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2화. 창작의 고통에 신음하다 >
빌보드 차트에서 는 UK차트 때와 다르게 큰 폭발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37위가 어디야?’
충분히 만족하고도 남을 성적이었다.
‘오피셜 뮤직 비디오도 2억 뷰를 돌파해서 3억 뷰로 가고 있는 중이고....’
폭발력과는 별개로, 여기저기서 많이 불리고 있다는 모양이다. 결혼식 등 섭외 요청도 무수히 많고.
‘몇 개는 수락해야지. 해야 할 일을 핑계로 이 좋은 기회를 그냥 날려버릴 수는 없어.’
자신에게 뿐만 아니라 JJ 엔터테인먼트에게 있어서도 분명 좋은 기회였다. 자사의 아티스트가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으며 활동 범위를 넓혀가는 것은 분명한 이익이었다. 이런 이유로 장진영과 이정연 팀장이 미국으로 건너와 당분간 동행할 예정이다.
‘다음 주부터 바빠질 테니, 이번 주 안에 에버가든 후속곡 작업을 끝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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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갓 데뷔한 에버가든의 파괴력이 심상치 않았다.
[ 요즘 에버가든이 굉장히 눈에 띄더라. 이 그룹 크게 성공할 듯.... ]
┗ 근래에 제일 눈에 들어오는 그룹임. 특히 주세아의 비주얼은 정말....
실력, 비주얼, 스타성.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이로 인해 에버가든의 팬덤 ‘시크릿가든’은 그 세력이 무서울 정도로 확장하는 상황이다.
‘시크릿 가든이라.’
나는 그 단어에 주목했다.
묘한 울림과 영감을 선사하는 단어였다.
미국 유명 소설.
노르웨이 음악 그룹.
S본부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제목.
단어에서 연상되는 대표적인 이미지를 대략 이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찾아보면 이를 주제로 문화 콘텐츠가 무수히 많다.
그만큼 매력적인 울림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시크릿 가든이라는 단어가.
‘이걸 주제로 곡을 만들어보자.’
소녀들은 누구나 자신만의 공간을 가지고 있다.
사람에 따라 이 공간을 칭하거나, 이미지화하는 방법이 다르지만 보통은 정원, 화원으로 포장하는 경우가 많다.
굉장히 순수하면서도 호기심을 자아내지 않나?
과연 소녀들의 순수하고 아름다운 정원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걸까?
‘주세아라면... 태권도의 고수, 격파의 달인?’
이런 뜬금없는 것보다는 통상적인 주제를 재활용하는 것이 훨씬 자연스럽고 좋을 것 같다.
에버가든을 웃긴 면모가 가득한 반전 그룹을 만들려는 게 아니라 명품 그룹으로 만들려고 하는 거니까.
그 정원은 아마도 보라색, 핑크색 계통의... 보는 것만으로도 화사하고 신비스러운 느낌이 가득한 색상의 꽃이 가득할 것 같다.
그렇다면 메이저 스케일보다는 역시 마이너스케일로 코드를 구성하고, 근래에 본격적으로 유행을 타기 시작한 트랩 힙합 비트로 미니멀하면서도 세련되게 구성하면 좋겠다.
“비트 완성... 은 아니고. 잠깐만. 킥 비트에 어택 감을 잔뜩 줘볼까?”
인트로부터 강렬한 킥 비트로 이목을 확 잡아 끌고 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안무, 보컬, 랩도 이 첫 부분의 강렬한 킥 드럼을 위주로 구성되는 거지!
무려 반나절 동안 비트와 씨름하고서야 겨우 만족스러운 결과물을 만들 수 있었다.
원래 모든 곡은 드럼 세션이 중요한 법!
어쨌든 좋은 비트를 완성했으니 코드 구성에 따라 퍼커션과 화음 악기를 얹으면 될 것 같다.
처음에는 스트링 연주를 이용해 화려한 선율감을 입히고자 했다. 그런데 강렬한 비트와 도무지 어울리지를 않더라.
스트링을 빼고 피아노만 활용하려고 하니 뭔가 아쉽고.
그래서 원래 의도했던 선율감은 과감하게 포기!
미니멀하면서도 강렬한 비트를 최대한 부각시키는 구성으로 가기로 했다.
‘신스 리드 악기를 하나 만들어서 그것만 사용해볼까?’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동안 바깥을 살피니 어두웠던 하늘이 다시 밝아오고 있었다.
꼬박 하루를 센 것이다.
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역시 곡 만드는 게 쉽지 않아.’
현대의 팝 음악은 아이디어 싸움이다.
아무리 구성이 훌륭해도 아이디어가 부족하면 흐름에 뒤떨어져 보인다.
그 어떤 천재라도 충분한 고민과 실험, 반복되는 실패를 거듭해야 그럴싸한 곡 하나를 만들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은 이 악기를 어떤 식으로 활용했는지도 참고해보고, 좋은데 익숙하다? 그러면 스스로 표절을 의심하며 자료 조사도 해봐야하고....
