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4화. 미니 토크 콘서트 >
“민이 오랜만이네?”
“그 동안 건강하셨죠? 이모님.”
이른 아침.
반지희 이모님이 운영하시는 헤어숍에 도착했다.
“요즘 소식 잘 듣고 있어.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한다면서?”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요.”
“겸손은, 요즘 숍에 연예인들이 네 이야기 많이 하더라.”
“제 이야기요?”
머리와 메이크업을 하면서 이모님과 대화를 이어간다. 몇 가지 재미있는 정보를 알려주신다.
“배우들은 연기 경험도 없는 네가 할리우드 영화 주연으로 발탁된 것 때문에 난리고 가수들은 네가 만든 곡이 빌보드 차트에 오른 것 때문에 난리야.”
“음, 좋은 이야기는 별로 없었겠네요?”
“그냥 순수하게 부러워하는 사람도 있긴 있었는데 그것보다는 너 시기하고 질투하는 사람들 많더라.”
그러면서 내게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너 가급적이면 한국에서 활동하지 마라. 무슨 일 당할지 몰라.”
“에이, 아무리 그래도....”
“내가 수십 년을 방송가와 엮여 일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 뭔지 알아?”
“......?”
“사람의 질투심이라는 게 정말 무섭다는 거야. 그 놈의 질투 때문에 큰일 벌어지는 거 셀 수 없이 목격했어.”
그거야 나도 알고 있지.
이전 생에서 KM과 스타더스트가 날 묻으려고 했던 게 그놈의 질투심 때문이었으니까.
“겉으로는 위하는 척, 팬인 척... 그러면서 뒤로 호박씨 까거나 무슨 음모 같은 것을 꾸미는 애들이 얼마나 많은데. 방송가, 영화계에 미친놈들 진짜 많아. 내가 너 조카로 생각해서 조언해주는 거야.”
아무래도 수많은 연예인의 머리를 전담하는 분이시다 보니, 나와 관련한 온갖 루머를 많이 접하신 모양이다.
주위를 둘러보시던 이모님이 조심스레 말씀하신다.
“특히 게네들 조심해.”
“누구요?”
“매트로 보이즈하고 스타더스트. 누군지는 알지? 전자 쪽은 소속사 선배잖아.”
“아....”
“그 애들이 진짜 걸핏하면 네 욕 많이 하더라. 매트로 보이즈 게네들은 소속사가 네만 밀어준다느니....”
게네들은 아직도 그러고 다니는구나.
“그런데 스타더스트 애들하고는 만난 적도 없지 않니?”
“그렇죠. 단 한 번도 못 봤어요.”
“그런데 걔네들은 왜 그러는 지 몰라. 무슨 원수라도 된 양 헐 뜯기나 하고... 하여튼 그 놈의 질투심은 남자나 여자나....”
대강 짐작된다.
스타더스트.
게네들은 원래 자기보다 잘 나가는 사람이라면 질색하는 녀석들이다.
예를 들어 어떤 행사장에 갔다고 하면 자기보다 더 관심을 받는 사람이 생기면 그 즉시 원수가 되는 거다.
합동 무대에서는 자기들이 엔딩을 맡지 않으면 무슨 음모라느니 어쩌니... 몇 날 며칠을 투덜거리는데 아주 질리더라.
현재 KPOP 씬에서 내 이야기가 많이 거론된다고 하니. 그것 때문에 그 자식들이 또 광증이 도진 모양이다.
미친 새끼들.
이후 다른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야, 나 건드리지 마. 지금 되게 예민하거든?”
“미친 새끼. 하하...”
낯익은 음성이 들려온다.
이모님이 정색하며 말씀하신다.
“호랑이도 제 말하면 온다더니... 왔다.”
입구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남자 아이돌 그룹.
스타더스트.
인사는 하는 둥 마는 둥, 저희들끼리 거친 소리를 주고받던 녀석들이 날 발견하고 하나 같이 입을 다문다.
“........”
