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3화. 난리났네. >
“아...!”
이른 아침. 집에서 식사하며 뉴스 기사를 확인하던 장진영의 입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 할리우드 배우 로버트 스콧 음주운전 교통사고. 피해자는 치료 중 사망. ]
[ 로버트 스콧은 뮤지컬 영화 <1980 브로드웨이> 출연 예정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
[ 1980 브로드웨이는 어떤 영화...? ]
내가 잠이 덜 깬 건가 싶어 눈을 비비고 확인 해봐도 그대로였다.
출연 배우. 그것도 굉장히 비중 있는 배역의 유명 배우가 사고를 치는 바람에 제작 발표회도 하지 않은 프로젝트가 공개된 것이다.
로버트 스콧은 작품 연습을 마치고, 기분 좋게 술을 걸친 뒤 돌아가던 중이었다고 한다. 이것이 조사 단계에서 모두 드러났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정신이 확 깬다.
비록 자신들이 리드하는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제자이자 소속사 간판 아티스트인 김민이 직접 추진하던 일이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해당 영화의 정확한 정보까지는 밝혀지지 않았다는 것.
그래도 제적 일정에 차질이 생겼으니 안심하고 넘어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이거 어떻게 되려나.”
식사 의욕을 상실한 장진영은 한참 동안 뉴스를 보며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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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비아 퀸 작가님과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 그리고 잭 웰슨 감독님과 디즈니 프로듀서까지 뉴욕에 건너왔다.
그리고 긴급회의가 열렸다.
디즈니 프로듀서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했다.
“로버트 스콧과의 계약을 파기하고 새 배우를 물색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나마 다행이군요. 이런 일이 촬영 전에 벌어져서....”
“촬영 다 끝나서 개봉 일정까지 정해놓고 프로모션을 진행 중이었는데 사고가 터진 경우도 왕왕 있었지. 그런 일에 비하면야....”
올리비아 퀸, 헨리 윌리엄스의 말에도 잭 웰슨 감독님의 얼굴은 펴지지 않았다.
야심차게 시작하려던 작품이 제작 발표회 이전부터 삐거덕거리니 기분 좋을 감독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모든 일정을 연기해야 합니다. 이대로 제작 발표회와 촬영 일정을 진행하면 대중으로부터 지탄을 받게 될 거예요.”
감독님의 얼굴이 분노로 일그러졌다.
목소리가 거칠어졌다.
“니네 배우가 술 처먹고 운전하다가 사람을 쳐서 죽였다는데 손절하고 촬영을 강행하겠다고? 지금 제정신이냐?!”
목소리가 쩌렁 쩌렁 울린다.
지켜보던 이들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나를 포함해서.
분기에 씩씩 대던 감독님이 다시 침울하게 말했다.
“... 이런 식으로 뭐라고 할 겁니다.”
“.......”
“촬영 중 벌어진 사망 사고 같은 것과는 격이 다른 일이에요. 어느 정도 책임을 통감하고 자중하겠다는 의사 표현 정도는 보여줘야 합니다.”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비록 비즈니스라지만 <1980브로드웨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하나의 팀이었다.
“.......”
모두가 선뜻 입을 떼지 못하는 상황에서 내가 말했다.
“그러면 일정 연기를 어느 정도 해야 할까요?”
“뭐, 새 배역을 뽑고 다시 재정비하는 기간까지 고려하면 최소한 1년은....”
“이게 그 정도까지 갈 일은 아닙니다.”
디즈니 프로듀서였다.
모두의 시선 속에, 그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다 함께 사망자에 대해 조의를 표하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1년은 너무 길어요. 다른 배우와 스텝들의 거취를 고려하셔야죠.”
그의 눈빛이 이글거렸다.
“어떤 회사 직원이 음주 운전 사망 사고를 냈다고 회사 전체가 휴무를 하는 것도 이상한 일 아닙니까?”
“........”
“감독님의 뜻은 충분히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건 과한 처사에요. 감독님 말대로 일정을 일 년 동안 딜레이 한다고 했을 때 발생할 피해를 생각해보세요. 수백이 넘는 사람들이 일거리가 일 년 동안 끊기는 거라고요.”
그 말도 맞는 말이다.
“모든 책임은 프로듀서인 제가 집니다. 모든 일정은 예정대로 진행하도록 합시다. 제가 앞장서서 비바람을 맞아 줄 테니 여러분은 제 뒤를 쫓아오시면 됩니다.”
지금까지 존재감이 전무했던 프로듀서님이 본격적으로 부각되는 순간이었다.
“아무 일 없을 겁니다. 저를 믿으세요.”
그 카리스마에 압도된 우리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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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예정대로 제작 발표회가 열렸다.
