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0화. 내한? >
“다음 주부터 촬영 들어갈 거야.”
이른 아침. 거실에 앉아 TV를 보고 있던 내게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이 던진 말이다.
내 옆에 앉아 내가 만든 한국식 토스트를 우물거리며 말을 이어가신다.
“스튜디오 촬영 먼저 끝내고 CG 작업 넘긴 뒤 로케이션 들어갈 거야. 최소 몇 달 동안은 자연과 함께 살게 될 테니 끝낼 일 있으면 미리 끝내둬.”
그리고 날 흘끔 보며 말씀하신다.
“내일 한국에 가서 언제 돌아오는 거야.”
“이번 주 토요일에 돌아올 거예요.”
“가족에게 잘 설명 드려. 혹시라도 깊은 산속에 들어가면 혹시라도 연락이 잘 안 될 수도 있으니까.”
“네.”
무심한 듯,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감독님이다.
그래.
난 내일 새벽에 한국으로 간다!
“준비 끝!”
“민! 한국에 가자!”
“.......”
다니엘, 샬럿하고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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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우리 민이 한국에 온답니다! 마중 나갈 준비 다 되셨나요?! ]
┗ 으아, 이게 얼마만이냐.ㅠㅠ
┗ 분명 KPOP 뮤지션인데 한국에서 얼굴 보기가 이렇게 어렵다니..ㅠ.ㅠ
김민 팬 카페는 굉장히 들썩거리고 있었다.
바로 어제. 김민의 한국 입국 사실이 알려졌기 때문이었다.
다름 아닌 팬 카페에, 김민 본인이 직접 등판해서!
안부 인사로 시작해서 지인들, 그리고 팬들과 잠깐이나마 즐거운 시간을 보낼 예정이라는 게시글이 올라오고, 처음에는 모두가 눈을 의심했다.
[ 이거 정말 김민이야? ]
[ 김민 맞나? ]
그런데 김민이 맞았다!
[ 여러분. 김민 맞아요! 맞습니다! 맞다고요! ㅠㅠ]
공식 팬 카페 운영자가 인증을 해준 것이다.
그 순간부터 팬 카페가 뒤집혔다.
이후부터 수시로 소식이 공유되기 시작했다.
노아 주연 배우인 다니엘, 샬럿과의 동행!
집 앞에서, 차 안에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셋이 개구지게 찍은 사진과 일정이 계속 공유되며 팬들은 기쁨의 환호를 내질렀다.
[ 드디어 김민이 우리를 상대해준다! ]
[ 이렇게 수시로 사진까지 직접 공유해주다니... 오래살고 볼 일이다 정말! ]
그 동안 소통 창구라고 해봐야 뮤튜브가 전부였는데, 그조차도 뉴욕에 입성한 직후부터는 잘 사용하지 않았다. 워낙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해는 하지만 그래도 서운한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 아니, 이렇게 실시간으로 사진이랑 글을 직접 올려주는 건 참 고마운데... 갑자기 이러지는 이유가 뭐지? 왠지 불안한데.... ]
[ 설마 이러고 당분간 또 잠수 타려고...? ]
이렇게 본인의 일정과 실시간 근황 사진까지 열심히 올려주니 카페는 파티 분위기!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잠깐 이러고 또 오래 잠수타는 건 아닌가.
그런데.
[ 앞으로는 팬 여러분을 위한 소소한 근황 사진 같은 거 자주 촬영해서 올릴게요. 저 이제 잠수 안 타요! ]
이 같은 의문에 본인이 바로 아니라고 반박을 했다.
비행기 안에서 촬영한 셀카를 업데이트하면서
팬들은 다시 한 번 환호를 터트렸다.
그리고.
[ 전 이미 공항에 도착! ]
┗ 저도요. 그런데 사람 겁나 많네요.ㄷㄷㄷ
┗ 그러게요. 그냥 소소하게 우리 팬 카페 회원들 정도만 있을 줄 알았는데 웬 기자들이며 다른 커뮤니티 사람들까지 잔뜩...
┗ 기죽을 필요 없어요! 우리 팬 카페가 적자예요! 그 외 다른 팬들은 다 서자라고!!
┗ 기죽지 말고 돈 모아 마련한 공식 팬 카페 현수막 열심히 흔들어요! 민이가 그거 보고 찾아오겠다고 했어요!
공향을 향해 몰려간다.
