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23화 (123/205)

< 123화. 계약 (1) >

근래에 헨리 윌리엄스는 제작자 노릇에 노년을 불태우는 중이었다.

1980 브로드웨이 때문이었다.

‘내 인생을 걸고 최고의 뮤지컬 영화로 만들고 말겠어!’

다행스러운 것은 제안서를 보낸 모든 회사에서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당연했다. 음악, 주연 배우, 스토리 보드, 시나리오... 모든 것이 완벽히 준비되어 있었으니.

그 중에서 가장 큰 효력을 발휘한 것이 바로 스토리보드.

‘이게 참 물건이란 말이지. 어떻게 그 나이에 이런 걸 제작할 생각을 했는지....’

덕분에 가장 좋은 조건을 제시한 제작사를 선택만 하면 되는 상황이 왔다.

“어디가 좋을까?”

그는 세 부의 계약서를 놓고 고민했다.

모두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메이저 스튜디오였고, 타 제작사는 엄두조차 내지 못할 최고의 대우를 약속했다.

긴 고민, 그리고 전문가들과의 상의 끝에 내린 결정은.

‘역시 이곳이 좋겠군.’

중앙의 계약서.

그가 짚은 손가락에는 다음과 같은 회사명이 적혀 있었다.

< 월트 디즈니 픽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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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으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디즈니하고 계약한다고요?”

[ 음? 왜, 마음에 안 드나? ]

“아니, 그게 아니라... 그렇게 거대한 기업과 영화를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워서....”

[ 꽃이 향기로우면 벌들은 알아서 꼬이는 법. 작품이 워낙 좋으니... 특히 동화풍 뮤지컬 영화에 환장하는 디즈니가 목을 매는 것도 당연하지. 그쪽에서 가장 열성적이었어. ]

작곡가님이 단언하셨다.

[ 우리가 그들을 선택한 거야. 그들이 아니라. ]

“.......”

[ 자부심을 가져도 좋아. 하하하! ]

말은 그렇게 하시면서도, 작곡가님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던 모양이다.

[ 자네가 런던에 있으니, 계약은 런던에 모여서 진행하기로 했네. 그런데... 아직 미성년자지? ]

“네. 뭐....”

[ 부모님을 모시고 와야겠군. ]

“그래야겠죠.”

[ 런던 생활은 좀 어떤가? 구한 집은 괜찮고? ]

“돈 많은 감독님 덕분에 시내 한복판에 있는 좋은 집에 들어왔어요. 근처에 샬럿, 다니엘이 사는 집도 있어서 참 좋아요.”

[ 이번에 런던에 가면 한 번 방문해 봐야겠군. ]

“미리 날짜 말씀해 주시면 제가 특식 준비할게요.”

통화를 마친 뒤 크게 숨을 내쉬었다.

사실... 긴장이 풀리지 않았다.

1980 브로드웨이가 디즈니에서 제작, 배급될 예정이라니... 너무 굉장하지 않나?

사실 초기에는 잭슨 스튜디오도 물방에 올랐지만 여기는 노아 시리즈만으로도 바쁜 상황이라 여력이 없다. 다름 아닌 감독님 본인이 말씀하신 내용이었다.

[ 전 노아 시리즈에 집중해야 합니다. 현 시점에서는 그것 말고 다른 어떤 것도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

아무튼 굉장한 호재였다.

어서 이 기쁜 소식을 공유하고 싶다.

가족, 대표님, 아이작과 킴벌리 부부. 그리고 내 음악 크루들!

아! 다니엘과 샬럿에게도 알리자!

기사로 접하면 굉장히 서운해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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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 날씨고 좋지만 흐릿하게 비 내리는 풍경 또한 사랑한다.

그 특유의 감성이 내게 많은 영감을 주니까.

카페에서 기다리는 시간 동안, 난 하염없이 창밖을 바라봤다.

부슬 부슬 내리는 비가 아름다운 런던 대 도시를 적시는 모습에 깊은 감흥이 느껴진다.

‘홈스쿨링이라....’

사실 오기 전.

감독님이 내게 이 같은 말을 했다.

[ 가만히 생각해봤는데, 네 현재 상황을 생각하면 학교에 다니는 것보다 홈스쿨링을 하는 게 좋을 수도 있어. ]

노아 시리즈는 아카데미 분량만큼이나 천혜의 자연으로 모험을 다니는 일이 많다.

영국뿐만 아니라 세계 각지로 로케이션을 다닐 예정인데, 준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촬영 일정을 빡빡하게 잡았다고 한다.

