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7화. 집들이. >
“우와. 여기가 우리 집이야?”
“굉장하다! 아늑한 느낌이야. 살짝 영국 감성도 묻어 있는 것 같고... 나 마음에 들어!”
다니엘과 샬럿이 도착했다.
짐을 바리바리 싸들고.
“각자 마음에 드는 방 하나씩 골라.”
방 개수는 총 6개.
그 중 두 개를 다니엘과 샬럿에게 줄 생각이었다. 정말 집처럼 생각하고 편하게 사용하라는 뜻도 포함된다.
우린 친구니까!
샬럿이 기다렸다는 듯 말했다.
“난 2층 첫 번째 방을 사용할게. 방도 넓고 특히 테라스가 마음에 들어. 거기에 개인 정원을 꾸밀 거야! 카페 분위기도 좀 내면 좋을 것 같고.”
“난 1층 저쪽 방을 쓸게. 오르내리는 게 귀찮을 것 같거든.”
“그러면 서연이 방을 샬럿 옆방에 줘야겠네. 좋아. 그러면 가구 사러 가자!”
“가구?”
“지금 바로?”
눈을 끔뻑이는 두 친구에게 씩 웃어 보였다.
“응. 지금 바로!
그러면서 블랙 카드를 꺼내 흔들어 보이니 아주 열광을 하더라.
후후, 플렉~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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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주인이었던 잭 월셔는 1층 방 하나만을 침실로 사용하고 나머지 공간을 서재, 혹은 음악, 영화 감상실로 사용했다. 친구들이 방처럼 쓰기 위해서는 침대를 비롯한 가구들이 필요했다.
미리 알아본 가구 전문점을 돌아다니며 각각 취향에 맞는 가구들로 주문했다.
서연이의 가구는 내가 직접 골랐다.
“걔 취향은 내가 잘 알아.”
서연이는 디즈니에 환장하는 녀석이다.
오죽하면 일 년에 한 번은 친구들과 올랜도에 방문할 정도였고, 거기서 잔뜩 구매한 온갖 굿즈로 방을 무슨 디즈니 스토어처럼 꾸며놓았을 정도였다.
그 취향을 잘 알고 있으니 방을 꾸미는 것도 쉬웠다.
가구점과 타임스 스퀘어 디즈니 스토어를 돌아다니며 이 이야기를 해주니....
“서연이 정말 귀엽다! 나도 사실 어린 시절에는 디즈니 애니메이션을 정말 좋아했어!”
특히 샬럿이 취향에 크게 공감하더라.
난 씩 웃으며 말했다.
“그러고 보니 샬럿은 디즈니 공주님처럼 생겼네. 조만간 디즈니 프로듀서님 만나면 너 디즈니 실사화 영화에 공주님 배역으로 출연시켜달라고 부탁해볼까?”
“어... 나를 좋게 봐줘서 고맙긴 하지만 그게 가능할까? 내가 공주 소리 들을 정도로 우아하고 기품이 넘치는 타입은 아닌 것 같은데.”
“맞아. 샬럿이라면 오히려 남장을 한 장군 캐릭터를 해야...엌!”
다니엘이 눈치 없이 개드립을 쳤다가 명치를 얻어맞았다.
환상의 노룩 어퍼컷을 적중시킨 샬럿은 웃는 얼굴로 말했다.
“괜히 그런 말 했다가 면박만 듣는 거 아니야? 주제 모르고 나선다는 소리 들을 수도 있고....”
“내가 음악 감독까지 맡아주겠다고 하면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줄 것 같은데....”
샬럿은 실제로 디즈니 실사화 프로젝트의 공주 배역을 맡아 엄청나게 성공한다.
어느 정도냐면 해당 영화가 월드 와이드 10억불을 돌파할 정도였으니까. 그때도 그랬는데 내가 관리하고 있는 지금은 뭐....
난 호언장담했다.
“날 믿어 봐. 네 앞길은 내가 책임지기로 했잖아? 난 불가능한 일은 입에 담지 않아.”
돈이 좋긴 좋다.
다음 날 바로 주문한 물품들이 모두 도착했고 세팅까지 완벽히 마무리 된 것이다.
다니엘과 샬럿은 멋지게 꾸며진 자신들의 방을 보고 감격을 금치 못했다.
“세상에, 내가 꿈꿨던 내 방을 여기서 이런 식으로 갖게 될 줄이야!”
