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0화. 촬영 종료 >
‘슬슬....’
‘식사 시간이...?’
점심시간이 가까워지며 촬영 스텝, 배우들의 시선이 한편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본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먹을 것을 그렇게 챙겼다고....’
촬영 현장.
특히 로케이션 촬영 때의 식사는 최대한 간단하게 끝내는 게 대부분이다. 일일이 차려 먹는 게 보통 까다로운 일이 아니었기에.
그런데 의미에서 노아 촬영은 여러모로 특별한 경험이었다.
‘그것참.’
감독은 저도 모르게 입맛을 다셨다.
아까부터 맛있는 냄새가 촬영장 전체를 장악하고 있었던 것이다.
활짝 열린 이동식 밥차!
그것이 바로 모두를 현혹시키고 있는 주인공이었다.
조리복을 착용한 세 명의 남녀가 트럭을 주방으로 삼아 바쁘게 다양한 음식을 조리하고 있었다.
‘다 된 것 같은데....’
고민하던 잭슨 감독은 에라 모르겠다며 큰 소리로 외쳤다.
“밥 먹고 합시다!”
“와아아!”
함성과 함께 사람들이 우르르 밥 차로 몰려갔다.
잭슨 감독 역시 그 중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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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차 주문하기를 참 잘했다.
“이게 김밥이라는 건데 민이 나라에서 자주 먹는 음식이래.”
“오늘 돈까스가 참 두툼하군. 일본식인가?”
입맛에 맞는 요리를 접시에 듬뿍 담아 맛있게 대화하며 먹는 사람들을 보고 나는 뿌듯하게 웃었다.
‘잘 먹어야 일할 기운이 나는 거지.’
어느 나라나 촬영 현장 스텝들에 대한 대우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더라.
잭슨 스튜디오는 조금 나은 편이지만 큰 차이는 없었다.
대체 이거 먹고 뭐 어떻게 일하나.
일할 의욕이 뚝 떨어지겠다 싶어서 내가 나서기로 했다. 그리고 그 결과가 바로 이것이다.
식사를 마친 나는 밥차로 다가가 한국인 조리사들에게 말했다.
“오늘 음식도 반응이 굉장히 좋은데요?”
“우리도 지켜보면서 안도하고 있습니다.”
세 명의 조리사 중 주름진 얼굴의 사장님이 방긋 웃으신다.
원래 이 분은 이동식 밥차를 운영하던 분이 아니었다.
런던에 큰 한식당을 하시면서 주말마다 노인, 노숙자들을 위해 무료 밥차를 운영하시던 분이었는데 내가 이 분께 밥차 운영을 부탁드린 것이다.
비용이 적잖았지만 충분히 감동하고도 남는 비용이었다. 내가 돈을 못 버는 것도 아니고.
그런데 이언 코너 경을 비롯한 배우들이 이 사실을 알고 비용을 분담하자고 제안해주시더라. 그래서 지금은 우리 배우들이 촬영 현장을 위한 밥차 운영비용을 함께 부담하고 있는 상황이다.
감독님은 차라리 제작비에서 빼겠다고 하셨지만 다들 귓등으로 듣지 않았다.
현장에서 고생하는 모든 스텝들을 위한 선물이었기 때문에.
“앞으로도 잘 부탁드려요.”
이번에는 우리 세 사람을 위한 전용 트레일러로 가서 블루투스 스피커 여러 세트를 가져온다.
현장에 배치하고 있으려니 이목이 쏟아지는 게 느껴진다. 식사하시던 촬영 감독님이 물으신다.
“민! 지금 뭐하는 거야?”
“식사에 음악이 빠지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준비했다.
천재의 음악방송... 이 아니라 김민의 음악 방송!
현장 사람들과 친해지면서 그들의 취향도 어느 정도는 알게 됐다.
고생하는 스텝들을 위한 소소한 서비스 타임!
첫 곡은 최근 영국을 비롯하여, 유럽 전역에서 주가가 굉장히 높은 여성 보컬, 레이첼의 음악이었다.
“식사에 음악이 빠지면 섭섭하죠? 그래서 준비했습니다. 김민의 음악 방송. 편하게 즐겨주세요.”
말이 음악방송이지, 그냥 때와 장소에 맞춰 선곡한 음악을 틀어 놓는 게 전부였다. 그래도 나름 뮤지션인지라 청취 환경에 신경 쓴다고 음질 좋은 블루투스 스피커를 구매했다.
그래도 효과가 눈에 보인다.
리듬에 맞춰서 몸을 흔드는 사람도 있고 갑자기 노래를 열창해서 눈길을 끄는 사람도 있다.
식사 시간에 말이다.
그래도 과하게 튀는 사람 없이 적당히 즐겨 주니 신경 쓴 보람이 느껴진다.
그리고 사람들 먹으라고 젤리, 초콜릿, 캔디, 음료수 같은 간식도 잔뜩 챙겨 놨다.
사실 이런 거 해봐야 돈도 얼마 안 든다.
