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화. 동쪽에서 불어온 바람 >
노아와 이드라실은 세계수의 신탁을 받고 대마법사 아롤을 찾아 나섰다.
여럿 종족의 나라들이 모여 결성한 왕국 연합. 그 심장부인 수도에 위치한 인재 육성의 산실, 켈라드리온 아카데미가 목적지였다. 대마법사 아롤은 바로 그곳의 설립자이며 학교장이기 때문이었다.
왕국연합 수도에 도달하기 까지 두 사람은 많은 일을 경험한다.
일단 두 사람은 세상 물정을 전혀 몰랐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신중한 노아에 비해 이드라실이 사고뭉치였다. 호기심이 너무나 많았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드라실만 사고를 전담했느냐 하면 그것은 아니었다. 엘로아 대륙은 불의가 만연한 무법지대였다. 그리고 노아는 신중하고 소심하지만 딱 하나, 불의는 절대 그냥 못 지나치는 성격이었다.
번갈아가며 사고를 치고, 여러 사건에 휘말린 끝에 힘들게 켈라드리온 아카데미에 도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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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지금 심각한 고민에 휩싸여 있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
샬럿의 크고 맑은 푸른색 눈동자가 나를 담고 있었다. 그 옆에는 다니엘이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눈과 귀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난 진지하게 대답했다.
“일단 지금까지의 여정만으로 보면 이드라실이 너무 발암 캐릭터인 것 같아서....”
“발엄 캐릭터?”
“그게 뭐야?”
의아해하는 두 녀석에게 발암 캐릭터가 무엇인지 설명해줬다.
“암을 유발할 정도로 답답하고 짜증나는 캐릭터라는 소리야.”
“아하.”
“으하하하!”
샬럿은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다니엘은 먹다가 웃음을 터트린다. 이물질이 폭탄처럼 터져 나왔지만 본인은 개의치 않는다. 샬럿이 찡그린 얼굴로 한 마디 했다.
“애도 아니고 정말....”
“미안. 그런데 너무 웃겨서....”
난 여전히 진지했다.
“각오는 했지만 막상 촬영을 시작하니 생각보다 더한 것 같아서 조금 고민이네.”
샬럿이 고개를 갸웃한다.
“그런가? 난 귀엽고 순박해서 좋던데.”
“그건 네가 민이를 좋아하니까 하는 짓이 다 예뻐 보여서 그런 거 아닐까?”
“.......!”
허를 찌르는 다니엘의 말에 샬럿의 새하얀 얼굴이 빨개진다.
“누, 누, 누가!? 내가 왜 민이를 좋아해?!”
“아니야?”
“아니야! 이상한 소리 하지마!”
다니엘을 구박하며 내 눈치를 보는 샬럿.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행동만 보면 영락없는 사고뭉치라서 다양한 매력으로 어떻게든 중화시키려고 노력중이야.”
“내, 내가 말하고 싶은 게 바로 그거였어.”
샬럿은 헛기침으로 민망함을 가린 뒤 애써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나갔다.
“두 사람의 행동만 놓고 보면 사고뭉치가 따로 없지만 캐릭터 상황을 놓고 보면 그게 당연하잖아. 그리고 어쨌든 그렇게 사고를 쳐서 피해를 입히고 끝나는 게 아니라 도움이 되는 일을 많이 하니까 용서가 되지.”
“그런가?”
고개를 갸웃한다.
현재까지의 진행 사항은 원작 소설, 그리고 이전 삶에서 봤던 영화 전개와 상당히 다르다.
이드라실 비중이 주연급으로 격상된 것은 둘째 치고, 낯선 세계를 여행하는 두 소년의 사고뭉치 모험기에 초점이 많이 맞춰져 있었다.
그래서 지금 감히 잘 안 잡히는 거다.
이대로 좋은 건지, 이게 정말 재미있는 게 맞는 건지.
난 투덜거렸다.
“창작자 입장이 되면 이게 문제야. 작품에 대한 객관성이 떨어진다니까.”
“그러니까 스스로 판단하지 말고 나하고 감독님을 믿으라니까? 지금 굉장히 잘하고 있어! 나도 끼고 싶을 정도로 재미있단 말이야!”
그렇게 대화하는데 감독님이 다가와 내게 말씀하신다.
“민.”
“네?”
“너 아무래도 BBC The One Show에 출연해야 할 것 같다.”
“........?”
