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2화. 연말 (3) >
첫 곡은 세뇨리타 리믹스.
원래는 레이나, 레이지와 함께 무대를 해야 하지만 사정상 이번에는 나 혼자다.
모든 파트를 나 혼자 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음향 기술이 불안하긴 했지만 일단은 라이브로.
“......!”
그러면서 격렬한 안무까지.
리허설을 하면서 생각했다.
혼자 하니까 좋은 점도 있다고.
안무를 보다 격렬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안타깝게도 레이지와 레이나는 춤꾼이 아니었기에 평상시에는 그들에 맞춰줘야 했다. 하지만 나 혼자 무대를 하게 되면 눈치 볼 것도 없지.
안무 최초 시안을, 무대를 가득 채운 남녀 백댄서들과 함께 그야말로 미친 듯 선보인다.
나를 향한 과도한 관심에 살짝 공황증이 올 뻔 했었는데, 춤과 노래에만 열중하니 어느 샌가 사라진다.
이거... 신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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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
무대를 기대하며 지켜보던 모든 이들이 입을 다물지 못한다. 무대보다는 주변 사람들 반응에 더 신경 쓰고 있던 두 사람.
반지희와 주세아가 신이 나서 귓속말을 했다.
“보고 있지? 다들 넋을 놓고 있어!”
“응!”
주세아는 애써 흥분을 억누르는 중이었다.
‘다들 민이의 무대에 감탄하고 있어!’
사실 자신이 보기에도 굉장한 무대였다.
리허설일 뿐인데, 목청 터져라 노래를 하고 몸이 부셔져라 춤을 추지 않나?
쟁쟁한 댄서들 사이에서도 유난히 눈에 띄고 있었다. 단순히 가수이고, 센터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다.
‘존재감이 굉장해.’
춤, 노래, 비주얼.
삼박자가 절묘하게 어우러지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도 알 수 있다.
프로듀서뿐만 아니라 가수로서 김민의 역량이 얼마나 굉장한지.
‘나도 언젠가는....’
어느 순간부터, 주세아는 주변의 반응도 개의치 않은 채 오로지 김민 한 명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크고 맑은 눈동자에 김민의 무대가 세밀하게 새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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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뇨리타를 끝내고 곧바로 <손을 잡아줘요>를 불렀다.
난 이번에도 최선을 다했다.
리허설이고 뭐고, 내게는 똑같은 무대였다.
난 무대에서 대충 대충 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다.
그렇게 노래를 끝마치고 나니....
“와아아!”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어느 새 무대 앞을 가득 채우고 있던 스텝과 뮤지션, 그리고 업계 관계자들이 감탄한 얼굴로 박수를 보내고 있었다.
... 깜짝이야.
언제 이렇게 모여 있었던 거야?
“감사합니다!”
허리를 접으며 큰 소리로 인사하고 무대를 내려간다.
“잘 했어! 네가 최고였어!”
기다리고 있던 장진영 대표님이 호들갑을 떨며 땀을 닦아주고 뚜껑을 따서 물병을 건네준다.
대기실로 이동하는데 대표님이 놀라운 사실을 전해 주신다.
“맞다. 민아, 네 가족들도 공연 관람할 거야.”
“네? 어떻게 된 거예요?”
“혹시나 싶어서 여쭤봤지. 보러 오실 의향 있냐고, 차 보내드리겠다고.”
“어떻게....”
“끝나고 집에 들렀다가 공항에 가는 것보다는 여기서 모여서 같이 가는 게 훨씬 편하잖아. 지금쯤 최명규 매니저하고 함께 있을 거야.”
어쩐지 언젠가부터 최명규 매니저님이 보이지 않는다 했더니....
난 진심으로 말했다.
“챙겨주셔서 고마워요.”
대표님은 피식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려주신다.
“알면 나한테 좀 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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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석이 빠르게 채워졌다.
