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13화 (113/205)

< 113화. 꿈의 노래 (3) >

근래에 나는 꿈속의 노래와 이야기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오늘은 꿈을 꾸지 않았어.’

이 변덕쟁이 영감님.

재미있는 영화를 보다가 멈춘 기분이다.

그래서 내 나름대로 이야기를 완성해보고자, 이전 생에서 웹 소설을 쓰던 실력을 되살려 어떻게든 채워나갔지만....

“마음에 안 들어!”

내가 웹 소설로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이어질 이야기와 음악이 굉장히 궁금하다!

분명 내가 만들었는데, 이상하게 내 저작물이 아닌 느낌이 든다.

꿈속에서 보고 들은 것을 옮긴 게 전부라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틀. 삼일.

더 이상 꿈은 없었다.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게 끝이구나.”

나머지는 알아서 한 번 해보라는 거겠지?

이 변덕쟁이 영감님 같으니... 진짜 못 됐어!

갑갑하다.

이걸 어떻게든 해치워야 세뇨리타 프로듀싱을 이어나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이 작업이 끝나지 않으면 난 어떤 작업도 이어나갈 수 없다. 이 사실을 깨달은 순간 애매한 저주에 걸린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살짝 겁도 나가기도 했고.

이러다가 영영 이 작품을 끝맺지 못하면 앞으로 창작을 못하게 되는 게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서....

그러나 천만 다행스럽게도 구원 줄이 내려왔다.

[ 빠른 시간 내에 만났으면 좋겠어요. ]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전화를 걸어온 것이다.

더불어 항공권까지 끊어 주셨다!

퍼스트클래스로!

난 즉각 영국으로 날아갔다.

이번에는 혼자서.

@

난 기억력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한 번 가봤던 곳은 장소를 불문하고 어떻게든 다시 찾아갈 수 있었다.

비행기와 버스, 택시를 타고 올리비아 퀸 작가님 저택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놀라운 손님과 마주쳤다.

대머리의 백인 노인이 거실 소파에서 작가님과 대화 중이었다.

음악하는 사람이라면 절대 모를 수가 없는 얼굴.

‘헨리 윌리엄스!’

세상에, 잡지와 미디어로만 접했던 최고의 음악가를 이렇게 실제 만나게 될 줄이야!

“드디어 만나게 되는 군.”

“여, 영광입니다!”

엄청난 긴장감이 밀려온다.

이메일과 휴대폰 번호를 알고 있고, 간단히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도 있지만 직접 만나는 건 느낌이 다르다.

“존경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이었군요. 민 군이 저와 처음 만났을 때보다도 더 긴장한 것 같아요. 후후.”

존경하는 작가와 음악가를 같은 자리에서 만나게 되는 날이 오다니...이것만으로도 내 두 번째 인생은 충분히 성공했다.

죽어도 여한이 없어!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과 악수를 하고, 소파에 앉아 대화를 시작한다.

“어... 설마 여기서 뵙게 될 줄은 몰랐는데요.”

“자네 이메일을 받고 정확히 한 시간 후에 그녀가 내게 전화를 걸어왔어. 일단 만나자는 군.”

“아....”

“난 그러자고 했네. 그 자리에서 바로 비행기를 표를 끊고, 집 근처에 숙소를 빌려서 혼자 급하게 넘어왔지.”

“혼자 오셨다고요?!”

아니, 두 사람의 만남이라면 역사에도 언론이 떠들어 대고 역사에도 기록될 놀라운 사건일 터였다. 그 위대한 이벤트를 무슨 번갯불에 콩구워 먹는 식으로....

어처구니없어 하는 내 얼굴을 보고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이 타박하신다.

“그런 표정으로 보지 말게. 이게 다 자네 때문 아닌가?”

“아니, 제가 뭘 어쨌다고 갑자기 저한테....”

“생각해 보게. 어느 날 정말 난데없이 메일 한 통을 받았어. 이야기와 음악, 춤 영상이 포함되어 있었지. 아무 생각 없이 열어 봤는데 깊은 전율이 밀려오더군. 그리고 운명을 느꼈어. 이건 내가 은퇴를 미루는 한이 있더라도 끝맺어야 하는 작품이라는 확신이 들었단 말이지.”

“저 역시 같은 느낌을 받았어요. 다른 거 필요 없이 음악을 듣는 순간 눈물과 함께 장대한 이야기가 영화 필름처럼 제 머릿속에서 재생되기 시작됐죠. 그런데 이메일 주소에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이 추가 되어 있더군요. 바로 만남 약속을 잡고 오늘 아침까지 시나리오를 정리했답니다.”