주연 배우들의 성장 문제도 있고, 일단 촬영해야 할 게 지금 당장 예정된 것만 여섯 편이니....

[ 학교 다닐 시간이 없을 것 같더라고. 결정적으로 너는 곡도 만들고, 또 뮤지컬인가 뭔가도 준비 중이잖아. ]

그리고 나이가 차면 군대에도 입대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19살이 되면 바로 입대부터 할 생각이다.

입대를 두 번 하는 게 뭐 같기는 하지만 회귀의 대가라고 생각하면 나쁜 거래는 아니지.

[ 딸랑! ]

출입문이 열리며 익숙한 두 얼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민!”

“왔구나!”

다니엘과 샬럿이었다.

샬럿이 내 옆에, 다니엘이 맞은편에 앉는다.

나 역시 상념을 지우고 본격적으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홈스쿨링?”

“응. 아무래도 해야 할 일들이 많아질 것 같아서...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촬영을 할 예정이라고 하더라고.”

“아....”

“전 세계....”

아직 얘들은 자세한 촬영 계획 같은 걸 잘 모른다.

학업과 연기 트레이닝만으로도 바쁜 상황인지라.

그래서 몇 가지 정보를 추가로 더 알려줬다.

“시리즈가 6부작으로 계획되어 있었던 건 알지?”

“응.”

“잘 알지!”

“그거 늘어날 수도 있어. 지금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노아 정식 후속편을 집필하는 중이거든.”

“우와! 후속편 나오는 거야? 만세!”

“어... 그러면 뭐가 어떻게 되는 거지?”

그저 좋아하는 소설 후속편이 나온다니 기뻐하는 다니엘과 혼란에 빠진 샬럿. 이것만 봐도 두 친구의 뇌구조를 파악할 수 있었다.

다니앨은 단순하고, 샬럿을 복잡하다.

주위를 둘러보고 조심스레 속삭였다.

“잘하면 시리즈가 10편까지 늘어날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

이후 주요 대화 주제는 홈스쿨링이었다.

“그러면 차라리 우리도 홈스쿨링을 할까? 같이 지내는 시간이 더 많아지면 좋잖아!”

“흠....”

다니엘이야 애당초 학업에 미련이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샬럿이 진지하게 고민하는 게 예외였다. 그녀는 공부도 잘하고 머리도 좋아서 미래에 세계적인 대학에 입학하는 쾌거를 이룩하기 때문이다.

고민하던 샬럿이 내게 묻는다.

“나도 홈 스쿨링 하는 게 좋겠지? 왜냐면 영화 촬영하면서 너에게 보컬 트레이닝도 받고 그래야 되잖아.”

“음? 무슨 보컬 트레이닝?”

다니엘이 의아한 표정으로 반문한다.

민망해하는 샬럿을 대신해 내가 말했다.

“샬럿 가수로 키워보려고.”

“뭐? 가수? 샬럿이 노래도 할 줄 알아?!”

“잘해. 그리고 참고로 말하자면 내가 준비하고 있는 뮤지컬 프로젝트 주연 맡기로 했어.”

“그건 또 뭐야?”

여기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1980 브로드웨이가 어떻게 준비되고 있었고, 곧 디즈니 픽쳐스와 계약을 하게 된다는 사실.

두 사람 모두 놀랐는데, 사실 여기서 내심 다니엘의 반응을 걱정했다. 자기만 빼놓는다고 뭐라고 할까봐.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난 사실 춤도 못 추고 노래도 못 불러서 그냥 즐기는 게 다야. 그런데 샬럿은 재주가 좋으니까 작품 참여도 하는 구나. 정말 대단한 일이야!”

단순한 뇌구조의 소유자답게, 감탄하고 축하해주는 게 전부였다.

내가 이래서 다니엘을 좋아한다.

애가 참 착해.

조금 바보 같아서 그렇지.

“나도 홈스쿨링 시켜달라고 해야지! 으아, 재미있겠다!”

바로 결정을 내리는 단순한 다니엘.

“난... 고민 좀 더 해보고 말해줄게.”

신중한 샬럿.

아무래도 우리, 노아 삼총사는 균형이 굉장히 좋은 파티인 것 같다.

함께 하면 이렇게 즐거울 수가 없다.

이 모임, 죽을 때까지 이어 가고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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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은 즉시 팀장급 이상 직원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우리 민이. 내 제자 민이가 또 사고를 쳤어요!”