통상적인 질문과 대답이 오가는 가운데, 장내는 뜻 모를 긴장감에 휩싸여 있다.
다들 언제, 누구로부터 ‘그 질문’ 튀어나올지 모르니 노심초사하는 거겠지.
하지만 워낙 좋은 떡밥이니 냉큼 튀어나와 물어버리는 이는 등장할 터.
“얼마 전 로버트 스콧 씨와 관련된 음주운전 사망사고에 대해 묻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왔구나!
나를 포함, 모두가 긴장한 표정으로 해당 기자를 바라본다.
“사건 피해자에 대해 유감을 표하셨던데, 공식 입장 발표와 후속 대처는 그것으로 끝입니까?”
참 교묘한 질문이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 난감해하고 있는데.
“해마다 수많은 이들이 다양한 사건 사고를 일으키고, 또 목숨을 잃습니다.”
우리의 프로듀서님이 등판하셨다.
듬직한 체구처럼, 묵직한 어조와 날카로운 카리스마를 뿜어내며 단숨에 상대 기자를 압박하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연대 책임 유무에 대해 거론하고 싶으신 모양인데, 바꿔 질문해 봅시다. 어떤 회사의 직원이 큰 사고를 일으켜서 사회적 물의를 일으켰다고 했을 때, 그 직원을 고용한 회사는 대체 어디까지 책임을 져야 하는 걸까요?”
“어, 그건....”
“회사 운영을 아예 중단해야 합니까? 직원의 실수를 함께 통감하는 차원에서? 다른 직원들이야 생계에 피해를 입던 말던?”
“그거하고는 이야기가 조금 다른....”
“뭐가 다른 겁니까? 예시와 다른 게 있다면 이번 일에 대해 우리 역시 피해자 입장이라는 겁니다. 제작 일정에 차질이 생겼고 우리의 소중한 프렌차이즈에 안 좋은 꼬리표가 달렸으니까요.”
“........”
회장은 침묵에 휩싸였고 프로듀서님은 할 말 다 했다는 듯 어깨를 으쓱이며 마이크를 내려놓으신다. 이번에는 내가 마이크를 들었다.
“기자님의 질문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어요.”
“.......?”
모두가 의아한 얼굴로 날 바라본다.
“제가 곡을 주거나 프로듀싱한 가수가 사석에서 어떤 사고를 쳤다고 가정하면, 저는 공식 입장 발표와 후속 대처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
“지금까지 수많은 스타들이 사고를 쳤을 텐데, 그 프로듀서와 매니지먼트는 어떤 식으로 대처했나요? 기자님은 저보다 연배가 높고 업계 지식도 풍부할 테니 정답을 알고 계시겠죠?”
기자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난 천연덕스런 얼굴로 물었다.
“제가 진짜 어리고 아무것도 몰라서 물어보는 거예요. 우리에게 방금 그 질문을 던졌을 때 기자님은 마치 학생에게 과제에 대해 질문하는 교수님 같아 보였거든요.”
여기저기 웃음이 터져 나온다.
난 최대한 순수한 얼굴로 반문했다.
“알려주세요. 그런 경우는 어떻게 해야 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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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날 제작 발표회는 다른 의미로 크게 화제가 됐다.
[ “가수가 사고 치면 작곡가는 어떻게 후속 대처를 해야 하는 걸까요?” 영화 제작 발표회에서 기자에게 던진 김민의 질문! ]
“어휴....”
기사를 본 장진영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냥 좀 가만히 있지 그 새를 못 참아서 또....”
프로듀서의 반박이면 충분했다.
그런데 김민이 끊어 오르는 화를 못 참고 나서서 거하게 사건을 일으켰다.
본인은 어리고, 아무것도 몰라서 물어본다는 식으로 가식을 떨었지만....
“뭘 어리고 순진해서 아무것도 몰라? 이 녀석, 가식이 정말 하늘을 찌르네.”
“그런데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요? 피해자에게 조의를 표했으면 됐지 거기서 뭘 더 하라는 건지 참....”
“하여튼 기레기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회의실에 있던 JJ 엔터테인먼트 관계자들도 한 마디씩 던졌다.
장진영은 혀를 찼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굳이 제 성질 못 이기고 튀어나가서 적을 만드는 행위를 할 필요가 없었다는 거야. 프로듀서가 나서서 시원하게 반박하고 깔끔하게 마무리 짓던 상황이었는데....”
“그런데 그것으로 상황이 끝났다고 보기에는 현장 분위기가 조금 미묘하긴 했어요. 제가 보기에는 그걸 알고 민이가 나서서 마무리한 거예요. 대중이 이해하기 쉽게 작곡가와 가수의 관계로 빗대면서요.”
“그러니까 그럴 필요가 없었다는....”
