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43화 (143/205)

< 143화. 고생의 끝에 낙이... 오나? >

“일단 곡을 들어보고....”

“밥부터 먹자. 정연아. 개 데리고 와.”

“가시죠.”

예전부터 느꼈는데 우리 정연 팀장님은 천사 같은 마음씨와 비주얼을 지닌 분이 힘도 세고 손도 맵다.

내 팔을 붙잡고 식탁으로 질질 끌고 가는데 저항하지를 못하겠더라.

“밥 천천히 먹어. 체하면 안 되니까.”

눈을 시퍼렇게 뜨고 어서 먹으라는 듯 겁박을 하는 대표님.

조심스레 김치찌개를 한 수저 떠먹었다.

“어? 이것은 70년간 김치찌개만 끊였던 거장 김복순 할머니의...!?”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빨리 먹어.”

“넵.”

농담도 통할 때나 하는 거지.

난 눈치를 보며 식사를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 정말 맛있네.

식사를 마친 뒤 무려 삼십 분이 넘게 갈굼을 당해야 했다.

“너 그런 식으로 밥도 잘 안 챙겨 먹으면 앞으로 혼자 못 보내. 메니저만 한 세 명 정도 붙여버리는 수가 있어. 그걸 원해?”

“아, 아니요.”

“그렇게 되면 저도 가까이 붙어 지내면서 감시하게 될 텐데, 그러면 곤란하겠죠?”

정연 팀장님이...?

어, 그건 좋을 것 같은데....

그렇게 한참을 혼낸 뒤에야 이렇게 된 연유를 물으신다.

“대체 뭐가 어떻게 된 거야?”

그 질문을 기다렸지!

침을 튀겨가며 일주일간의 고행에 대해 열변을 토했다. 내가 이렇게 고생해서 음악을 만들었다는 것을 알아줬으면 해서.

그런데 두 분의 반응이 굉장히 묘하다.

“왜요?”

“아니, 너 같은 천재도 그런 고민을 하는구나 싶어서.”

“신기하네요. 민이 씨는 큰 고민 없이도 명곡을 척척 만드는 줄 알았거든요.”

어이가 없어서 한 마디했다.

“저 그런 사람 아니에요! 천재는 무슨....”

그런데 말을 해놓고 보니 지금까지의 과정과 결과만 놓고 보면 천재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았다.

그래서 냉큼 말을 바꿨다.

“저는 그냥 운이 조금 좋았을 뿐이에요.”

“그 운 나한테 좀 빌려줘봐라.”

“대체 얼마나 운이 좋아야지 미성년자가 빌보드 1위를 할 수 있는 곡을 만들 수 있는 걸까요? 진심으로 궁금하네요.”

물론 씨알도 안 먹혔다.

그래서 황급히 화제 전환!

“아무튼 가이드 다 만들었어요.”

“방금 그 곡이야?”

“네. 제목은 시크릿가든!”

“... 에버가든 팬덤 명칭이네?”

“그거 듣고 영감을 얻어서 만든 거 맞아요. 어감이 좋잖아요. 소녀들의 비밀 정원.”

“흠, 어디 들어보자.”

드디어 음악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는 구나!

난 신이 나서 방금 완성된 따끈따끈한 가이드를 틀었다.

“가사는 아직 없으니 참고해주세요.”

그리고 흘러나오는 음악.

화려하면서도 섬세한 스트링 선율과 그것을 맞춰주는 피아노의 풍성하면서 따뜻한 화음. 이와 상반되는 파괴적인 킥 드럼과 트랩 비트가 상반되어 흘러나온다.

화음 악기를 화려한 비밀 정원으로.

킥 드럼과 트랩 비트를 그 속에 감춰진 깊은 어둠으로.

과연 내 의도가 충분히 전달되었을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반응을 지켜본다.

결과는....

“... 끝내주는데?”

“차라리 작품에 가까운 수준이네요.”

굉장히 좋았다!

고생한 보람이 있구나!

자축하려는데....

“그런 데 이런 느낌은 차라리 엔 플라워에 어울리지 않나요?”

정연 팀장님께서 생각지도 못한 감상을 내놓으신다.

“스칼렛 러브와 엘레지를 생각하면 차라리 이곡을 엔 플라워에게 주는 것도 좋을 것 같은데요. 이게 지금 엔 플라워를 상승세로 만들어 준 곡과 컨셉이잖아요.

“그렇긴 한데 엔 플라워의 이야기는 미니앨범 4번째 트랙, 또 다시 봄에서 치유와 성장으로 좋게 끝난 거 아니었어?”