“너무 좋아! 나 앞으로 여기서 살 거야! 돈 많이 벌어도 여기 안 떠날래!”
과연 그럴까?
샬럿의 마지막 말에 피식 웃으면서도 두 친구들에게 말했다.
“정말 내 집이라고 생각하고 편하게 써. 대신 청소는 하루에 한 번씩 깨끗하게 하고 살자. 특히 다니엘 너 말이야.”
“하하... 뭐, 노력해볼게.”
개구진 웃음에 나와 샬럿은 눈을 마주치고 한숨을 내쉬었다.
[ 우와! 우와! 우와아아아! ]
그날 밤.
영상 통화로 서연이에게 방 구경을 시켜줬다.
[ 나 디즈니 좋아하는 거 어떻게 알았어? 완전 내 취향이야! 오빠 진짜 사랑해! ]
“이럴 때만....”
[ 아니야. 옛날부터 사랑했는데 지금 고백하는 거야! 소녀 마음을 그렇게 몰라?! 내가 얼마나 용기낸 건데! ]
얼마나 기뻐하는지, 잔뜩 상기된 얼굴로 방방 뛰는 서연이를 보니 웃음부터 나온다.
방들이 워낙 넉넉했던 터라 서연이의 방도 어지간한 원룸 크기였다.
큰 사이즈의 침대, 최고급 이불 세트와 핑크빛 휘장!
그리고 사방에 예쁘게 비치되어 있는 고급 가구와 디즈니 인테리어의 환상적인 조화!
“다니엘하고 샬럿에게도 고맙다고 인사 해. 두 사람이 많이 도와줬어.”
이것은 우리 셋이 머리를 맞댄 작품이다.
[ 다니엘 오빠! 샬럿 언니! 정말 고마워!! 오빠보다 더 사랑해! 쪽쪽! ]
“하하하!”
“나도 사랑해 서연아. 빨리 보고 싶어!”
아니 이 녀석이... 나한테도 안 해줬던 뽀뽀를...?!
어처구니가 없기도, 한편으로 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세 사람이 지금 얼마나 들떠 있는지를 알 수 있었기에.
부모님께도 방을 보여드렸다.
취향대로 클래식한 엔틱 인테리어로 꾸민 방이다.
감격에 말을 잇지 못하는 부모님께 웃으며 말씀드렸다.
“언제든 편하게 오셔서 쉬세요. 아, 주방도 보여드릴까요? 오픈 키친 스타일로 완전 고급스럽게 꾸며놨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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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님과 엔 플라워, 에버가든 멤버 전원 뉴욕으로 건너왔다.
굳이 마중 나올 필요가 없다고, 혼잡하기만 하니 집에서 기다리라고 해서 그러려니 했는데....
“... 이게 다 뭐예요?”
“방송 촬영 중! 혹시 M본부에서 방영하는 ‘난 혼자 살아!’ 라는 프로그램 알아?”
“아, 그 관찰형 예능... 출연자가 누구에요?”
“주아.”
“짜잔! 바로 나야!”
엔 플라워의 리더 주아 누나가 씩 웃으며 브이자를 그린다.
“얼마 전에 독립했는데 그 기념으로 촬영하는 거야.”
“아하.”
먼 길 오느라 피곤했을 텐데, 여전히 특유의 과즙미가 폭발하는 상큼 상큼한 미소로 활기를 불어 넣는다.
문 밖에 있는 수많은 이들을 둘러보고, 아찔함에 속으로 한숨을 내쉰 다음.
“어서 오세요. 마이 홈에 오신 여러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손님맞이를 시작했다.
무심코 방을 나섰던 다니엘과 샬럿이 거실에 가득한 사람들과 촬영 팀을 보고 화들짝 굳어 버렸다.
난 급히 손짓했다.
“그러고 있지 말고 와서 좀 도와줘! 다니엘! 넌 음식 나르고 샬럿은 만드는 것 좀 도와. 빨리!”
차마 손님들을 시킬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촬영 팀까지 대접하려면 준비한 음식이 부족해서 서둘러 조리를 하는 중이었다.
샌드위치, 떡볶이, 볶음밥 등등.
수십 명 분의 음식을 어찌 어찌 만들고 나니 진이 빠졌다. 그래서 함께 먹고 치우는 것까지가 대접인지라, 애써 기운을 뽑아내 본다.
