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15화 (115/205)

< 115화. 꿈의 노래 (5) >

사실, 남자가 주변 사람들의 말만 듣고 흔들린 게 아니었다. 실제로 자신 때문에 더 높이 날아오를 수 있는 기회를 걷어 차 버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 나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그녀는 바로 자네 때문에 좋은 기회를 날려 버리고 있단 말이지. ]

극단 관계자라던가.

[ 그녀를 할리우드로 진출시킬 생각이야. 우리는 그녀라면 충분히 스타가 될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그런데 문제는 자네야. 자네 때문에 이 망해가는 좁은 극단을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아. 오히려 필요하다면 배우를 그만 둘 생각까지 하고 있더군. 기가 차는 일이지. 아무리 사랑이 좋다지만.... ]

할리우드 메이저 영화사 관계자라던가.

그들은 하나 같이 나를 붙잡고 협박, 혹은 애원을 했다.

헤어져 달라고.

창창한 여배우의 앞길을 가로막지 말아 달라고.

사실 사내의 재능이 부족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동양인이기에.

당시 시대상은 동양인 배우는 아무리 뛰어나봐야 큰 기회를 얻을 수 없었다.

심지어 그녀가 자신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무모한 요구를 했다는 이야기까지 전해 듣자 자괴감이 밀려온다.

그래서 내린 결정이었다.

[ 우리... 헤어져요. ]

주변 모든 것들이 이 결정을 강요하고 있었다.

하지만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만큼 그녀는 뛰어난 인재였다.

외모, 실력, 성품까지.

성공할 수밖에 없는 요소를 모두 갖추고 있었다.자신이 단 하나의 방해요소라니.

사라져야 하는 게 마땅하다.

그녀는 몇 번이고 애원하며 같이 잘해보자고 했지만 사내의 결정은 확고했다.

그렇게 이별한 날에는 하염없이 눈이 내렸다.

추운 겨울이었고, 바람이 너무나 매서워서 눈물이 절로 날 지경이었다.

어두운 거리를 걸으며 사내는 노래를 부른다.

굳게 닫혀 있던 새장이 열렸네.

새는 날아오르겠지.

저 하늘 높이.

자유롭게.

그대는 내가 있는 모든 곳에 있을 거야.

막힌 도로.

시끄러운 소음 속에서도.

자신은 없지만.

너 없이 살아 볼 거야.

나 혼자 노래하고 춤을 출 거야.

항상 그녀와 걷던 밤거리를.

남자를 홀로 거닐며 춤을 추고, 노래를 불렀다.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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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신. 쇼를 한다 정말.”

답답해서 복장이 터진다.

하필 그 남자 주인공 자식이 내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그런데 이민자, 혹은 유학생이라면.

그리고 본인은 한국계인데 여자는 영국인이고 주류 백인이라면...?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을 수도 있지.’

아무리 잘 나도 태생적 한계가 분명하다.

특히 할리우드, 브로드웨이로 대표되는 미국 연예계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다 알면서도 욕을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답답해서 미칠 것 같으니까 그러지!”

아이고 복장이야.

마이너 스케일의 슬픈 피아노 연주곡이 더더욱 가슴을 무너지게 만든다. 춤과 노래는 즐겁고 흥겨워서 더더욱 아련하다.

뮤지컬 스타일의 댄스!

탭 댄스도 좀 들어가면 좋을 것 같다.

비나 눈 내리면 더더욱 청승맞겠지?

입가는 웃는데 계속 눈물을 흘리는 거다.

광대가 따로 없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광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저 시대에 태어나 미국, 브로드웨이로 흘러 들어왔다면...?

‘저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되지 않았을까?’

어, 나 이거 뭔지 알 것 같아!

김민 – 대환장의 멀티버스 라던가...?

“아무튼... 정리하자”

똑같이 꿈 속 내용을 내레이션으로 설명한 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이번에는 안무 짜기가 수월했다.

미친놈이 혼자 눈비를 쳐 맞고 쓸쓸한 밤거리에서 광대짓을 했으니까.

그걸 그대로 따라하면 되는 거다.

... 그래서 나도 모르게 영상을 찍다가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꿈 속 사내의 감정에 너무나도 깊이 동화되어 버려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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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영상을 감상하던 올리비아 퀸은 끝내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모든 것이 엉망진창이고, 바보 같았는데 시대상을 생각하면, 그리고 이민자라는 설정을 고려하면 충분히 있을법한 이야기 아닌가?

“천재는 천재구나. 난 그런 생각은 못해봤어.”

이민자. 혹은 가난한 한인 유학생.

“말이 돼. 능력이 있음에도 주연이 되지 못하고 비웃음과 멸시를 당하던 것이.”

