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25화 (125/205)

< 125화. 캐스팅 발표회 (1) >

   앞으로의 촬영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질지 파악할 수 있는 기회였다. 

   사실 세트장은 이미 준비가 되어 있었다.

   “잘 봐. 여기서 LED에 배경을 띄우면....”

   순간 우리 모두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마법 학교의 배경이 펼쳐진 것이다.

   우리가 사용할 바닥, 천장은 배경과 같은 원목 재질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 위에 배우들이 앉을 책상과 의자가 펼쳐져 있었다.

   “가서 여기 로브를 입고 앉아 봐.”

   준비된 로브는 작중 노아가 다니는 아카데미 학생이라면 모두 입고 다니는 교복의 일종이었다. 때가 잘 타지 않고, 야영 시 이불 대용으로도 쓸 수 있도록 만들어졌기에 견고하고 질감도 좋다.

   “우와.”

   “이걸 입게 되다니...”

   “책 일러스트에 나왔던 것과 똑같아!”

   우리 세 사람 모두 들뜬 가운데, 저 멀리 서연이 어린이가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뭐 마려운 강아지마냥 왜 그러고 있어?”

   “나도... 나도 입고 싶단 말이야! 아카데미 로브!”

   “아하.”

   이걸 어찌해야 좋을까요?

   내 시선에 대해 감독님은 굉장히 멋지고 현명한 해답을 내놓으셨다.

   “자, 선물!”

   “우와! 정말 저 주시는 거예요?”

   “물론.”

   “가, 감사합니다!”

   열심히 땡큐 땡큐를 외치는 서연이의 모습에 감독님이 흐뭇하게 웃으신다. 

   우리도 피식거리며 로브를 입었다.

   “다들 그럴 듯한데? 잘 어울린다.”

   “벌써 노아 촬영 시작한 것 같아.”

   “떨려!”

   조심스레 책상에 앉자 세트장 외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카메라가 돌아간다. 

   감독님이 외친다.

   “그냥 노아 삼총사라고 생각하고 자연스럽게 대화해봐. 어차피 테스트용이니 부담 가질 필요 없어.”

   무슨 대화를 해야 하나?

   문득 머리를 스치는 장면이 있었다.

   “너희들 소문 들었어? 흑마법개론 가르치는 스네이크 교수님, 밤마다 주변 무덤가 찾아다니며 이상한 일 한다는 거.”

   갑작스런 애드리브에 당황해하는 두 명.

   가장 먼저 신색을 회복하고 내 대사를 받아준 사람은 다니엘이었다.

   “흑 마법 중에 네크로멘시라는 게 존재하잖아. 아마 그것 때문이 아닐까 싶은데....”

   “네크로멘시? 그런 것도 있어?”

   “나도 자세히는 모르는데....”

   우리 두 사람은 자연스레 샬럿을 바라본다.

   노아 파티에서 샬럿이 가장 모범생이라 백과사전 같은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귀여운 잘난 척을 곁들이면서.

   역시 샬럿은 영리했다.

   그녀는 금방 도도하면서도 잘난 척을 한 가득 머금은 얼굴로 자랑스레 떠들어댄다.

   “그것도 몰라? 저번 시간에 이미 배운 거잖아. 네크로멘시! 점술 목적으로 망자의 영혼을 부르거나, 시체를 조종하여 다양한 목적으로 부리는 기술!”

   “오오!”

   “듣고 보니 기억이 날 듯 말 듯....”

   순수한 이드라실 그저 감탄해서 손뼉을 치고 노아는 아리송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린다. 기세등등해진 샬럿이 한 마디 더 하려는 순간.

   [ 선생님 오신다! ]

   스튜디오 바깥에서 서연이의 외침이 들렸다.

   응. 갑지기...?

   의문은 접어두고 황급히 서로의 복장을 봐주고 자세를 바로 잡는다.

   참고로, 작중 흑마법 개론을 가르치는 스네이크 교수는 학생의 품행을 FM 수준으로 따지는 까다로운 교수라는 설정이다.

   그리고.

   [ 컷! ]

   감독님의 외침이 들려온다.

   “와아아!”

   “멋졌어!”

   박수를 치는 어른들.

   “호흡이 굉장히 좋은데? 역시 내 눈이 틀리지 않았어. 작품 속 노아 삼총사 그 자체야! 하하하!”

   감독님 또한 이례적으로 즐겁게 웃으신다.

   우리 세 사람은 하이파이브로 안도감, 성취감을 함께 나눴다.

   다니엘이 들뜬 얼굴로 물었다.

   “우리 진짜 잘 맞는 것 같지?”

   나와 샬럿은 잠시 시선을 교환하고는.

   “응!”

   동시에 대답했다.

   앞으로의 촬영이 굉장히 기대된다.

   

   @

   

   대표님과 우리 가족은 이틀을 더 머물며 런던을 구경을 했다.

   떠나는 날에는 잭슨 감독님이 마중 나왔는데....

   “서연. 혹시 이드라엘 역할로 출연해 볼 생각 없어?”

   “.......!”

   그 이름을 아는 우리 세 사람은 깜짝 놀랐다.

