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35화 (135/205)

< 135화. 예기치 않은 일정 >

마음 같아서는 신곡 <손을 잡아줘요>의 음원 발매 잉정을 늦추고 싶었다.

스타더스트 신곡이 발매될 때까지.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영상이 유출됐네.’

몇 시간 전.

미니 토크 콘서트를 끝마치고 집으로 향하는데 주세아가 영상 링크 하나를 보내왔다.

그게 바로 지금 보고 있는 영상이었다.

심지어 화질, 음질도 매우 좋다.

신곡 <손을 잡아줘요> 파트는 클립 영상으로 돌아다니고 있더라.

덕분에 팬 카페 <김민의 숲>도 난리 났다.

[ 신곡이 유출됐네요; ]

┗ 우리 카페 회원이 유출한 게 맞을 텐데 누군지 모르겠네요. 카페가 아니라 뮤튜브에 업로드 된 거라서....

┗ 최초 업로드 계정을 확인해보면 되지 않을까요?

┗ 올리고 얼마 되지 않아서 바로 영상 지우고 계정 패쇄해버렸어요.

┗ 못 잡겠네.;;

┗ 진짜 돌아버리겠네요. 마지막까지 완벽했는데 끝나고 나니 이게 뭔....

카페 분위기가 부글 부글 끊어 올랐다.

[ 수색합시다. 이번 사건 이대로 묻혀서 지나가면 민에게 면목 없음. 우리 생각해서 무료로 공연도 열어주고 신곡도 먼저 공개해준 건데.... ]

┗ 위치 특정해보면 금방 답이 나올 듯. 촬영된 곳 위치를 확인하니 D.E열 뒷좌석 부근임.

┗ ㅇㅇ 근처에 앉아 있던 사람들 모두 소환해서 하나씩 까보면 금방 답 나옴.

이게 뭔....

처음에는 나도 유출 사건에 당황했는데 팬 카페 회원들의 대처를 지켜보자니 점점 당혹감이 생긴다.

아니, 유출범 잡겠다고 저렇게까지 한다고?

그런데 카페 운영진까지 나서며 현장 좌석 배치를 토대로 수사망을 좁혀간다.

흥미진진해진다.

사건이 어떻게 될까?

결국.

[ 자수하겠습니다. ]

범인이 자수했다.

[ 제가 직접 업로드 한 건 아니고 학교 친한 친구들이 김민 열혈 팬이라서.... ]

요약하자면, 친구 부탁 받고 촬영해서 보낸 것이 유출되었다는 이야기다.

서울 은평구에 재학 중인 여고생으로, 유출한 장본인 역시 같은 반의 친구라고 했다.

범인이 여고생이었다니.

갑자기 화난 마음이 싹 사라진다.

그저 허탈할 따름이었다.

난 회사에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보냈다.

[ 상황 확인해 보고 자백에 틀린 게 없으면 그냥 용서해주세요. 그리고 음원 발매는 회사 계획대로 부탁드립니다. ]

@

아침부터 인천 공항에는 많은 기자들과 팬들이 가득했다.

“민아! 영화 촬영 잘해!”

“음원 유출 사고 난 거 미안해! 대신 사과할게!”

팬들의 목소리에 한숨부터 나왔다.

이렇게까지 응원해주는 게 고마웠고, 그게 뭐 엄청난 사고라고, 심지어 본인이 저지른 짓도 아니면서 이렇게 사과하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다가가서 한 마디라도 해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는 형편이었다.

할 수 있는 것은 최대한 환하게 웃어주며 손을 흔드는 것뿐이었다.

그것만으로도 팬들은 굉장히 좋아해줬다.

... 나 같은 게 뭐라고.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에 탑승했다.

비행기가 뜨고 얼마 지나지 않아 다니앨과 샬럿은 코를 골 정도로 깊게 잠에 빠졌다.

녀석들은 애써 내색하지 않았지만, 실은 계속 긴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나는 잘 알고 있다.

어린 나이에 친구 따라서 타국에 건너와서 익숙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며 내 일정을 함께 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그저 개인 일정 때문에 많이 챙겨주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이다.

그리고 고마웠다.

단 한 번도 약한 소리, 짜증난 기색 없이 내 곁을 지켜줘서.

런던 도착하면 하루 정도는 여유가 있으니, 좋은 곳에 데려가 맛있는 음식이라도 먹여줘야 할 것 같다.

@

“.......”

런던의 뭣 같은 날씨를 계산하지 못했다.

거센 비바람이 휘몰아치고 있더라.

