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45화 (145/205)

< 145화. LA에서 >

“.........”

에버가든은 침묵에 빠져 있었다. 매니저는 분위기를 보고서야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이놈의 입!’

멤버 한 명이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게 원래 우리 곡이었다고요?”

“으, 으응.”

“그런데 왜 엔 플라워 언니들이 부르게 된 거예요?”

“너희들에게는 아직 이르고....”

“그리고요?”

“그룹 컨셉하고 맞지 않는다고....”

“우리 컨셉이 어떤데요?”

“대중적인 걸그룹이지. 그런데 저건 대중성하고 조금 거리가 멀잖아.”

“저 정도 작품이면 대중성은 의미 없죠.”

“저건 누가 봐도 대박이잖아. 저런 게 새로운 시도고 대중성 아니야?”

그때 조용히 있던 주세아가 딱 한 마디 했다.

“이게 혹시 찬밥 대우라는 건가?”

“........!”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중에서 특히 매니저는 눈알이 튀어나올 지경이었다.

“아, 아니야! 무슨 소리를... 그런 거 아니야!”

머리를 굴린 그는 다급히 반문했다.

“너희 <눈 내리는 밤>듣고 좋다고 했잖아!”

“저게 훨씬 좋잖아요.”

“그....”

“그리고 민이가 처음부터 우리 주려고 만든 곡이었다면서요.”

“그렇긴 한데 이것도 너희주려고 만든 곡이야! 엔 플라워는 저번 미니 앨범이 어둡고 우울한 컨셉이었잖아. 그걸로 변신에 성공했고. 그러니 저 곡으로 후속곡 활동을 해도 되는 건데....”

“우리도 저 곡과 컨셉이라면 이미지 변신 충분히 성공했을 것 같은데요?”

반지희의 반문이었다.

멤버 전원의 눈동자에 심상치 않은 분위기가 담겨 있었다.

‘여기서 말 잘해야 한다!’

애써 침착하게, 찰나의 순간 수없이 많은 고민을 했던 그가 내놓은 대답은.

“하지만 저 곡을 부르는, 너희를 보는 팬과 대중은 어색함을 느끼지 않을까?”

“.......?”

“엔 플라워는 전원이 20대 중반이야. 이제 더 이상 과거처럼 귀엽고, 상큼하고, 톡톡 튀는 그런 컨셉은 무리야. 본인들부터 닭살 돋는다며 양 갈래 머리도 잘 안 하려고 하는데 퍽이나....”

“하긴.”

“엔 플라워 언니들도 벌써 중견 그룹이네.”

“성장한 모습을 보여줘야 하는 시기라고. 반면 너희는 아직 어려. 멤버 대부분이 십대, 고등학생이잖아. 어릴 때만 할 수 있는 컨셉이라는 게 있는데 벌써 저런 거 해버리면... 그 후에는 어떻게 할래? 계속 저런 거만 할 자신 있어?”

열변을 토하는 매니저.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더라 다들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너희곡이나 저쪽곡이나. 어차피 김민 군이 만든 거야. 그 친구가 어떤 사람인지는 너희들이 더 잘 알 거 아니야! 빌보드 3연타석 홈런의 주인공! 저런 곡은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들 수 있는 천재라고!”

“하긴....”

“김민 선배님이라면 뭐....”

굳이 주세아와 반지희가 아니라도, 다른 멤버들에게도 김민은 회사의 간판이고 그 소속인 자신들의 자랑거리였다.

“서두르지 말자. 나도 엔 플라워 데뷔 초창기, 매니저 노릇을 했을 때는 무조건 뭔가 있어 보이는 걸 좋아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잘못된 생각이었어. 어릴 때 만 소화할 수 있는 컨셉이라는 게 있는 거야. 어려서 못하는 컨셉도 있는 거고. 무슨 말인지 알겠지?”

“....네.”

납득한 대답에 내심 한숨을 돌리는 매니저.

주세아 역시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그것을 확인하고 매니저가 애써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

“자, 연습하자!”

@

<시크릿 가든>티저 영상이 공개되었다.

종합 티저 하나와 멤버별 티저 하나씩.

총 열 개의 영상과 스무 개의 이미지였다.

“컨셉 잘 잡았네요.”

“그치? 어두운 내면을 보여주는 샷 하나, 일상에서의 밝고 활기찬 모습 하나.

뮤직 비디오는 바쁜 일상을 나름대로 살아가는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로 꾸며진다.

이를 테면 대기업의 에이스 사원이고 항상 밝은 표정과 미소로 동경과 총애의 대상이지만 뒤에서는 동료 사원들의 시기, 질투, 음해... 각종 루머 탓에 아픔을 안고 있는 주아! 뭐 이런 식으로....

대중이 철저히 공감할 수 있는 내용으로 뮤직 비디오 스토리와 양면성에 대한 설정을 잡아 놓은 것이다.

그 컨셉이 화려함의 극치인 컨셉과 안무, 스타일링으로 무장했으니....

