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1화. 선물 >
미국 같은 경우, 주마다 다르지만 대체적으로 16세가 되면 운전면허를 취득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의 경우 만 18세 생일이 되어야 시험에 응시가 가능하다.
“난 한국인이니까 최소 1년 이상은 더 필요해.”
조금 더 한국식으로 하면 고3, 주민등록상 생일이 지나야 시험 응시가 가능하다는 것!
한 마디로 이건 의미없는 선물이라는 것이다.
써먹지도 못할 거라서.
그런데 내 말을 진지하게 듣던 두 커플의 반응이 기대와 달랐다.
두 사람은 서로를 잠시 바라보더니.
“뭐야, 그러면 일단 구매해놓고 시험 본 뒤 받으면 되겠다.”
“맞아. 어차피 차 사봐야 바로 나오지도 않아. 이런 슈퍼카는 특히 더 그래. 대기 시간이 길어서... 그 정도면 적당할 것 같은데?”
내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을 콕 찔러 온다.
“어? 그, 그러고 보니....”
그래서 이번에는 내가 당황했다.
레이나가 정장을 차려 입은 백인 여자 딜러에게 물었다.
“지금 차 주문하면 대략 언제 정도에 받을 수 있을까요?”
“종마다 다르긴 하지만....”
“제가 일전에 문의했던 차 종이라면요?”
“1년은 기다리셔야죠.”
“봤지?”
생글 생글 미소 짓는 레이나.
나는 잠시 멍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물었다.
“아니, 대체 무슨 차를 사주려고...?”
“제가 안내해드릴게요.”
백인 여자 직원을 따라 이동한 곳은 바로 지하 전시장.
그곳에 모든 종류의 ‘페라리’가 전시되어 있었다.
멈춰선 곳은.
“바로 이 모델입니다.
강렬한 레드.
유려한 몸체를 자랑하는....
“페라리 캘리포니아 T 스파이더. 정말 멋진 녀석이죠.”
“......!”
미디어로만 봐왔던 이탈리아 슈퍼카 모델이었다.
매장에 입장하는 순간부터 기가 죽어 있던 샬럿과 다니엘은 내 옆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그런데 레이지가 미안한 얼굴로 엉뚱한 개소리를 한다.
“더 좋은 모델을 사주고 싶었는데 다른 건 출고 대기 시간만 3,4년이 넘는다고 해서....”
이것도 과하다!
황급히 거절하려는데 레이나가 내 어깨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아무튼 내년에 받을 수 있다고 하니 시기도 딱 좋네. 성인 되자마자 국제 면허증 따서 바로 운전할 수 있을 테니까!”
“과해요. 이건 너무 과하다고요. 세상에 이런 선물을 선뜻 해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이건 말도 안 되는데....”
“지금 여기 있잖아.”
“........”
“네가 우리에게 해준 것에 비하면 오히려 소박하다고 생각해.”
“맞아. 넌 이걸 받을 자격이 있어. 그리고 예전부터 우리 차를 탈 때마다 부러워하는 걸 보고 꼭 좋은 차를 선물해주고 싶었단 말이야.”
여기서 말하는 우리란, 레이지 본인을 포함한 떠그 3인방이겠지? 하나 같이 좋은 차를 차고 다니는 녀석들이니까.
그런데 내가 언제 부러워했냐?!
그냥 멋져보여서 몇 번 쓰다듬어봤을 뿐인데...!
“아무튼 너도 수락한 걸로 알고....”
레이나는 딜러에게 말했다.
“계약할게요. 풀 옵션으로!”
이렇게 간단히 이탈리아 슈퍼카. 페라리가 생겨 버렸다.
얼떨떨한 정신으로 계약서를 쓰고 나왔는데 이번에는 또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레이지가 말했다.
“내가 이전부터 이 선물을 꼭 해주고 싶었어.”
그러더니 대형 악기 전문점으로 향하는 게 아닌가?
레이지는 맡겨 놓은 거 달라는 듯 말한다.
“그거 준비 됐죠?”
“물론이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 등장한 것은....
“커헙!”
난 세 개의 기타 하드 케이스에 찍힌 마크를 보고 헛숨을 들이켰다.
마틴, 테일러, 깁슨.
흔히 어쿠스틱 기타 빅 3로 꼽히는 브랜드들이었다.
그 기타의 레퍼런스 모델이, 그것도 새 제품이 내 앞에 나란히 놓여져 있었던 것이다!
슈퍼카는 부담스러웠지만... 이건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내가 정말 가지고 싶었던 악기였거든!
내가 그 정도로 기타를 좋아한다.
