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29화 (129/205)

< 129화. 이름을 각인하다 >

정적은 곧 터져 나온 함성에 사라졌다.

“우와아! 멋진데?”

“한편의 영화를 감상하는 기분이었어!”

“저 정도도 충분히 멋있는데... 영화로 만들어지면 얼마나 멋지게 뽑힐까?”

스텝과 연기자들.

다들 우리를 보며 흥분하고 있었다.

처음부터 기선 제압을 해야 한다는 것은 내 의견이었다. 현대 시절은 어둡고 우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면, 노아가 동경하던 엘로아부터는 스펙터클하고 환상적인 분위기가 계속해서 펼쳐져야 한다.

실제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소설 1편에 담아 낸 의도였고 난 그것이 영화에서도 그대로 구현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연기자들에게도, 관객들에게도.

그래야 확실히 이 영화가 어떤 느낌으로 펼쳐질 것인지, 방향성을 제시하고 기대감을 더욱 북돋아줄 수 있다.

잭슨 감독님도 이 의견에 동의해서 액션씬들을 전체적으로 보강했다. 그것이 바로 지금 보여준 결과물이었다.

‘잘했어.’

감독님은 나와 스턴트 연기자들에게 눈빛으로 칭찬을 건넨다. 그리고 엄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직 끝난 게 아닙니다. 보여드릴 것이 더 남았으니 진정해 주십시오.

소란은 멎었지만 기대감은 처음과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시선을 교환한 나와 스턴트 연기자들은 곧바로 다음 액션씬을 준비했다.

노아와 이드라실이 숲을 벗어나기 직전 발생하는 전투였다.

감독님이 말씀하신다.

“미쳐 날뛰는 숲의 괴물들이 하이엘프들을 찾아온 왕국의 사절을 공격하는 장면부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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액션 연기 시범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모든 장면을 감상한 스텝, 연기자들이 우리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스턴트 연기자들은 굉장히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이들은 본 촬영에서는 각각 엘프, 왕국 연합의 기사들로 활약할 예정이었다. 액션 연기 지도와 대역도 겸하면서.

워낙 스케일이 큰 영화다 보니 사람이 많이 필요했던 것이다.

액션 연기가 끝난 이후에도 현재까지 완성된 OST 처음회가 이어졌다.

이 부분은 원래 예정에는 없었지만 OST가 굉장히 잘 뽑혔고, 시나리오 흐름을 모두에게 되새겨주자는 의도에서 마련한 순서였다.

빔 프로젝트에 스토리 보드가 띄워지고, 감독님의 설명과 BGM이 함께 재생된다.

OST는 명목상으로는 나와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의 공동 작품이었다. 하지만 자세히 말하면 내가 전생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디어를 제공하면 찰떡 같이 알아 들은 작곡가님이 완성하는 방식으로 작업했다.

작곡가님은 공동 저작권자로 이름을 올리자고 했지만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다.

그저 아이디어만 제공했을 뿐인데다가 그조차 원래 작곡가님이 창작했던 부분이었다. 거절하는 대신 내 오리지널 BGM을 두 개 정도 수록하기로 했다.

이드라실, 그리고 엔딩 테마였다.

현대 할리우드 영화 음악의 주류인 에픽 오케스트라는 클래식을 기반으로 웅장하고 박력 있는 구성이 특징이다.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은 바로 이 분야의 정점에 있는 뮤지션이다.

실제 오케스트라에, 오케스트라 샘플링 테크닉을 결합해서 실연으로는 구현이 불가능한 박력 있고 강력한 사운드를 처음으로 구현해냈다.

여기서도 그 특징이 여과 없이 드러난다.

[ 두둥둥! 두두두둥! ]

대규모 전투씬에게는 무려 열 대의 드럼 합주로 구현해낸 박력 있는 타악 사운드가 심장을 두드린다.

빈틈없이 꽉 차다 못해, 꽉꽉 압축된 사운드는 어마어마한 타격감과 함께 그 특유의 센스가 더해져 황홀한 경험을 안겨준다.

마치 내 자신이 영웅이 된 듯한 느낌이랄까?

혹은 역사적인 현장의 한복판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만든 달까?

그렇다면 이런 맥시멀리스트 같은 음악만 잘 하느냐?

천만에!

