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24화 (124/205)

< 124화. 계약 (2) >

“으리으리하네.”

“집이 정말 좋구나.”

나와 감독님이 함께 거주하는 런던 집을 둘러 본 부모님의 소감이었다.

런던 한복판에 있는 이 집은 감독님 아버지가 소유하고 계신 고급 아파트였다. 내부 인테리어가 세련되고, 가구는 최고급으로 채워져 있으며 조망은 집에서 런던 명물이 한 눈이 보일 정도였다.

다니엘과 샬럿도 처음 이 집을 방문하고 놀라서 입이 쩍 벌어졌는데 평생 서민으로만 살아오셨던 부모님은 말할 것도 없지.

아버지가 감독님 몰래 속삭였다.

“야, 이렇게 좋은 집에서 그냥 눌러 살 수 있게 허락해 주신 거야?”

“가르칠 게 많으니 그냥 헛돈 쓰지 말고 같이 살면서 이것저것 배워보라고 하셔서....”

“좋은 분이구나.”

“성격이 무뚝뚝해보여도 굉장히 좋은 분이에요. 저 신경 많이 써주시고요.”

“무뚝뚝해 보이지는 않던데?”

아버지의 시선이 향한 곳에 재롱 아닌 재롱을 부리며 감독님과 다니엘, 샬럿에게 웃음을 주고 있는 서연이의 모습이 보인다. 손과 발을 이용해 큰 몸짓으로 의사를 전달하려는 모습이 그렇게 사랑스러워 보였던 모양이다.

“아! 답답해! 오빠가 와서 내 말 좀 전해주면 안 돼?”

“계속 해 봐. 그래야 실력이 늘지. 너도 영어 잘하고 싶을 거 아니야?”

“그렇긴 한데....”

뭔 하고 싶은 말이 그렇게 많은지.

당연히 노아에 대한 이야기였다.

영어를 전혀 못하니 말도 안 통하는 주제에 노아 감독과 주연 배우들을 보고 팬심을 억누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난 가만히 지켜보다가 물었다.

“서연아. 내가 작가님 소개시켜줄까?”

“응?!”

홱 고개를 돌리는데... 눈빛이 심상치 않다.

“작가님이라면... 노아 작가님?”

“응. 올리비아 퀸 작가님. 한 번 보고 싶지 않아?”

“보고 싶어! 완~전 보고 싶어!”

“그래. 그러면 내일 올리비아 퀸 작가님 집에 방문하자.”

“정말? 만세!”

어찌나 좋은지, 방방 뛰면서 짧은 팔을 붕붕 휘두르는 모습에 다들 웃음을 짓는다.

1980 브로드웨이를 계약하기로 한 장소가 올리비아 퀸 작가님 저택이었다는 사실은 굳이 설명할 필요 없겠지?

도착 첫날은 짐을 풀고 런던 시내를 돌아다니며 관광을 즐겼다. 이번에도 대표님이 수고하셨다. 커다란 승합차를 렌트해오신 것이다. 심지어 운전까지 하시고.

“아니,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니예요?”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럴 일 없어. 너 나 너무 무시하는 거 아니야?”

“무시하는 게 아니라 괜히 미안하고 죄송스러우니까 그런 거죠.”

“죄송스러울 것도 없다. 스승이 뭐 가르치고 있는 체 하고 그러기만 하는 사람인지 알아?”

대표님은 가이드 역할에 최선을 다하신다.

처음부터 이렇게 우리 가족을 챙겨줄 작정으로 따라오셨다는 것을 그때 알았다.

마침 하늘도 우리를 도와준다.

런던에 그렇게 흔치 않다는 맑고 화창한 날씨가 펼쳐진 것이다.

덕분에 최고의 컨디션으로 런던 관광을 즐길 수 있었는데....

“여기 진짜 좋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선진국 문물을 맛본 우리 가족, 특히 서연이는 완전히 넋이 나가버렸다.

뭘 보여주고 먹여줘도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 그래서 모임 분위기가 덩달아 좋아졌다.

사실 부모님은 몰라도 서연이가 이렇게 적응을 잘 하고 즐거워할 줄은 몰랐는데....

심지어 다니엘과 샬럿에게 몇 마디 말을 배웠는지, 어설프게나마 의사소통을 시도하고 있더라.

그런데 어려서 그런 건가, 배우는 속도가 정말 남다르다.

“저 아이 영어 처음 하는 거 맞아? 발음, 억양이 굉장히 좋아. 한 번 가르쳐주면 곧바로 마스터해버리네.”

