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6. 뒤집어 놓다! >
오디션을 상정한 트레이닝 역시 셀 수 없이 받았다.
“자, 시작하세요. 무엇이든 상관없이 자신 있는 연기를 펼치시면 됩니다.”
샬럿은 작품 속 여자 주인공의 배역과 노래, 춤을 처음부터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순간 잭 웰슨 감독님의 놀란 표정이 내게 향했다. 난 일단 지켜보라는 듯, 샬럿을 가리키며 웃어 보일 뿐이었다.
샬럿은 춤과 노래에 생각보다 재능이 있었다.
악기도 이것저것 잘 다루고 리듬감도 뛰어나다.
부유한 집에서 자라며 이것저것 익혀 온 덕분이다.
샬럿의 오디션 트레이닝을 많이 봐왔던 다니엘은 소리 없이 박수치며 응원을 하는 중이었다.
“오오....”
지켜보던 잭 웰슨 감독님이 탄성을 터트리신다.
무엇에 놀라셨던 걸까?
샬럿은 흔들리지 않고 오디션에 전념할 뿐이다.
그렇게 준비한 모든 것을 보여줬고.
감독님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 물었다.
“혹시 제가 오디션을 요청할 줄 알고 미리 트레이닝을 지시했던 건가요?”
“물론이죠.”
“어떻게요?”
“감독님의 전작을 굉장히 감명 깊게 봤다고 했었죠? 그 후에 인터뷰 자료를 찾아보니 감독님 성향이 분명히 보이더라고요.”
“그렇군요.”
그 순간 감독님이 묘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러면 혹시 본인의 오디션도 준비했습니까?”
잠깐 멈칫했던 나는.
“물론이죠.”
“그러면 이 자리에서 조금이라도 보여주실 수 있을까요?”
디즈니 실사화 프로듀서가 기대감으로 눈빛을 반짝인다.
“감독님이 원하신다면.”
그리고 나는 이미 수도 없이 해봤던 남자 주인공의 연기와 춤, 노래를 펼쳐 보였다.
결과는.
“좋아요. 두 사람 모두 합격!”
그렇게 남녀 주연이 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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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션이 끝난 직후 우리 세 사람은 이틀을 더 머물며 LA를 충분히 즐긴 뒤에 뉴욕으로 넘어갔다.
레이나, 레이지 커플의 콘서트에 참여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 우리 공연에 참석해줄 수 있겠어? ]
가수로서 굉장히 좋은 제안이었다.
일단 가수로서 두 사람의 인지도는 나 따위는 무명으로 만들 정도로 굉장했다.
일단 세뇨리타가 크게 성공하며 커버, 혹은 음악을 활용한 릴스 같은 것들이 폭발적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이로 이해 빌보드 수성은 굳건했고, 심지어 UK와 오리콘 차트에서도 1위를 차지하는 놀라운 성공을 누리는 중이다.
실제 커플이 듀엣으로 활동하는 상황이니 더더욱 이슈가 됐다. 두 사람은 이 기세를 타서 인지도를 더더욱 높이겠다는 심산이었다.
공연장에 무수히 많은 사람들이 몰려왔다.
지정 좌석이 아니라서 좋은 자리 차지하겠다고 전날부터 콘서트 홀 앞에 줄을 서서 기다리더라.
두 커플의 인기가 얼마나 굉장한지를 보여주는 증거였다.
대기실에서 한창 몸단장을 하고 있던 두 커플과 만났다.
“민! 와줘서 고마워!”
레이지 녀석은 평상시 엄청난 포커페이스에 말도 그리 많지 않고 과묵한 타입이다. 조용히 앉아 있던 녀석이 나를 보자마자 얼굴이 환해져서 다가와 와락 껴안는다.
그리고 레이나 역시도.
“게스트 요청 받아줘서 정말 고마워. 바빴을 텐데....”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첫 콘서트잖아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일 제쳐두고 와야죠.”
그리고 나서 뻘쭘히 한쪽에 서 있던 두 친구를 소개한다.
“알죠? 제 친구이자 노아 파티인 다니엘, 샬럿이에요.”
“어머나. 판타지 속 영웅들이 제 대기실을 방문해 주셨군요. 정말 고맙고, 환영해요!”
나하고 다르게 굉장히 예의를 갖춰서 맞아주는 레이나, 레이지는 말없이 주먹을 내밀 뿐이었고 어리둥절해하던 두 사람은 내가 가르쳐 줘서야 굉장히 조심스럽게 자신의 주먹을 부딪쳤다.
대기실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다 보니 금방 공연 시간이 됐다.
“무대에서 봐!”
레이나의 의미심장한 미소가 조금 마음에 걸리지만 뭐... 별 일이야 있겠어?
그런데 별일이 생겼다!
“오늘 이 자리에 엄청난 게스트를 초청했어요! 저와 레이지의 곡, 안무를 만들어 준 천재 프로듀서이자 제가 정말 친 동생처럼 아끼는 소년이죠!”
“내 제일 친한 친구야.”