그런데 가성비가 굉장히 좋으니 아, 이래서 이름 있는 대기업이 직원 복지에 공들이는 구나. 생각이 든다.
아무 생각 없이 순수한 다니엘은 마냥 상황을 즐길 뿐이지만, 머리 좋은 샬럿은 반응이 다르다.
그녀는 진지하게 날 붙잡고 물었다.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뭐야? 넌 감독도, 제작자도 아니잖아."
얘가 아직 어려서 복지의 힘을 잘 모른다.
"사람들의 표정을 쭉 살펴 봐."
고개를 두리번거리는 샬럿.
"표정이 좋지?"
"... 그런 것 같아."
"별로 힘든 일도 아니고 나에게 있어서는 큰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니야. 이렇게 해서 나란 사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고, 또 촬영 분위기를 돋워서 조금이라도 멋진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투자에 성공한 셈이지."
"아...."
"그리고 이건 우리들을 위한 것이기도 해. 어쨌든 너희들도 날마다 공들여 만든 좋은 밥과 맛있는 간식을 언제든 먹을 수 있으니 기분 좋잖아. 안 그래?"
"그야...."
"확실히 그래!"
다니엘이 불쑥 튀어나온다.
"음식도 맛있고 특히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젤리와 초콜릿이 종류별로 잔뜩 있어서 굉장히 좋아! 촬영장에 오는 게 기대될 정도니까!"
난 어깨를 으쓱거렸다.
"봐. 얼마나 효과가 좋아?"
"음."
"이제 사기가 한껏 오른 다니엘이 골든 글로브 남우주연상 급의 연기를 보여줄 거야! 안 그래?"
"......."
슬그머니 자리를 피하는 다니엘.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런 투자는 반드시 나에게 돌아오게 되어 있어. 그게 아니라도 즐겁게 일할 수 있다면 모두가 좋잖아."
샬럿은 아직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래. 사실 이런 걸 설명으로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
결국 이 모든 것은 나 자신을 위한 투자였다.
좋은 환경에서 조금이라도 더 즐겁게 일하고 싶은 욕망.
난 미소 지으며 말했다.
"조금 더 성장하면 내 말을 이해하게 될 날이 올 거다."
샬럿은 뚱한 얼굴로 반박했다.
"우리 동갑이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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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샬럿에게 말하지 않은 또 한 가지 이유가 있었다.
직원들의 업무 환경에 이렇게까지 신경 쓰는 또 다른 이유!
‘이 영화가 끝나면 1980 브로드웨이를 제작자 입장에서 촬영 진행하게 된다는 거지.’
디즈니가 투자 배급을 하고 우리 작품 분위기와 맞는 감독님이 고용되어 작업을 진행하겠지만, 나는 주연 배우이자 원작자, 그리고 음악 감독으로서 작품 제작에 적극 참여하게 된다.
바로 그것 때문에 현장을 미리 공부하고 있는 것이라 보면 된다.
실제로 내가 여러 제작진에게 먼저 다가가서 말을 걸고, 대화를 하며 일을 돕는 근본적 이유이기도 하다. 그냥 잡담을 하려는 게 아니고, 그들이 하는 일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깊게 파고 들어가 보려는 나름의 노력이 숨어 있다.
물론.
“넌 지금 배우야. 자꾸 쓸데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지 말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해!”
의도를 눈치 챈 감독님으로부터 이런 타박을 듣긴 하지만 말이다.
이 말이 냉정하게 들리겠지만....
“스텝들을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나한테 와서 물어 봐.”
실은 이 말을 위한 빌드업이었다.
역시, 안 그런 척 해도 따뜻한 분이라니까.
아무튼 이렇게 판을 깔아주시니 특별히 할 일이 없으면 열심히 따라다니며 이것저것 배웠다.
연기를 하는 것도 그렇지만 만드는 과정 역시 내게는 아직 생소한 것투성이다.
내 전문 분야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때로는 아무리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부분도 참 많았다. 그래도 최소한의 개념 정도는 이해해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까지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내가 굉장한 영화광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어려서부터 영화 창작자들을 동경해왔다.
심지어 내가 사랑하고 마지않는 ‘노아’의 촬영장이 아닌가?
어렵고 이해하기 힘든 부분조차도 내게는 덕질의 영역이었다.
새로운 것을 알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이 모든 순간이 너무나도 즐겁고 소중하다.
지금 이 모든 순간이 꿈이라면 깨지 않고 싶다.
하지만 그 소중한 시간에 점점 끝이 보이고 있었다.
노아 1편의 마지막 촬영이 가까워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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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소년이었던 노아는 모험을 통해 스스로도 몰랐던 신비한 재능을 깨우치고 있었다.
정령과 소통하며 그들의 힘을 빌리고, 본능적으로 놀라운 몸놀림을 보여주며 무기를 잘 다룬다.
이드라실은 세계수의 축복이 잠재된 혈통의 재능을 하나씩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라 말한다.