일기 예보에 의하면 이 날씨가 당분간 계속 이어질 거라고 하니 놀러가는 건 무리였다.

좋은 곳에 데려가고 싶었는데, 아무래도 다음 기회로 미뤄야 할 것 같군.

감독님이 직접 차를 끌고 마중 나와 주셨다.

다니엘과 샬럿을 차례대로 집에 데려다주고 마지막으로 집으로 향했다.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셨던 감독님이 그제야 말씀을 하신다.

“공연 영상이 유출되었더구나.”

“어? 그걸 어떻게 아셨어요?”

“채팅 방에서 누가 공유해줘서 알았다.”

“영국까지 퍼졌구나.”

“나쁜 건 아니야. 반응이 좋거든. 음원 찾는 사람도 많더라.”

비행기를 타고 건너오는 하루 동안 많은 일이 있었던 모양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음원 발매 됐겠네요.”

한국 기준으로 일요일 18시에 정각에 음원이 공개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감독님 차량의 블루투스 스피커와 연동해서 크게 음악을 틀었다.

마침 비바람이 몰아치니 이상하게 곡의 분위기가 잘 맞아 떨어졌다.

영국 감성을 듬뿍 넣어 만든 음원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도 있었다.

한참 음악을 듣던 감독님이 질문하신다.

“뮤직 비디오는 없나?”

“네. 일정이 짧았고... 차트 입성이나 그런 걸 노리고 만든 것도 아니라서요.”

“흠....”

그때 감독님이 예기치 못한 제안을 해주셨다.

“그러면 내가 한 번 만들어볼까?”

“네?”

“좋아. 오늘 가서 준비하면 내일 바로 촬영 시작해서 마무리할 수 있을 거야.”

“아, 아니... 잠깐만요.”

나는 당혹감을 추스르고 다시 제대로 확인했다.

“감독님이 정말 제 곡의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주실 거예요?”

“왜, 싫으냐?”

그럴 리가!

세계적인 명장이 직접 만들어 준다는데 무릎 꿇고 감읍할 일이지!

“아니요! 좋아요! 굉장히 좋은데... 감독님 원래 이런 거 잘 안하시잖아요. 그래서 당황스러워서 물어본 거예요.”

단순히 영화만 잘 만드는 게 아니라, 영상미 뽑아내는 솜씨 역시 예술의 경지에 이른 분이다. 내가 알기로 세계적인 뮤지션들로부터 많은 제안을 받았는데 모두 거절하셨다고 들었다.

자신은 영화감독이지 뮤직 비디오 감독이 아니라는 이유로.

딱히 뮤직 비디오를 무시해서 그런 게 아니라 본인이 제작중인 영화 외에 다른 작업은 전혀 흥미가 없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그랬던 분이 내 뮤직 비디오 제작을 자처했으니....

내가 놀란 포인트를 말씀드리니 감독님은 콧방귀를 뀌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신다.

“제자는 예외다.”

“.......”

깊은 감동이 밀려온다.

“그러면 오늘 내가 가서 준비할 테니 내일 아침에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걸로 하자. 배경은 노아를 위해 만들어 둔 배경을 쓰면 되겠군.”

@

도착하자마자 바로 PC앞에 앉았다.

한가롭게 샤워하고 잠이나 잘 때가 아니었다.

‘영어 버전을 만들자.’

감독님의 요구 사항이었다.

본인이 잘 알고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노래를 들어보고 싶다나?

심지어 미국식 말고 영국식 영어로 녹음을 부탁하셨다.

‘이 곡은 영국식 영어 버전으로 녹음하는 게 어울려. 내가 영국 노래를 좋아하기도 하고.’

정확히 말하면 감독님은 영국 문화에 깊게 심취하신 분이다.

아무튼.

‘좋은 기회지. 밤을 새서라도 해보자.’

사실 영국식 노래로 곡을 녹음해 본적은 없다.

하지만 래퍼런스를 잡고 섬세하게 디렉팅을 본다면 최소한 녹음 본만큼은 그럴 듯한 영국 노래처럼 완성할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지고 시작한 지 한 시간 만에 두 손 두 발을 들고 말았다.

역시 혼자의 힘만으로는 무리야!

그래서 고민하다가 다니엘에게 도움을 청했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어?”

[ 지금 갈게. ]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와준단다.

여행과 오랜 이동으로 고단할 텐데....

“민! 나 왔어!”

“나도 왔어!”

그런데 혼자가 아니라 샬럿을 데리고 왔다.

“샬럿에게는 연락 안 했는데...?”