마틴 기타는 소리가 굉장히 선명하며 그 결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밸런스가 치우침 없이 플랫해서 세션 녹음 선호도가 굉장히 높은 제품이다.
테일러는 청량하게 찰랑거리는 소리가, 깁슨은 와일드함이 각각 매력이다.
기타라고 다 같은 기타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꿈의 어쿠스틱 기타 모델들이....
빅3 제품이 내 눈앞에 나란히 있다니... 아아, 군침 돈다!
당장 연주해보고 싶어 미치겠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이건 한정판이라 구하기가 조금 어려웠습니다.”
직원 몇 명이 끙끙 대며 우리 앞에 내려놓은 것은 바로....
“이, 일렉톤?!”
전통적인 악기 명가, 야마하에서 출시한 전자 오르간의 일종으로, 이거 한 대 있으면 대편성 오케스트라부터 모든 장르를 연주하고 녹음할 수 있다.
음악 하는 사람들에게는 한 번 쯤 가지고 싶은 꿈의 악기라 할 수 있었다.
다 좋아.
다 좋은데 문제는....
“이거 둘 곳이 없는데....”
우리 아파트에서 연주하면 온갖 곳에서 층간 소음으로 항의가 들어올 것이다. 그렇다고 안 그래도 집에서 작업할 때 헤드폰 쓰고 하느라 고막이 남아나지 않을 지경인데....
그런데 그때 두 커플이 또 다시 불길한 미소를 짓는 것이 보였다.
뭐야, 이젠 무섭단 말이야!
이번에는 또 뭔데? 뭐가 또 남았는데?!
직원이 말한다.
“그쪽으로 배달해 드리면 될까요?”
“네.”
“언제까지 배달하면 될까요?”
레이나가 나를 보며 말했다.
“지금 당장요.”
“헤이! 민!”
“왔구나! 왜 이렇게 늦었어?”
도착한 곳은 허드슨 강을 앞두고 있는 신축 빌딩의 스튜디오였다.
바로 그곳에 사이먼 블랙과 잭이 앉아 기다리고 있었다.
“여, 여기는... 대체 뭐에요?”
설마 이 스튜디오도 내 선물이라는 건 아니겠지?
이건 정말 지나친데....
“네 선물은 아니고, 함께 쓸 목적으로 마련한 스튜디오야. 일단 주인은 나지만....”
레이나가 내 손에 카드키와 열쇠 한 묶음을 건네준다.
“민, 너도 마음껏 사용해.”
“......!”
이 엄청난 스튜디오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고?
난 말 그대로 넋이 나가 버렸다.
말 그대로 꿈의 스튜디오였기 때문이었다.
공간 설계도 완벽하고, 스튜디오 바깥에는 휴식 공간이 굉장히 멋지게 꾸며져 있었다. 테라스에는 산책로와 뉴욕 중심부의 전경을 즐길 수 있는 전망대도 존재했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음악인이라면 한 번쯤 가져보는 꿈!
나만의 멋진 작업실!
물론 나만의 것은 아니지만... 최고의 친구들과 함께 사용할 수 있는 멋진 공간이 준비되었다.
이곳 전망대에 서서 허드슨 강을 바라보자니 가슴이 웅장해지는 것 같다.
기분이 최고조로 격양된 순간!
[ 나왔어! ]
헛!
그, 그 분이 오셨다!
내 인생의 VIP!
‘영감님!’
호다닥 스튜디오로 달려가 잭과 사이먼을 밀어내고 콘솔 앞에 앉았다.
“뭐하는 거야?”
“설마 여기서 곡을 만들려고...?”
시끄러워!
모두 다 조용히 해!
아직은 생생하지만 언제 떠나갈지 모르는 영감을 필사적으로 붙잡은 채, 미디 녹음을 시작한다.
피아노 악기로 코드를 입력하고, 킥, 스네어, 하이햇... 비트를 하나씩 쌓아 올리고.
어느 순간 나는 주변도 잊은 채 몰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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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조용히 해.”
레이나의 말에 소음이 멎었다.
“아무래도 전망대에서 뭔가 영감이 떠오른 모양이야. 한번 지켜보자고.”
김민의 상태를 완벽히 꿰뚫은 레이나.
곧 모두가 숨죽인 채 김민의 작업 광경을 바라봤다.
혹시 모르지 않아?
여기서 네 번째 빌보드 1위곡이 나올 수도....
‘이번에는 어떤 장르의 음악을 만들려는 걸까?’
흔한 스타 뮤지션들과 달리, 김민의 음악 스펙트럼은 굉장히 넓었다.
KPOP 뮤지션이 미국으로 건너와 재즈, 트랩 등의 힙합 음악으로 모두를 놀라게 하더니 그 다음에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라틴 댄스 음악으로 전 세계를 춤추게 했다.