한 마디로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재능이라는 것이다.
실리아와 바로스.
모험을 통해 조사한 바에 의하면 두 사람은 어둠의 신 ‘아몬’을 추종하며 그들에게 세상을 바치고자하는 광신 집단, 암흑 성국으로부터 왕국 연합을 구해낸 영웅이다.
실리아는 정령술사.
바로스는 드래곤 라이더.
그런데 이 영웅적인 부부는 15년 전, 불행을 맞이했다.
바로스는 의문사를 당했다.
실리아는 아기와 함께 행방불명되었다.
연합 차원에서 이 사실을 조사했지만 알아낸 것은 없었다.
추가로.
현재까지 왕국 연합과 암흑 성국을 비롯한 수많은 집단이 엄청난 상금을 걸고 실리아와 아기의 행방을 찾고 있는 상황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마침내 노아와 이드라실은 왕국 연합 켈드리온 아카데미에 도착했고 대마법사 아롤과 만나게 된다. 아롤은 마법으로 노아의 정체와, 세계수의 축복을 확인하고 눈물까지 흘리며 기뻐한다.
노아의 부모는 바로 아롤의 제자였던 것이다.
아롤은 현재 대륙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음을 알려준다.
이 세상을 악신 아몬에게 바치려는 암흑 성국이 전쟁을 일으키고 있었고, 왕국 연합도 큰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만약 노아의 생존 사실이 알려지면 대륙 전역에 큰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드래곤의 축복을 받은 인간 바로스.
세계수의 축복을 받은 요정 실리아.
영웅 부부의 혈통과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기적의 아이였기에.
암흑 성국은 장래에 큰 위협이 될 것이 분명한 노아를 죽이거나 생포해서 아몬을 위한 제물로 삼으려 할 것이고 왕국 연합은 입맛대로 부리려 들 것이다.
아롤은 노아에게 말한다.
스스로를 지키고 의지를 관철할 수 있을 때까지, 아카데미 학생으로서 정체를 숨기고 역량을 키우라고.
노아는 이를 받아들인다.
켈드리온 아카데미에 입학한 노아와 이드라실은 샬럿이라는 친구를 얻게 되고, 아카데미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함께 성장한다.
노아는 최대한 조심했지만, 그런 노아의 정체를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
레이든.
아카데미의 교수이자 바로스의 경쟁자였고 실리아를 짝사랑했던 남자.
자신이 증오하고 사랑하는 얼굴이 노아의 얼굴에 동시에 비춰지니 모를 수가 없었다.
레이든은 암흑 성국의 간자였다.
같은 처지의 몇 명이 교수와 교직원으로 위장하고 있는 상황.
본래라면 암흑 성국에 존재를 알려야했고 바로스를 생각하면 그렇게 하고 싶었다.
하지만 실리아를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다.
고민이 깊어지던 시기, 노아의 정체를 결국 다른 간자들이 눈치 챘다. 그리고 납치를 제안한다. 위대한 신 아몬을 위한 제물로 바치자는 것이다.
그 순간 레이든은 갈등을 끝냈다.
실리아의 아들인 노아를 지키기로 한 것이다.
납치를 제안한 동료 간자들을 모두 죽여서 입막음을 시도 하지만 실패.
한 명이 살아남아 도망쳐 버렸다.
곧, 마수를 부리고 금기의 힘을 사용하는 암흑 성국의 군대가 켈드리온 아카데미를 급습한다.
처절한 전쟁이 펼쳐졌다.
간신히 방어에 성공하긴 했지만 피해가 컸다.
또한 이 사건으로 노아의 존재가 드러나서 왕국 연합이 신변인도를 요구하는 상황.
아카데미 내부에서 노아에 대한 여론이 크게 안 좋은 상황이었다. 노아 때문에 전쟁이 일어났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또한 바로스의 의문사를 생각하면 연합 측에 보낼 수도 없었다.
아롤은 고민 끝에 노아를 바로스의 파트너였고 축복을 베풀어준 드래곤, ‘카르아스’의 레어로 보내기로 한다.
그에게 몸을 의탁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바로 실리아의 행방을 알고 있는 유일한 존재다.
노아, 이드라실, 샬럿.
이른바 노아 파티는 새로운 여정을 떠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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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하셨습니다!”
“모두 고생 많으셨어요!”
마침내 노아 1편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모든 제작진과 배우들이 한 자리에 모여 축하 파티를 벌였다.
파하고 돌아오는 길.
샬럿은 그제야 애써 감추던 불안감을 꺼냈다.
“우리 후속작 촬영할 수 있을까?”
차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이 순간만큼은 더할 나위 없이 긍정적인 다니엘조차도 확답을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도 마찬 가지.
왜냐면 이전 삶과 비교해 너무나도 많은 것이 바뀌었기 때문에 흥행을 장담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은 결과가 나와야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처음으로 기도했다.
부디 노아 1편이 크게 성공하기를.
그래서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후속 시리즈를 촬영할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