똑똑한 샬럿을 놀라게 할 정도로....

나 역시 그런 모습에 놀라고 있었기에 알지 못했다.

감독님이 우리 서연이를 진지하게 살펴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다음 날에는 다 함께 올리비아 퀸 작가님 저택에 방문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해요!”

활짝 웃으며 우리를 맞이해주시는 작가님.

마침내 존경하는 작가님을 만나게 된 서연이의 반응이 기대된다. 다들 비슷한 생각이었던지, 동시에 서연이에게 시선을 주목했다.

장하게도 흥분을 억누른 우리 서연 어린이는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 숙여 인사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김서연이라고 해요! 작가님 빅팬이에요!”

어제부터 배우기 시작한 영어로, 떨지 않고 능숙하게 자기소개를 해내는 모습이 다들 박수를 친다.

“어머나, 이 사랑스러운 소녀는... 설마 민 군의 친동생인가요?”

“맞아요. 저랑 꼭 닮았죠?”

“한 눈에 알아봤어요. 사실 감독님이 어제 계속 전화하고 문자로 꼬마 요정이 눈앞에 나타났다기에 무슨 소리인가 했는데....”

서연이를 바라보는 작가님 눈빛이 심상치 않다.

“정말 그러네요.”

“심지어 놀라운 게 뭔지 아세요? 양궁 유망주라서 활 솜씨가 굉장히 뛰어나다고 하네요!”

놀랐다.

대표님 전매특허인 주접을 다른 사람도 아니고 감독님에게서 보게 될 줄이야!

“어머나. 그게 사실이에요?”

“네. 그리고 아시죠? 한국이 양궁으로 세계 최고라는 거. 거기서도 손꼽히는 유망주라고... 이대로만 성장하면 올림픽 금메달도 문제없을 정도라고 그랬어요.”

“세상에나...!”

서연이를 굉장히 예뻐하시니 자랑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없는 말을 지어낸 게 아니다. 실제 서연이 코치님이 해주신 말씀이다.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놀란 얼굴로 말씀하신다.

“우리 요정족들의 특징이 특히 활 다루는 솜씨가 뛰어나다는 건데....”

“얘가 그거 보고 자기도 요정이 되겠다며 활 가르쳐 달라고 해서 시켜 본 거예요. 그러다가 유망주까지 된 거죠.”

“어머니, 그게 사실이에요?”

“네. 한 치의 과장이나 거짓도 없는 사실이에요. 양궁 선수 된 게 노아 영향이었어요.”

이것 역시 사실이다.

“이거, 갑자기 서연 양이 실제 활 쏘는 모습이 보고 싶어지는데....”

“보여드릴게요. 엄마! 서연이 시합 영상 가지고 있지?”

“그야 물론이지!”

내친 김에 서연이 시합 영상도 보여줬다.

어린 서연이가 자기 몸만 한 양궁을 들고 과녁판 정중앙에 연달아 화살을 꽂아 버리는 진풍경이 펼쳐진다.

“민망하다.”

서연이는 부끄러워 어쩔 줄을 몰라 했지만....

“서연이가 이런 아이구나! 천재적인데? 정말 요정해도 되겠어!”

샬럿의 극찬했고, 모두가 그 말에 적극 동의했다.

오빠로서 으쓱해진 나는 여기서 또 다른 놀라운 사실 하나를 공개했다.

“우리 서연이가 양궁 제대로 배우기 시작한 이후부터는 10점 밑으로 쏴본 적이 거의 없어요.”

“오오!”

“그리고 그것도 할 줄 알아요. 화살 쪼개기!”

“.......?”

저장해 놓은 또 다른 영상을 보여줬다.

먼저 가볍게 화살을 쏴서 과녁 정중앙에 꽂아 버리고, 이어서 쏜 화살로 앞서 쏜 화살을 정중앙부터 쪼개 버리는 광경이었다.

언젠가 영상에서 봤던 걸 혹시나 싶어서 시켜본건데, 그걸 진짜 해내버려서 우리 모두 놀라는... 광경이었다.

“........”

이젠 다들 경악을 해서 말을 잇지 못한다.

“저거 별로 어렵지 않은 건데....”

그건 너한테나 해당되는 거겠지.

서연이는 얼마나 부끄러웠던지, 몸을 배배 꼬다가 내 품에 확 얼굴을 숨겨 버렸다.

그 광경에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잠시 후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과 변호사들, 그리고 디즈니 픽처스 사람들이 도착했다.

바로 계약이 진행됐다.

내게 책정된 출연료는 100만 달러.

