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19화 (119/205)

< 119화. 떠날 준비 >

마음이 급해졌다.

영국 사립 고등학교 전학이라니....

제일 먼저 떠그 3인방과 레이나를 녹음실로 소집해서 소식을 알렸다.

“뭐? 영국으로 간다고?”

“아니.. 그러면 우리 크루는 어떻게 되는 거야? 이대로 와해되는 거야?!”

사이먼 블랙과 잭이 굉장히 놀란 눈치여서 나도 깜짝 놀랐다.

그렇게 서운한가?

이 자식들, 설마 날 이 정도로 생각해 주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그러면 우리 곡은 누가 써줘? ]

“나도 레이지처럼 슈퍼스타로 만들어주기로 했잖아? 약속을 어길 셈이야?”

... 그래. 니들이 그렇지 뭐.

레이지가 웃으며 말했다.

“섭섭하고 당황스러운 거 숨기려고 마음에도 없는 말 하는 거야. 알지?”

“그야 물론이지. 아무튼 나도 당황스럽다. 미국으로 유학 온 지 얼마나 됐다고 런던행이라니....”

내 말에 녹음실이 침묵이 휩싸였다.

사이먼 블랙과 잭은 감정을 주체 못하는 얼굴로 괜히 콘솔을 만지작거린다.

레이나가 물었다.

“아예 가는 거야?”

“그건 아니에요. 일단 이 집을 그대로 놔둘 거라서 촬영 끝나고 여유 생기면 종종 들릴 예정이거든요. 그리고 대학교 뉴욕에서 다닐 예정이고요. 이스트만 음대라던가, 줄리아드 스쿨이라던가?”

“그건 다행이네. 사실 나도 네가 떠난다는 소식 듣고 심장이 덜컹 내려앉는 기분이었거든.”

레이나가 화사한 미소로 말한다.

“참 신기하지? 인종, 나이, 살아온 환경, 알고 지낸 시간... 그리고 까다로운 성격까지 고려하면 너하고 친해질 이유가 눈곱만큼도 없는데.”

“저도 신기해요. 설마 제가 존경하는 빌보드의 여왕이 절 이렇게 생각하주다니... 하하.”

휴식 여기까지.

“컨펌 난 부분 말해줄게요. 두 사람 보면서 쓴 내용인데....”

<무모한 게 사랑이야>는 처음부터 레이지와 레이나 커플을 생각하며 쓴 내용이다. 이 노래가 삽입되기 전, 뮤지컬 형식으로 대화를 나누는 부분까지. 먼저 시범을 보여주고 연습을 시켰다.

정말 천재 커플 아니랄까봐, 익히는 속도도 빠르고 나보다 백만 배는 잘 소화하더라.

그런데 지켜보던 사이먼 블랙과 잭이 뭔가 굉장히 재미있어 보였던 모양이다.

잭이 먼저 말했다.

“그거 우리가 낄 자리는 없어?”

“재미있을 것 같은데... 그냥 보조 출연이라도 좋으니 우리도 껴주면 안 될까?”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아저씨들은 힙합 해야죠. 힙합 소울은 어디다가 팔아먹었어?”

내 말에 잭이 당당하게 말했다.

“재미있어 보이면 일단 하고 보는 게 진정한 힙합이야!”

놀랍게도 날 제외하면 모두가 그 말에 공감했다.

아무래도 내가 힙합, 아니, 저 떠그 트리오들을 오해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도 친분 하나만 보고 덥석 시켜줄 수는 없는 노릇.

“오디션 한 번 보자고. 내가 상황을 줄 테니까 같이 한 번 해봐>.”

< 무모한 게 사랑이야 >는 혼자 하는 게 아니다. 주인공이 속해 있는 피닉스 써클 단원들과 다 함께 춤추고, 화음도 맞추며 규모 있게 펼치는 공연이다.

당연히 낄 자리 정도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지.

“좋아. 준비 완료!”

“해보자고!”

준비할 시간을 충분히 줬는데, 이 자식들 1시간도 되지 않아서 오디션을 보잔다.

“하여튼 성격 하나는... 이상한 짓거리 하기만 해봐라.”

그러나 이후 펼쳐진 광경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레이나 레이지 커플의 무대에 훌륭히 보조를 맞춰주는 게 아닌가?

아니, 정말 한 시간에 그걸 완벽하게 외우고 익혔다고?

“어때?”

“괜찮지?”

괜찮은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난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나 혼자 결정할 수는 없으니 조금 더 보안해서 영상으로 만들어보자.”

결국 네 사람이 모두 투입되어 <무모한 게 사랑이야> 녹음을 완료했다.

코러스가 짱하니 이 정도면 가이드가 아니라 정식 음원으로 발매해도 무방한 수준이다.