그러더니 눈치를 보는 게 아닌가?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라도 하는 건가?
아무래도 상관없었기에 모른 척 외면하려고 했는데....
“어? 안녕하세요! 그 동안 잘 계셨죠?”
뒤늦게 나타난 남자 매니저가 날 보고 반가운 표정을 짓는다. 미국에서 제이미 수행을 했던 매니저였다. 별 수 없이 아는 척을 해야 했다.
“안녕하세요. 김상곤 매니저님. 서울에서 보니 얼굴이 굉장히 좋아졌네요. 역시 한국이 좋죠?”
“저 요즘 햄버거 가계는 쳐다보지도 않아요. 미국에서 하도 많이 먹은 탓에 질려서... 아, 인사해. 너희들 선배님이시다. 알지? 김민 프로듀서님이야.”
“... 안녕하세요.”
“... 십니까.”
마지못해 인사하는 모습들이다.
김상곤 매니저님이 인상 쓰며 한 마디 한다.
“인사 다시 제대로 안 해?”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인상을 쓰는 녀석들을 보자니 옛 기억이 떠올라 속으로 혀를 차게 된다.
지금 속으로 되게 아니꼬울거다.
자기들보다 나이도 어린데 짜증나게 인기까지 많은 녀석을 선배 대접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하여튼 되먹지 못한 놈들이라니까.
“안녕하세요!”
“... 죄송합니다. 제가 대신 사과할게요. 이 친구들이 요즘 워낙 바쁜 일정을 소화해서 정신이 하나도 없어요.”
결국 김상곤 매니저님이 대신 나서서 사과한다.
“.......”
“.......”
어색한 침묵이 이어졌다.
이모님과의 화기애애했던 대화도 끊어졌다.
모처럼의 만남이라 하고 싶은 이야기도 많았는데....
‘빨리 끝내줄게.’
‘고마워요, 이모님. 다음에 지희네들이랑 다시 찾아와서 제대로 인사드릴게요.’
미용실을 벗어나 혜화동 소극장으로 가는 동안 생각했다.
‘스타더스트는 그렇다 치고, 매트로 보이즈 이것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참 거슬리는 녀석들이다.
내가 자기들에게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만나기만 하면 먼저 이를 드러내고, 뒷담화를 하고 다니는 걸까?
아니, 뒷담화 할 수는 있지.
그럴 거면 걸리지를 말던가.
‘문제는 회사하고 대표님이란 말이지.’
어쨌든 대표님에게는 나처럼 제자 같은 녀석들이다.
국내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지만 아직도 엔 플라워 함께 JJ 매출을 책임지는 간판 그룹이다.
한 마디로, 녀석들이 잘못되면 JJ와 장진영 대표님의 타격으로 이어진다.
그건 내가 바라는 게 아니다.
‘유치한 선택을 강요하고 싶지도 않고.’
나예요 쟤들이에요?
하나만 선택해요!
이러면 대표님만 힘들어지는거다.
회사 사람들도 짜증날 테고.
‘이래서 명분이 중요하다는 거지.’
명분도 없이 각을 세우면 내 평판만 깎인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내가 따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게 가장 짜증나.’
내 입지가 이전과 달라졌고, 어쨌든 녀석들은 오랜 시간 연예계에서 살아남아 있다.
특히 나와 관련해서 제 목을 조일 사건을 일으키지는 않을 것 같다.
‘갑갑하다.’
웹소설이나 드라마 같은 거 보면 사이다 드링킹 하기 좋은 상황이 잘만 벌어지던데 말이지.
이래서 현실은 시궁 창이라는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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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화역 소극장에 도착한 순간 머릿속에 가득하던 불평불만 같은 것들이 사라졌다.
해야 할 일이 많았기 때문이다.
리허설도 해야 하고 오늘 팬들을 위해 마련한 것들이 잘 도착했는지, 아무 이상은 없는지 확인도 해야 하고.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고 팬들이 입장을 시장했다.
소극장이라지만 그래도 수백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규모였는데....