“그건 사랑에 대한 치유잖아요. 하지만 이 곡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품고 있는 근본적인 어둠, 아픔... 뭐, 이런 것들에 대한 음악이니 후속곡으로도 충분히...”

“물론 그렇긴 하지만....”

“에버가든이 상큼하고 톡톡 튀는 여름 노래로 데뷔했는데 갑자기 이런 변신은 조금 부담스러울 수도 있지 않을까 싶은....”

“그것도 일리가 있지만 내 생각에는.....”

어어...?

뭔가 이야기가 내가 생각지 못했던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두 분의 대화를 지켜본다.

이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저 곡을 만들 뿐.

그걸 누구에게 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결국 대표님과 정연 팀장님이었기 때문이었다.

엔 플라워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여름 송으로 성공했으니 따뜻하면서도 신나는 겨울송을 만들어서 크리스마스 대목을 겨냥하는 게 훨씬 낫지 않을까요?”

“.......!”

“.......!”

정연 팀장님의 의견에 대표님과 나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건 생각지도 못했는데... 아니, 그 전에 시크릿가든은 에버가든을 주려고 만든 곡이란 말이다!

이걸 엔 플라워에게 넘겨줘 버리면... 에버가든 곡을 다시 작업하라고?

으아아!

“...좋은 생각 같은데?”

문제는 대표님이 이 말에 혹해 버렸다는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아니... 그....”

뭐라도 반박을 하고 싶은데 그럴 수가 없었다.

이전 컨셉과의 연결성 문제는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이라서.

내가 대답을 못하자 대표님이 분위기를 정리하신다.

“일단 하루만 더 고민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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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가든을 엔 플라워에게?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제안이라 넋이 나가 버렸다.

정연 팀장님은 홀로 호텔로 돌아가셨고 대표님은 아이작 이스트와의 약속이 있다며 외출하셨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센트럴 파크로 이동했다.

걸어가면서 고민했다.

내가 생각하기에도 정연 팀장님의 제안은 굉장히 일리가 있었다.

대중이 에버가든에게 기대하는 것이 무엇일까?

아이돌 그룹 특유의 무겁고 난해한 컨셉 음악은 아닐 것이다.

굉장히 대중적이고 누구나 쉽게 따라하고 즐길 수 있는 대중적인 음악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보면 아예 겨울 송 컨셉으로 가는 것도 괜찮겠지.

이번에는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리고, 다음에는 봄... 그리고 가을....

이렇게 사계절을 테마로 완성한 네 개의 싱글을 중심으로 첫 번째 정규 앨범을 만들어 발표하면 굉장히 좋은 출발이 될 것 같긴 하다.

분명 그럴 것 같긴 한데....

“... 힘이 빠지네.”

생각할수록 정연 팀장님의 지적이 맞았다는 생각이 커진다.

에버가든에게는 아직은 과하고 무거운 컨셉.

차라리 스칼렛 러브와 엘레지로 제 2의 전성기를 누리기 시작한 엔 플라워에게 걸맞은 음악.

왜냐면 연차도 충분히 쌓였고, 저번 미니 앨범으로 사랑에 대한 아픔과 성장의 과정을 거친 상황이니 그런 무거운 주제를 들고 나와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것이다.

‘결정적으로, 애들이 그런 걸 아직 이해를 못할 거야.’

그러면 정연 팀장님의 제안을 따르는 게 맞는 것 같기도 하다.

일단 시크릿 가든에 대한 생각은 지워보자.

계속 미련을 가지고 있어서는 될 것도 안 되니까.

겨울에 어울리는 음악.

크리스마스 대목을 노린 곡을 만들어보자고?

겨울송이라....“

문득, 머릿속에 떠오르는 곡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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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영과 이정연은 김민의 맨해튼 숙소에 모였다.

“외출한 모양이네요.”

“머리가 아플 거야.”

장진영은 김민의 마음을 알고 있었다.

“까인 기분이겠지.”

“거절한 건 아닌데요.”

“처음부터 에버가든 주려고 만든 곡이었는데 거절당한 거잖아. 이유야 어찌되었든.”

“흠.”

“뭐, 급할 거 없잖아. 곡 받는 건 뒤로 조금 미루고 내일부터 중요한 일정을 소화하면....”

그때, 도어락이 해제되며 김민이 들어왔다.

장진영은 밝은 미소로 맞았다.