“있죠. 1980 브로드웨이 원작자가 민인데요.”
한 팀장의 발언에 장진영이 멈칫했다.
해당 팀장은 역설했다.
“민이 입장에서는 자신의 소중한 작품에 음주운전 사망사고 꼬리표가 달릴 수 있는 일이었어요. 그걸 깔끔하게 털어낼 필요가 있었던 거죠. 가수가 사석에서 사고친 걸 작곡가가 책임지고 후속 대처하라는 게 맞는 상황인 거냐. 그러면 대체 어디까지 책임을 대신 져줘야 하는 거냐. 역으로 질문하면서요.”
“아....”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탄성.
장진영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비유하니 이해가 되네.”
“민이가 용감하게 잘 나섰다고 봐요. 어쨌든 작품과 다른 동료들을 모두 보호하려고 나선 거였잖아요.”
“오히려 이번 일로 제작사와 동료들에게 확실히 점수 좀 땄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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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 시원했어!”
“말 잘 했다. 아니, 배우가 사석에서 깽판 친 걸 제작팀과 다른 배우들이 뭘 어쩌라고?”
“맞아. 동료 기자가 사석에서 사고 쳤다고 본인들도 연대 책임지고 그럴 거 아니잖아?”
제작 발표회가 끝난 직후 돌아가는 길.
다들 나한테 몰려와 칭찬을 퍼부었다.
감독님도 한 말씀 하셨다.
“제가 큰 실수를 할 뻔 했습니다. 프로듀서님과 민군 덕분에 그것을 깨달았어요. 대신 나서줘서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난 씨익 웃었다.
“미안할 게 뭐 있어요? 오히려 감독님이 대단한 거죠.”
“제가 대단하다고요?”
“본인의 생각만 내세우지 않고 동료들의 의견을 귀담아 들어주셨잖아요.”
“아....”
“그것 하나만으로도 감독님은 충분히 멋지고 대단한 분이세요. 안 그래요?”
내 말에 적극 동의하는 사람들.
감독님은 날 가만히 바라보다가 한 말씀 하신다.
“이제 보니 나이는 어려도 민 군이 저보다 훨씬 생각이 깊고 어른스럽네요. 그리고 용감해요. 이번에 많이 감탄했고,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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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자마자 기절하듯 잠을 잤다.
깨어나고 보니 집에 다니엘과 샬럿이 없었다.
테이블에 샬럿이 만든 요리와 쪽지가 있었다.
[ 너무 깊이 자고 있어서 깨우지 않았어. 잭슨 감독 님이 호출해서 다녀올게. ]
샬럿이 점점 일등 신부감이 되어간다.
큰일이네.
감동 속에 홀로 식사를 하던 중 대표 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대표님은 굳이 적을 만들 필요가 있어냐며 아쉬움을 드러내셨지만....
[ 그래도 작품과 팀을 보호하려고 했던 마음만큼은 칭찬하지 않을 수가 없겠더라. 잘 했어. ]
마지막 부분은 칭찬해 주셨다.
스승의 칭찬에 괜히 안도감과 함께 뿌듯함이 밀려온다.
사실 내가 정말 잘한 짓인지, 괜히 나선 것은 아닌지 조금 애매했거든.
“한국 분위기는 어때요?”
[ 난리 났지 뭐. ]
“어느 정도 나요?”
[ 가요계뿐만 아니라 영화, 심지어 뮤지컬 쪽까지도 뒤집혔어. 디즈니에서 제작하고 잭 웰슨 감독이 디렉팅하는 뮤지컬 영화의 원작자가 너라는 말에.... ]
“저 혼자 다 한 게 아닌데요.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과 올리비아 퀸 작가님. 셋이 함께 만든 거예요. 그렇게 좀 말씀해 주시지 그러셨어요. 다 아시면서....”
[ 야. 나도 지금까지 네 말만 듣고 정말 그런 줄 알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던데?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 사실상 네가 거의 다 했고 자신들은 작은 도움 정도만 줬을 뿐이라며, 초안 제작 당시 상황 다 밝혔어. 너 그 인터뷰 기사 못 봤구나? ]
“... 그런 게 언제 어디에서 떴는데요?”
[ 어디냐면... 에이, 계속 전화 오네. 이게 다 너 때문이야! 링크 보내줄 테니 확인해 봐. 나 끊는다! ]
“......?”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잠시 후, 대표님이 보내준 링크의 기사 전문을 확인한 나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뉴욕 타임스와 더 가디언 지.
각각 미국과 영국을 대표하는 일간지에서 두 분을 인터뷰했는데 그 내용에 초창기 제작 과정이 굉장히 상세히 실려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내용이 온통 내 칭찬뿐이라는 것이다.
아니...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