그리고 끝까지 본인만 기회를 얻지 못했던 일들까지도.

“참 슬프네. 과거뿐만 아니라 요즘 세상에도 저런 비슷한 일이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텐데.”

인종 차별, 혹은 태생적 한계로 인한 좌절. 그로 인해 벌어지는 서글프고 안타까운 일들.

시대가 흐르고 인식이 개선되며 많은 것이 나아졌지만, 그렇다고 그 폐해가 모두 없어진 건 아니다.

당장 김민을 봐도 그렇다.

“미국인, 백인 소년이 그런 일을 해냈다면 진작 슈퍼스타가 됐을 텐데 말이지.”

아무튼, 중요한 건 하나다.

“이민자, 유학생 설정이 들어가면서 더 이상 뻔 한 이별 스토리가 아니게 됐어.”

그리고 또 하나.

“내가 봐도 남자 주인공은 나중에 민군이 하면 좋을 것 같아.”

지금 영상이 증명하고 있다.

저렇게 주인공의 감정을 잘 이해할 수 있으면서, 그것을 누구보다도 멋진 춤과 노래로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 시각.

헨리 윌리엄스 역시 비슷한 감정에 휩싸여 있었다.

그는 벌써 여러 차례 돌려본 영상들을 또 한 번 돌려보며 중얼거렸다.

“마침내 이야기의 큰 줄기가 모두 정해졌군.”

김민과 샬럿 왓슨 주연 <1980 브로드웨이>.

같은 재능을 지녔지만, 태생적 한계로 이별할 수밖에 없었던 두 배우의 사랑과 이별이야기.

아직은 극소수 몇 명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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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으로부터 첫 메일이 도착했다.

수신자는 나와 올리비아 퀸 작가님.

내용은 다음과 같다.

< 1980 브로드웨이. >

트랙 리스트

1.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2. 마침내 당신이 보여.

3. 너 없이 살아볼 거야.

세 곡에 대한 가이드 음원도 있었다.

즉각 첫 번째 트랙부터 재생했다.

춤을 추고 노래를 불러요.

지금 당신은 누구보다도 빛나고 있어요.

어둠이 지나고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내가 의도했던...신나고, 활기차고, 희망을 던져주는 음악인데 그 속에 깊은 서글픔에 담겨 있는 음악이었다.

내 보컬 위에 얹어진 웅장한 오케스트라 편곡에 전율이 밀려온다.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춤과 노래를 멈추지 말아요!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

가슴 벅찬 거대한 감동을 던져주고 노래가 끝났다.

절로 박수를 치고 말았다.

내가 만든 곡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완성도가 높고 훌륭했던 것이다.

다른 음악도 이어서 감상했다.

두 번째 트랙, 커플 듀엣곡인 <마침내 당신이 보여>에서는 마침내 이루어진 사랑에 대한 가슴 벅찬 감동과 애틋함이 전해져온다.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 연주를 중심으로 편곡이 이루어졌는데, 팝 뮤지컬 느낌을 굉장히 훌륭하게 완성했다.

세 번째 트랙, <너 없이 살아볼 거야>는 스윙 재즈 풍의 음악으로 편곡됐다. 댄스를 비롯한 전반적인 느낌이 굉장히 재즈틱해서 그렇게 작업하신 것 같은데... 굉장히 훌륭하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나름 스윙 재즈 분위기를 낸다고 만들었던 <시간 있어요?>편곡이 유치하게 느껴질 만큼 훌륭했다.

세 곡의 음악을 무한반복하며 생각했다.

나 혼자 하려고 하지 않고, 각 분야 정점에 오른 두 분을 협력자로 끌어들인 것은 신의 한수였다고.

곧 올리비아 퀸 작가님도 이메일을 보내오셨다.

음악과 제목, 주연까지 모두 마음에 든다고 하셨다.

메일에 설정, 줄거리 정리본이 포함되어 있었다.

흥미로운 내용이 추가 되어 있다.

주인공 김민은 가난한 한국인 유학생. 주어진 기간 안에 취업 비자를 받지 못한다면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던 상황이라는 점.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고 잘 생겨도 한국인 유학생을 써주겠다는 곳은 없었다. 취직한 곳이 유일한 곳이었는데 그마저도 정직원은 아닌 조건부였다. 한 마디로 하는 거 보고 말 잘 들으면 취업 비자를 내주겠다는 식이었는데, 그조차도 실은 허드렛일로 부려먹다 기간 되면 쫓아낼 계획이었다고....

극단과 주위 사람들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참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설명되는 것이다.

“정말 대단하시네.”

세 번째 꿈 이후의 이야기에 대해서는 두 분다 언급을 하지 않으셨다.

이 부분은 나의 몫이었다.

어떻게 됐을까?