인터뷰도 했다.
“친구 분들과 같이 사는 거예요?”
“네. 노아 파티는 언제나 함께니까요!”
내 인터뷰를 지켜보던 이들이 한 마디씩 한다.
“와, 이 순간에도 노아 홍보 하는 거 봐.”
“염치없네.”
“어허, 이럴 때는 프로 패셔널 하다고 포장해줘야지 어쨌든 방송에 협조해주는 건데...”
“그건 그러네.”
사람이 워낙 많으니 정신이 하나도 없다.
난 이래서 방송이 되나 싶은데 촬영팀, 특히 피디님은 얼굴이 싱글벙글. 웃음이 가득하다.
“제가 뭘 해주면 되는 걸까요?”
작가님에게 가서 물었다.
이왕 시작한 거, 분량 확실히 뽑아주면 좋잖아?
“일단 방송 주제는 뉴욕 집들이인데... 볼거리를 최대한 많이 제공해주시면 될 것 같아요!”
주저주저 하다가 말씀하신다.
“그... 민이 씨는 화려한 인맥도 굉장히 많고 그러잖아요.”
“흠....”
난 슥, 보며 물었다.
“그러면 이 방송 2주 분량으로 편성될 수 있는 건가요?”
“당연하죠!”
“나중에 엔 플라워 다른 멤버들과 에버가든 친구들도 출연시켜 주실 거고요?”
“그야 물론이죠! 민이 씨도 원하면 말씀하세요! 언제든 출연시켜드릴테니까!”
‘난 혼자 살아!’는 어쨌든 MBC의 간판 예능이었다.
검색해 보니 첫 방송이 2013년이던데... 저게 10년도 넘게 인기 프로그램으로 장수한다.
지금은 인기 최절정기고.
이럴 때 우리 아티스트들 챙겨야지!
약속을 받아 내고 슬쩍 대표님을 돌아보니.
‘잘했어! 진짜 잘했어!’
굉장히 환한 얼굴로 엄지를 치켜세우신다.
엔 플라워, 에버가든 멤버들도 좋아했다.
괜히 뿌듯해진 내가 말했다.
“좋아. 그러면 제가 뉴욕 구경 확실히 시켜드릴게요!”
제일 먼저 타임스 스퀘어와 브로드웨이를 구경시켜주는데 대표님이 주아 누나에게 뭔가 속삭이는 광경이 보인다.
곧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알 수 있었다.
누나가 내게 묻는다.
“민아! 너 1980 브로드웨이 곧 촬영한다고 들었는데... 그게 언제야?”
아... 이렇게 주아 누나 분량 챙겨주시려고?
단숨에 의미를 파악한 내가 냅다 대답했다.
“다음 주 월요일이에요.”
“스토리 보드를 네가 직접 만들었다고 했지? 심지어 카메라 들고 이곳 브로드웨이를 돌아다니며 테스트 영상도 찍었다고 들었는데....”
“맞아요. 어디보자... 아, 마침 제가 촬영했던 장소 중 하나가 저기 있네요. 살짝 맛만 보여드리면 이런 장면이 나올 거거든요.”
오래된 극장 앞에서 흥얼거리며 춤을 춘다.
그리고 주아 누나에게 손짓하며 말했다.
“같이 해볼까요?”
“그럴까?”
역시 톱 아이돌이라 그런지 예능감도 있고 배우는 속도도 굉장히 빠르다. 어지간한 안무는 한 번 보고 그대로 복사한다.
둘이 함께 촬영 장면 중 하나를 재현하고 엔 플라워, 에버가든 멤버들도 모두 불러 아예 군무처럼 춤을 춰 보인다.
영화 홍보도 되고 다른 멤버들 분량도 챙겨줄 수 있고... 좋잖아?
“.......”
그래도 혹시 몰라 감독님과 디즈니 프로듀서님께 메시지로 상황을 설명 드렸더니....
[ 조율이 필요한 문제 같은데... 일단 촬영 피디님 연락처 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
[ 내용은 너무 밝히지 말고 맛만 조금 보여주는 정도면 괜찮을 것 같습니다. 가능하면 촬영 장면도 보여주면 좋고요. ]
곧바로 촬영 피디님께 문의 드렸더니 흔쾌히 승낙하시더라. 그래서 내친 김에 프로듀서님과 감독님 전화 번호도 알려드렸다.