엄격 진지 근엄한 얼굴에 회의실 분위기가 심각해진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디즈니가 제작하는 뮤지컬 영화에 주연 배우로 참여한답니다!”

반전과 같은 주접에 이번만큼은 덩달아 환호를 터트렸다.

딱 한 명. 이정연 팀장이 물었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건가요?”

“아, 그게 그러니까....”

1980 브로드웨이.

그간의 히스토리가 쭉 나열된다.

장진영은 마치 위인전을 읆어대는 사람 마냥 열과 성을 다해 떠들었다.

그만큼 자랑스럽고 기뻤던 것이다.

어린 제자가 노력으로 일궈낸 결실이.

특히 자신의 한계를 빨리 인정하고 헨리 윌리엄스와 올리비아 퀸, 본인의 최대 인풋을 공동 저작자로 끌어들여 협업을 리드한 과정은 전신에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전해 듣는 이들도 마찬가지.

“이렇게 된 거예요. 우리 민이 정말 장하고 대견스럽지 않나요?”

이번만큼은 저 말을 단순한 주접으로만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이정연 팀장이 진심을 담아 말했다.

“정말 굉장하네요. 그 말 밖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어요.”

“대체 어디까지 가려는 건지....”

“이 사실이 알려지면 한국 전체가 뒤집히겠는데?”

“일본과 중국은 속이 뒤집히고?”

“하하하!”

들뜬 분위기.

이정연 팀장이 또 다시 물었다.

“계약 일정은 언제인가요?”

장진영이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말했다.

“안 그래도 그 문제 때문에 민이 부모님 모시고 런던에 한 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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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과 우리 가족 모두가 영국에 도착했다.

“엄마! 아빠! 서연아!”

이게 얼마만의 가족이냐!

출국장에 모습을 드러낸 가족을 보고 달려가 한 명씩 꽉 끌어안아줬다.

“난 됐어! 난 하지마! 끌어안지마!”

“시끄러워! 동생 주제에 감히 오빠 거절하지 말고 순순히 안겨!”

아주 난리를 치는 귀여운 여동생까지 꽈아악... 아주 꽈아아악 안아주고, 머리를 토닥! 토닥! 거린 뒤에야 풀어주었다.

엉망이 된 서연이 씩씩 노려보며 묻는디.

“두고 봐. 복수할 거야!”

...라고 말했던 서연이는 우리 집에서 기다리던 다니엘과 샬럿을 만나자마자 넋이 나가 버렸다.

특히 다니엘!

“노, 노아다!”

“응?”

“세상에, 실물 직접 보니 그냥 노아 그 자체야!”

실물뿐만 아니라 성격도 굉장히 노아스럽단다.

자신들을 보고 넋이 나간 서연이가 귀여웠던지, 다니엘과 샬럿은 그 후로 동생을 계속 챙겨줬다. 서연이는 언어가 안통해서 답답해했지만 그래도 타고난 인싸력을 발휘, 어떻게든 소통을 하더라.

“나 사실 여동생이 있었으면 했거든. 독자여서... 그런데 민이 네 동생 정말 귀엽다.”

“맞아. 진짜 사랑스러워! 인형 같아!”

애가 고양이... 아니 살쾡이 같은 면모가 강해서 그렇지, 외모나 분위기는 굉장히 뛰어나다.

아무래도 나와 판박이라서...

그런 애가 나에게 없는 인싸력까지 가지고 있으니 아주 날아다닌다. 오죽하면 표정 없고 무뚝뚝하기로 유명한 감독님조차도 헤벌쭉하게 만들더라.

그래서 감독님이 진지하게 이런 말씀을 하셨다.

“노아 시리즈에 이드라실 여동생으로 출연시켜볼까? 어린 요정족이 있다면 저 모습, 저 성격일 거야!”

“전 찬성!”

“저도요! 외모도 성격도 요정 그 자체라서 굉장히 잘 할 것 같아요!”

이러다 내 동생이 런던에 와서 스타가 되겠다!

감독, 주연 배우들을 이렇게 사로잡아 버리다니....

“뭐야,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혼자만 알지 말고 나도 알려줘!”

내 옆구리를 콕콕 찔러대는 서연이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더니....

“노아? 나 할래! 나 노아 진짜 좋아하는 거 오빠 잘 알지? 나 엑스트라라도 좋으니 출연 한 번 해보고 싶어!”

애도 난리가 났다.

... 설마 이러다가 정말 단연으로 출연하게 되는 거 아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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