관객들이 입장을 시작한 것이다.
관객 대다수가 특정 가수들의 팬클럽이었다. 각자 구역을 점거하고 응원 도구를 세팅하는 모습을 보며 다시 한 번 아쉬움을 느꼈다.
내 팬들도 이 자리에 함께 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러는 한편 눈으로 열심히 가족을 찾았다.
“안 보이네.”
좌석 번호도 알려주셨지만 찾기가 힘들어서 포기했다.
뭐... 최명규 매니저님이 책임지고 챙겨줄거라고 했으니 믿고 맡겨도 되겠지?
카메라는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는 가수들을 비춘다. 무대 앞 대형 전광판에 자기가 좋아하는 가수들이 뜰 때마다 팬들이 함성을 터트린다.
썬더볼트, 엔 플라워....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오니 괜히 가슴이 떨리고 긴장된다.
난 팬들이 없는데... 갑자기 조용해지면 어쩌지?
굉장히 민망할 것 같은데....
그런데 걱정이 무색했다.
전광판에 내 얼굴이 비추는 순간.
[ ......! ]
이전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난 함성이 울려 퍼진 것이다. 오죽하면 들떠서 상황을 즐기던 뮤지션들이 화들짝 놀라 하나 같이 귀를 틀어막을 정도였다.
그리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뭐, 뭐야?!
어디서 전쟁이라도 난 건가?
깜짝 놀라서 목을 움츠린 채 귀를 틀어막고 있는 모습까지도 그대로 비춰졌다. 웃음소리와 함성이 더 커진다.
그때 내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던 주세아가 날 툭툭 치더니 한쪽을 가리킨다.
에버가든, 엔 플라워 팬들이 모여 앉아 있는 곳이었다. 두 그룹의 팬들이 어느 새 날 위한 응원 도구를 치켜 들고 열심히 흔들어대고 있었다.
“아....”
순간 형용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래도 프로듀서라고 챙겨주는 건가보다.
손을 흔들어주니 일제히 내 이름을 연호해준다.
비록 내 팬들은 없지만... 마음이 든든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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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방송이 시작되기 전이었지만 입장 순간부터 현장 소식이 전해지고 있었다.
특히 관심을 모은 것은 팬덤 간의 치열한 응원전!
[ 썬더볼트! 썬더볼트! ]
[ 엔 플라워! 엔 플라워! ]
대형 아이돌 커뮤니티에 실시간 업로드 되는 현장 영상을 보며 발을 동동 구르는 이들이 있었다.
[ 우리도 있었어야 했는데...! ]
[ 으아, 이게 뭐야! 왜 우리만 저 장소에 없는 거지? ]
[ M본부... JJ... 평생 저주할 테다! ]
바로 김민 공식 팬 카페, 김민의 숲 정규 회원들!
[ 누가 우리 민이 영상 좀 올려줬으면.... ]
[ 우리 민이 기죽어 있는 건 아닐지... ]
[ 속상하다 정말.... ]
카페에 원성이 가득차고 있을 때.
[ 숲님들! 누가 현장에서 실시간 스트리밍 시작했어요! 그것도 우리 민이 위주로요! ]
┗ 어? 정말요?
┗ 좌표! 좌표를 달라!!
┗ 어? 스트리밍... 해도 문제없는 건가?
의문을 느낄 새도 없이 허겁지겁 몰려 간 팬들은 곧 웃음을 터트렸다.
[ 엔 플라워, 에버가든에게 보호 받고 있는 것 같네. 뺑 둘러싸여서.... ]
┗ 어뜨게! 우리 민이 뻘쭘해하고 있잖아! ㅋㅋㅋ
┗ 그래도 우리 민이 잘 챙겨줘서 정말 고맙다.ㅠ_ㅠ
김민의 모습을 보고 행복해하는 것도 잠시.
곧 전개된 치열한 응원전에 팬들은 불만을 터트렸다.