만약 그 정도였다면 현대 클래식, 영화 음악의 신이라고 불리지도 않았겠지.

미니멀리즘 적인 음악에도 일가견이 있는 분이시다.

몇 개의 금관 악기만으로 요정의 숲 테마에 신비감을 제대로 불어넣어 주신다.

그 외에 나는 듣도 보도 못했던 온갖 실험적인 현악기와 조형 악기들을 활용하며 현세에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멋지게도 표현하셨다.

... 이게 내가 굳이 공동 저작자에 이름을 올리지 않으려 했던 실질적인 이유이기도 하다.

뮤지션으로서 격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그 분의 음악은 나 같은 놈이 감히 손댈만한 것이 아니었다.

그의 특징인 에픽 오케스트라 흉내를 내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지만 감히 그럴 엄두를 못 내겠더라.

같은 선상에 놓이게 될 텐데, 어설프게 따라하면 내 비천한 실력이 여지없이 드러날 테니까.

그래서 뉴에이지 스타일의 피아노 연주곡으로 만들었다.

이드라실은 숲의 화사하고 청아한 느낌을 주는 연주 스타일로, 엔딩 곡은 작곡가님이 만든 테마곡을 뉴에이지 스타일로 해석해서.

편하게 듣기 좋고,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아련한 기억으로 남을 수 있도록.

그것이 내 의도였다.

엔딩 연주곡이 아스라이 끝을 맺는다.

“........”

나는 심장이 콩닥거리는 것을 느끼며 주위 반응을 살폈다.

다들 여운을 즐기듯, 희미한 미소로 눈을 감고 있었다.

다니엘과 샬럿 마저도.

[ 짝...짝짝 ]

“좋구나!”

가장 먼저 여운을 깨뜨린 사람은 바로 이안 코너 경이었다. 옆에서 들려온 우렁찬 소리에 나는 깜짝 놀라 온 몸을 움찔거렸다.

그런데 그것을 시작으로 다들 박수를 보낸다.

잭슨 감독님이 나를 흐뭇한 얼굴로 바라보며 말씀하신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노아 BGM 전곡은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 그리고 제가 지금 바라보고 있는 김민이 만들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 예정이고요.”

“난 찬성이야!”

“나도!”

환호와 휘파람소리가 들린다.

가슴 벅찬 감동을 느끼며, 나는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을 대신해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좋게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의 작업을 돕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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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돌아오자마자 파김치가 되어 쓰러져 버렸다.

여느 때보다도 크게 긴장했던 탓도 있지만 액션 연기 시범이다 뭐다 한 일이 무척 많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일을 생각하면... 온수 샤워로 근육을 좀 풀어두는 게 낫겠지?

샤워를 하고 돌아와 블루투스 스피커로 수면에 좋은 클래식 음악을 재생한다.

그리고 잠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침대에 몸을 던졌다.

생각이 많다.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바로 이것.

“내가 정말 노아 실사화 영화의 일원으로 참여하게 되는구나!”

사실 캐스팅 발표회 때도 그렇게 실감이 나지는 않았다.

그런데 바로 오늘, 모든 스텝과 배우가 모인 상황 속에서 대본 리딩을 비롯한 여러 행사를 진행하면서 느낌이 왔다.

내가 역사의 일부가 되었음을.

뒤늦게야 커다란 감격이 몰려온다.

사실 가수로 데뷔하고, 빌보드 차트에 곡을 올렸을 때에도 이런 느낌은 받지 못했다.

가수 데뷔는 이전 삶에서도 했던 일이고, 빌보드 차트 입성은 가수로서 이뤄낸 일이 아니다 보니....

그 다음으로 떠오른 것은 이안 코너 경의 격려였다.

[ 자네, 연기에 소질이 있어. ]

솔직히 말하면 이제 와서 음악으로 인정받는 건... 크게 기쁘지는 않다.

난 회귀 이전에도 작곡가였고, 간간히 차트 1위에 곡을 올린 전적도 있었으니까.

난 내가 음악을 꽤 잘한다는 것을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물론 세상으로부터 숨지 않고, 당당하게 얼굴과 본명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은 감회가 새롭긴 했다.

하지만 연기는 다르다.