“아, 난 필요 없으니까 돌아가라고?”

뾰족해지는 음성에 황급히 태세 전환!

“그게 아니라 예상치 못한 등장이 너무 기쁘다는 거지!”

“정말?”

“비 내리는 날씨에 남자 둘만 있으면 칙칙할 뻔 했는데 샬럿이 있으니 벌써부터 분위기가 화사해지는 것 같고 좋네! 아하하!”

싸늘하다.

샬럿은 나를 째려보며 한 마디 했다.

“하여튼 입만 열면 거짓말이 술술....”

이게 안 통하네.

난 슬쩍 다니엘을 찔러댔다.

“넌 왜 샬럿을 데리고 온 거야?”

“나중에 우리끼리만 있었다는 거 알면 분명 화낼 테니까.”

“.......”

“그리고 같이 있으면 즐겁잖아! 노아 파티는 언제나 셋이 함께 있어야 해. 감독님도 그렇게 말씀하셨고.”

항상 느끼지만, 다니엘은 외모만큼이나 성격도 순수한 녀석이었다.

난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시간이 부족하니 바로 작업하자.”

다니엘과 샬럿에게 부탁한 것은 발음 교정과 가사 수정이었다.

내가 영국식 영어를 못하는 건 아니었지만 발음 부분에서는 아직 배워야 할 게 많다고 생각했고 특히 보컬 녹음은 디테일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영국 태생이자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한 두 친구의 도움을 큰 도움이 되었다.

“드디어 완성했다!

보컬, 코러스... 모든 작업을 완성했다.

스피커 볼륨을 높여 처음부터 진지하게 음악을 감상해 본다.

“와, 이러니까 정말 영국 가수가 부른 노래 같아!”“미국식 영어로 노래 불렀을 때하고 느낌이 또 달라졌어.”

영국에는 표준어라는 개념은 없지만 대체로 공영 방송 같은 곳에는 용인 발음을 구사한다. 외부에서 섹시하고 멋있는 영국식 영어라면 보통 이것을 꼽는 경우가 많고 나 역시 용인 발음을 배우긴 했다.

하지만 이번 노래는 코크니를 섞은 에스추리 영어를 기준으로 녹음했다.

내가 영국 금수저 출신도 아니고, 대중적인 접근성이 떨어지는 소수의 귀족 영어를 사용할 필요가 없었다.

용인, 코크니, 이 두 가지를 섞은 에스추리.

영국 영어를 배우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내 입장에서는 아직은 혼란스럽고 어렵기만 하다.

그래서 애들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인데 탁월한 선택이 되었다.

샬럿이 내게 말했다.

“이 노래, 에스추리 발음으로 녹음한 게 훨씬 좋은 것 같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런데 제목은 어떻게 할 거야?”

고민할 필요가 있나?

난 다니엘의 말에 대답했다.

“Hold My Hand.”

믹싱, 마스터링까지 마친 음원을 감독님께 보냈다.

즉각 전화가 걸려왔다.

[ 역시 내 생각이 맞았어. 이것으로 완벽한 브리티시 팝 음악이 되었군. 그런데 이 에스추리 식 발음과 가사는 누가 도와준 거지? 다니앨, 샬럿과 같이 있는 건가? ]

“정확히 보셨네요. 어떻게 알았어요?”

[ 내가 네 영어 실력을 뻔히 알고 있으니까. 그리고 이 시간에 불러서 도움 받을 사람이라면 그 두 사람 밖에 없지. ]

옆에 있던 샬럿과 다니엘이 탄성을 터트린다.

[ 좋아. 그러면 이 노래를 기반으로 간단하게라도 콘티를 짜봐야겠군. 내일 아침 일찍 스튜디오로 와. ]

끊기 전 급히 덧붙이셨다.

[ 두 사람하고 같이! ]

“.......?”

@

다음 날도 무수히 많은 비가 쏟아졌다.

하지만 다니엘과 샬럿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활짝 피었다.

“기대된다! 내 첫 영상 출연이 민이 뮤직 비디오라니...!”

“나도!”

어? 그러고 보니 그렇게 되는 건가?

첫 영화인 노아 촬영은 내일부터니까....

그런데 날씨도 엉망진창이고, 예기치 않은 일정이 생긴데다가 계약이고 뭐고 아무것도 없는 상황인데도 표정이 참 밝다.

머릿속에 친구 도와준다는 생각만이 가득하기 때문이리라.

기특한 녀석들....

보수는 내가 잘 챙겨줘야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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