이대로 그 병신은 취업에 실패해서 한국으로 돌아가고야 마는 걸까?

이제는 나도 궁금해죽겠다.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미친 듯이 그 이후의 이야기를 내 나름의 방식으로 다양하게 써보고, 곡도 만들어보다가 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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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돌아갈 수는 없어.

일단 직종이 달라도 어떻게든 취업을 하고, 남는 시간에 꿈을 위해 노력하자!

남자는 그렇게 생각하고 극을 중단, 취업으로 행로를 변경했다.

그리고 어떻게든 취업에 성공하고 취업 비자를 발급받았다.

어쨌든 꿈을 이룰 수 있는 유예 기간을 확보한 것이다!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야.’

그렇게 생각하고 이제 뒤를 돌아봤는데 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속했던 극단이 없어지고, 공연했던 장소 일대가 유흥가처럼 변해 버렸다. 살아남은 극장가는 인종 등의 장벽이 너무 높아서 진입이 힘들었다.

고민과 좌절감이 깊어진다.

모두가 말하는 것 같았다.

이곳에 네가 있을 자리 따윈 없다고.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

정말 포기해야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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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는 개뿔... 그런 약한 소리는 내가 허락 못 하지!”

깨어나자마자 pc앞에 앉아 워드 파일을 열었다.

그리고 키보드를 두드려 이후 시나리오를 정리했다.

“무대가 없다면 거리로라도 나가야지!”

포기는 있을 수 없는 일!남자는 거리 공연을 하고, 극단 오디션 정보를 수집하며 돌아다닌다.

“계속 브로드웨이만 찾아다니는 게 마음에 안 들어. 정말 뮤지컬이나 연극을 계속 이어서 하고 싶었다면 다른 곳도 있었는데 말이지.”

어느 날. 거리 공연을 마치고 돌아가려는 주인공에게 누군가 나타난다.

[ 계속 지켜봤는데 실력과 열정이 대단하시더군요. 이번에 새 작품을 준비 중인데 적절한 배역이 있습니다. 오디션 한 번 보시죠? ]

오로지 브로드웨이만 바라보고 살았던 주인공이 ‘오프 브로드웨이’라는 또 다른 세상을 접하게 된 순간이다.

브로드웨이 외곽 지역의 거리를 오프 브로드웨이라고 부른다.

이곳에서 공연되는 작품들은 문학적이고, 사회적이며 실험적인 요소가 굉장히 강하다.

그리고 그런 곳이기에 비로소, 주인공은 자신의 모든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하게 된다.

배우로서 뿐만 아니라 연출가로서도.

큰돈을 벌 수 없고, 두 가지 일을 병행해야 하니 몸은 힘들지만 마음은 즐겁다.

비로소 적성을 찾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몸이 힘든 문제는 시간이 해결해 줄 터였다.

‘그리고 이 시점부터 두 남녀 주인공의 상황을 대조되도록 만들면 더 재미있겠군.’

여자 주인공은 메인 스트림의 스타.

남자 주인공은 지하 연극계의 인재.

남자는 여전히 몸이 고달프지만 마음은 즐겁다.

여자는 돈은 많지만 엄청난 스트레스와 압박감에 시달리다가 끝내 우울증을 겪게 된다.

“심성이 착하고 여린 그녀가 버티기에, 메인 스트림이 참 녹록치 않은 세계거든.”

지금도 그런데 1980년대는 오죽했을까?

어느 날 브로드웨이 관계자로부터 한 가지 소식을 접하게 된다.

최근, 한 오프 브로드웨이 극장가에 많은 손님이 몰리고 있는데 그 중심에 한 아시아인이 있다는 것.

“혹시나 싶어서 몰래 찾아가보고... 무대 위에 있는 남자를 보게 되는 거지!”

우선은 여기까지.

꿈에서 본 내용은 아니지만 꽤 재미있게 잘 뽑힌 것 같다.

이 내용을 정리해서 즉시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 올리비아 퀸 작가님께 이메일로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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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의 네 번째 이메일을 확인한 올리비아 퀸은 당황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전개가 어떤 방향으로 흘러갈지 도저히 예측이 안 되네.”

유학생 설정 추가에 이어, 이번에도 예상치 못한 소재가 튀어나왔다.

“오프 브로드웨이라니....”

두 남녀의 운명이 이렇게 갈려지는 듯싶다가 여인의 미련으로 다시 이어질 계기가 생긴 것도 재미있다.

그리고 이렇게 되면 처음 등장했던 노인이 대체 어떤 이유로 과거를 후회했던 건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예측점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젠 나도 모르겠다. 당분간은 손 놓고 후속 편이 오기만을 기다려야겠어.’

드라마 다음 편을 기대하는 심정으로, 올리비아 퀸은 빙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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