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22화 (122/205)

< 122화. 또 다른 떡밥 투척 (2) >

모처럼 신나고 재미있었던 공연이었다.

‘대부분 내 음악을 처음 접했을 텐데, 굉장히 열정적으로 호응해줬어!’

그야말로 미친 듯이 날뛰었기에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지만 기분은 상쾌했다.

‘정말 신나고 재미있게 놀았어.’

이런 기분 때문에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다.

[ 공연 끝났으면 2층 VIP실로 오세요. ]

김민으로부터 본 메시지였다.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니 2층 투명한 외벽에 김민이 손을 흔들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저런 곳도 있구나.’

대기실에 들려 땀을 닦고, 젖은 옷을 갈아입은 뒤 매니저, 스타일리스트와 함께 VIP실로 이동했다.

그곳에 놀라운 손님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 베카 J?!”

빼어난 비주얼의 히스패닉 미녀.

근래에 미국에서 굉장히 핫한 신예 스타였다.

김민이 흥미로운 얼굴로 물었다.

“베카를 알아요?”

“노래 좋아하거든. 그런데 어떻게...?”

김민과 베카 J를 번갈아 바라보는 제이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챈 김민이 씩 웃으며 말했다.

“우리 방금 친구 먹기로 했어요.”

@

베카 j의 공연을 끝까지 지켜본 뒤 다시 VIP실로 올라오는 그녀에게 박수와 환호, 그리고 시원한 음료를 건넸다.

“고마워!”

주저 없이 병을 따서 음료를 단번에 들이킨 그녀는 이목구비만큼이나 시원한 미소로 말했다.

“기분 좋다! 오늘 공연 최고였어!”

“베카의 공연이 그만큼 멋졌기 때문이죠. 오늘 정말 좋은 구경했어요. 고마워요.”

이어 제이미를 제대로 소개해줬다.

“한국 출신이고, 아시아 최고의 슈퍼스타예요. 이름은 제이미. 지금은 미국 활동 중이죠.”

반갑게 인사를 건네는 베카와 달리 제이미는 굉장히 어려워했다. 쯧, 이러면 내가 또 나서줘야지!

“친구된 기념으로 사진 촬영 좀 할까요? SNS에 홍보도 할 겸!”

둘이, 다 함께.

최대한 친하고 분위기 좋은 티를 내며 사진을 촬영했다. 굉장히 낯설어하던 제이미도 몇 번 웃더니 금방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점점 그녀가 마음에 든다.

사람이 굉장히 순수하고 선하며, 또한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런 타입은 비즈니스 관계를 넘어 친분을 쌓아도 좋았다.

마음 같아서는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베카. 이제 가야 돼!”

“이런. 난 여기까지야.”

그녀도 같은 마음이었던지, 나를 보며 아쉬운 기색을 드러냈다.

그러더니 손을 내밀었다.

“휴대폰 좀 줘봐.”

“응?”

“빨리! 비밀번호 해제해서 줘!”

그녀는 본인의 번호를 입력해서 저장하고는 돌려주며 말했다.

“조만간 시간 내서 다시 한 번 만나자! 단 둘이!”

두, 둘이?

깜짝 놀란 나에게, 그녀는 묘한 미소로 말했다.

“그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아.”

@

그날 밤.

나는 제이미의 공연, 영상 사진을 가볍게 손을 보고 건네줬다. 분명 SNS에 업로드할 텐데, 내가 보기에 그녀는 사진에 대한 감각이 아예 없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이곳에 그런 걸 세부적으로 관리해 줄 담당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자료와 함께 메시지를 보냈다.

[ 좋은 샷을 골라서 보정하고 편집했어요. 함께 찍힌 당사자들에게도 허락 맡았으니 업로드 해도 문제없어요. ]

답변 메시지 대신 전화가 걸려왔다.

그녀가 촉촉이 젖은 음성으로 말한다.

[ 오늘 정말 고마웠어. 덕분에 힘도 났고 내가 뭘 어떻게 해야 할지 확실히 알게 됐어. ]

끝내 훌쩍거린다.

