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9화. 눈 내리는 밤 >
뮤직 비디오가 막 재생되려는 그때.
“뭐야? 뮤직 비디오 보려고? 같이 보자! 재미있는 거 혼자만 보지 좀 마!”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그 겨울 송 나오는 날이지? 나도 볼래. 잠깐 기다려!”
현관문이 열리며 다니엘과 샬럿이 들어왔다. 둘은 내 모니터를 모더니 잔뜩 사들고 온 먹거리들을 테이블 위에 두고 양 옆자리에 앉았다.
잠시 멈췄던 뮤직 비디오를 재생한다.
눈 내리는 밤.
도시가 하얗게 물들면....
뮤직 비디오 내용은 간단하다.
겨울.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가득한 시내,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는 여자 주인공의 사랑 이야기.
설정 상으로는 한 명의 캐릭터지만 에버가든 멤버들이 돌아가며 연기를 하고 있다. 처음 보는 구성이라 이게 편집되면 어떻게 보일까 궁금했는데....
‘생각보다 괜찮네.’
일단, 흔히 말하는 때깔이 굉장히 좋다. 강남거리는 대형 트리와 일루미네이션 등,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제대로 연출되어 있었고 밤하늘에서 살랑거리며 떨어지는 눈송이는 굉장히 예쁘게 쌓여 간다.
잔잔하고 부드러운 피아노를 베이스로 한 발라드 스타일 음악이 부담 없이 녹음되어 있었다. 멤버들의 보컬, 그리고 화음이 풋풋함을 담고 기분 좋게 스며든다.
“민이는 대체 언제 나오는 거야?”
“기다려 봐. 다니엘 너는 왜 이렇게 참을성이 부족해?”
날 사이에 두고 두 사람이 티격태격 거린다.
난 피식 새어나오는 웃음으로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달래본다.
이제 곧 내가 등장할 차례였기 때문.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동안 진상 손님들 때문에 진이 빠져 있던 여자 주인공이었다.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펼쳐져 있는 바깥, 통 유리창 너머를 멍하니 바라본다.
다정하게 강남대로를 걷는 커플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따뜻한 캔 커피 하나가 계산대 위에 올려지고, 무의식적으로 계산을 하려던 여자 주인공은 손님의 얼굴을 보고는.
“.......!”
세상 표정이 환해진다.
양 옆의 두 녀석이 수선을 떤다.
“드디어 나왔다!”
“우와... 어? 잠깐, 뭐야. 민이가 저렇게 잘 생겼었어? 에이...”
내 미모를 도저히 인정하지 못하고 계속 비교하는 다니엘. 이마에 딱밤을 날려준 뒤 계속 화면에 집중한다.
순간 다섯 소녀의 얼굴이 5분할되어 화면에 펼쳐지는데 모두가 설레고, 반갑고, 기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각자 매력이 뚜렷하지만 주세아는 과연 군계일학이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복장을 하고, 머리카락도 살짝 헝클어진 상태인데도 굉장히 예쁘다.
저 얼굴 짤 한동안 또 엄청 떠돌아다니겠군.
힘들고 고단하고 외로웠던 분위기는 거기서 끝!
두 커플은 꽁냥거리며 함께 편의점 일을 마무리하고 잠깐의 데이트를 한다.
같이 떡볶이를 먹고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즐기고.
그냥 여느 연인들의 데이트 모습이었지만 그림이 굉장히 예쁘게 담겨 있었다. 연출 구성이 음악과도 찰떡이었고 무엇보다도 에버가든 멤버들이 자연스럽게 한 명의 캐릭터를 연기하는 듯, 자연스럽게 인물이 체인지 되는 편집 구성이 눈을 즐겁게 한다.
마침내 등장하는 집 앞 골목씬.
이 부분이 하이라이트라고 하시더니... 정말 모든 요소에 특별히 신경을 기울였다는 것이 느껴진다.
씬 하나하나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요즘은 보기 힘든 초보 연인의 풋풋하면서도 특유의 달달한 사랑이 굉장히 예쁘게 연출됐다.
그리고 마침내 이어지는 키스씬!
“......!”
“......!”
순간 세상의 모든 소리가 멎었다.
그리고 모든 풍경이 하얗게 탈색된다.
존재하는 것은 오로지 포옹하고 입을 맞추는 연인 뿐.
아... 더, 더 이상 못 보겠어!
내 키스씬이라니!
온몸이 오그라들 것 같다.
나는 시선을 외면했지만....
“오오...!”
“와...!”다니엘과 샬럿은 그 어느 때보다도 장면에 몰입해 있었다.
굉장히 민망하다.
심지어 다른 멤버들과의 키스씬이 연속으로 펼쳐진 덕분에 장면도 길게 잡혀 있었다.
빨리 좀 지나가라.