내가 응원하는 우상을 환영해주기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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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내리며 애들에게 당부했다.
“내 팬들이 몇 명 기다리고 있을 거야. 팬 서비스를 해줘야 하는데 아마 너희들에게도 사진 촬영이나 사인을 부탁할 거야.”
“알아서 협조 하라는 거지? 걱정하지마!”
역시 샬럿을 찰떡 같이 알아 들었고.
“아, 그런 뜻이었어? 걱정하지마! 나 사람들하고 만나는 거 좋아해!”
다니엘은 그 말을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인다.
입국장이 가까워질수록 가슴이 두근거린다.
정말 모처럼 팬들과 만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 떨린다!”
“심장이 터질 것 같아.”
어째 얘네들이 더 난리였다.
누가 보면 자기들 팬 만나러 가는 줄 알겠다.
하지만 이해는 한다.
타 팬이라고는 하지만 어쨌든 처음으로 한국 대중 앞에 나서는 순간 아닌가? 한국에서도 얼굴이 많이 알려졌다고 몇 번이나 말해주고 기사도 보여줬으니 이런 긴장감도 당연하다.
‘그리 많이 모여 있지는 않을 테니까 해달라는 건 최대한 들어줘야지.’
왜냐면 한국에서 나는 아직 신인 가수 김민일 뿐이니까!
미국이 어쩌고 영국이 어쩌고 해도 대중 앞에 나서서 활약할 일이 많지 않았으니 아직 나는 스타급 유명인은 아니다.
... 라는 생각은 입국장 문이 열리는 순간 부셔졌다.
[ 꺄아아아악! ]
[ 오와아아아악! ]
고막을 때리는 어마어마한 함성!
우리 세 사람은 엄청난 광경에 그대로 굳어 버렸다.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해 있었고, 사방에서 플래시가 팡팡 터져 나오고 있는 중이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설마 날 마중 나온 사람들이야?
에이, 그럴 리가....
난 황급히 고개를 두리번거렸다.
혹시 같은 시간대에 입국하는 다른 슈퍼스타가 있나 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건 없었고 그 대신 우리를 보호해주기 위해 다가온 공항 보안 요원들만 가득했다.
“민아!”
누군가 인파를 뚫고 다가온다.
대표님이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거예요?”
“어떻게 된 일이긴, 너하고 저 친구들 마중 나온 사람들이지.”
“우리들을요?”
“그 이야기는 나중에 하고 빨리 가자. 차 대기시켜놨어!”
날 황급히 끌고가려는 대표님을 황급히 멈춰 세웠다.
“자, 잠시 만요!”
“.......?”
의아한 시선을 뒤로하고 사람들을 둘러본다.
우리들을 향해 손과 선물을 뻗으며 열광하는 사람들 가운데, 유난히 튀는 이들이 있었다.
이드라실 이미지 샷이 큼직하게 새겨진 응원용 현수막을 흔드는 사람들!
[ KPOP의 자랑 김민! ]
[ 우리는 ‘김민의 숲’ 입니다! ]
굉장히 민망하긴 한데... 내 공식 팬 카페 회원들이었다.
“김민! 김미이이인!”
“꺄아악!”
눈이 마주치자 울 것 같은 얼굴로 더욱 열렬히 현수막을 흔들어댄다.
나는 애들을 보고 말했다.
“잠깐 팬서비스 좀 하고 가자.”
양해를 구한 뒤, 애들을 데리고 내 팬 카페 회원들을 향해 다가갔다.
“혹시나 했는데 정말 마중 나와 주셨네요! 고마워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긴 검은 머리에 금테 안경을 착용한 20대 여성이 소리친다.
“최소라요!”
“아! 제 팬 카페 회장님이시군요!”
“어? 저를 아세요?”
“잘 알죠! 데뷔 초부터 저 응원해 주셨잖아요! 그때 같이 다니던 분들 여기 다 계시네! 못 얼굴도 있고. 하하하!”
“.......!”
울컥하는 팬들.
나는 뻘쭘하게 내 옆에 서 있는 다니엘과 샬럿을 소개했다.
“여기 제 친구들이에요. 아시죠? 저와 함께 영화 노아에 출연하는 배우들.”
“당연히 알죠!”
“잘 알아요!”
귀엽다, 예쁘다. 난리도 아니다. 내가 반응들을 통역해 주니 굉장히 민망해하면서도 고마워 어쩔 줄 몰라 한다.