[ 아, 정말... 내가 저것 때문에 어떻게든 참석하고 싶었던 거라고!!! ]
┗ 방송국 개x끼들... JJ 이 병X들...아오 진짜ㅠ.ㅠ
카메라가 한 명 한 명 비출 때마다 팬덤의 함성과 구호소리가 더욱 커진다. 그들은 목이 터져라 그룹, 가수의 이름을 외쳐대며 힘을 실어준다.
썬더볼트와 엔 플라워, 에버가든을 지나 마침내 김민에게 카메라가 도달했을 때.
[ .......! ]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함성 소리가 울려 퍼졌다. 실제 스트리밍 사운드가 찢어져서 들릴 정도였다.
특히 엔 플라워, 에버가든 팬덤이 일제히 김민을 위한 응원 도구를 꺼내들고 자기 가수처럼 응원해주는 모습에 팬들은 깊은 감동을 느꼈다.
[ 엔 플라워, 에버가든 팬분들 정말 고마워요ㅠ,.ㅠ]
┗ 우리 참석 못하는 거 알고 대신 응원 준비 해주신 듯....
┗ 그게 아니라도 민이가 에버가든, 엔플라워 프로듀서니까 고마워서 준비해 준 게 아닐까요?
┗ 어쨌든 정말 감사한 일임. 카페에 방문해서 감사의 글이라도 하나씩 남겨야겠음.ㅠ ㅠ
JJ 엔터테인먼트 최초의 팬클럽 연합이 구축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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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시작됐다.
적어도 자리에서 일어날 때까지는 텐션을 끝까지 유지할 필요가 있었다. 참가 안 했다면 모를까, 일단 참석했으니 타 가수들과 시청자들에 대한 예의는 지켜야했다.
그래서 가수들이 무대에 올라 공연을 펼칠 때마다 열정적으로 리액션을 보였다.
오죽하면 반지희가 묻더라.
“너 방송 시작 전에 혼자 보약이라도 챙겨 먹었어? 혼자 왜 이렇게 들떴어?”
“너희들도 나처럼 해. 그래야 쓸데없이 꼬투리 안 잡혀.”
누가 봐도 올해 최고의 신인인 에버가든!
미모, 실력, 스타성... 모든 면에서 남다른 포스를 지닌 이 친구들은 인기만큼이나 안티도 많다.
언제 어떤 사진이나 영상이 찍혀서 이상한 제목으로 돌아다닐지 모른다.
반대로, 리액션만 잘해도 호감을 살 수 있다.
아니, 우리 오빠 언니들 무대에 저렇게까지 반응을 보여준다고?
바로 호감작에 성공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도 욕먹을 일을 피할 수 있는 거고.
“전달해. 피곤해서 죽을 것 같고 재미가 하나도 없어도 열정적으로 리액션 하라고.”
“응! 알았어!”
반지희도 그제야 내 뜻을 알고 멤버들에게 내 말을 전달했다.
그때부터 자리에 함께 앉은 우리 모두가 노래와 안무도 따라하는 등, 굉장히 열정적인 리액션을 보이기 시작했다.
동료 가수들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욕을 안 먹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은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올해 가장 눈부신 활약을 펼친 열 명의 가수에게 주는 상, 올해의 가수상!
에버가든, 엔 플라워 모두 포함됐고 당연하지만 썬더볼트 역시 있었다.
수상에 포함되지 않은 나는 열심히 박수만 쳤다.
특히 에버가든과 엔 플라워 호명될 때에는 환호까지 터트렸다.
두 팀의 수상은 내가 상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내 프로듀싱으로 성공하지 않았나?
작곡, 작사, 프로듀서 상은 썬더볼트의 히트 곡들을 만든 LK 총괄 프로듀서 ‘프레드(Fred)’에게 돌아갔다.
무대 위로 오르는 올 블랙 수트의 미남자가 내 이목을 잡아 끌었다.
