이 존경의 대상이었다면, 레이지는 열광의 대상이었다.
굉장한 미남이었고, 스타일리쉬했으며 무엇보다도 이제 막 메인 스트림에 발을 디딘 신성이었다.
사람들이 관심이 쏟아지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메이저 방송 출연을 기점으로 녀석의 SNS 팔로워 수가 폭증한다.
천만 명을 정말 순식간에 돌파 해버리더라.
그리고 이 시기부터 남다른 패션 감각으로 음악 외에 또 다른 팬층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블랙 로즈에서 활동을 지원해주긴 하지만 그는 패션 만큼은 스타일리스의 도움을 받지 않고 본인이 모두 해결했다.
이에 대한 반응들이 심상치 않았다.
수많은 이들이 레이지의 패션 센스를 주목하더니, 하나 둘, 따라하며 소비하는 이들이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것을 한 유력 일간지에 ‘레이지 임팩트’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기존 랩 스타에게서 찾아볼 수 없었던 현상이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의 등장과 몰락을 지켜봤던 언론은 이것이 한순간의 열풍으로 끝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짐작하고 있었다.
예정되었던 방송 출연이 모두 끝났다.
난 이제 일상으로 돌아갈 시간이다.
잠깐의 이별을 앞두고, 레이지가 내게 말했다.
“당분간은 활동 때문에 이전처럼 함께 할 시간이 많지 않을 거야.”
현재 레이지는 폭발하는 인기로 거의 몇 달 치 일정이 꽉 채워진 상황이었다. 마침내 녀석이 그토록 원하던 슈퍼스타로서의 삶이 시작된 것이다.
그런데 어쩐지 표정이 개운하지는 않아 보인다.
난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레이나가 마음에 걸려?”
“응. 아무래도 너무 긴 시간을 떨어져 있어야 하니까....”
말이 나왔으니, 녀석은 한숨을 푹 쉬며 본격적으로 고민을 털어 놓는다.
“그녀는 굉장히 매력적인 여자야. 내가 과분하게 느낄 만큼.”
“.......”
“난 그녀를 놓치고 싶지 않아. 하지만 힘들게 잡은 이 기회를 날려 버리고 싶은 생각도 없어.”
레이지가 본격적으로 메인 스트림에서의 활동을 시작한 것을 기점으로 둘이 함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레이지보다 내가 레이나와 대화하는 시간이 더 많을 정도였다.
어쩌면 두 사람은 이미 이별을 준비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부탁해도 될까?”
“말해 봐.”
“내가 레이나와 헤어지게 되더라도, 너만은 그녀를 떠나지 말고 잘 좀 챙겨줘. 나한테 그랬듯이. 너라면 믿을 수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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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 아침.
연기 트레이닝을 위해 잭슨 스튜디오로 출근을 준비하던 중 레이나에게 걸려온 전화를 받았다.
[ 민. 오늘 시간 있으면 같이 점심 먹으며 대화 좀 할 수 있을까? ]
그 말을 듣자마자 강하게 느낌이 왔다.
결국 헤어졌구나!
난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럴까요? 어디로 가면 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