[ 옆에서 끝까지 챙겨주겠다던 회장님은 나 팽개치고 한국에 가서 감감무소식인데...우리 회사 소속도 아니고,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너한테 큰 도움을 받았네. 명색이 선배인데 못난 꼴도 많이 보였고.... ]

오늘이 좋았던 만큼 그 동안의 시간들이 속상하게 느껴졌던 모양이다.

난 안쓰러운 마음에 최대한 자상하게 다독거렸다.

“이런 상황에 선배고 뭐고 어디 있어요?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힘든 게 당연해요. 제가 보기에 누나 진짜 잘 버티고 있어요. 오늘 무대, 솔직히 말하면 누나가 베카 J보다 백만 배는 나았어요!”

음, 마지막 말은 내가 생각해도 좀 오버였다.

[ 야! 그건 아니다! 베카 J 진짜 잘하더라. 랩, 춤, 노래, 무대 매너... 비주얼까지 뭐하나 빠지는 게 없이 최고야. ]

“저한테는 누나가 베스트였어요. 저 혼자만 알고 있는 게 아쉬울 정도로 멋있었다고요. 그러니까 제가 보내드린 거 모두 SNS에 올려서 막 자랑해요! 누나 팬들이 굉장히 좋아할 거예요!”

[ 응! 고마워. ]

“어려운 일 있으면 언제든 연락해요. 파이팅!”

학교에 가면서 제이미의 SNS를 확인했다.

다시 한 번 그녀의 순수함을 확인할 수 있다.

아무리 내가 하라고 했다고... 보내 준 사진과 영상을 한 번에 업로드 했더라.

이런 떡밥은 원래 조금씩 살포하는 맛이 있는 건데....

그래도 덕분에 모처럼 한국 연예 뉴스 기사 란에 그녀의 이름으로 가득 채워졌다.

[ 제이미. 미국 진출 가능성을 다시 한 번 확인하다! ]

[ SNS 계정에 업로드한 공연 영상 화제! 수많은 현지 관객들이 그녀의 공연에 열광하다! ]

댓글 반응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지금까지 KM이 올렸던 언플성 기사와는 확연히 다른, 공연 실황 영상을 바탕으로 작성된 기사였기 때문이었다.

이 시기. 제이미 미국 진출과 관련된 KM의 언플성 기사들은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내용에서는 계속 미국 현지 관객들이 그녀를 인정했다느니, 무대를 찢었다느니 말은 많이 하는데 명확한 증거는 단 한 번도 보여주지 못한다.

그럴 수밖에.

큰 공연도 아니고, 이상한 행사 외부 들러리로 서서 거의 외면을 받고 내려온 게 전부였으니까.

공개하는 순간 적나라한 실상이 뻔히 탄로 날 텐데 어찌 공개하겠나?

하지만 어제 사이먼 블랙 공연장에서 촬영된 영상은 그런 것과 차원이 다르다.

우선 공연장을 가득 매운 사람들이 현지 흑인들이었다.

관객의 숫자도 굉장히 많았고 반응도 열정적이었다. 공연장도 규모가 꽤나 크면서 전반적인 인테리어가 고급스럽고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누가 보더라도 ‘아! 제이미가 정말 제대로 된 곳에서 성공적으로 공연하고 왔구나!’ 느끼게 되는 것이다.

아무튼, 이것으로 그녀가 확실히 알았으면 좋겠다.

이대로 하락세를 이어가고 싶지 않다면.

새로운 도전을 통해 더 나은 세상에 진입하고 싶다면 ‘김민의 아티스트’가 되는 것도 좋은 선택일 수 있다는 것.

‘이렇게 조금씩 공을 들여서 확실한 인맥을 구축해 가는 거야.’

그러다 보면 언젠가는 가능하게 되는 날이 오리라.

‘바로 나만의 레이블을 가지는 것.’

아직은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은 목표였다.

@

이틀 후 베카 J로부터 연락이 왔다.

[ 우리 같이 식사하자! 내가 대접할게! ]

내심 기대했는데... 도착한 곳이 내가 잘 아는 장소였다.

허드슨 리버 고층 타워 몰 101층 레스토랑.

레이나가 가지고 있는 거기.

베카 J는 굉장히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여기가 뉴욕에서 굉장히 핫한 곳이야! 처음 와보지?”