“아, 마침 잘 왔다. 작곡은 잠깐 잊고 일단 내일부터 시작될 일정 문제를 논의....”

“잠깐만요.”

그런데 김민이 말을 끊고 그대로 창가 앞에 설치된 건반 앞에 앉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곧장 무언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눈 내리는 밤.

도시가 하얗게 물들면

그대가 생각나.

그대가 떠올라요.

잔잔한 겨울 감성이 녹아 있는 발라드 곡이었다.

내 마음을 포근히 감싸줘요.

그대의 눈처럼.

하얀 순수함을 머금은 보컬이 가슴을 조용히 파고든다.

어느 새 두 사람은 김민의 감성에 풋 빠져 들었다.

“.......”

그렇게 노래가 끝났다.

아쉬움과 함께 겨울 감성에서 깨어난 두 사람이 힘껏 박수를 쳤다.

“민아! 그거 좋다. 그 음악으로 하자!”

“눈 내리는 밤에 특히 더 듣기 좋은 팝 발라드 음악이네요. 가사도 감수성이 가득해서 굉장히 좋아요! 에버 가든에게 정말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방금 전까지 아쉬움에 가득하던 두 사람의 얼굴이 활짝 폈다.

이제 갓 데뷔한 신인 걸그룹, 에버 가든의 이미지와 굉장히 잘 어울리는 곡이 아닌가?

그런데 김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이 노래를 부르면 춤을 못 출 텐데, 괜찮을까요?”

“곡이 좋으면 상관없지. 그리고 아이돌이 꼭 춤만 춰야 하는 건 아니잖아?”

“그것도 그렇지만....”

“춤은 데뷔곡 블루웨이브로 충분히 보여줬으니 이번에는 감성적인 노래로 어필하는 거야.”

“여기에 반지희 양이 텐 믹스 때 선보인 자작곡 <달이 되어>를 조금 더 손 봐서 같이 내놓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오, 그거 좋은 생각이다. 그런데 그 곡, 제목이 뭐야?”

김민은 빙긋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곡 제목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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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밤.

이전 삶에서 만들었던 곡이다.

레이니 데이라는 소녀 가수에게 줬던 곡인데, 소속사인 중. 소 기획사는 두 번의 실패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던 상태였다.

유명 작곡가들에게는 모두 거절당하고 마지막으로 날 찾아온 것이다.

블루 웨이브로 히트를 친 소속사 대표로부터 소개를 받은 것인데, 내 정체를 알고 굉장히 놀랐더랬다.

여기까지라면 해피엔딩.

나는 히트곡 하나 더 내서 좋고, 레이니 데이와 소속사는 성공 발판을 마련해서 좋고.

그런데 이후부터가 문제였다.

글쎄 이 여자가 내가 만든 곡에 계속 숟가락을 얹으려고 하더라.

자기가 원안을 썼다느니....

데뷔 초 목표로 잡았던 천재 싱어 송 라이터 이미지를 가져가려는 속셈이었다.

소속사 사장도 웃긴 놈이었다.

처음에는 어떻게든 날 설득하려다가 계속 말을 듣지 않으니 사람까지 동원하며 협박을 하더라.

[ 내 말 안 들으면 너 가만히 안 놔둬! 네가 숨기고 싶어 하는 정체도 모두 까발려서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거야! ]

알고 보니 깡패 출신이라나 뭐라나.

...정신 나간 놈들.

이때의 나는 인생의 단물 쓴물을 모두 들이켜 본 상황이라 협박 따위에 굴하지 않았다.

군대도 군역했고, 웹 소설도 써봤고, 모은 돈 주식, 코인에 투자해서 이익도, 손해도 봤고....

바로 협박 증거들을 확보해서 경찰에 신고해 버렸다.

그리고 곧바로 잠수를 타버렸지.

KM 엔터테인먼트와 스타더스트.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른 날 가만히 놔두지 않으리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거든.

아무튼....

그런 사연이 있는 곡이다.

그러니 내가 누굴 주든 상관없지.

한 편으로 궁금하다.

레이니 데이라는 듣보잡이 불렀는데 그렇게 뜬 곡이었다.

에버가든이 부르고 JJ 엔터테인먼트가 매니지먼트를 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까?

그건 그렇고.

‘역시 시크릿가든은 에버가든에게 주고 싶은데... 일단 들려줘보고 반응을 보고 결정하면 안 되나?’

무려 꿈이 점지해 준 곡이란 말이야!

한참 동안 잠자리를 뒤척거리다가 결심했다.

‘그래. 내일 이야기라도 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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