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56화 (156/205)

< 156화. 신곡 청음회 >

다음 날.

아침 일찍 엄마가 싸준 반찬들을 잔뜩 가지고 에버가든 숙소로 향했다.

최명규 매니저님의 차가 성수동 한강뷰 아파트 부근에 멈춰서자 난 놀란 표정으로 반문했다.

“정말 여기가 에버가든 숙소에요?”

“좋은 곳이죠?”

“이건 특별히 신경을 써준 정도가 아니라... 어우, 아무튼 굉장히 좋네요.”

차가 단지 내로 진입하는 동안, KM 엔터 스타더스트 활동 시절이 떠올랐다.

당시 우리 숙소는 논현동 다세대 주택이었다. 월세도 정확히 기억난다. 보증금 5000만원에 65만원. 방 세 개 화장실 둘. 가끔 바퀴벌레도 나오는 그런 곳에서 우리 멤버가 몸을 부비고 살았던 것이다.

음, 당시 환경을 생각해보면 싸우지 않는 것도 이상하네.

아무튼 그런 곳에서 지냈던 시절을 생각하면 지금 대접은 정말 파격적이었다.

“매트로 보이즈나 엔 플라워 초창기 숙소도 이랬어요? 내가 알기로 이런 퀄리티 숙소는 대형 기획사에서도 월드 투어 돌 정도가 아니면 잘 안 해줄 텐데...”

“그건 아녜요.”

지하주차장에 진입한 차량을 주차하며, 최명규 매니저님이 대답햐주신다.

“그 친구들은 회사에서 가까운 강남 빌라에 거주했었죠. 그리고 원래 숙소에서 잡았던 곳이 엔 플라워 숙소였던 곳이에요.”

“네? 그런데....”

“그.. 에버가든 친구들 집이 다들 잘 살더라고요. 그 중에서도 특히 몇몇 친구가....”

“아....”

문득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반지희의 어머니.

서울 부동산 알짜배기 땅을 모두 가지고 있는 어마어마하신 분!

매니저님의 어색한 표정을 보고 난 더 이상 파고 들지 않기로 했다.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에버가든 멤버들, 그리고 함께 사는 여성 매니저분이 우리를 맞아줬다.

난 지희에게 우리 어머니가 싸준 반찬 보따리를 건네주며 집을 둘러봤다.

한강 통창 조망!

집도 굉장히 넓고 고급스러워서 나라면 평생 이곳에서 살고 싶을 것 같다.

심지어 여기는 2020년 경 되면 서울 3대장 아파트를 꼽으라면 무조건 들어가게 되는... 성수동 랜드 마크 아파트 중 하나였다.

난 반지희에게 귓속말로 물었다.

“여기 너희 어머니가 마련해주신 곳이지?”

“어떻게 알았어?”

휘둥그레지는 두 눈.

“역시....”

“원래 숙소였던 빌라를 보시곤 이런 곳에서 우리 딸들 생활하게 둘 순 없다고 하시더니 덜컥 계약해 버렸어.”

“전세?”

“매매.”

“탁월한 선택이네. 여기 앞으로 계속 오를 거야. 무조건 계속 가지고 계시라고 그래.”

“안 그래도 그 말씀하시던데....”

우리가 속닥거리는 동안 아침 식사가 준비되고 있었다. 놀랍게도 요리사가 주세아였다.

“세아가 우리 숙소 전잠 요리사야! 기대해도 좋아.”

세아. 앞치마가 굉장히 잘 어울린다.

사실 저 비주얼에 뭘 걸치더라도 예쁘겠지만..

“잘 먹겠습니다!”

장담했던 대로 요리 솜씨가 상당했다.

만족스럽게 아침 식사를 하면서 숙소를 둘러본다.

내가 준 선물을 포함해서 없는 게 없다.

심지어 소파도... 잘 모르지만 굉장히 고급스러운 제품으로 보였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생활하면서 부족한 거 없어요? 제가 선물해줄게요.”

멤버들에게 물어본다.

“괜찮아요! 저번에 안마의자에 공기청정기에... 이것저것 엄청 선물해주셨잖아요!”

“맞아요! 선물해주신 물건들 덕분에 호화 생활하고 있어요!”

다들 손을 내젓는다.

난 그래도 뭔가 해주고 싶어서 곰곰이 생각해보다가 여자 매니저님에게 물었다.

“스타일러 없죠?”

“네? 아, 최근 유행한다는 그거... 없어요.”

“그러면 그거 몇 대 선물해 드릴게요.”

그리고 휴대폰을 꺼내니 다들 기겁을 한다.

만류하는 것이다.

하지만 반지희는 달랐다.

“우리 숙소 주소 불러줄게!”

“너 미쳤어? 아니에요! 진짜 필요 없어요!”

“괜찮은데...!”

숙수 주소는 오면서 확인했으니 필요 없고.

난 기어이 스타일러를 최고급으로 세 대 주문했다.

그러면서 말했다.