그건 이미 안 하기로 하지 않았나?
왜 이제 와서 다시 그런 말을...?
그런데 감독님이 두 명에게도 말했다.
“너희도 같이 출연하는 거다.”
“와우!”
“우, 우리도요?”
다니엘은 듣자마자 함성을, 샬럿은 깜짝 놀라 말을 더듬는다.
“The One Show 측에서 방송 컨셉을 바꿨어. 김민 특집이 아니라 영화 ‘노아’ 특집으로.”
“아....”
순간 나와 샬럿이 시선을 마주치고 의견을 교환했다.
“제작진이 머리 잘 썼네.”
“그렇게 하면 촬영을 핑계로 거절하기도 어렵지. 어쨌든 노아를 홍보할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잖아. 이런 말 미안하지만 너 혼자 출연하는 것보다 화제성도 더 클 테고.”
“미안할 거 없어. 그게 팩트니까.”
난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물었다.
“혹시 감독님도 출연하시나요?”
“그럴 예정이다. 아무래도 나한테도 듣고 싶은 이야기가 많은 모양이야.”
그렇다면 망설일 필요 없지.
“할게요.”
“괜찮겠어?”
“뭐, 기껏 만들어 놓은 생활 패턴이 깨지는 건 달갑지 않지만... 본 촬영은 한 시간이잖아요. 생방송으로. 그 전까지 우리끼리 대기실에서 연습이라고 하고 있으면 어떻게든 몰입 감을 유지할 수 있겟죠.”
영화를 대대적으로 홍보할 기회도 주겠다니, 이 정도면 거절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의문점이 있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해서 절 방송에 내보내려는 이유가 뭐예요? 제가 대체 뭐라고?”
감독님은 대답 대신, 노아 단체 채팅 방에 기사 링크 하나를 업로드 하신다. 여기저기서 휴대폰 확인하는 광경이 보인다. 우리 역시 내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 순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Official Singles Chart Top 100
3. Hold My Hand – Min
쉽게 말해 내 노래가 UK 메인 차트 3위까지 치고 올라갔다는 뜻이다.
다니엘이 환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거 봐! 우리가 성공할 거라고 했잖아! 하하하! 축하해!”
“정말 축하해! 잘 됐다!”
기뻐하는 다니엘. 샬럿은 눈시울이 붉어져 있었다. 꽤나 감동한 모양이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자, 여러분! 우리 이드라실 배우님께서 UK 싱글 차트 3위에 올랐습니다!”
“모두 축하해줍시다!
배우, 스텝들이 몰려와 축하를 해주는 게 아닌가.
이러한 반응에 나 역시 울컥했다.
“가, 감사합니다!”
그날 열린 소소한 축하 파티는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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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민. UK 차트 3위! ]
[ 영국을 뒤흔드는 한국의 천재 소년! ]
김민의 성적에 누구보다 크게 반응한 것은 바로 한국이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와 뉴스 기사 랭크란이 모두 UK 차트 3위 소식으로 뒤덮였다. 기사 댓글과 각종 커뮤니티 사이트 게시판도 온통 김민에 대한 이야기뿐이었다.
[ 김민 진짜 대단하네. 딱히 활동도 안 했는데 오피셜 싱글 차트 3위... 진짜 미쳤네.;; ]
┗ 잘하면 1위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 그건 또 이야기가 다름. 왜냐면 지금 1,2위 차지하고 있는 노래들이 워낙 세서....
여기에 영화 ‘노아’팀의 The One Show 출연 확정 소식이 전해졌다.
[ 크리스토퍼 잭슨, 다니엘 레드몬드, 샬럿 왓슨, 그리고 김민까지! 노아 파티, BBC 인기 토크쇼 The One Show 전격 출연 결정! ]
[ 노아 파티 결성 과정과 UK 싱글 차트 3위 위업을 달성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공개할 예정! ]
끊어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국의 천재 소년이 할리우드 대작 영화, 노아의 주연이 된 것도 모자라 빌보드와 함께 양대 차트로 꼽히는 오피셜 싱글 차트 3위의 위업을 달성하지 않았나?
작곡가로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기록했을 때하고는 분위기가 사뭇 달랐다. 본인이 가수로서 이름을 올린 것이기 때문이었다.
[ The One Show 어떻게 시청하는지 아시는 분? ]
자연히 해당 특집 방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다양한 시청 방법이 공유된다.