분량 알아서 조율하시라고.
이것으로 모든 문제는 해결!
이후로는 거침없이 촬영에 임했다.
다음 날.
조금 특별한 볼거리를 제공할 심산으로 미리 아이작과 킴벌리에게 연락하고 블랙 로즈 사옥에 들렸다.
제일 먼저 집무실에 가서 킴벌리를 만났다.
“이쪽이 아시아에서 굉장히 핫한 걸그룹인 엔 플라워! 그리고 여기 이 친구들이 바로 작년 최고의 신인이었던 에버 가든이에요!”
주아 누나 방송이니 한 번 더 챙겨줬다.
“여기 주아 누나가 엔 플라워 리더예요.”
“오, 반가워요! 저는 블랙 로즈 리더랍니다.”
가벼운 농담과 함께 블랙 로즈가 어떤 곳이고 어떤 스타들을 보유했는지, 미국 음악 시장은 어떤 곳인지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다.
오늘 촬영을 위해 어젯밤 통화로 우리끼리 정했던 내용이다.
킴벌리 씨가 립서비스를 화끈하게 해주셨다.
“엔 플라워와 에버가든이 굉장한 잠재력을 지닌 걸그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요. 언젠가 미국에서 함께 일할 날을 기대하고 있을게요!”
기뻐하는 엔 플라워, 에버가든 멤버들.
그러나 그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우리 대표님이었다.
요 근래, 나 때문에 또 다시 미국병이 도지셨는지, 두 그룹을 미국에 진출시키고 싶어 하시더라.
이후로 녹음실에 가서 아이작과 만났다.
“아이작 이스트다!”
“세상에...!”
대표님을 제외한 모두가 바짝 긴장하더라.
충분히 이해가 된다.
아이작 이스트가 누구던가?
그래미 어워드 수상자이자, 미국 재즈 힙합계의 거물!
메가 히트 곡 맨해튼 드리밍으로 두 번째 전성기를 누리는 중인 월드 클래스의 슈퍼 스타였다.
나한테야 미국 아빠지, 다른 이들에게는 하늘 위의 존재나 마찬가지였다.
자, 그러면 대체 뭐하자고 이곳에 모두를 모았냐?
주아 누나에게 물었다.
“제가 저번에 드렸던 신곡, 나르시시즘 연습 열심히 하셨어요?”
“어? 그, 그야 뭐....”
순간 주아 누나의 안색이 헬쓱해졌다.
“서, 설마 여기서 녹음하려고...?”
“네. 왜요? 문제 있어요?”
“아, 아니, 그게....”
겁먹은 토끼 같은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주아 누나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아이작에게 꽂힌다.
급히 내게 속삭인다.
“아이작 이스트 앞에서 보컬 녹음이라니... 이런 이야기 없었잖아!”
“뭐 어때요? 그리고 나르시시즘 아이작도 아는 곡이에요.”
“뭐? 어떻게?”
“저는 곡을 만들면 일단 아이작에게 피드백을 부탁해요.”
나는 아이작을 보고, 내 귀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아이작 듣는 귀가 정말 끝내주거든요.”
괜히 그래미 수상자가 아니지.
“어, 으음....”
“알았으면 빨리 누나부터 들어가요.”
“뭐? 나부터? 왜?!”
“왜냐면 누나가 방송 주인공이니까?”
“히잉. “
울상을 지으며 레코딩 룸 안으로 들어가는 주아 누나.
나와 아이작은 컨트롤 센터 정중앙에 나란히 앉아 디렉팅을 준비했다. 촬영 팀과 다른 사람들은 뒷자리에 앉거나 서서 숨죽여 녹음 광경을 지켜본다.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아이작이 한숨 쉬며 작은 음성으로 말했다.
“나 참... 너 때문에 별 짓 다해본다 정말.”
“다 끝나면 제가 진짜 맛있는 요리 해드릴게요!”
“나 입맛 까다로운 거 알지?”
“잘 알죠! 흐흐, 기대하셔도 좋아요.”
고기 맛을 아는 사람이라면 싫어할 수가 없는 양념 한우불고기를 준비하고 있으니까!
[ 준비 됐어! ]
어느 정도 목을 풀었는지, 주아 누나가 결연한 얼굴로 말했다.
내가 말했다.
“자, 녹음 시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