그래.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창작은 특히 더 그렇다.
‘이게 참 지긋지긋한데... 나쁘지 않네.’
조금 쉬다 보니 배가 고프다.
하루를 굶은 것이다.
심지어 물도 한 모금 안 마셨다.
뭐라도 먹을까?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젓고 다시 pc 앞에 앉는다.
지금 포만감이 생기면 집중력과 흐름이 끊어질 것이다.
조금만 더 집중하면 뭔가 나올 것 같은데...!
이 순간이 창작자에게는 무척 소중하고 중요한 순간이다.
그 어떤 것보다도.
‘조금만 더... 조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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깜빡 졸았다.
... 라고 생각했는데 휴대폰을 보고 아차 싶었다.
무려 하루를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책상위에 엎드려 자버린 것이다.
이 정도면 기절이라고 봐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온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고 머리가 어지러웠다.
... 이러다 죽겠다.
마침 시간은 오후 한 시.
‘나가서... 뭐라고 먹자.’
답이 안 나온다.
조금만 더 하면 나올 것 같은데... 같으면서도 안 나오니 미칠 지경이었다.
이럴 때는 과감하게 털고 일어나서 분위기 전환을 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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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툼한 랍스터 샌드위치와 멕시코 콜라를 사서 센트럴 파크로 이동했다.
모처럼 내가 좋아하는 벤치에 앉아 단번에 먹어치우고, 그 자리에서 풍경과 스트리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감상하다가 슬슬 산책을 시작한다.
“.......”
음, 아무래도 오늘은 영감님께서 안 오실 것 같은 분위기인데?
사실 공원 분위기가 어수선해서 곡 구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아무래도 장소를 변경해야겠다.
마침 브루클린에 유명한 식물원이 있단다.
리뷰를 찾아보니 전시 컨셉도 다양하고 관리도 잘 되어서 평가가 후했다.
그래. 어쩌면 이곳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를지 모르잖아. 당장 가보자!
이후 나는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안간 힘을 쓰며 돌아다녔다.
브룩클린 식물원에 가보고, 꽃 박람회, 미술 전시회... 정말 온갖 곳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런데 딱히 뭔가 떠오르는 건 없더라.
아, 곡 진짜 안 나오네.
제목도, 컨셉도 다 나왔는데... 대체 뭐가 문제지?
사실 이게 당연하거다.
오히려 지금까지 대박 곡을 아무렇지 않게 써냈던 것이 이상한 일이었다. 정말 징그럽게도 운이 좋았던 거지.
대부분의 창작자들은 이 이상의 고통과 싸워가며 조금씩 목표를 향해 일보 전진한다.
문제는 이정표나 내비게이션 같은 게 없어서 내가 지금 제대로 가고 있는 건지 확신이 안 생긴다는 거지.
이전 삶에서는 이것 보다 더한 상황과 셀 수 없이 마주쳤었다. 올해는 그래도 좀 편하게 작업하나 싶었는데 역시나.....
자. 이럴 때 두 가지 방법이 있다.
될 때까지 파고드는 것.
일단 손을 털고 다른 일을 하고 있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그때 다시 이어가는 것.
나는 주로 전자의 방식을 선호했다.
이 업계가 여유나 부리고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곳이 아니기에.
이번에는 조금 다른 이유로 전자를 택해야 할 것 같다.
회사와 에버가든이 내 곡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니.
작업 좀 안 된다고 여유를 부리면 많은 이들이 줄 피해를 입게 되는 상황이다. 회사가 많은 배려를 해준 만큼, 나는 책임감 있는 행동을 해야 한다.
싸돌아다니던 것을 멈추고 집으로 복귀, PC 앞에 앉아 키보드와의 전쟁을 시작했다.
업계에 이런 금언이 있다.
작가가 힘들어할수록 독자는 즐거워한다.
그래. 어디 한 번 끝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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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은 불현듯 찾아온다.
아예 다른 컨셉으로 곡을 만들어볼까?
전생에 히트했던 곡의 컨셉을 조금만 빌려보면 어떨까?
이쯤 하면 됐다. 슬슬 다른 시도를...?
등등.
어쩔 때는 정말 거의 넘어갈 뻔 했었다.
그만큼 힘들고 답답했으니까.
하지만 난 기어코 버텨내는 중이었다.
흔들려도 다시 다잡고 작업을 이어갔다.
이유는 별 거 없었다.
[ 하려는 자는 방법을 찾고, 하지 않으려는 자는 변명을 찾는다. ]
언젠가 책에서 봤던 내 창작의 모토였다.
경험상, 과정이 힘들수록 극복했을 때의 결과물이 내 마음에 흡족한 경우가 많았다.
... 대박 났다는 건 아니고 그냥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드는 작업 물이었다는 뜻이다.