때마침 우리 자리에 다가오신 지배인님이 내게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또 찾아주셨군요.”

“지배인님 보고 싶어서요.”

“허허. 마음은 알겠지만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그리고 자리를 떠나는 지배인님.

베카 J가 놀란 얼굴로 묻는다.

“뭐야, 여기 와 봤어?”

“레이나 레스토랑이잖아. 나는 레이나 친구고.”

“어... 그러면 레이나랑 아는 사이라고?”

“친구라니까?”

“.......”

제이미도 그러더니, 내가 레이나랑 친구라니까 굉장히 놀라더라.

이 바닥에서 그녀가 어떤 이미지인지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굉장히. 난 한 번이라도 만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데....”

“나중에 한 번 만나게 해줄게.”

“정말? 와! 고마워!”

식사를 하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취향, 애인 여부, 학교생활 등등.

인상 깊었던 것은 데뷔 과정이었다.

“나 아버지 뮤튜브 채널 덕분에 데뷔했어.”

“응?”

“우리 아버지가 뮤튜브 초창기부터 채널 만들어서 운영해왔거든. 여행, 캠프 영상 전문인데 가끔 내가 대회에서 노래 부르는 장면을 자주 촬영해서 올렸었어. 그게 유명해져서 컨택을 받은 거야.”

아버지의 뮤투브 채널을 보고 감탄이 절로 나왔다.

구독자 수가 무려 2000만 명이었는데, 콘텐츠도 모험적이고, 탐구심을 자극하는 것들로 가득했던 것이다.

전 세계 기상천외한 곳을 돌아다니며 여행, 캠핑 영상을 촬영하고 자동차나 다양한 물건을 개조하여 실험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한다. 혹은 직접 예능 세트장을 제작하고 구독자들을 초청해 거액을 걸고 게임을 하기도 하고.

소위 말하면 대기업 스트리머였던 것이다.

지금의 나로서는 엄두조차 못할 정도로 굉장한.

“진심으로 존경스럽다.”

“우리 아버지 굉장하지?”

“응! 정말 꼭 한 번 뵙고 싶어. 사실 나도 뮤튜브 채널을 운영하고 있긴 하지만... 정말 하고 싶은 게 지금 베카 아버지가 하고 계시는 거야!”

진심을 담아 감탄과 존경심을 표하는 내 모습이 뿌듯했던 모양이다.

“내가 조만간 내가 아버지 소개해 줄게!”

“어? 정말? 그러면 나야 고맙지!”

협업에 대한 이야기는 굉장히 자연스럽게 나왔다.

"내가 지금까지는 힙합 음악을 계속 하고 있는데... 이 길이 맞는 것인지는 잘 모르겠어. 회의감이 들어."

"왜, 성적이 생각만큼 안 나와 주니까?"

"그게 크지. 벌써 몇 곡을 냈는데... 사람들은 날 아직도 신예로 알아. 내가 클럽 돌아다니면서 공연한 시간, 그때 냈던 음악 합치면...."

음. 확실히 나도 그녀를 신예로 생각하고 있었으니 할 말이 없다.

"아무래도 난 힙합하고는 안 맞는 것 같아. 힙합으로 성공하고 싶었는데...."

해맑았던 얼굴이 시든 장미처럼 침울해진다.

음, 대체 그녀는 어느 순간에 라틴 팝 전향을 생각했던 걸까?

어떤 경유로?

"그래서 네 의견을 들어보고 싶어"

"나?"

"응. 지금 가장 핫한 힙합 뮤지션이잖아."

잠시 말을 잃었다.

그렇구나. 내가 핫한 힙합 뮤지션으로 인식되고 있었구나.

"내가 뭘 어떻게 하면 좋을 것 같아? 굴하지 말고 힙합 조금 더 해볼까? 아니면...아예 다른 길로?"

"주변에서는 뭐래?"

"반반이지. 잘하고 있으니 계속 하던 거 하자는 사람. 아니면 팝이나 라틴 팝을 하자는 사람."

"넌 어떤 쪽으로 마음이 쏠리고 있어?"

"난 힙합 계속 하고 싶지. 굉장히 사랑하거든. 하지만 언제까지 이러고 있을 수는 없어. 난 더 올라가고 싶어. 성공하고 싶단 말이야."