[ 진짜 끝내주네;; ]

┗ 이번 곡도 김민이 만들고 프로듀싱 했던데... 천재는 천재구나. 곡과 뮤직 비디오도 멋지지만 주제가 지렸다. 양면성에 대한 이야기라니....

┗ 정말 상상도 못했던 주제임. 저번 미니 앨범에서 ‘또 다시 봄’으로 성장했으니 당연히 밝은 노래가 나올 거라고 생각했는데....

┗ 엔 플라워 팬은 아닌데 이번 곡은 기대된다.

네티즌 반응이 좋은 것도 당연했다.

볼수록 아까웠다.

엔 플라워 멤버들하고도 친하고, 좋은 누나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애초 에버가든을 생각하며 만든 곡이 아닌가?

그런데 그 내심을 꿰뚫어 본 대표님이 한 마디 하신다.

“야. 미련을 버려! 이미 다 끝난 이야기야!”

“... 저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내가 너 표정만 봐도 알아. 무슨 생각하는지.”

“제가 무슨 생각했는데요?”

“에버가든 못 준 거 아쉬워했잖아!”

“아닌데요? 저 그런 생각 안 했는데요?”

“맞잖아! 이게 누굴 속이려고...!”

대표님과 티격태격하는 동안 다음 일정 장소에 도착했다.

BBC 라디오 특별 방송이었다.

“이게 마지막 일정이지?”

“네. 이거 끝나면 <1980 브로드웨이> 일 시작해야 해요. 감독님도 정해졌다고 하더라고요.”

“누구래?”

“누구냐면....”

잭 웰슨.

텍사스 출신으로 본래 뮤지컬 배우였다가 연출가이자 감독으로 직업을 바꿨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늙은 하와이안의 삶을 아름다운 비주얼과 음악, 감독적인 서사로 녹여낸 뮤지컬 영화, <하와이안 랩소디>로 큰 호평을 받았다.

“아! 저 그 영화 봤어요! 정말 낭만적인 영화였는데... 그 영화 감독님이셨구나!”

조수석에 앉아 있던 정연 팀장님의 말.

“나만 못 봤어? 한국에 가자마자 그 영화부터 봐야겠다.”

“꼭 보세요. 대표님이라면 음악적으로 많은 영감을 받게 될 거예요.”

차에서 그런 대화를 나눴기 때문일까?

BBC 라디오 방송에서 어쩌다 보니 하와이안 랩소디 이야기를 꺼내게 됐다.

“감명 깊게 본 영화가 뭔가요? 아!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 영화는 빼고요!”

“우리 잭슨 감독님 빼고라면....”

당연히 잭 웰슨 감독님이 나올 차례지.

“제가 이 분 작품을 굉장히 사랑하는 사람이에요. 그 중에서 특히 하와이안 랩소디라는 작품이 있는데 크게 알려진 건 아니지만....”

“아, 그거 제가 굉장히 좋아하는 뮤지컬 영화예요!”

“아, 정말요?”

“늙은 하와이안의 꿈과 낭만을 담은 이야기. 크! 진짜 멋지죠.”

그래서 십여 분 이상 하와이안 랩소디에 대한 이야기만 주구장창 하게 됐다.

알고 보니 진행자가 나 이상의 영화 마니아인데, 잭 웰슨 감독님을 신인 감독 시절부터 주목해오고 있었다고 카더라.

그런 사람에 대한 이야기를 동양인 소년인 나와 하게 되니 신기해하면서 필요 이상으로 폭주한 것이다.

그래도 음악과 영화에 대한 심도 깊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 우리는 좋았다.

스텝과 청취자들도 만족했다더라!

그렇게 짧은 프로모션이 모두 끝났다.

@

“나 디즈니 정말 가보고 싶었어!”

대표님, 정연 팀장님을 한국으로 떠나보낸 뒤 다니엘, 샬럿과 함께 LA행 비행기에 탑승했다.

버뱅크에 있는 디즈니 본사를 방문하기 위함이다.

“LA다!”

“내가 LA에 왔다!”

자식들, 누가 보면 LA 처음 오는 사람인 줄....

... 어? 잠깐만, 처음인가?

계속 좋아하게 놔두자.

원래는 디즈니 측에서 사람을 보내주기로 했지만 거절했다. 3일 먼저 도착한 이유 중 하나가 관광 목적이었다.

운전은 못하지만 현 시점에 우버가 널리 애용되고 있으니 돈만 있다면 편하고 안전하게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어디부터 가고 싶어?”

“어?”

“어어... 어디부터 가지?”

고민하는 애들.

“그러면 관광 코스는 내가 알아서 짠다?”

“응!”

“그냥 너만 믿고 따라갈게!”

내가 제일 먼저 향한 곳은 바로 베니스 비치였다.

나는 바쁜 여행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여유 있게 주변 경치와 맛집을 즐기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다.

베니스 비치, 산타모니카로 이어지는 해변 산책로는 내가 이전 삶에서도 굉장히 좋아했던 코스였다.

“배고프니까 밥부터 먹자.”

기대감으로 가득한 애들을 데리고 베니스 비치 근처 유명 햄버거 집에 데려갔다.