그러니까 힘들어도 고!
“.......”
해야 하는데 갑자기 기운이 급속도로 떨어진다.
뭐, 뭐지?
갑자기....
당황하던 나는 곧 그 이유를 깨달았다.
아, 맞다.
나 이틀 동안 또 먹지도, 자지도 못한 채 일만 했구나.
그러면 당연히....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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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로 광활한 화원이었다.
형형색색, 아름다운 꽃잎이 사방에 휘날리고 있었다.
걷다보니 익숙한 얼굴의 소녀들이 각기 다른 장소에 앉아 있었다.
바로 에버 가든 멤버들이었다.
‘뭐하는 걸까?’
모두들 우울하고 어두운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심지어 그 활발하고 씩씩한 반지희마저도.
너무나도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정원은 무릉도원에 버금갈 천국과 같은데 그 안에 있는 이들은 이렇게 어두우니....
제일 먼저 나를 발견한 반지희가 힘없이 입술을 달싹인다.
그 내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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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척에 깨어났다.
주위를 둘러보니 침실이었다.
난 침대 위에 누워 있었고.
닫혀 있는 문 너머 거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
[ 저 녀석 일어나면 혼 좀 내야겠어. 아무리 작업이 중요하다고 해도 제 몸은 돌보면서 해야 할 거 아니야? ]
대표님의 음성.
추가로 김치 찌개 냄새가 코를 자극하고 있었다.
절로 군침이 돈다.
문을 열었더니.
“이제 일어났네요.”
“하, 이 녀석 정말....”
앞치마를 입고 요리 중인 대표님과 집안을 치우고 있던 이정연 팀장님이 눈에 들어왔다.
“언제 오셨어요?”
“어제 도착....”
“야 인마. 집안 꼴이 이게 뭐야? 그리고 너 밥도 제대로 안 챙겨 먹고 작업만 했지? 아주 꼴이 엉망이더라!”
정연 팀장님의 말을 끊고 대표님이 버럭 소리친다.
“거기 앉아서 기다려. 밥 먹고 나한테 혼 좀 나자 너.”
“.......”
분명 위기 상황인데 가슴이 뭉클하다.
“잠깐 여기 앉아 봐요.”
정연 팀장님이 날 소파에 앉힌 뒤 이모저모를 살피며 묻는다.
“어디 잘못된 곳 없죠?”
“.......”
“아무리 전화해도 받지를 않지, 도착해 보니 키보드는 바닥에 떨어져 있고 책상 위에 엎드려 꼼짝도 안하고 있기에 큰일이라도 난 줄 알았어요.”
자다가 뒤척인 모양이다.
그보다는....
“.......”
날 향한 정연 팀장님의 얼굴이 무척 어두웠다.
마치 꿈속에서 본 에버가든 멤버들처럼.
그때 반지희는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 걸까?
“........”
아무래도 내가 처음부터 주제 설정을 좀 잘못했던 것 같다.
비밀 정원 – 소녀 - 짝사랑
이 공식을 굉장히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신비스러운 분위기를 최대한 연출해보자고 마이너 스케일을 활용해 어두운 분위기로 곡을 연출하려고 했다.
... 거기서 부조화가 발생해 버렸다.
소녀가 자신만의 공간 속에 깊숙이 숨기고 싶어하는 것을 어째서 짝사랑일 거라고 단정지어 버린 걸까?
분명 뜬금없는 주제는 아니었지만 너무 뻔하고 단조로웠다. 그러니까 계속 뻔한 노래만 나왔고, 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편곡으로 특별함을 부여하려다 보니 답이 안 나와서 헤매게 되었던 것 같다.
일단, 이 진부한 공식부터 깨드릴 필요가 있다.
“잠시 만요!”
난 즉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서 pc앞으로 달려갔다.
주제를 바꾸자.
[ 화려함 속에 숨겨진 어둠 ]
모두가 부러워하고 우러러 볼 만큼 멋진 사람이라도 내면에 말 못할 어둠을 한두 가지 이상은 감추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만의 공간 속에 스스로를 가두고 있는, 현실에서는 웃지만 실상은 병들어가는 상반된 모습을 표현해 보면 어떨까?
우아하고 섬세하며 무척이나 화사하고 밝은 스트링 선율.
파괴적이고 강압적인 킥 드럼 위에 얹어진 급박한 느낌의 트랩비트.
순식간에 편곡과 멜로디를 완성한 나는 피식 웃고 말았다.
답은 간단한 곳에 있었던 것이다.
언제나 그래왔듯이.
자, 이것으로 모든 준비가 갖춰졌다.
에버가든 멤버들의 어둠이 무엇인지,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고 가사로 담아내면 곡은 완성되는...데.
“.......?”
어쩐지 집안 분위기가 이상하다.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이 형용할 수 없는 복잡한 얼굴로 날 보고 있었다.
어어, 으음....
나 혹시 정신병자처럼 보였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