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11화 (111/205)

< 111화. 꿈의 노래 (1) >

그것은 아무도 찾지 않은 낡은 무대 위에서 홀로 탄식하는 노인의 이야기였다.

과거를 깊이 후회하며, 더 이상 누구도 불러주지 않는 노래를 쓸쓸하게 열창하는 광경이었다.

[ ....... ]

처음 보는 노인이었고 생소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 모든 요소들이, 엄청난 감정의 파도가 되어 내 마음 속에 휘몰아쳤다.

반주도 없고, 내뱉는 것은 노래라 부를 만한 소리도 아니었다.

노인의 성대 부위에 깊은 흉터가 있었는데, 아마 그것이 원인인 듯 했다.

노래 대신 바람 빠지는 이상한 소리만이 들리는 것이.

노인은 결국 노래를 끝맺지 못하고 주저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낡은 무대.

과거를 후회하며 더 이상 나오지 않는 음성으로 가슴 아픈 노래를 부르는 노인의 이야기.

그것은....

@

“... 어?”

잠에서 깬 나는 지워지지 않고 생생 꿈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뭐지? 이 이야기는....?’

잊어버리기 힘들만큼 생생한 감정의 파도였다.

모든 것이 생소했지만, 이미지가 너무나도 강렬했다. 그래서 멍하니 눈만 끔뻑이고 있을 수가 없었다.

황급히 몸을 일으켜서 휴대폰을 집어 들고 네가 본 모든 광경을 기록했다.

그리고 녹음했다.

“.......!”

이야기만큼이나 강렬했던 멜로디.

웅장하면서도 신나는 뮤지컬 타입의 음악이었다.

혼자가 아닌, 수많은 이들이 화음에 맞춰 함께 불러야 맛이 더 살아나는... 그런 노래였다.

하지만 부르는 방식에 따라 색다른 느낌을 안겨주기도 한다.

지금처럼, 잠긴 목소리로 처연하게 부르니 또 다른 맛이 살아난다.

신나고, 즐겁고, 활기찼던 색을 모두 제거해버리니 가슴을 시리게 만드는 울적함만이 가득 남았다.

아, 영감님!

제 꿈속에서 찾아오셔서 던져주고 간 이 정체불명의 이야기와 노래는 대체 뭔가요?!

@

당장의 가사는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재즈에서 말하는 스캣으로 아무렇게나 멜로디를 녹음한다. 노랫말을 정확히 듣지 못했기 때문이다. 음정도 워낙 불완정했다.

꿈속의 노인이 대체 어떤 노래를 부르려고 했는지, 한참을 끙끙대며 나름의 정답을 찾아 기록하는 상황이었다.

그 와중에도 몇 가지, 단편적으로나마 남아 있는 키워드가 있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요.

지금 당신은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어요.

어둠이 지나고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그대여.

슬퍼하지 말고 춤을 춰요.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꿈속에서 본 장면의 핵심이 되는 파트임이 분명했다.

노인은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하염없이 이 부분을 반복했다.

나 역시 몇 번이나 이 부분을 반복했다.

어느 순간에는 정신없이 피아노를 치며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신나고 활기찬 노래였고 희망을 던져주는 노래임에도 이상하게 눈물이 흐른다. 가슴이 벅차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춤과 노래를 멈추지 말아요!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흥겹게 시작한 노래는 찬란하고 희망차게 끝이 났다.

마침내 완성된 노래의 핵심 내용을 읊조리고 있는데....

[ 짝짝짝! ]

한편에서 박수가 울려 퍼진다.

그리고.

“으어엉!”

“흑....!”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이, 이게 무슨 소리야?!

깜짝 놀라 고개를 돌린 곳에는.

“대표님? 팀장님?”

고릴라와 천사.

어울리지 않는 조합의 한 쌍이 하염없이 울며 박수를 치고 있었다.

그 순간 어마어마한 민망함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어, 언제부터 그러고 있었던 거예요?!”

“아까부터! 흐엉...”

“말하려고 했는데... 열창하고 있어서... 패앵!”

왜 이렇게 우는 거야?

거칠게 머리를 긁적이던 나는 푹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디부터 들었어요?”

“처음부터 모두!”

“... 거 훌쩍거리는 것 좀 어떻게 안 돼요? 거슬리네 참.”