고민이 막 시작된 단계로군.

그녀는 분명 메가 히트를 하게 될 것이다.

난 잠시 고민하다가 말했다.

"지금까지 주요 컨셉을 쭉 보면서 느낀 건데...."

"응! 응!"

멈칫했다.

의견을 제시하려는 순간 그녀의 얼굴이 부담스러울 정도로 반짝거렸다. 얼굴도 너무 가깝고.

하지만 뿌연 미래에 대한 답답함. 해답에 대한 갈증이 강하게 느껴지니 그대로 입을 열었다.

"지금까지는 컨셉이 너무 애매했던 것 같아."

"애매하다고? 어떤 점에서?"

"베카는 발음도 그렇고 비주얼적인 느낌이 힙합하고는 잘 안 어울려. 치명적인 라틴 팝이 훨씬 어울리지."

"그래? 난 잘 모르겠는데...."

"지금 걸스 힙합 트렌드가 지나치다 못해 사회에 물의를 일으킬 정도로 직설적이고, 노골적이고... 계속 그런 트렌드로 흘러가는데, 베카는 그런 쪽이 아니잖아."

"........"

"결국 힙합은 흑인들의 문화야. 나도 가수고, 연타석으로 두 번이나 빌보드 1위곡을 써냈지만 미국에서 힙합 가수로 데뷔할 생각은 눈꼽만큼도 없어. 이유가 뭐겠어? 동양인이 힙합 하면 좋아해 줄 것 같아?"

"아니...겠지?"

"힙합은 흑인들의 자부심 같은 거야. 성공의 상징이라고. 여기에 대해서만큼은 굉장히 보수적이야. 그 벽 뚫는 게 진짜 힘들어. 너도 느껴봤잖아?"

베카는 수긍하듯 아무 말도 못했다.

"다시 말하지만, 내가 보기에 베카의 보이스 컬러와 비주얼이 라틴 팝 쪽이 더 맞아. 애시당초 그쪽 계열잖아."

"라틴 팝이라...."

진지하게 고민을 시작하는 그녀에게 또 다른 충격을 불어 넣는다.

"그리고 직접 곡을 써 봐."

눈을 끔뻑거리던 그녀는 뒤늦게야 말뜻을 이해하고 화들짝 놀란다.

"나보고 라틴 팝을 써보라고?!"

"응. 곡 많이 써봤잖아?"

"하지만 라틴 팝은 건드려 본 적이 없는데...."

"이번 기회에 건드려 봐. 미친 듯이 듣고 트렌드 연구해. 베카가 만든 곡 다 들어봤는데 작곡에 재능이 있어."

"........"

흔들리는 모습.

여기서 슬쩍 운을 띄운다.

"힘들면 내가 조금 거들어 줄 수는 있는데...."

"정말?"

"악기 하나 가지고 멜로디만 흥얼거려서 계속 보내 봐. 그 중에 괜찮은 거 뽑아서 프로듀싱 해줄게. 어때?"

"오! 그러면 좋지! 나 해볼게!"

바로 수락한다.

... 얘 혹시 이거 노린 거 아니야?

뭐, 나야 나쁘지 않지.

메가 히트곡 스틸하고 싶은 생각은 없고, 이거다 싶은 곡 보내오면 찍어서 편곡 정도만 살짝 거들어줄 생각이다.

딱히 하는 일은 없는데 생색내기에는 좋다 이거지!

하하하!

... 아, 잠깐만. 갑자기 현타가 밀려오네.

이러니까 나 무슨 양아치 같잖아?

뭐, 좋은 음악으로 보답하면 아무 문제없겠지!

@

마침내 시간이 다가왔다.

런던으로 떠날 시간!

바로 전날에 두 번의 파티를 했다.

한 번은 학교 친구들과.

또 한 번은 음악 친구들과.

비행기 탑승 전.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이 물었다.

"이제부터 힘든 나날이 시작될 거야. 각오는 됐지?"

"물론이죠!"

"좋아. 그러면 노아 만들러 가보자!"

그렇게 나는 노아의 메인 촬영지, 영국으로 향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