   이드라엘.

   노아 파티의 일원이자 요정족 마법사 이드라실의 어린 여동생으로 말괄량이에 천방지축 캐릭터다.

   원래 영화에서는 정말 잠깐씩만 모습을 비추는 단역 중의 단역으로 나온다. 

   이드라실이 요정의 숲을 떠날 때 자기도 오빠 따라가겠다고 떼쓰는 장면 한 번.

   하지만 원작 소설에서는 꽤 비중 있는 감초 역할이었다. 

   영화가 원작에 차이가 발생한 것은 아역 배우가 사고도 많이 치고 사랑스러웠던 외모가 안 좋게 변했기 때문이었다.

   그 배역을 서연이에게 제안한다는 것은...?

   ‘설마 원작대로 가려고...?’

   대표님의 통역에 부모님은 깜짝 놀라고, 서연이는 안 그래도 커다란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

   “오, 오빠. 나 어쩌지?”

   “어쩌긴! 요정이 될 수 있는 기횐데 거절할 거야?”

   “하, 하지만 난 양궁 해야 하는데....”

   “너 애초에 양궁 왜 시작했는지 잊었어? 노아 출연할 수 있는 기회 이렇게 차 버릴 거야?”

   “......!”

   난 본격적으로 꼬셨다.

   서연이가 양궁에 재주가 많은 건 맞는데, 결국 그쪽으로 크게 성공하지는 못한다. 

   올림픽 매달 따는 것 보다 국가대표에 선발되는 게 훨씬 어렵다는 이야기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항상 간발의 차로 안타깝게 선발에 실패했던 서연이는 결국 양궁을 포기했다.

   실패가 예정된 길보다는, 본인이 원래 좋아했고 성공 가능성도 훨씬 높은 길이 더 좋지 않겠나?

   “으으...!”

   그래도 망설이는 서연이.

   그런데 조금만 더 푸시하면 넘어올 것 같다. 

   비장의 수를 쓰기로 했다.

   “감독님. 만약 이번에 출연하면 이드라실 외전에도 같이 출연할 수 있는 거죠?”

   “그렇지!”

   “그리고 시리즈 전편에도 출연할 수 있는 거죠?”

   “물론이지!”

   내 의중을 파악한 감독님이 적극 협력한다. 

   “서연아. 좋은 기회야!”

   “같이 한 번 해보자! 난 서연이라면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다니엘과 샬럿도 합세했다.

   “아, 알았어요! 저 해볼게요!”

   공략 성공!

   이로서 영화의 흐름이 또 한 번 크게 바뀌었다.

   난 흥분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서연이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돌아가는 대로 영어 공부 미친 듯이 파고들어! 특히 가장 중요한 게 뭐나면...!”

   

   @

   

   돌아오는 길.

   장진영은 진지하게 고민했다.

   '잡을까? 잡는 게 좋을까?'

   김민의 여동생 서연에 대한 고민이었다.

   사실 처음 봤을 때부터 깊은 인상을 받았다.

   워낙 예쁘고 사랑스러운 외모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김민 동생 아니랄까봐, 심지어 양궁 유망주에 대인 관계도 좋다고 하고, 대화를 나눠 보니 엔 플라워, 매트로 보이즈를 좋아한단다.

   '이번 여정 때보니 머리도 좋고 성격도 굉장히 좋았어.'

   오빠와 티격태격하는 거야 별 문제는 되지 않는다. 

   그게 일반적인 남매의 모습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망설여지는 것은.

   '김민 여동생이라는 게 문제야.'

   만에 하나라도 김민이 싫어할 수 있는 일은 하고 싶지 않았다. '본인도 동생을 가수로 만들 생각이 있었다면 나에게 말을 했을 거야.'

   하지만 JJ엔터테인먼트는 가수 회사고, 더 세부적으로 분류해 보면 아이돌을 주로 취급하는 곳이었다.

   계약 한다고 해도 해줄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잖아. 가수로서 가능성도 있을 지도....'

   정말 만에 하나라도, 경쟁사 중 한 곳에서 낚아채 버린다면 배가 아픈 수준을 넘어 평생을 후회하게 될 것 같았다.

   '오빠와 달리 가수로서 자질은 평범하다고 하더라도, 지금부터 연습시키면 충분히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마침내 비행기가 인천 공항에 도착했다. 

   고민은 운전하는 동안에도 이어졌다. 

   마침내 집 앞이 가까워졌을 때.

   "저기, 서연 양?"

   "네?"

   "혹시 우리 회사에서 아이돌 데뷔해보고 싶은 생각 없어요?"

   장진영은 냅다 질러 버렸다.

   심장이 쿵쾅쿵쾅 뛴다.

   김서연은 크고 맑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반문했다.

   "저보고 아이돌을 하라고요?"

   

   @

   

   시간이 흘렀다. 

   결국 난 홈스쿨링을 선택했고, 다니엘과 샬럿도 같은 길을 택했다.

   덕분에 우리 셋은 하루 중 씻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항상 붙어 다니게 됐다.