“계속 눈물이 나오는 걸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정말 감동적이에요!”

정연 팀장님의 읆조림에 오싹! 소름과 부끄러움이 밀려온다.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

“나갔다가 밤에 다시 돌아오면 안 돼요?”

“........?”

“........?”

의아한 얼굴로 쳐다보는 두 사람.

난 멋쩍게 말했다.

“작업이 안 끝났어요. 마저 좀 이어서 하고 싶어서....”

영감님이 선물이 아니라 무슨 폭탄을 던져주고 가셨다.

악상뿐만 아니라 춤과 동선까지.

아주 생생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이것이 모두 날아가 버리기 전에 빨리 정리하고 싶었다.

하지만.. 누구 보는 앞에서 하는 건 민망하잖아.

답변은....

“싫어.”

“그냥 해요. 입 다물고 조용히 있을 게요.”

단호함과 간절함이 가득한 눈빛에 앞에 난 거칠게 머리를 긁적거렸다.

에이, 진짜 민망한데.....

정리한 악상을 피아노 반주만으로 녹음했다.

음정이 흔들렸고 박자도 절고 가시도 이리저리 씹혔지만 일단 넘어갔다.

어차피 스케치 목적이기에 느낌만 살아 있다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이게 참... 지켜보는 눈이 있어서 최대한 냉정하게 작업하려 했는데 그게 마음대로 안 되더라.

부르는 내내 울컥해서 계속 목이 메고 눈물도 찔끔찔끔 흘렀다.

으아... 나 지금 굉장히 찌질한 것 같아!

혼자 감동 받아서... 이게 대체 무슨 짓일까?

그런데 웃긴 데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도 계속 훌쩍거리다가 나중에 다시 통곡 비슷한 걸 터트리더라.

... 그런 반응을 보니 뭔가 괜찮은 게 나오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기분이 참 알쏭달쏭하다.

아무튼 스케치 녹음을 끝내고 바로 일어서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슨 거창하고 어려운 안무는 아니었다.

춤을 전문적으로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조금만 노력하면 쉽게 즐기고 따라할 수 있는 뮤지컬 스타일 군무!

몸을 흔들고,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고.

그리고 리듬에 맞춰 그 낡은 무대와 폐허가 된 객석을 돌아다니며 호응을 유도하는 부분이 훨씬 많다.

사실... 안무를 만드는 내내 내가 지금 무엇을 위해서, 대체 뭘 하자고 이런 걸 하고 있는 건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일단 쭉 작업을 진행했다.

죽이 되던 밥이 되던, 일단은 내 모든 영감을 하나의 작품으로 정리하고 싶었다.

“아오, 야! 그게 아니라 여기서는 이렇게 해야지!”

그런데 이 같은 망설임과 혼란이 틈을 만들었던 모양. 그리고 그것이 춤과 프로듀싱의 달인인 내 스승, 대표님에게 굉장히 거슬려 보였던 모양이다.

“단순히 박수 정도로 호응을 유도하게 하면 안 돼. 작은 안무 동작이라도 주고 그걸 따라하게 만들어야 재미있는 거지!”

결국 대표님까지 가세했다.

사실 이런 뮤지컬 타입은 작업은 처음이어서... 대표님의 조언으로 많은 것을 해결할 수 있었다.

그렇게 늦은 밤에야 음악과 안무 시안 영상을 만들 수 있었다.

“뭐하려고?”

“일단... 내용 좀 정리하고요.”

꿈에서 본 내용을 말해주며, 그것을 영문으로 정리했다.

“이 내용을 두 분에게 정리해서 보낼 생각이에요.”

“누군데?”

“영화 음악의 거장 헨리 윌리엄스. 소설가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요.”

“.......!”

“저도 꿈에서 보고 들은 내용을 황급히 정리한 거라... 이후로는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굳이 제가 처음과 끝을 완성하려 할 필요는 없는 거잖아요.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전문가의 조언을 받으면 되는 거니까요.”

“그, 그건 그렇지.”

“맞는 말이네요.”

동영상과 가이드 음악을 장문의 글과 함께 이 메일로 보냈다.

올리비아 퀸 작가님은 몰라도,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은 일단 연락처만 받은 게 전부라서... 나중에 노아 작업 문제로 만나긴 하겠지만 내 메일을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그래도 내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듯 보였으니, 하다못해 작은 조언이라도 해주시겠지?