‘꽉 찼네.’
대기실 설치된 모니터로 표정들을 확인해 본다.
굉장히 밝고... 들떠 있는 모습들이다.
각종 응원도구들이 가득했는데 공식 유료 팬클럽이 없으니 자체적으로 제작한 도구들로 보인다.
왠지 미안하다.
사실 공식 팬클럽 창단이 내부적으로도 말이 많이 나오고 있는 중이긴 한데 내가 망설여서 못하고 있다.
왜냐면 국내 활동도 잘 안하는데 가당키나 한 소리인지 의문이 들어서.
잠시 후 객석에서 탄성소리가 울려 퍼졌다.
장진영 대표님과 우리 가족, 다니엘, 샬럿이 등장한 것이다. 모두들 내가 특별히 마련한 앞자리에 착석했다.
슬슬 시간이 됐다.
마지막으로 거울을 한 번 보고....
“... 가자.”
팬들을 만나기 위해 대기실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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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 토크 콘서트는 공식 팬 카페 ‘김민의 숲’ 회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이벤트였다.
티켓은 추첨을 통해 무료로 배부됐다.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 역시 우리 민이는 클래스가 다르구나. 데뷔 년차로만 보면 아직 신인인데 이 정도 규모의 무료 공연이라니...;;; ]
┗ 팬들을 위해서 이런 계획을 짠 김민도 기특하지만 적극 추진해 준 JJ 엔터테인먼트도 대단하다.
┗ 소극장이라도 해도 규모가 적지 않아서 비용이 상당히 들었을 텐데....
돈 문제를 떠나 쉽지 않은 일이었다.
공연을 구상하는 것부터 끝마치기까지의 모든 과정들이.
팬들을 위해 아무 대가 없이 이 모든 것을 자처했으니 김민과 소속사는 칭찬을 받아 마땅했다.
그렇기에 드는 의구심도 있었다.
[ 이럴 거면 공식 팬클럽 창단 추진 좀 해주던가. 미적대는 이유를 모르겠음. ]
┗ 내가 알기로 회사도 마음은 있는데 정작 김민이 망설이고 있어서 못하고 있는 거라고 들었음.
┗ 정말? 이유가 뭐임?
┗ 나도 자세한 건 모름. 회사에 다니는 우리 언니한테 얼핏 들은 거라서....
행사 당일.
소극장에 집결한 팬들은 한 가지 마음을 품고 있었다.
‘본인이 팬클럽 창단을 망설이고 있다고?’
‘진실을 확인해봐야겠어!’
사실이라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도.
오후 일곱 시.
마침내 행사가 시작됐다.
올 블랙 정장을 차려입고, 차분하게 머리를 내린 김민이 등장한 순간.
[ 와아아아 ― !! ]
비명과도 같은 함성이 터져 나왔다.
무대에 등장한 김민은 인사에 앞서, 무대 정중앙에 설치된 스탠드 마이크 앞에 서서 기타를 퉁기며 노래를 불렀다.
데뷔곡이자 히트곡인 <별빛의 숲>이었다.
뇌리에 가득하던 의문 따위는 순식간에 지워져 버렸다.
‘목소리가.....’
‘더 맑아졌어.’
변성기가 지난 남자 아이의 목소리는 굵고 거칠어진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김민의 목소리는 더욱 청아해졌다.
‘가성으로 노래를 부르는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부르는 것 같은데 저런 목소리가 나온 다고?’
맑은 속에 깊이감이 느껴진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하나.
‘노래 실력이 성장한 거야.’
‘뒤에서 엄청 노력을 한 모양이야.’
단순히 곡 쓰고, 프로듀싱하고, 연기 트레이닝만 받았던 게 아니었다.
가수로서 본연의 모습을 지키고자, 노래 연습 역시 꾸준히 해 온 것이다.
그것이 첫 공연, 몇 마디에서 드러난다.
전문가가 아니라도 확연히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첫 공연이 끝나고 나서야 인사말이 이어졌다.