“아....”

가슴 한편에 이상한 감정이 밀려온다.

내가 존경하는 두 사람이.

무례하게 툭 던지듯 보낸 두 개의 이메일을 통해 엄청난 영감을 받았다는 것이다.

날 향한 두 거장의 미소에 먹먹함이 밀려온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내가 힘겹게 내뱉은 첫 마디는....

“그... 괜찮았다는 말씀이시죠?”

정말 멍청한 확인성 질문이었다.

두 분은 방긋 웃으며 대답해주셨다.

“물론이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정말 황홀했답니다.”

이후 우리 세 사람은 날이 어두워지고, 다시 밝을 때까지 계속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꿈속에서 본 모든 것들을 최대한 상세하게 전달하려 노력했다. 아예 인터넷에서 참조 이미지를 찾아 보여주기까지 했다.

아무래도 지문과 영상만으로는 부족한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그것을 모두 쏟아 부은 느낌이다.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내 영감이 확실히 전해졌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시나리오는 보안해야겠어요. 그리고 이 이야기는...제 생각인데 뮤지컬 영화를 위한 구성으로 작업하는 게 좋을 것 같네요. 극장식 뮤지컬 형태로는 아무래도 아쉬운 부분이 많아서....”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일단 제작 투자는 나중에 생각하고 작품 완성에 전념하도록 합시다.”

그렇게 작업 일정을 조율하는 두 거장에게, 내가 급히 물었다.

“저, 저기요!”

“........?”

“........?”

날 향한 의아한 시선들.

난 어색한 미소로 물었다.

“저는... 무엇을 하면 될까요?”

이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러면 손 놓고 작품이 완성되기만을 기다려야 하는 걸까?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은 그런 내 생각을 단호하게 부정하셨다.

“지금까지 하던 것처럼 영감이 떠오르면 정리해서 공유해줘야지.”

“어... 하지만 더 이상 안 떠오르는데요?”

“그런 게 어디 있어. 이를 악물고 노력하면 다 돼!”

설마 여기서 노오오력을 요구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당황해서 올리비아 퀸 작가님을 바라보니....

“민 군은 그 동안 천재성에만 의존해서 작업을 해온 모양이군요. 아마도 단 한 줄의 글귀, 혹은 한 마디의 멜로디를 완성시키기 위해 한 달, 일 년 이상을 노력해 본 경험이 없나보네요?”

난 대답할 수 없었다.

사실이었으니까.

아니, 잠깐만.

내가 그동안 천재성에만 의존해서 노력을 게을리 온... 재수 없는 만화 캐릭터 같은 인물이었다고?!

아니다!

그건 아니야!

난 노력으로 시련과 역경을 이겨내며 성장하는 그런 타입이란 말이야!

“어, 대중음악 작곡가 특성상 트렌드가 중요하게 때문에....”“핑계대지 말게. 누구는 팝 음악 한번 안 만들어 본 줄 아나?”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차는 작곡가님.

올리비아 퀸 작가님은 우아한 목소리와 미소로, 무시무시한 말씀을 하신다.

“영감은 끊임없는 고뇌와 노력에서 비롯되는 법이죠. 될 때까지 고민해보도록 해요.”

“작은 거라도 떠오르면 이번처럼 영상으로 만들어서 공유하게 이제부터는 즉각 피드백을 줄 테니까.”

“우리, 몇 년이 걸리더라도 힘을 모아 멋진 작품으로 완성시켜 보도록 하죠. 가슴이 설레네요. 후후.”

난 가슴이 서늘한데...

두 거장께서 그렇게 말씀하시는데 어쩌겠나?

따를 수밖에!

그 순간부터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전능하사 창의력을 주시는 영감님을 내가 믿사오며....

@

온 김에 이드라실 외전을 보고 싶었는데 교정 중이라는 말씀에 포기했다.

그래서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려는데....

[ 영국에 왔으면 우리를 보고 가야지! ]

[ 맞아. 우리 삼총사가 다시 하나로 뭉칠 때야! ]

다니엘 레드몬드와 샬럿 왓슨.

동갑내기 꼬꼬마들이 어떻게 알고 전화를 걸어서 항의하더라.

그래서 런던 시내에서 노아 파티 어셈블!

그런데....

“너희들 왜 이렇게 금방 금방 크는 거야?”

“민. 너는 그대로네.”

“예쁜 건 여전하구나!”

이 녀석들이 무슨 어이없는 말을....

“나 키 컸거든? 그리고 샬럿, 예쁘기는 자기가 훨씬 예쁘면서.....”

아닌 게 아니라.