참 거창하게도 소개한다.
“민을 소개할게요!”
뜨거운 함성!
올 블랙 수트를 입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던 나는 그 순간 무대 앞으로 걸어 나갔다.
두 사람은 어느 새 퇴장해 있었고, 나 홀로 거대한 무대에, 어마어마한 수의 관객 앞에 서 있다.
아, 갑자기 공항증이... 완벽히 치유된 게 아니었구나!
그래도 자리가 자리인만큼,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연기하며.....
“Manhattan Dreaming!?”
[ 와아아! ]
“Yes!”
노래를 시작한다.
내 데뷔곡 말고 이곳에 모인 미국인들도 알법한 아이작 이스트의 히트곡인 맨해튼 드리밍!
반주와 동시에 시작되는 노래, 랩을 찰지게도 따라 부르는 사람들을 보며 생각했다.
‘맨해튼 드리밍 내 버전으로 녹음해 두기 정말 잘했네.’
내 데뷔곡들을 불렀다면 분위기가 꽤나 썰렁해졌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잘 모를 테니까.
비록 프로모션의 일환이었다면 아이작 이스트의 제안으로 그에게 트레이닝 받고, 녹음과 발매까지 하면서 나만의 무기를 장착할 수 있었다.
그것이 지금 이 자리에서 발휘되고 있는 것이다.
후반 부.
무반주로 후렴 부분을 열창한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노래를 부르지 않고 관객들에게 마이크를 돌렸다.
굉장히 커다란 음성으로 맨해튼 드리밍을 열창해준다.
아이작 이스트가 그랬는데, 이 노래가 어느 순간부터인가 맨해튼의 주제가 같은 개념이 되어 버렸단다. 최소한 맨해튼에는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이 노래가 끊이지 않을 거라나?
그리고 지금 이 자리에서, 수많은 이들이 자기 노래처럼 열창하고 있었다. 새삼 가수가 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연기도 좋지만 역시 나는 직접 만든 노래를 부르는 게 제일 좋다!
그렇게 게스트로서의 공연이 끝났다.
“내가 말했지? 민이 우리 안무까지 짜주고 트레이닝도 봐줬다고. 그거 보고 싶지 않아? 우리 셋이 함께 펼쳐 보이는 세뇨리타!”
[ 와아아아아! ]
...끝난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레이나가 사전에 논의도 없었던 일을 덜컥 저질러 버린 것이다.
실컷 관객들을 들뜨게 만든 레이나는 내게 다가와 묻는다.
“다들 이렇게 원하는데, 함께 어울려 줄 거지?”
못하겠다고 할 수도 없고.
레이지도 덩달아 들뜬 얼굴로 말했다.
“셋이 함께 연습했을 때 했던 버전으로 공연하자.”
셋이 함께 하는 버전이란 간단하다.
내가 프리롤로, 노래도 하고 랩도 하고, 혼자 여기저기 휘저으며 프리 댄스를 추는 거다.
왜 이런 짓거리를 했냐면 라틴 댄스 팝으로 듀엣을 하는 두 사람이 어색해하니까 무대 감각 좀 키워주려고.
특히 레이지에게 춤과 노래가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알려주고 싶었다. 줄곧 랩 위주로 음악을 해오던 녀석이라 굉장히 어색해했거든.
“좋아. 가자.”
그리고 늘상하던 것을 한다.
셋이 모여서 어깨동무를 하고.
“화이팅!”
우리의 모습에 함성이 터져 나온다.
그리고 시작되는 노래.
세뇨리타.
여기서 중요한 게 뭐냐면 내가 프리롤로 무대를 휘젓는다고, 존재감을 지나치게 키우면 안 된다는 거다.
노래나 랩을 할 때 두 사람의 파트를 받쳐주거나 화음을 넣어주는 식으로 하고, 춤을 출 때도 두 사람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서 노력한다.
내가 주인공이 아니니까.
여기서도 난 내 역할에 충실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렇게 하려고 했다.
하지만.
“한 번 제대로 날뛰어봐!”
“......!”
공연 중 레이나의 외침.
“Go! Go!”
레이지의 부추김에 정말 어쩔 수 없이....
“......!”
리미트를 풀고 제대로 날뛰기 시작했다.
무대를 가득 채운 수많은 댄서와 두 명의 월드 클래스 뮤지션 사이에서.
난 처음으로 마음껏 기량을 토해냈다.
노래를 부르고 랩을 하며 미친놈처럼 격렬한 춤을 소화한다.
주어진 안무뿐만 아니라 내가 알고 있는 라틴 댄스 팝에 어울리는 모든 댄스들을 즉흥적으로 전개한다.
그러다 수트 상의의 버튼이 모두 풀려 버렸다.
내친 김에 빙글 돌여 자연스럽게 상의를 벗어 무대 한편에 던져두고, 와이셔츠 목 단추를 세 개까지 더욱 본격적으로 춤을 췄다.
답답했는데 이제 좀 낫군.