“저도 미국 숙소에 두 대 비치해뒀는데 이게 정말 좋더라고요. 사복 관리 같은 거 이걸로 해보세요.”

“뭐 하러 두 대씩이나 들였어? 혼자 사니까 한 대면 충분하지 않아?”

지희의 반문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같이 사는 친구들이 있으니까.”

“아, 다니엘하고 샬럿?”

식사를 마치고 본격적인 숙소 탐방을 했다.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는데 원체 깔끔한 것도 있지만 주세아가 어지럽혀 있는 것을 가만 놔두지 않는다고 한다.

“안 치우고 늘어져 있으면 바로 등짝 스파이크 날아와요!”

“아직 안 맞아 보셨죠? 진짜 아파요! 저 지난 번에 척추 부셔진 줄 알았다니까요!?”

마냥 엄살로 들리지는 않는데....

지희의 방은 공주처럼 화려했고 주세아의 방은 굉장히 모던했다.

세아의 방에서 등짝 스파이크의 위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 너 프로듀서님 브로마이드 여기저기 붙여 놓고 있었잖아! 그거 다 어디 갔....”

쫘아악!

“.........!”

맞은 사람도, 지켜보는 우리들도 오금이 저려 온 몸을 부르르 떨었다.

... 진짜 세다!

이제 약속한 테스트의 시간!

“없는 거 또 하나 발견. 쓸 만한 오디오가 없네.”

당장 최고급 블루투스 오디오 기계 한 쌍을 주문했다. 다들 만류하는 것을 포기하는 눈치였다.

“가수라면 좋은 기계로 음악 듣는 걸 생활화해야죠. 아, 이어폰하고 헤드폰도 좋은 걸로 하나씩 사드릴게요.”

“.......”

즉석 쇼핑을 끝마친 뒤에야 테스트를 진행했다.

방식은 간단했다.

만들어 둔 음원을 아무 설명 없이 연속해서 틀어주고 멤버들 중이 선택하는 방식이다.

첫 번째 음악은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섞어 만든 힙합 댄스곡!

강력한 신스 베이스가 곡의 테마를 구성하고, 어택감 강한 힙합 비트가 온 몸을 들썩이게 만든다.

두 번째 음악은 일렉트로닉 팝!

쉴 세 없이 꿀렁이는 신스 베이스 위에 찰랑 찰랑, 시원하며 리드미컬 기타 세션을 섞어 만든 곡인데....

“아, 이거 왠지 디즈니 OST 같아!”

“신나면서 희망적인 곡이네.”멤버들의 반응이 유난히 좋다.

난 웃을 수밖에 없었다.

말 그대로 디즈니 OST 스타일을 생각하고 만든 곡이기 때문이었다.

우리 1980 브로드웨이 프로듀서님이 극장 개봉용 애니메이션 음악 작업을 제안하셨는데 연습 삼아서 만든 곡이었다.

참고로 아직 가사와 제목은 없다.

세 번째 음악은 팝 댄스 음악.

상큼하고 톡톡 튀는 개성을 부각시킨 곡이다.

셋 중 가장 트렌드한 음악이다.

마찬가지로 제목 가사는 아직 없다.

“자, 여기까지.”

에버가든을 위해 준비한 세 가지 음악을 모두 들려줬다.

난 고민에 빠진 모두에게 물었다.

“어떤 곡이 좋아요?”

반응이 갈렸다.

누군가는 첫 번째, 누군가는 두 번째, 혹은 세 번째.

참고로 반지희가 선택한 음악은 두 번째 음악이었다.이렇게 되면 두 번째 음악이 한 두 표 차이로 선택될 것 같은데....

마지막 주세아의 의견이 중요해졌다.

아까부터 감정을 알 수 없는, 굉장히 무표정한 얼굴로 음악을 감상하고 있던 주세아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했다.

“세 곡 모두 마음에 들어. 그러니까 세 곡 다 우리가 부르자.”

“...오!”

“그래도... 되나?”

“그러면 좋긴 하겠는데....”

의견이 와 닿았던 모양인지, 다들 내 눈치를 본다.

주세아는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지희가 아직 수줍음 많고 낯을 가리는 다른 멤버들을 대신해서 당당히 요구했다.

“이렇게 됐으니 다 줘!”

역시 반지희.당당함을 넘어 뻔뻔하기로는 내가 아는 여자애들 중 쟤가 최고다!

난 씩 웃으며 말했다.

“원래 그러려고 했었어. 세 곡 다 가져,”

@

점심 식사는 회사에서 대표님, 팀장님들과 함께 하는 것으로 예정되어 있었다.

사옥 회의실에 대표님과 팀장급 모든 분들이 모여 계셨다.

“설마 다들 저 기다리고 있었던 거예요.”

“왜 아닐 거라고 생각해?”

난 한쪽을 보며 말했다.

“수연 팀장님이 계시니까요. 엔 플라워 회의 중인 줄 알았어요.”

아티스트 1팀장 최수연.

그녀는 엔 플라워의 어머니 같은 존재였다.