“자자, 시간이 많지 않으니 서둘러서 팬 서비스 타임 들어갑니다!”
공식 팬 카페 회원들을 시작으로, 우리는 열심히 사인과 사진 촬영을 해줬다. 그 와중에 온갖 선물이 쏟아졌는데 대표님이 대동한 매니저 분들이 모두 대신 받아주셨다.
그 중에는 내 한국 매니저인 최명규도 있었다.
“야! 이제 가야 돼!”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대표님이 나를 재촉하신다.
나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팬 카페 회원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백팩을 열어 큼직한 비닐 봉다리를 꺼내 ‘최소라’에게 건네준다.
“이, 이게 뭐예요?”
“팬 카페 여러분 만나면 선물해주려고 노아 정식 굿즈 샵에서 구매한 것들이에요! 나눠 가지세요!”
“........!”
흔들리는 눈동자들.
“한국 떠나기 전에 작게라도 자리 한 번 마련할 테니 그때 또 봬요! 이렇게 가서 미안해요. 뭔가 많이 해주지도 못하고.....”
그리고 대표님께 질질 끌려 공항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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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과의 짧지만 강렬했던 재회 이후, 팬 카페는 다시 떠들썩해졌다.
공항에 갔던 이들이 너도나도 후기를 올린 것이다.
[ 팔이 빠져라 현수막을 흔들며 소리를 질렀던 보람이 있었어! ㅠ_ㅠ ]
┗ 우리 민이가 공식 팬 카페 회원이라고 엄청 챙겨주더라. 심지어 얼굴도 기억해줬음!
┗ 런던의 노아 굿즈 샵에서 직접 구매한 선물도 줬는데 대부분 자석이나 열쇠고리더라. 그래도 정말 좋았음. 평생 간직할 거야ㅠ.ㅠ
사진, 영상, 사인 인증샷.
그 외에 끝나고 다 함께 식사를 하며 대화를 나눴던 모습들도 공개됐다.
공항에 가지 못했던 팬들은 굉장히 부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자신들을 기억해주고 가장 먼저 챙겨줬다는 소리에 뿌듯해했다.
사진만 봐도 공항이 가득 찰 정도로 사람이 굉장히 많았던 것이다. 기자들을 포함해서.
한편 공항에서 김민과 마주했던 팬들은 다음과 같은 대화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 한국 떠나기 전에 자리 마련하겠다고 했는데, 들었음? ]
┗ 나도 똑똑히 들었음.
┗ 나도!
┗ 아무래도 뭔가 소소한 이벤트라도 열려는 모양인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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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몇 명 없을 거라고 했잖아?”
“맞아! 나 솔직히 많아야 열 명 남짓 모여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차에 타자마자 다니엘과 샬럿이 항의했다.
아직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양이다.
하긴, 그런 광경은 처음 대면했을 테니....
“나도 놀랐어. 설마 이렇게 많이 나올 줄은 몰랐는데...”
그리고 슬쩍 대표님에게 묻는다.
“제 인기가 이 정도였어요?”
“그 이상이지. 빌보드 차트 연속 1위에 세계적인 소설 노아 실사화 시리즈의 주연까지 꿰어 찼으니까.”
조수석에 앉아 있던 대표님이 뒷좌석의 우리를 돌아보며 말한다.
“너 지금 KPOP 국가대표야.”
“아.....”
“다니엘, 샬럿, 겪어봤으니 알겠지만 너희들 팬들도 굉장히 많아. 노아의 주인공들이잖아. 싱크로율도 굉장히 높고.”
“저도 깜짝 놀랐어요. 한국은 처음인데...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우리를 알고 있더라고요!”
“영국에서도 아직 본 적 없는 팬이 한국에 이렇게 많다니... 갑자기 한국이 좋아지려고 그래요!”
다니엘과 샬럿의 말에 대표님이 크게 웃음을 터트리신다.
그리고 내게 말한다.
“네가 부탁한 미니 토크 콘서트, 대학로 소극장으로 이번 주 금요일 예약해놨어.”
“아, 그래요? 그러면 팬 카페 공지 올려야겠네.”
“야. 그런 건 네가 나설 일이 아니야. 넌 그냥 가만히 있어. 우리가 다 알아서 해줄 테니까.”
“고마워요.”