천재 프로듀서 프레드!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KPOP 최고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로 남을 사람이었다.
나 역시 그의 사운드를 존경한다.
오죽하면 히트 곡을 수도 없이 분석하고 카피까지 해봤을까?
[ 프레드 프로듀서님은 지금까지 셀 수 없이 많은 히트 곡을 만들었고 올해는 남자 그룹 ‘썬더볼트’의 정규 앨범 모든 트랙을...! ]
소개가 이어지는 동안 박수가 끊이지 않았다.
특히 썬더볼트 멤버들과 그의 강력한 팬덤이 열렬한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나 역시 온 힘을 다해 박수를 쳤다.
누군가는 억울하지 않냐고 물어보겠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KPOP에 많은 업적을 남겨왔고, 올해는 썬더볼트 정규 앨범으로 15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위업을 달성했으니까.
엔 플라워 미니 앨범 80만장도 기적적인 일이라는데 무려 150만장이라니....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마이크 앞에 선 프레드가 수상 소감을 발표했다.
“먼저 함께 고생한 대표님과 회사 식구 분들에게 영광을 돌리겠습니다. 그리고 썬더볼트 멤버들.....”
프레드는 굉장히 침착했다.
목소리에 작은 떨림조차 없었다.
그도 그럴 게 그는 본래 가수 출신으로 누구보다 화려한 20대를 보냈던 사람이었다.
이런 큰 무대가 익숙한 사람이었다.
소감을 마무리하려던 그가 갑자기 내 쪽을 바라본다.
착각일까 싶었는데....
“개인적으로 이 수상이 조금 민망하기도 합니다. 저보다 월등히 뛰어난... 진정 천재라는 칭호에 걸맞은 프로듀서님께서 이 자리에 계시는데....”
아니었다.
심지어 대놓고 언급까지 하니 모든 이목이 내게 집중되어 버린다.
... 저 사람이 갑자기 왜 저럴까?
“안 그래도 일전에 큰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어서 마음에 빚이 있었는데 이 일로 조금 더 커진 듯 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되면 직접 찾아뵙고 조금씩 갚아 나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나를 향해 고개를 숙여 보이니 웅성임이 커진다.
의아한 건 나 역시 마찬가지.
빚이라니, 대체 뭘 말하는 걸까?
그러다 순간 떠오른 게 있었다.
문 라이트 애들 중 두 명이 LK에 합격해서 걸 그룹 데뷔를 준비 중이라는 것.
일전에 병원 공연 추진 과정에서 LK 대표님을 찾아뵙고 인사도 드렸던 적이 있었다. 그 과정에 내가 애들을 훈련시켰고 LK 오디션을 추천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아마도 그 건을 말하는 거겠지?
마지막으로 1부의 하이라이트, 올해의 신인상 발표가 이어졌다.
당연하게도....
[ 에버가든! ]
우리 애들이 받았다!
호명된 순간, 애들이 울먹이며 한 명씩 나에게 안긴다.
이 순간은 침착하고 냉정한 주세아의 모습도 똑같았다. 정말 펑펑 울었다.
“어서 나가 봐. 사람들 기다린다.”
세상에 이렇게 기쁘고 흐뭇했던 일이 또 있었을까?
그만큼 기분이 좋다.
새삼, 무리를 해서라도 참석하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불참했던 이런 기분을 느끼지 못했을 것 아닌가?
[ 미, 민이에게 고맙.. .으허헝! ]
[ 기, 김민 프로듀서님. 고맙습니다! 저, 정말 고맙...어어엉! ]
멤버들 모두 가장 먼저 나를 언급했다.
상 못 받은 거?
원래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이젠 정말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보다도 더 큰 기쁨이 내 안에서 폭발하고 있었으니까.
그건 그렇고... 얘들아. 이제 그만 좀 울어.
수상 소감보다 울음소리가 더 많으면 어떻게 하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