저 장면 대체 왜 안 끝나는 거야?
그렇게 뮤직 비디오는 끝.
“한편의 로맨스 영화를 보는 것 같았어.”
“음악, 연출, 장면.... 모든 게 마음에 들어! 최고의 크리스마스 뮤직 비디오야!”
다니엘과 샬럿은 기립 박수를 보냈다.
나는 민망한 나머지 손을 저으며 말했다.
“그러지 말고... 아쉬운 점은 없었어?”
“없었는데?”
“다 좋았어. 그런데 우리 반응보다는 팬들의 반응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어디 좀 보자.”
어어...?
내가 만류할 틈도 주지 않고 샬럿이 뮤튜브 창을 새로고침 해 버렸다.
내가 클릭할 때만 해도 10개가 넘지 않았던 댓글이... 잠깐 사이에 수천 개로 늘어났다.
조회 수도 수십만 뷰를 돌파했고.
... 업데이트 한 지 5분도 안 됐을 텐데?!
“역시 칭찬이 자자한데?”
“그런데 주인공이 에버가든 친구들인데... 왜 민이 이야기 밖에 없는 거지?”
뭐?
“정말? 어디....”
샬럿의 말에 깜짝 놀라 화면을 확인해본다.
과연....
[ 환상적인 선율! 독특한 구성과 예쁜 색채. 그 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민의 미모! ]
[ 내 생각인데, 이 뮤직 비디오에는 불필요한 요소가 너무 많은 것 같아! 그냥 민 혼자 거리를 걷게 하고 그것만 계속 보여주는 게 더 나았을 뻔 했어 ]
영어와 스페인어로 온갖 주접 글이 가득 했는데 그 대상이 바로 나였다.
아니, 왜 이렇게 외국 팬이 많은 거지?
아직 에버가든은 외국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한국 신인 걸 그룹일 텐데...?
곧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블랙 로즈, 노아 공식 계정에서 이 뮤직 비디오 링크했네. 네 팬들이 그거 보고 몰려온 거야.”
“어? 정말?”
“여기 그렇게 적혀 있는데... 확인해보자.”
샬럿의 말이 맞았다.
두 공식 계정에 <눈 내리는 밤> 뮤직 비디오가 링크 됐다. 내가 뮤직 비디오를 보기 전에 아이작과 잭슨 감독님께 내 출연 사실을 알리고 링크를 보냈는데 그걸 바로 이렇게 올려준 것이다.
“나도 공식 계정에 올려야겠다.”
“나도!”
두 친구가 본인들의 SNS 계정에 접속하는 동안, 나 역시 내가 운영하는 모든 계정에 뮤직 비디오를 공유하고, 주변 지인들에게 링크를 뿌렸다.
이왕 이렇게 된 거. 다른 지인들에게도 홍보를 부탁할 셈이었다.
엔 플라워는 그럴 필요가 없는 그룹이었지만 에버가든은 이제 갓 데뷔한 신인 아닌가? 보다 적극적인 홍보가 필요한 시점이다!
... 라는 걸 엔 플라워 누나들이 과연 납득해 줄지는 모르겠다.
‘아무튼, 성적이 잘 나와 줘야 에버가든 멤버들에게 미안하지 않을 텐데....“
원래 주려고 했던 시크릿 가든이 너무 떠버려서... 눈 내리는 밤 성적이 좋게 나와 주지 않으면 정말 곤란하다
사실 적극적으로 홍보해주는 건 이런 미안한 마음에 기인한 부분도 있었다.
[ 제가 뮤직 비디오에 출연했어요! 감상해 보시고 나쁘지 않으면 SNS 링크 좀 부탁드립니다! ]
나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홍보를 이어갔다.
@
[ 신인 걸그룹, 에버가든의 두 번째 싱글 <눈 내리는 밤> 차트 올킬! ]
[ 데뷔곡 <블루 웨이브>에 이은 크리스마스 송 <눈 내리는 밤> 대 성공! ]
[ 에버가든. 보컬 그룹으로서의 가능성을 증명하다! ]
JJ 엔터테인먼트의 신인 걸그룹, 에버가든의 두 번째 스텝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다.
퍼포먼스가 아닌 발라드 음악이라니?
보컬 능력이 뛰어난 특정 한 명의 역량에만 의존하는...구색 맞추기 용 음악이 아니었다.
모두의 보컬을 부각시키기고, 더 나아가 아카펠라의 장점까지 가져온 고난이도의 보컬 곡이었다.
수많은 이들의 예상을 깬 파격적인 행보는 12월 아이돌판의 관심을 독점하기에 충분했다.
결정적으로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바로 로맨스 영화 같은 뮤직 비디오!
에버가든의 팬이 아니었던 이들조차도 주목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 구성이 진짜 독특하네. ]
멤버들의 번갈아 가며 한 명의 여자 주인공을 연기하는데, 연출과 편집이 절묘해서 보는데 어색함이 없었다.