“이틀 후인 수요일에 에버가든 쇼케이스, 금요일에 미니 토크 콘서트. 이거 말고 예정된 일정 있어?”
“문 라이트 애들하고 모여서 놀러 가기로 했어요. 여기 얘들도 포함해서요.”
“그게 언젠데?”
“내일이요. 쇼케이스 하루 전에 휴식 주시기로 하셨다면서요?”
“그랬지. 쇼케이스 이후부터는 정말 미친 듯이 바쁜 나날이 시작될 테니까. 그래서 어디로 갈 건데?”
“놀이공원 잠시 들렸다가 남산 가려고요.”
“흠, 나쁘지 않네. 또?”
“목요일은 가족, 얘들하고 같이 시내라도 돌아다니며 쇼핑하고 맛있는 것도 먹고 그러려고요.”
“흠.”
“왜요?”
“너 혹시 쟁겨 놓은 음악은 없어?”
“뭐... 없는 건 아닌데, 갑자기 왜요?”
“미니 토크 콘서트 때 신곡 공개하고 그날 싱글 발매하면 좋잖아. 팬들 계속 기다리게 할래?”
“아....”
“네 팬들은 네가 뭘하든 응원해줄거야. 그래도 너에게 가장 바라는 모습은 가수로서 노래를 부르는 거야.”
그건 맞는 말이다.
내가 무엇을 하더라도 가수로 데뷔한 이상, 내 본질은 뮤지션이다.
“그러면 이거....”
휴대폰에서 음원 파일 하나를 찾아 최고 볼륨으로 재생한다.
잔잔하면서 깊은 울림이 담긴 포비트의 피아노 연주가 울려 퍼진다.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더 이상은 일어설 힘이 없을 때.
당신이 날 일으켜줘요.
다시 시작할 힘을 나눠줘요.
진한 떨림을 머금은 바이올린과 첼로가 깊게 파고든다.
이어 후렴구에서 웅장한 스트링 연주, 소프라노 합창과 함께 내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내 손을 잡아줘요.
다시 한 번 일어설 힘을 줘요.
비바람에도 쓰러지지 않도록.
다시 한 번 날 일으켜줘요.
폭발하는 화음!
겹겹이 쌓은 악기와 내 보컬들이 충돌하며 무지막지한 감성의 파도를 때려 붓는다.
당신이 내 손을 잡아준다면.
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어요.
잔잔한 고백, 진한 여운을 남기는 피아노 연주로 마침내 노래가 끝났다.
감수성 예민한 다니엘과 샬럿이 훌쩍 거리고 있었다.
대표님이 조금은 잠긴 음성으로 물었다.
“이 노래 제목이 뭐야?”
“Raise요.”
“그것보다는 Hold My Hand가 훨씬 낫지 않을까?”
“그것도 나쁘지 않네요. 한국에서만 발매할 거라면 ‘손을 잡아줘요’ 이렇게 가는 것도 좋겠어요.”
“그래. 그러면 손을 잡아줘요로 하고... 어떻게 만든 곡이야?”
다니엘과 샬럿을 흘끔 보며 말했다.
“얘들 트레이닝 받는 모습 보고 영감 받아 만든 곡이에요.”
대표님의 시선이 다니엘과 샬럿에게 향한다.
다니엘과 샬럿도 깜짝 놀란 듯 눈을 동그랗게 뜬다.
“트레이닝이 워낙 힘들었던 탓인지 얘네들이 참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참 대견한 게 그러면서도 끝까지 그만두고 싶다거나, 투정부리고, 누굴 탓하고 그러지는 않더라고요.”
그렇게 울다가도, 손을 잡아 일으켜 세우면 어떻게든 힘을 내서 같이 주어진 과제를 어떻게든 소화해냈다.
“그 광경을 보고 감명을 받았어요. 저 역시 큰 힘을 받았고요. 그래서 만든 곡이에요.”
“그렇구나.”
두 녀석은 민망해하고 대표님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었다.
잠시 후.
“이곡을 싱글로 발매하자.”
김민의 두 번째 여행 일기.
<손을 잡아줘요> 발매가 확정된 순간이었다.
“야, 그런데....”
“.......?”
“곡 하나 더 있냐?”
“왜요? 한 곡으로 부족해요? 그렇다면....”
“그게 아니라, 남은 곡 있으면 나 좀 주라.”
“........”
“곡비 잘 쳐줄게 인마.”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모습에 난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