... 그런데 왜 점점 함성이 잦아드는 걸까?
혹시 내가 너무 오버를 해서...?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이 텐션을 계속 유지해야 보는 입장에서도 무대가 어색하지 않을 것이기에.
끝까지 무대를 마친 뒤.
“하아, 하아....”
흥분을 가라앉히고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한다.
주위를 둘러봤는데....
“.......!”
관객도, 무대 위의 사람들도.
심지어 레이나와 레이지까지 휘둥그레진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뭐, 뭐야 이 상황은?
난 애써 웃으며 물었다.
“어... 아무래도 제가 조금 오버를 한 것 같죠? 하하....”
잠시 후 거대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정말 예상치 못했던, 그리고 너무나도 거대했던 환호에 크게 놀라 귀를 틀어막았다.
[ 삐이이...! ]
아, 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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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 플라워 출격 준비를 끝마치고, 날짜만 기다리던 JJ 엔터테인먼트는 난데없는 소식에 뒤집혔다.
[ 김민. 레이지 X 레이나 커플의 콘서트 장을 뒤집어 놓다. ]
“이게 무슨 소리야? 뭘 어떻게 뒤집었다는 거야?”
문자로 기사를 제보 받은 장진영은 추가로 따라온 동영상 링크를 재생했다.
관객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것으로 보이는 영상이었다.
처음에는 맨해튼 드리밍으로 미친 듯한 떼창을 유도했던 김민은 레이나, 레이지의 제안으로 등떠밀리듯 세뇨리타를 함께 꾸미게 됐다.
‘이거 커플 무대 아니었어? 셋이 어떻게 같이 한다는 거지?’
의문은 무대 시작과 함께 가셨다.
‘아, 프리롤....’
철저하게 서포터로서 두 사람을 빛내주는 역할을 자처한 것이다.
‘저게 참 어려운 건데 말이야.’
어지간한 센스가 없다면, 오히려 섬세하게 설계된 퍼포먼스의 틀을 해치하는 요인이 된다.
아니, 십중팔구는 그렇게 된다.
하지만 김민은 그 말도 안 되는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하고 있었다.
‘하여튼 센스 하나는....’
제자의 활약을 흐뭇하게 지켜보는 장진영.
‘그런데 뭐가 문제라는 거야? 잘하긴 했지만 막 난리를 칠 정도는 아닌....’
그 순간, 두 사람이 어떤 말로 김민을 부추기더니 정 중앙으로 등을 떠미는 광경이 보인다.
그때부터 무대가 180도 달라졌다.
서포터를 자처하고 있던 김민이 메인으로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스피커를 찢어버릴 듯한 성량으로 노래와 랩을 하며 미친 듯이 춤을 춘다.
그러다가 정장 상의의 버튼이 떨어지자 아예 빙글 돌아 안무 동작 마냥 상의를 벗어 던진다. 그것에서 그치지 않고 윗단추 세 개를 풀어 눈부시게 하얀 쇄골과 가슴을 드러내는데....
“저, 저.....”
파격 패션의 일인자로 유명한 장진영이 당황할 상황이 연출됐다.
땀 때문에 와이셔츠가 푹 젖어 맨 몸이 고스란히 노출된 것이다.
꾸준한 운동으로 다듬어진 슬림한 상반신은 조명을 받아 유난히도 빛을 발한다.
땀으로 푹 젖은 검은 머리카락.
열기로 발그레 달아오른 하얀 얼굴.
노래와 춤에 전념한 채, 몽롱한 눈빛으로 관객을 응시하는 얼굴, 특히 눈빛은....
“야! 저건 너무 야하잖아!”
심지어 아직 미성년잔데!!
마치 지상에 내려온 천사가 사람들을 홀리기 위해 작심이라도 한 듯한 모양새다.
비현실적일 정도로 아름답고 뇌쇄적인 모습에 무대 위의 아티스트와 현장의 수많은 관객들이 일순 침묵에 빠져 들었다.
“그만! 스톱! 하, 저 자식 정말...!”
안절부절 못하는 장진영.
“이러면 또 장진영이 순진한 제자에게 이상한 물을 들였다고 또 막 뭐라고 할 거 아냐!”
일단 미성년자가 펼칠 만한 무대가 절대 아니었다.
그렇게 공연이 끝났다.
직후.
[ ------- !!!! ]
마치 챔피언스 리그,
지고 있던 팀이 추가 시간 1초를 남겨 놓고 동점 원더골을 터트렸을 때의 함성이 울려 퍼진다.
말 그대로 콘서트 장을 뒤집어 놓은 것이다.
뒤늦게야 상반신이 훤히 비치는 자신의 상황을 인지한 김민이 몸을 가리며 다급히 상의를 찾아 걸친다.
“아니, 그러면 더 야해 보이잖아! 가리긴 왜 가려!? 차라리 당당할 것이지!”
영상은 그렇게 끝났다.
장진영은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반응 보긴 봐야 하는데... 아, 무섭다 정말.”
장진영은 한참 끝에 뉴스를 확인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