그러더니 본인은 영국으로 가서 브리티시 팝 스타일의 음악을 만들어 부르고 다녔다.
‘심지어 1980 브로드웨이는 전형적인 뉴욕 올드 브로드웨이 스타일이었지?’
너무나도 기대가 된다.
이번에는 대체 어떤 새로운 장르의 음악을 만들려는 건지.
다른 이들도 같은 심정이었던 터라 굉장히 흥미롭게, 주위에 모여 음악 작업 과정을 유심히 살핀다.
단순한 관전이 아닌, 학습에 가까운 모습이었다.
곧, 완성된 기본 리듬을 통해 장르의 실체가 드러났다.
“레게?”
“와우. 갑자기 또 레게야?”
리드미컬한 레게기타, 이와 상반되는 묵직하면서 펀치감 있는 베이스 사운드의 조화가 흥미롭다.
몸을 들썩일 수밖에 없도록 만든다.
나른함, 우울함, 흥겨움, 불안감, 에로티즘.
레게 음악은 이 모든 정서가 공존하는 독특한 장르다.
코드와 레게 기타 리듬, 베이스, 드럼 셋에 이와 같은 감정들이 표현된다.
여기까지라면 흔한 레게음악처럼 보이지만....
“EDM을 섞는 다고?”
“오호라. 이거 재미있네.”
일렉트로닉 사운드가 섞이며 트렌디한 색채가 입혀진다.
가 편곡은 그렇게 끝났다.
직후 방언을 통한 가이드 보컬 녹음이 시작된다.
“음흠흠....”
허밍으로 전주를 따라 부르다가 알 수 없는 언어로 스캣을 하고, 그러다가 팝, 레게 스타일의 멜로디를 흥얼대기도 한다.
“좋다.”
“정말 새로운 느낌이야.”
그렇게 레게 팝 스타일 음악의 초안이 완성됐다.
“........”
그런데 김민은 어딘가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다.
왜 그러는 걸까?
괜히 긴장하며 숨죽여 지켜보던 이들은.
“애매하네.”
그 한 마디로 작업물을 날려 버리려는 김민의 모습에 경악하고 만다.
제일 가까이 있던 사이먼 블랙이 황급히 뜯어 말렸다.
“워워! 진정해! 갑자기 왜 그래? 이런 끝내주는 레게 팝을 만들어 놓고선!”
“... 이게?”
“어, 아니... 내가 듣기에는....”
“방해 좀 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 봐.”
평상시와 달리.
집중력과 몰입도가 최고조에 이른 지금의 김민은 매우 날카롭고, 그래서 매서웠다.
팔을 탁 치워 버리더니 가이드 보컬만 남기고 모든 악기를 지워 버린다.
그러더니.
“BPM 조절하고 비트는 더 묵직하게... 레게 기타는 치워 버리자. 말랑 말랑하고 시원한 느낌의 신디 사이저를 메인에 걸어버리는 게 낫겠어.”
혼자 중얼거리며, 아예 새로운 비트와 악기의 편곡을 으로 채워나가는 게 아닌가?
“.......”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넋이 나가 버렸다.
보컬 멜로디는 그대론데, BPM과 리듬, 악기가 바뀌더니 전혀 다른 장르의 새로운 음악이 탄생해 버렸다.
이제 현장의 모든 이들은 숨 쉬는 것도 잊은 채 새 음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만 지켜보고 있었다. 레이나는 온 몸에 퍼지는 흥분 감을 애써 억누르려는 듯, 손을 쥐었다 펴고 있었다.
후렴구에 리듬이 변한다.
하우스에서 레게 풍 뎀보 리듬으로.
킥 리듬이 울릴 대마다 날카로운 하이햇과 어택감 있는 베이스 사운드가 동시에 울려 퍼진다.
거칠고 신경질적인 보이스 샘플 악기가 신디 사이저와 섞여 시원한 일렉트로 사운드를 만들어 낸다.
사이먼 블랙이 넋 나간 얼굴로 중얼거렸다.
“레게 팝을 한순간에 뭄바톤으로 바꿔버리다니... 프로듀싱 스킬이 장난 아닌데?”
지금까지 김민이 만든 곡은 많이 들었지만 작업 방식은 처음 보는 그였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 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랬다.
지금까지 김민은 홀로 작업해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두 번째 작업이 완료됐다.
“뭄바톤이라... 이건 괜찮네.”
그 중얼거림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김민이 돌아보며 물었다.
“이거 부를 사람?”
“......?!”
스튜디오는 서로 싸우는 이들로 소란스러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