‘저 징그러운 재능 충들.’

아무리 생각해봐도 세상은 참 불공평하다.

내가 투덜거림에 레이나가 위로하듯 말했다.

“우리 입장에서는 민 네가 더 징그러워. 너야말로 못하는 게 없잖니. 이젠 심지어 영화 제작까지 손대고 있으니....”

레이나가 그렇게 말해주니 조금 위로는 된다.

녹음을 마친 뒤 두 사람에게 말했다.

“의상 직접 골라왔으니 그거 입고 세뇨리타 한 번 해봅시다.”

녹음실 한편에는 내가 짬을 내서 인터넷 쇼핑으로 구매해 둔 의상들이 있었다. 진짜 무대에서 입을 의상은 아니고 일종의 샘플이었다.

착장 결과가 좋으면 실력 있는 스타일리스트에게 의뢰해서 뮤직 비디오, 공연 때 입을 의상들을 제작할 예정이었다.

“와우.”

“멋진데?”

두 사람의 메인 컬러는 버건디.

레이지는 재킷 속에 깔끔한 하얀색 와이셔츠를 갖춰 입었고, 레이나는 쇄골 노출하고 몸매 라인을 부각시키는 미니 드레스를 입혔다.

사이먼과 잭은 휘파람까지 불며 박수를 쳐댔지만 난 냉정한 눈으로 두 사람을 살폈다.

“레이지는 벨트하고 구두만 멋진 것으로 맞춰 입으면 그 상태로 뮤직 비디오 찍어도 되겠네. 아주 깔끔하고 멋있어.”

“나 이런 스타일은 처음인데... 마음에 들어! 일단 핏이 거짓말처럼 딱 떨어져서 좋아!”

실제 레이지의 표정이 매우 들떠보였다.

이번에는 레이나.

비주얼, 몸매, 분위기... 다 완벽한데 딱 하나.

‘가발을 씌워볼까?’

그녀 역시 흑인이라, 내추럴 헤어는 곱슬이다. 그래도 악성 수준은 아니고, 탈모도 없어서 평상시는 짧고 깔끔하게 다듬고 다니는 편이다. 무대나 공식 석상에서는 가발을 착용하고.

여기서 고민이 된다.

‘긴 생머리 가발을 씌우면 훨씬 어울릴 것 같긴 한데....’

이렇게 보니 어차피 짧은 머리, 트렌디한 숏컷으로 만들어 천연 모습 그대로 나오도록 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 라는 생각인데 어떻게 생각해요?”

내 생각을 전했더나.

“아주 좋아! 나 사실 가발 답답하고 거슬려서 정말 싫어해. 아니, 롱 헤어 자체를 좋아하지 않거든!”

그녀는 적극 찬성.

그러면서 끝까지 내 의견을 존중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그런데 정말 그렇게 해도 될까?”

“물론이죠. 레이나야 뭐 원래 외모도 예쁘고 몸매도 섹시하고 비율도 훌륭해서 무엇을 가져다 입혀도 환상적이죠. 그래도 개인적으로는 내추럴한 레이나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네요.”

“.......”

묻길레 내 생각을 대답한 건데 왠지 주변 분위기가 이상했다. 다들 날 묘한 얼굴로 보고 있었다. 반면 레이나는 굉장히 흐뭇해하고 있었고.

이 분위기는 뭐야?

“레이지 조심해야겠다. 너 자칫 잘못하면 레이나 빼앗길 수도 있어. 민 녀석 알고 보니 카사노바 과였다고!”

사이먼 블랙의 장난끼 가득한 말에 레이지도 반응한다. 슬쩍 위치를 옮겨 레이나의 앞을 가로 막고 선 것이다.

저 자식, 웃자고 한 행동이 아니라 진심이 섞여 있다.

난 어이가 없어서 레이지에게 말했다.

“바보짓 좀 그만 해. 확 진짜 빼앗아 버릴라.”

그 말을 들은 레이나와 두 녀석이 폭소를 터트렸다.

나 역시 스스로 내뱉은 말이 어이가 없어서 피식 거렸다.

“........”

오로지 레이지 혼자서만 한없이 진지했다.

바보라니까 진짜.

두 사람의 댄스 연습 장면을 화질 좋은 카메라로 촬영했다. 노트북에 깔린 맥 전용 편집 프로그램으로 간단히 보정을 넣어보며 말했다.

“워낙 인물들이 훌륭하니 인터넷 쇼핑몰에서 저렴한 의상도 굉장히 잘 어울리네.”

생각난 김에 두 사람에게 한 가지 강조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문신 따위 하지 말아요. 피어싱 같은 것도 금지. 지금 이 내추럴 그대로 유지하라고요. 알았어요?”