한바탕 난리가 났다.

“노, 노아 파티다!”

“오오오!”

우리 세 사람을 알아본 것이다.

여유 있게 사인, 사진 촬영을 해주고 충분히 음식을 즐겼다. 그리고 베니스 비치로 뻗어 있는 산책로를 즐겼다.

중간 중간 콘 아이스크림 같은 먹거리들도 사먹으면서!

“확실히 영국 감성과 다르지? 햇살이 따스하니 하늘도 푸르고, 해변가의 사람들은 여유로 가득하고....”

“응응!”

“나 이곳 마음에 들어!”

특히 샬럿이 반한 표정이다.

충분히 예상했다.

이전 삶에서 샬럿은 할리우드에서 많은 일을 했는데 특히 디즈니 실사화의 프린세스, 성우 등으로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래서 아예 여기에 화려한 콘도를 사서 오래 생활하기도 했다.

난 그것을 보며 굉장히 부러워했던 기억이 난다.

줄지어 서 있는 화려한 콘도를 보며 한 마디했다.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저곳 중 하나를 사고 만다.”

그 말에 애들이 난리를 쳤다.

“나는 그 옆에 하나 사야지.”

“나도!”

@

꿀 같은 휴가를 끝내고 버뱅크 디즈니 본사를 방문했다.

그 자리에서 우리 세 사람은 실사화 총괄 프로듀서, 그리고 잭 웰슨 감독과 마주하게 됐다.

금발의 젊고 잘 생긴 미남자였다.

푸른 눈동자에 근육질 체형.

그래. 이 사기 캐릭터가 바로 내가 좋아하는 잭 웰슨 감독님이었다.

그가 나에게 호감 가득한 미소로 악수를 권한다.

“노래 잘 듣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OST는 하나하나가 예술이었어요. 음악을 듣고 주저 없이 연출을 결정했으니까요.”

“좋아하던 감독님을 이렇게 배우로서 뵙게 되니 정말 영광입니다. 모든 작품을 좋아하지만 그 중에서 특히 하와이안 랩소디를 사랑합니다.”

“아, BBC 라디오 방송 들었어요. 제 이야기를 정말 좋게 해주셨더군요.”

“실제로 좋아하니까요. 그리고 라디오 호스트도 감독님의 굉장한 팬이었던 터라 즐겁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죠.”

시선을 교환하며 맞잡은 손에 꽉 힘을 줬다.

서로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다.

하지만 이 뜨거운 시선은 여기서 끝.

샬럿을 향하는 순간 차갑고 냉랭하게 돌변한다.

...저렇게 인형처럼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소녀를 바로 앞에서 보면서 저런 반응이라니.

공사 구분이 굉장히 철두철미한 예술가 타입이라더니.....

“이야기 들었죠? 샬럿 왓슨 배우님은 오디션을 보셔야합니다.”

“물론 처음부터 그럴 생각이었어요. 작품에 가장 중요한 사람 바로 현장을 지휘하는 감독님이시고 전 아무것도 보여준 게 없는 신인일 뿐이니까요.”

“신인이 아니라 베테랑 배우... 설령 이안 코너 경이라도 저와 첫 작품을 하게 되면 어떤 식으로든 오디션을 보셔야 할 겁니다.”

사실이다.

잭 웰슨 감독님은 그런 부분에 대해서는 굉장히 단호하다. 인맥 캐스팅 따위는 없는 분이다.

“그러면 민이는요? 민이는 오디션 안 보는데....”

다니엘이 끼어들었다.

트집을 잡는 게 아니라 순수한 의문에서 비롯된 질문이었다. 얼굴에 그렇게 쓰여 있다.

잭 웰슨 감독님이 나를 흘끔 보고 한 마디 하신다.

“민 군의 오디션은 이미 봤습니다.”

“네?”

“언제....”

“........?”

두 사람은 물론, 조용히 자리에 앉아 있던 실사화 총괄 분께서도 의아해하신다.

“여러분은 모르시겠지만 김민 군은 스토리 보드를 본인이 출연한 일인 무비로 만들어서 저에게 보냈어요. 모든 배역을 실제 장소에서 홀로 연기하고, 노래하며 춤을 춘 영상이 있었죠.”

“아....!”

모두가 나를 보고 놀란 표정을 짓는다.

반면 감독님의 입가에는 흐뭇한 미소가 가득했다.

“저는 영상 속의 민군을 보는 순간 제 페르소나로 삼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거죠.”

페르소나씩이나...?!

이번에는 나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니까 민군에게는 오디션이 필요 없습니다. 현재의 역량과 성장 가능성을 모두 알고 있으니 제 기대에 닿을 때까지 철저히 훈련시킬 생각입니다.”

그리고 샬럿을 보며 다시 냉혹하게 말한다.

“지금 바로 오디션을 봐도 되겠습니까?”

심호흡을 하고.

“네!”

샬럿은 굳건한 눈빛으로 대답했다.

“옆방에 오디션을 위해 카메라를 설치해뒀습니다. 이동하도록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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