그리고 또 다른 겹경사가 겹쳤다.
[ Hold My Hand. 빌보드 싱글 차트 78위 진입! ]
미국 차트에서도 반응이 오기 시작한 것이다.
하위권이긴 하지만 어쨌든 한국인 뮤지션이 양대 메인 차트에 동시에 이름을 올렸다는 사실은 굉장히 의미심장했다.
한국의 천재 소년이 영국과 미국에서 선전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웃나라까지 퍼져 나갔다.
[ 근래에 KPOP의 상승세가 정말 범상치 않다고 생각했었어. 내 주변에서도 요즘은 JPOP보다 KPOP을 더 많이 듣는 사람들이 많아졌거든. ]
┗ 내 주위에도 KPOP 듣는 사람이 많아졌어. 특히 요즘은 엔 플라워 인기가 심상치 않더라고. 그런데 김민이라는 이름은 처음 들어봐.
┗ 바로 그 엔 플라워 프로듀서야.
┗ 정말?!
┗ 그리고 맨해튼 드리밍과 Don’t Touch Me!를 만들기도 했지.
┗ 다 아는 노래들인데... 엄청 유명한 곡들이잖아?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정말 혼자서 그걸 다 만들었다고?!
┗ 그러니까 천재 소년이라고 하는 거잖아.
김민의 이름이 처음으로 아시아 시장에 깊숙이 각인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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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가 BBC야!”
“세상에 맙소사.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길 줄은 몰랐어!”
샬럿과 다니엘만큼이나 나도 긴장하고 있었다.
BBC (British Broadcasting Corporation)
세계 최초!
그리고 영국 최대의 공영 방송사!
이곳은 공정성, 공영성이 유별날 정도로 강한 곳으로 유명한데, 어느 정도냐면 상업화가 굉장히 까다로워서 광고가 없을 정도였다. 그래서 주 수익원은 시청료와 프로그램 판매뿐이다.
이래저래 굉장히 유명한 곳이고 의미 깊은 장소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니 떨리는 건 당연하다.
그리고 그것은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 역시 마찬가지.
“........”
이 양반 완전히 얼어붙었다.
애들은 잔뜩 들떠 있었고 감독님은 긴장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고.
이렇게 되면 나라도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그리고 사실 이 중에서 방송 출연이 가장 익숙한 사람이 나였다.
이른 아침에 다 꾸미고 왔기에 대기실에서 마땅히 할 게 없었다. 스텝, 호스트들과 인사를 하는 것도 아주 잠깐 뿐이었다.
나는 손뼉을 치며 말했다.
“자, 남은 시간 동안 대본 연습이나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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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말하지만 대기 시간은 정말 길다.
나는 그 시간을 헛되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연기자로서 우리 세 사람이 가야 할 길은 아직도 아득히 멀다. 이제 첫발을 내딛은 셈이니 거리를 재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였다. 생각 같은 것을 하지 말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한다.
“.......!”
“.......!”
“.......!”
이게 우리 셋의 장점이다.
내가 런던에 온 순간부터 항상 함께였고, 그래서 어떤 장소, 어느 때라도 연기에 몰입할 수 있거든.
단 여기서 문제는 셋이 함께여야만 그 집중력이 발휘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바로 혼자 출연하는 것은 고사했지만, 함께 출연하는 것은 승낙한 이유이기도 했다.
셋이 함께 있으면 연습이든 대화든, 무엇을 통해서건 노아 파티로서의 몰입감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감독님 역시 우리의 연습을 주관해주시며 긴장이 서서히 풀리는 모양이다.
“잠깐, 다니엘, 지금 그 대사는....”
덕분에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다.
방송 시간이 가까워지며 방송국 전체에 묘한 긴장감이 퍼져 나갔다. 조용하던 대기실 바깥이 굉장히 어수선해졌기에 우리 역시 연습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
“슬슬 생방송이 시작될 때군요.”
그 말인즉, 우리 출연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는 소리다.
잠시 후, 우리는 생방송에 출연한다.
그것도 BBC 최고 인기 프로그램 중 하나에.
문이 열리며 스텝 한 명이 모습을 드러낸다.
“저 따라오세요.”
마침내 눈에 익숙한 스튜디오가 펼쳐진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토크쇼 중 하나.
생방송 The One Show의 세트장과 메인 스텝, 호스트들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
형용할 수 없는 긴장감에 침을 꿀꺽 삼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