누나들을 위해서라면 회사 모두와 싸울 정도로 강단이 있는 분이었다.

대표님이 의미심장한 얼굴로 묻는다.

“수연 팀장이 직접 말할래?”

“그래야죠. 사실 부탁이 있어서 아래층에서 다른 일 하고 있다가 급히 올라온 거예요.”

“부탁이라면 엔 플라워 관련 내용이에요?”

“저 방금 소희에게 들었어요. 오전에 에버가든 숙소에 들려서 세 곡이나 신곡을 선물해줬다면서요?”

김소희.

에버가든 숙소에 함께 사는 여자 매니저의 이름이었다. 곡을 받고 바로 업무 보고를 올렸던 모양이다.

“우리 애들도 신곡 챙겨주세요! 설마 이제 와서 차별대우 하시려는 건 아니죠?”

“하하....”

결국 이렇게 되는 구나.

대표님이 말씀하셨다.

“다른 이야기하기 전에, 일단 네가 줬다는 그 세 곡부터 같이 들어보자.”

표정이 의미심장해진다.

“엔 플라워에게 줄 곡도 같이.”

“........”

내가 뭔가 숨기고 있다고 확신하는 눈빛이었다.

대표님뿐만 아니라 이 자리에 모인 모든 팀장님들도.

아주 먼지까지 탈탈 털리고 돌아가게 생겼구나.

에버가든에게 선물한 세 개의 곡에 더해 엔 플라워를 위한 또 하나의 습작곡을 들려줬다.

다크하고 모던한 팝 댄스.

조금 실험적인 음악인데, 킥과 스네어로 메인 비트를 구성한 뒤, 묵직하면서 웅장한 브라스를 베이스로 배치했다.

또 다른 베이스를 교차 사용했는데 이건 사이드 체인을 걸어서 꿀렁거리는 느낌으로 사용했다.

퍼커션으로 리드미컬함을 살리기도 했고.

그러면 이 곡이 어둡고 무거운 곡이냐?

전혀 그렇지 않다.

분명 인트로와 벌스까지는 어둡게 진행 되다가 브릿지부터 후렴까지는 틴팝스러운 느낌으로 변한다.

두 번째 후렴이 끝나면 바로 댄스 브레이크가 시작되는데 묵직한 킥 드럼과 꿀렁거리는 베이스 사운드가 미칠 듯한 고양감을 선사한다.

춤추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이쯤에서 곡의 제목과 컨셉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제목은 나르시시즘이라고 지었다.

난 굉장히 잘 났고, 아름답고, 예쁘고...

그런 내가 장하고 사랑스러워 견딜 수 없다는... 자화자찬이 아주 극을 달리는 그런 내용이다.

곡이 끝나자.

“야! 이거 진짜 마음에 든다.”

“좋네요! 진짜 좋다!”

“이거 차트 한 번 휩쓸겠는데?!”

다들 박수를 치고 난리 났다.

특히 최수연 팀장님은....

“어? 수연 팀장 왜 울어?”

눈시울이 촉촉이 젖어 있었다.

대표님의 물음에 수연 팀장님은 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곡과 컨셉이 굉장히 훌륭해서... 우리 애들이 부르면 정말 찰떡 같이 잘 어울릴 것 같아요! 다들 굉장히 좋아할 거고요!”

“........”

살짝 당혹스럽다.

이게 눈물이 날 정도로 좋았어?

갑자기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걸 에버가든에게 들려줬어야 했던 것 같은데...!?

사실 대표님의 반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찌나 기분이 좋은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야, 이거 제목이 뭐야?”

“나르시시즘이에요.”

제목과 컨셉을 설명해주니.

“진짜 좋다! 진짜 마음에 들어!”

격양된 얼굴로 박수까지 치신다.

회의실 분위기가 이토록 좋으니 괜스레 나도 들떠서 몇 가지 안무를 보여준다.

도도하게 턱을 치켜 들고, 왼손을 허리에 얹은 채 오른손으로 툭 어깨를 털어주는 안무라던가.

“그 동작 좋다! 표정이나 몸짓이 굉장히 도도하고 살짝 건방진 느낌도 있어! 그거 포인트 안무로 쓰자!”

오른손에 든 손거울을 보는 시늉을 하며 왼손으로 턱선을 유려하게 쓸어주는 동작이라던가....

“캬! 나르시시즘 그 자체다! 그게 이 곡의 메인 안무다!”

아니, 이렇게 칭찬해주면....

“다른 안무도 있어요! 음악 틀어봐요! 내가 오늘 다 보여주고 갈 테니까!”

“그래, 민이 잘한다!”

“역시 우리 회사 간판은 김민이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 없잖아!

칭찬은 김민도 춤추게 하는 법이니까!

사람들의 열광적인 환호 속에, 난 아예 음악에 맞춰 춤을 한바탕 선보였다.

그렇게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고 나서야 뒤늦은 후회를 했다.

아아, 내가 무슨 짓을...!!!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