아무리 주연이라고 해도, 신인 치고는 너무 많은 금액이다. 그 유명한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의 아이언맨 1편 책정액이 50만 달러, 크리스 햄스워드 토르 1편 책정은 20만 달러에 불과했으니.

하지만 나는 영화 노아의 주요 캐릭터 이드라실의 배우로 시리즈 전편 출연이 예정되어 있었다. 결정적으로 1980 브로드웨이 메인 저작자가 바로 나였다. 모든 것이 내 손에서 시작됐고, 그렇기에 이미 인정받은 OST에 더해 시나리오 각본까지 참여 할 예정이었다.결과적으로 이것저것 다 해서 최종 사인된 금액은 100만 달러가 훨씬 넘는 거액이었다.

“계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합니다

이후 식사와 함께 1980 브로드웨이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졌다. 디즈니 픽쳐스 사람들의 첫 질문이 이거였다.

“대체 어떻게 저런 작품을 쓸 생각을 한 거죠? 모든 사운드 트랙이 다 좋았지만 특히 처음에 <다시 태양이 떠오를 때까지>를 듣고 전율을 느꼈습니다. 이걸 듣자마자 확신이 왔어요. 아, 이거 무조건 우리가 잡아야겠구나!”

여러 차례 입 아프게 했던 이야기지만, 나는 또 다시 내가 어떻게 이 작품을 쓰게 됐는지, 그 상세한 과정들을 들려줬다.

그들은 감탄하며 말했다.

“영감님의 선물이라... 하하! 재미있는 표현이구나. 그러면 혹시라도, 다음에 그 영감님이 새로운 선물을 안겨준다면 우리에게 제일 먼저 보여주실 수 있겠습니까?”

은근한 제안.

아무래도 이 사람들, 단순한 립 서비스가 아니라 1980 브로드웨이가 정말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나는 올리비아 퀸 작가님,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과 시선을 교환한 뒤.

“팀의 의견이 맞아야겠지만... 일단 마음에 작품이 나오면 최우선적으로 고려해볼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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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도 잭슨 스튜디오가 있더라.

원래는 작은 사무실 규모였지만 노아 계약 후 촬영을 위해 대대적으로 확장했단다.

오늘은 바로 그곳을 투어하는 날이었다.

“여기서 많은 촬영이 이루어질 거야. 일단 CG 작업이 필요한 대부분의 작업은 이곳에서 진행되겠지.”

세트장 규모가 어마어마한데, 그게 한 두 개가 아니었다.

사방이 블루 스크린으로 둘러싸인 크로마키 스튜디오.

사방이 LED 벽으로 가득한 최첨단 디지털 스튜디오!

모션 캡처 스튜디오 등등.

나를 포함한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최근 촬영을 위해 도입 시도 중인 새로운 스튜디오가 있지요.”

이 같은 반응에 우리 감독님이 아주 신이 나셨다.

내가 물었다.

“블루 스크린과 LED 스튜디오를 같이 이용할 건가요?”

“응. 하지만 이번 촬영에서는 LED 스튜디오가 보다 많이 이용될 예정이야. 재미있는 거 보여줄까?”

잠시 후, 거대한 LED 벽에 거대한 설산 배경이 펼쳐진다.

“와아...!”

“저렇게 실시간으로 배경을 쏴서 촬영하는 건가?”

“신기하다!”

나 역시도 감탄을 멈출 수가 없었다.

“이 촬영 기법의 장점이 뭐냐면, 처음부터 프리비즈를 비롯한 모든 팀이 소통하면서 함께 작품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는 거야.”

영어를 모르는 우리 가족을 위해 대표님이 실시간으로 통역해주고 있었다. 그러면서 본인도 처음 보는 스타일의 촬영 기법과 스튜디오에 완전 넋이 나간 상태였다.

“무엇보다도 현장이 안전하지. 기존 세트장 방식은 거의 건설 현장이나 다름없는 수준이라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하는데 이건 그럴 일이 없어. 날씨 영향도 안 받고!”

감독님이 흥분하는 것만큼이나 모두들 신기해하고 있다.

그 중에서 특히 우리 노아 삼인방은 잔뜩 들떠 있는 상황.다니엘이 예의, 놀이공원 입장을 앞둔 소년 같은 얼굴로 우리에게 말한다.

“나 빨리 촬영하고 싶어! 정말 재미있을 것 같아!”

그렇게 런던 잭슨 스튜디오 투어가 끝난...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감독님이 우리 노아 삼인방에서 의미심장하게 제안하셨다.

“어때, 온 김에 테스트 촬영 한 번 해보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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