[ 김민 미모... 실화냐? ]
┗ 편의점 계산대에서 처음 등장했을 때 잠시 숨 쉬는 걸 잊었음;;
┗ 표현이 잘 생각이 안 나는데... 그냥 아름답다는 표현이 제일 적절한 것 같음.
┗ 사람 자체가 아름다움을 타고 난 것 같아. 비주얼뿐만 아니라 저런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감성도....
첫 등장 이후부터 화면 가득 채우는 꽃미모.
미소 짓고, 박장대소하고, 추위에 얼굴을 찡그리고....
수많은 굉장히 세밀하게 표현해주는 표정 연기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넋을 잃게 만든다.
무엇보다도 파격적인 것은 여자 친구를 향한 따뜻하고 부드러운 표정. 그리고 그윽한 눈동자였다.
그것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자신을 향한 순간....
[ 머리가 멍해지네;; ]
┗ 형... 나, 날 가져... 아씨 이게 아닌데.;;;
┗ 하! 나 상남잔데 왜 이렇게 가슴이 설레는 거냐?;;;
잡생각이 싹 사라지며 머릿속이 멍해진다.
첫 데뷔 때도 화제가 된 미모였지만... 그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아름다워졌다.
수많은 이들이 김민에게 주목하는 상황 속에서, 유일하게 존재감을 표출한 사람은 주세아 뿐이었다. 그러나 그조차도 김민이 뿜어내는 팔색조 매력에 크게 부각되지 못했다.
누군가는 이런 일에 대해 다음과 같이 분석했다.
[ 본격적으로 연기를 시작 하면서 어떻게 자신의 매력을 더 부각시킬 수 있는지, 사람을 더 홀릴 수 있는지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음. ]
결국 김민의 파트만 따로 모아 편집한 팬 메이드 영상이 제작됐다,
이것이 큰 이슈가 됐는데, 레이나를 비롯한 할리우드의 유명한 여자 샐럽들이 링크했던 것도 크게 한 몫 했다.
이 같은 상황에 장진영은 아쉬움 섞인 한 마디를 던졌다.
“이럴 것 같았으면 에버가든이 아니라 민이에게 노래시킬 걸 그랬네요. 지금이라도 추진해볼까?”
“.......”
회의실에서 쏟아지는 따가운 시선.
장진영은 즉시 태세를 전환했다.
“농담입니다. 주객전도야 어쨌든 크게 성공했고 심지어 해외에도 이름을 알렸으니 좋은 일이잖아요. 안 그래요?”
그는 열변을 토했다.
“차트 올킬! 음방 1위! 뮤직 비디오 조회 수 일주일 만에 6000만회 돌파!”
분위기 환기를 노리는 듯, 지금까지의 스코어를 공유하는 장진영의 표정과 목소리가 굉장히 밝았다.
“이게 어디 신인 걸 그룹에게 가당키나 한 성적이에요? 그리고 지금 상황은 김민 출연시키기로 결정했을 때 어느 정도 예상했었잖아요?”
“그래도 설마 이 정도로 주객이 전도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단 말이에요.”
에버 가든을 전담하는 4팀장의 발언에 팀원 모두가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장진영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전 예상했어요. 오죽하면 세계적인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과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민이를 이드라실로 지목하고 차기작 주인공으로 삼았을까요?”
비주얼 하나만으로 얻은 성과는 아니지만 굉장히 큰 몫을 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었다.
“아무튼 중요한 건 에버가든에게 시운이 왔다는 거죠.”
주객전도가 어쩌고저쩌고....
사실 배부른 소리에 불과하다.
“신인 때는 어떻게 해서는 이름을 알리는 게 중요해요. 큰 돈 들여서 최고의 프로듀서와 스텝을 고용하는 것도 홍보 목적이잖아요. 그런 점에서 보면 지금 에버가든의 상황은 굉장히 긍정적이다 못해 대단한 거죠.”
“알고 있습니다. 그냥....”
4팀장은 씁쓸하게 웃었다.
“이 모든 관심이 우리 아이들에게 온전히 쏟아졌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런 안타까움에 그랬던 거죠.”
장진영은 피식 웃으며 조금은 침울한 분위기를 정리했다.
“12월은 아직 많이 남았어요. 이 시간을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김민의 존재감을 지우는 것도 충분히 가능해요. 지원을 아끼지 않을 테니 에버가든을 올해의 신인으로 만들어 봅시다.”
올해의 신인!
그 말에 분위기가 반전됐다.
“전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뭐라고 해도 에버가든은 올해 나온 수많은 신인들 중에서도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으니까요.”
입가에 미소가 떠오른다.
“12월 15일에 발매될 첫 번째 미니 앨범으로 방점을 찍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