   아니, 심지어 같이 떠들고 놀거나, 트레이닝을 하다가 같은 공간에서 자는 경우도 많아졌다.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의 런던 아파트는 우리 셋을 모두 수용하고도 남을 정도로 여유가 있었다. 결정적으로 감독님이 집보다는 스튜디오에서 지내는 시간이 훨씬 많았기에 사실상 우리 아지트가 되어 버렸다. 

   내 주변에도 많은 일이 있었다. 

   

   가장 큰 이슈는 레이지, 레이나 커플이 세뇨리타 음원과 뮤직 비디오를 공개하고 활동을 시작한 일이다.

   이건 아직 며칠 되지 않은 이슈라 명확한 성적을 알기는 어렵다. 하지만 스트리밍 반응이 좋고, 뮤직 비디오 리액션 영상을 비롯한 각종 커버 콘텐츠가 나오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지금 굉장히 핫한 커플 뮤지션의 듀엣 아닌가?

   빌보드에서 좋은 성적을 기대 해봐도 좋을 것 같다. 

   

   엔 플라워가 일본에서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뮤직 스테이션을 비롯한 메이저 프로그램에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다.

   퍼블리셔는 일본 소니 뮤직.

   사실 JJ가 소니 뮤직과 손을 잡는 건 원래에도 있었던 이슈였지만 그 계기가 달랐다. 엔 플라워가 아니라 매트로 보이즈 일본 진출이 시작이었고, 나중에는 현지 법인 설립에 투자까지 받게 된다. 진출 시기도 3년 정도 앞당겨진 것 같다.

   이것 역시 아무래도 내 영향이겠지?

   이번 미니 앨범의 음악과 컨셉이 일본의 10대, 20대들 사이에 큰 반향을 일으키는 중이라나?

   매트로 보이즈가 군 입대 전 마지막 싱글을 발매했다.

   원래 역사에서는 팬들을 위해 지은 노래, 을 샘플링해서 만든 까지 두 곡.

   반응이 상당했다.

   I Will Miss you말고 Starlight Forest가.

   전자는 원래 역사대로 처참하게 묻혀 버렸다.

   후자는 몽환적이면서 매트로 보이즈에 딱 맞는 편곡과 안무 컨셉으로 상당한 반응을 얻고 있는 중이다.

   웃긴 건 I Will Miss you가 이번 싱글 타이틀곡이었다는 거다. 본인들이 팬들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힘을 합해 만든 곡이라고 그렇게 떠들어댔는데 처절하게 묻혀 버렸다.

   어떤 의미로는 원래 역사보다 더 비참해진 것 같기도 하다. 

   무슨 인터뷰를 하거나 방송을 출연하면 꼭 내 이야기를 물어보더라.

   [ 소속사 프로듀서이자 후배 가수이기도 한 김민의 데뷔곡을 샘플링 했는데, 이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

   라거나.

   [ Starlight Forest 작업에 김민이 많은 도움을 줬다고 들었는데...? ]

   [ 혹시 이번 활동에 대해 김민으로부터 들은 말은 없었나? ]

   [ 세계적인 아티스트가 된 김민이 무척 자랑스럽겠다. 기분이 어떤가? ]

   ... 이야.

   나 같으면 자살했다.

   나 겁나 경계하면서 시기 질투하고 싫어하잖아?

   웃긴 건 쟤들이 처음 그런 질문을 받았을 때 표정 관리를 못했는데, 그게 캡쳐되서 퍼지는 바람에 조리돌림 비슷한 걸 당해 버렸다.

   오해라고 해명을 했고, 그 후로는 굉장히 열성적으로 내 팬이라느니 자랑스러운 후배이자 존경하는 뮤지션이라느니... 별 소리를 다 하고 다니더라.

   내 입장에서는 그저 웃음만 나올 뿐이지.

   

   텐 믹스로 존재감을 알린 신인 걸 그룹. <에버가든>의 티저 이미지가 공개됐다.

   데뷔 초읽기에 들어간 것이다.

   이것 때문에 요 근래 곡과 안무를 준비 중이다.

   반응이 오면 재빨리 후속곡을 쳐내서 인기 상승세를 이어가야 하니까.

   

   본 촬영 일이 가까워지면서 트레이닝 난이도 역시 굉장히 높아졌다.

   연기는 말할 것 없고 액션을 위한 훈련까지 진행되는 상황이었다. 근래에는 하루 일과 대부분을 홈스쿨링과 트레이닝으로 보내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요즘 애들이 굉장히 힘들어하는 중이었다.

   충분히 그럴 만했다.

   나야 이전 삶에서 험난한 연습생 시절과 병장 만기 전역을 비롯해 온갖 험난한 일을 경험해 봤으니 지금 상황은 오히려 즐겁기만 하다.

   하지만 다니엘과 샬럿은 입장이 다르다.

   평범한 10대 소년, 소녀들 아닌가?

   아무리 계약을 했다지만 무조건 감내하고, 이겨내라고만 하는 건 가혹한 일이다. 그래서 틈이 나는 대로 맛있는 것도 먹이고, 좋은 곳에 데려가 콧구멍에 바람도 넣어주며 케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노아> 실사화 영화 시리즈 캐스팅 발표회 날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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