전생에 KM 연습생 시절 트레이닝을 받아본 게 전부였고, 그나마 써먹어 볼 수 있는 뮤직 비디오에서도 연기보다는 춤을 추며 멋있는 척, 상큼한 척을 한 게 전부였다.

한 마디로 전생 버프를 받지 못한 분야라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거기서, 내가 가장 존경하는 배우인 이안 코너 경으로부터 칭찬을 들었으니 어찌 기쁘지 않을까?

이건 잭슨 감독님이나 트레이너 분들이 해줬던 칭찬과는 결 자체가 다르다.

그는 영화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모든 영화인이 동경하는 연기의 교본과 같은 존재니까.

‘이번 주말에 시간이 좀 날 테니까.. 내일 미리 연락을 좀 드려야겠군.’

궁금한 게 있다면 언제든 찾아와서 물어보라고 하셨겠다?

전설의 코칭을 받을 수 있는 찬스를 이대로 놓칠 수 없지. 흐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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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단체 채팅방을 만들어 노아 관계자들을 모두 초청했다.

최소 십여 년을 함께 할 사람들이니 팀워크를 다지기 위해서 지금부터 친분을 쌓아두면 좋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내가 단톡방을 만들었으니, 관리도 내 몫이었다.

채팅 앱을 설치하지 사람들에게는 전화로 직접 연락을 해서 설치 방법부터 대화방 참여까지 안내했다.

[ 그냥 놔두면 누가 말을 걸 때마다 계속 휴대폰이 알림 메시지를 보낼 테니 제가 말한 대로 설정해주세요. ]

설정 방법도 공유한다.

아예 방법을 스샷으로 차례대로 찍어서 가이드까지 만들었다.

[ 채팅 참여 안 하셔도 좋으니 방 유지는 해주세요. 종종 저를 비롯한 다른 분들이 노아, 혹은 다른 유용한 정보들을 업데이트 할 예정이니까요! ]

그리고 나는 올리비아 퀸 작가님, 잭슨 감독님으로부터 전해 받은 설정집, 일러스트 본을 휴대폰 사이즈에 맞게 편집해서 업로드하기 시작했다.

그래.

지금 나는 들뜨다 못해 굉장히 신이 나 있는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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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 잭슨 스튜디오.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은 로케이션 최종 확정을 위한 회의를 진행 중이었다.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회의에 촬영 감독이 질문을 던졌다.

“로케이션 선정이 굉장히 빨리 끝난 것 같은데... 대체 언제부터 촬영을 하고 있었던 거죠?”

모두가 내심 궁금해 하던 부분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촬영 진행 속도가 굉장히 빨랐던 것이다. 특히 로케이션 선정은 야외 촬영 장소에 적합한 곳들을 선정해서 돌아다닌 뒤 여러 요건을 고려해서 정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확정이 늦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 같은 질문에 로케이션 매니저와 잭슨 감독이 의미심장한 눈빛을 교환한다.

여성 로케이션 매니저가 씩 웃으며 말했다.

“사실 민 군이 많은 도움을 줬어요.”

“뭐라고요?”

“김민이...?”

여기서 또 김민이 나온다고?

“이거 보시겠어요?”

로케이션 매니저는 자신의 휴대폰을 보여줬다.

김민과의 채팅 매시지 내역이었다.

“세상에....”

촬영 감독을 기점으로, 휴대폰을 확인한 스텝들이 차례로 탄성을 터트렸다.

“확정 로케이션 장소 대부분이 김민이 제안했던 곳이군요!”

이것이 로케이션 확정이 예정보다 빨리 이루어질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잭슨 감독은 피식 웃었다.

“굉장히 열성적으로 제안하더군. 난 내가 로케이션 매니저를 또 한 명 추가로 고용한 줄 알았어.”

“저도 어느 순간에 같은 매니저들이 아니라 김민과 업무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그 말로 사람들은 알 수 있었다.

그만큼 김민이 이번 촬영에 진심이라는 것을.

그리고....

“심지어 감독인 나나 올리비아 퀸 작가님보다도 노아를 세세하게 더 잘 알고 있더군.”

노아의 열성팬이라는 것을.

“그러면 로케이션은 이대로 확정짓고 발표하는 것으로 하지.”

모든 촬영 스태프들의 뇌리에 김민의 이름 두 글자가 강하게 각인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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