움찔하는 두 사람.

레이나가 더듬더듬 묻는다.

“왜, 왜?”

“두 사람은 내추럴 한 상태에서 이렇게 깔끔한 코디로 착장하는 게 베스트예요. 절대 몸에 이상한 짓거리 하지 말아요. 운동도 열심히 하고.”

“.......”

슬그머니 시선을 피하는 레이나에게 가늘게 뜬 눈으로 묻는다.

“벌써 문신했어요?”

“으응.”

“어디에 다가요?”

두 사람이 뒤로 돌아 등덜미를 보여준다.

서로의 애칭을 깊게도 새겨놨다.

“하여튼 커플들은 이래서 문제야. 티를 못 내서 안달이라니까.”

괜히 무안을 주면서 다시 한 번 강하게 경고한다.

“여기까지만 하고 이후로는 몸에 손도 대지 미요. 이상한 그림만 그렸단 봐. 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곡 안 줄 테다.”

세뇨리타의 기본 스타일링이 결정되고 다시 한 번 안무 지도에 들어갔다.

"중요한 게 뭐냐면, 제목도 그렇고 내용도 라틴 팝 느낌이 물씬 풍기긴 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퓨전 음악이라는 거죠. 라틴 팝 색이 지나치게 강할 필요가 없어요. 그 장르를 이용만 하자는 거거든요."

한국과 미국은 공연을 할 때 음원에 실린 MR 반주를 그대로 이용하는 경우가 오히려 드물다. 다양하게 어레인지해서 밴드 라이브와 함께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굉장히 많았다.

"그러니까, 힙합, 재즈, 팝 등등. 여러 장르로 어레인지 해서 다양한 맛을 내봐요. 그리고 그렇게 때문에 춤이 지나치게 격정적이거나 섹시할 필요가 없어요."

최대한 절제하면서, 포인트가 되는 부분에 느낌만 진하게 풍기는 정도면 충분하다.

"절제된 섹시미가 포인트에요. 제가 보여드릴게요."

왜냐면 두 사람은 클래시컬한 느낌이 강한... 춤추기에는 불편한 수트 스타일로 무대에 설 일이 많을 것이기에.

음악을 들고, 가이드 영상과 다른 절제된 스타일의 안무를 보여준다.

동작은 최소한으로.

온 몸에서 여유를 드러내며.

"이런 느낌으로."

"오오!"

"우리보고 재능 어쩌고 하더니... 본인은 더하네."

사방에서 터지는 탄성에 민망한 느낌이 들었다.

그 기분을 들키지 않으려 괜히 시간 없는 척 수선을 떨었다.

"자자, 빨리 맞춰봅시다. 제가 실시간으로 튜닝 해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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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뇨리타 프로듀싱을 하면서 <1980 브로드웨이>현지 촬영 답사 시작했다.

'글이나 음악만으로는 타인에게 내 구상을 완벽히 이해시킬 수 없어. 확실한 그림으로 보여줘야지.'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이 했던 말이다.

단체 작업에서 모두가 머릿속에 그리고 있는 그림의 형태가 달라진 순간 프로젝트는 망한다고.

리더의 역할이 바로 모두가 같은 그림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했다.

어쨌든 현 상황에서 세 명의 작업자 중, 원작자이자 리더는 바로 나였다.

나중에 세팅될 촬영팀을 위해서라도 명확한 그림을 준비할 필요가 있으니 이런 행동을 하는 것이다.

꿈에서 본 것과 가장 흡사한 장소를 찾아다니며 열심히 촬영했다.

브로드웨이와 오프 브로드웨이.

남자 주인공이 취업 비자를 따내기 위해 일했던 장소.

그 남자와 그 여자가 거주했던 각각의 원룸 스튜디오와 거리 등등.

그야말로 맨해튼 구석구석을 누비며 사진 촬영을 했다. 그리고 가장 좋은 결과물들만 따로 뽑아 스토리 보드처럼 만들었다.

촬영만 해서 뭐해? 시나리오 맞게 장소를 펼쳐놓고 무슨 일이 있고 어디에 어떤 음악이 들어갈 지 표시는 해둬야 할 거 아냐?:

'영화 한 편 만드는 게 이렇게 힘든 일일 줄이야."

잭슨 감독님이 스튜디오와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다른 일에 신경 쓸 틈이 하나도 없어!'

그야말로 죽을 듯이 일했고, 마침내 나만의 스토리 보드를 완성했다.

컨펌을 받으면 내 역할은 당분간 여기서 끝.

나중에 촬영팀에 세팅되고, 정식 대본이 나오며 촬영이 진행되면 그때 요구 사항에 맞춰 남은 곡을 작업하면 된다.

'보내자!'

떨리는 마음으로 이메일을 전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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