“우리 정말 오랜만이죠? 기다려줘서 고맙고, 이렇게 변함없이 성원해줘서 또 고마워요.”
그리고 시작된 토크.
“소통을 위해 마련한 자리니까 무엇이든 질문하세요. 최대한 의문을 풀어드릴 수 있도록 노력할게요.”
그 순간 수많은 손이 들어 올려진다.
심상찮은 기세에 당황한 듯 했지만, 금방 평정심을 회복한 김민이 한 사람을 지목했다.
“안경 착용하신 보라색 머리카락의 여성분!”
벌떡 자리에서 일어선 여성은 주변 사람들의 기대와 바람을 져버리지 않았다.
“소문을 듣기로, 김민 군 본인이 공식 팬클럽 창단을 망설이고 있다던데... 그게 사실인가요?”
오오오!
터져 나오는 탄성과 박수!
가려웠던 부분을 대번에 긁어주니 환호로 화답하는 것이다.
쏟아지는 시선에 김민은 당혹스런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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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숨길 이야기는 아니었다.
난 내 심정을 솔직히 고백했다.
“네. 사실이에요.”
“이유가 뭐죠?”
“한국 활동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공식 팬클럽 창단은 너무 염치없는 일이 아닌가 싶은 생각 때문이에요.”
야유가 터져 나온다.
당황하다가, 그 내용을 알고 반문했다.
“그래도 창단을 원하시는 건가요?”
[ 네! ]
우렁찬 대답.
나는 곤란한 얼굴로 대표님에게 이 일을 떠넘겼다.
“어쩌죠?”
뭐라고 크게 외치신다.
스텝이 마이크를 전해주니....
“그런 건 네가 신경 쓸 일이 아니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 했지?”
나를 혼내신다!
그리고 객석을 돌아보며 질문을 던진다.
“여러분. 공식 팬클럽 창단 하는 게 맞는 거죠?”
[ 네! ]
“거 봐 자식아!”
이렇게 된 이상 더는 망설일 수 없을 것 같다.
“네. 그러면 뭐... 진행하죠.”
[ 와아아아! ]
환호가 터져 나온다.
다들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내심 죄책감이 밀려온다.
‘저렇게 좋아해주시는데... 그냥 진작 추진할 걸 그랬다.’
어쨌든 하기로 했으니 후회는 접어두고.
“또 질문 있어요? 뭐든 괜찮으니 막 물어보세요!”
이후로 화기애애한 분위 속에 행사를 이어나갔다.
토크와 공연, 그리고 나름 준비한 퀴즈 쇼 같은 레크리에이션도 섞어서 웃음과 선물이 함께 하는 시간도 보냈다.
“자, 슬슬 끝낼 시간인데....”
터져 나오는 아쉬운 탄성.
“여러분을 위해 준비한 미공개 신곡을 들려 드릴게요.”
잔잔한 포 비트의 피아노 반주가 흘러나오자 한순간에 모든 소리가 멎는다.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
더 이상은 일어설 힘이 없을 때.
당신이 날 일으켜줘요.
다시 시작할 힘을 나눠줘요.
그렇게 시작되는 노래.
내가 이런 저런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대표님이 직접 편곡과 후반작 업까지 끝마쳤던 터라 음원의 질감자체가 차원이 달랐다.
내 새로운 싱글에 힘을 보태준 대표님은 이 순간, 누구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노래를 감상하고 있었다.
기대에 보답하기 위해.
난 온 몸이 땀에 푹 젖을 정도로 열창했다.
당신이 내 손을 잡아준다면.
난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어요.
“.......”
노래는 깊은 여운을 남기고 끝났다.
터져 나오는 함성.
눈물 가득한 얼굴은 잠깐 동안의 이별 탓일까?
아니면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분명한 건 나 역시 이 헤어짐이 아프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심장이 아릴만큼.
애써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우리 다음에 또 만나서 재미있게 놀아요. 오늘 정말 행복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