그러다 두 사람을 보고 갑자기 의문 하나가 떠올랐다.

“그런데 두 분은 여기 왜 오신 거예요?”

“이번에 엔 플라워 싱글이 오리콘 포함한 일본 차트 휩쓴 거 알고 있지? 그거 보고 미국에서....”

“네? 일본을 휩쓸었어요? 아니, 언제요?”

“... 야, 이번 앨범 일본에서도 반응 죽인다고 처음 했던 게 너였다며.”

“어, 매장 가서 박스째로 쓸고 가는 광경을 보긴 했었죠. 그런데 그게 오리콘 차트 1위로까지 이어졌다고요?”

“야, 말도 마. 지금 일본에서 엔 플라워 인기가 어느 정도냐면....”

대표님은 잔뜩 흥분해서 엔 플라워의 일본 위상을 성명해주셨다.

대부분 메이저 방송 출연!

음반도 대박!

“심지어 도쿄돔 공연까지 추진 중이라니까?!”

“우와...!”

“굿즈 샵도 이번에 한 번 크게 팝업 매장으로 열었는데 그것도 대박 났고, 여기저기서 광고 제안 미친 듯이 쏟아지고... 야, 말도 마. 지금 회사 주가가 하늘로 수직 상승 중이다.”

“우와아아...!”

“그런데 일본과 아시아뿐만 아니라 북미, 유럽 지역에서도 조짐이 심상치 않아 보이니 블랙 로즈랑 몇몇 대형 회사에서 먼저 연락해왔어. 자신들이 매니지먼트 맡아줄 테니 진출해 볼 생각 없냐고.”

“그거 미팅하러 오신 거예요.”

“그렇지.”

“어, 그런데 블랙 로즈 말고 다른 회사에서도 연락을 해왔다고요?”

“응, 훨씬 큰 곳.”

“거기가 어딘데요?”

그 순간 대표님의 어깨에 뽕이 가득 들어차는 광경이 보였다.

“들어는 봤나? 인터스코프라고.”

“오오오!”

세계 3대 뮤직 그룹 중 하나인 유니버설 뮤직 그룹.그 수많은 산하 레이블 중 가장 명성이 높고 미국 대중음악 전반에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이다.

블랙 로즈 매니지먼트 역시 흑인 음악 쪽에서 대형 회사로 꼽힐 만한 곳이지만, 이쪽은 정말 체급이 다르다.

미국 시장 진출을 꿈꾸는 타국 아티스트라면, 다른 곳보다 이곳과 손을 잡는 게 훨씬 이득이다.

“엔 플라워가 인터스코프하고 매니지먼트 계약하는 거예요?”

“모르지.”

“네?”

“아직 대화도 나눠보지 않았잖아.”

대표님이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인터스코프 좋은 건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나도 예전 같았으면 주저 없이 거기 선택했을 거야. 그런데 최근에 블랙 로즈 성장세가 심상치 않아. 일단 아이작 이스트에 이어서 레이지까지 초대박을 쳤잖아 지금 빌보드 1,2위가 블랙 로즈 소속 뮤지션 아니냐.”

“그렇죠.”

“이제 블랙 로즈도 미국 진출 파트너로 고려해볼 수 있을 만큼 성장했다는 거지. 더 성장할 거고. 이 외에 다른 매니지먼트도 괜찮은 곳이라서 일주일 정도 계속 돌아다니며 미팅을 진행할 거야.”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이 숙소로 돌아가고 난 생각에 잠겼다.

‘엔 플라워의 일본 초대박과 미국 진출은 이전 삶에서는 없었던 일이야.’

운명이 바뀐 것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내 영향이다.

원래대로라면, 엔 플라워는 큰 반등 없이, 꾸준히 하락세를 타며 아시아 지역 공연 위주로 수익을 창출했을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는 한국 방송에서도 얼굴을 잘 드러내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가 계약 만료 시점에 팀은 해체가 되고, 멤버들은 각자 도생할 운명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되면 이후 활동 곡들이 굉장히 중요해지겠네.’

다음 싱글도 나에게 맡긴다는 보장은 없지만, 레이나 작업이 생각보다 일찍 끝났으니 미리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우선 일본 시장 진출 음악부터 고민해봐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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