두 사람도 정말 멋있어졌고, 예뻐졌다.

성장기를 맞아 축복받은 비주얼이 빠른 속도로 개화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들 설마 사귀고 그런 거 아니지?”

“내가? 샬럿하고? 하하. 너 재미있는 농담을 하는구나. 이런 선머슴이이랑 연애는 무슨....”

“다니엘은 친구로는 최고지만 연애 상대로는 아니야. 다니엘. 미리 사과할게. 넌 내 취향이 아니야! 그러니까 나중에라도 날 좋아하는 마음이 들게 되면 고백하지 말고 그냥 알아서 포기해줬으면 좋겠어.”

와, 이게 0고백 1차임이라는 건가?

대화하다보니 이대로 돌아가는 게 아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웃고 떠드는 게 굉장히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추가로 이틀을 더 머물며 런던 관광을 하기로 했다.

학교와 주위 사람들에게는 업무 핑계를 대고.

@

같이 돌아다니면서 느꼈다.

우리 셋은 진작 노아 파티로 뭉쳤어야 할 운명이었다고.

그런데 나만 그렇게 생각한 게 아니었다.

“우리 진작 만났어야 했어!”

“맞아. 사실 친구랑 어디 돌아다니는 걸 즐겁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너무 재미있고 좋아. 우리 정말 잘 맞는 것 같아!”

다행이다.

나만 친하다고 생각했으면 섭섭했을 뻔....

시간은 금방 흘렀다.

마지막 날.

“다음에 또 보자.”

“이번에는 우리가 미국으로 넘어갈게.”

“맞아. 어차피 트레이닝 문제로 합류해야 하니까 곧 볼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했다.

나는 새벽 비행기를 타고 돌아가야 했기에 꽤나 일찍 호텔 숙소로 들어갔다.

그런데.

[ 아직 잠 안 자고 있지? ]

샬럿 왓슨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 잠시 좀 볼 수 있을까? 나 지금 호텔 앞에서 기다리는 중이야. ]

무슨 일이지?

급히 바깥으로 나갔더니 정말 샬럿 왓슨이 혼자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이야?”

“어, 으음... 시간 괜찮으면 우리 잠시 카페로 갈까?”

카페라.

“내가 도착 첫 날 발견한 곳이 있어. 그곳으로 가자. 분위기 좋고 사람도 그리 많지 않아서 조용히 대화하기 좋은 곳이야.”

“그래. 바로 내가 원했단 장소야!”

꽤나 들뜬 모습이다.

대체 무슨 일일까?

예상대로 손님이 그리 많지 않았다.

아니, 사실상 거의 없다고 봐도 무방했다.

참 이상하지?

엔틱한 인테리어에 진하게 풍기는 커피 향만으로도 참 가치 있는 곳인데... 커피 값이 워낙 비싸서 그런 걸까?

잠시 후, 주문한 커피가 나왔다.

“어, 으음 그러니까....”

뭔가 말을 꺼내기 굉장히 어려워하는 눈치였다.

난 조용히 커피를 홀짝이며 기다려줬다.

잠은 기내에서 자도 되니까.

다른 사람도 아니고. 노아 파티이자 이제는 소중한 친구가 된 샬럿 왓슨 양을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다.

저 똑 부러지는 친구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그녀가 머뭇거리는 동안 조용히 그녀의 외모를 감상한다.

아직 어리고, 완전히 개화한 것이 아님에도... 정말 아름답고 기품이 넘친다.

그녀의 미소를 볼 때마다 느끼는 건데, 참 햇살처럼 밝고 따스한 분위기를 풍긴다.

이런 면모 때문에 노아 파티 중 가장 큰 인기를 끌었고, 영국을 넘어 세계적인 미인 여배우의 반열에 올라 더 큰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이겠지?

... 응?

잠깐만.

햇살과 같은 따스한 분위기의 소유자라고?

갑자기 꿈속에서 본 여인의 이미지가 겹쳤다.

그래. 어디서 봤다 싶었는데... 샬럿 왓슨하고 닮았다.

그러고 보니 나중에 디즈니와 손을 잡고 유명 원작 뮤지컬 영화에 여자 주인공으로 출연해서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었지?

오호, 이것 봐라?갑자기 나도 하고 싶은 말이 생겼다.

그래도, 그녀의 말을 먼저 듣는 게 우선이리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좋아. 이제 말할게.”

마침내 말을 꺼낼 결심을 마친 모양이다.

참 오래도 걸린다.

나를 향한 그녀의 깊고 푸른 눈동자가 잔잔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도 더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나, 있잖아. 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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