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68화 (168/205)

< 168화. 파문의 중심 (1) >

이번 녹음은 사실상 방송을 위한 이벤트였다.

이 자리에 있는 이들 중 그걸 모르는 이들은 없었다.

그럼에도 주아 누나는 최선을 다해 녹음에 임했고.

“와우. 어메이징!”

아이작으로부터 박수를 받았다.

진심으로 놀라고, 흥미로운 표정이었다.

“내친 김에 그냥 녹음 끝내 버리지?”

“그럴까요?”

그래서 그 자리에서 <나르시시즘>녹음을 끝내 버렸다. 잠시 쉬는 시간, 대표님이 아이작에게 말했다.

“아이작 혹시 지금 이 상황, 마케팅으로 좀 활용해도 되겠습니까?”

“오, 물론이죠. 그렇게 해요.”

“감사합니다!”

역시 미국 아빠!

내가 빙글 웃으며 바라보니 괜히 민망했던지 퉁명스레 한 마디 던지는 아이작이었다.

“고마우면 곡으로 갚아!”

“물론이죠!”

녹음도 성공!

방송도 성공!

이틀 여유가 남았다고 해서 사이먼 블랙이 운영하는 가장 크고 호화로운 클럽으로 초청했다.

“와아....”

“세상에...!”

여기도 많이 성장했다.

라인업도 빵빵해졌고 평균 실력이나 무대 장악력들이 하나 같이 괴물 수준이다. 오죽하면 함께 온 내 손님들이 공연 내내 아무 말도 못하더라.

함께 뒤풀이 파티를 하는 자리에서 사이먼이 말했다.

“이게 우리 패밀리 명성이 올라간 덕분이야.”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그 패밀리에 세 사람 말고 나도 포함된 거야?”

“물론이지!”

당당하기도 해라!

“뉴욕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모여든, 메인 스트림지망생들에게 이곳은 거대한 등용문과 같은 곳이야. 여기가 아니라도 메인 스트림에 오를 수 있지만, 이곳에서 활약하면 오를 수 있는 확률이 더 높아진다는 거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거야?”

“레이블, 방송 관계자들이 굉장히 자주 드나들거든.”

사이먼 블랙은 한껏 거드름을 피웠다.

“나 아무래도 뉴욕 공연계의 흑막이 될 자질이 있었던 것 같아!”

“축하한다.”

한편, 엔 플라워, 에버가든 멤버들은 나를 놀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이유에 대해 반지희는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아니... 아까부터 굉장해 보이는 사람들이랑 너무 친숙하게 대화하니까 네가 좀 달라보여.”

“굉장해 보이는 사람이라면... 누구, 저기 사이먼 블랙 말하는 거야?”

“저기 레드 트라이브라는 사람도. 그런데 저런 사람도 아직 메인 스트림에 진입하지 못한 거야?”

“곧 하게 될 거야. 사실 지금도 사실상 메이저급이야. 음원 차트에서도 굉장히 좋은 성적 보이고 있고 빌보드도 간간히 진입하니까.”

이 후로도 내가 즐겨 찾는 여러 핫스팟들을 소개해줬다.

떠나는 날.

촬영 팀과 내 지인들은 사이먼 블랙의 공연장이 가장 인상 적이었고 자신들도 언젠가는 그런 무대에 한 번 서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 말인 즉.

“미국 진출 시켜달라는 거죠?”

“들켰어?”

“아하하!”

시선을 회피하며 민망한 듯 웃는 두 팀 멤버들.

난 방긋 웃었다.

“뭐... 열심히 하다보면 언젠가 그 날이 오지 않을까요?”

지금은 때가 아니다.

조금 나중에... 연차와 인지도가 지금처럼 꾸준히 쌓이다 보면 분명 보답 받게 될 날이 올 것이다.

@

1980 브로드웨이 촬영이 시작됐다.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과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뉴욕 맨해튼까지 날아와 촬영 현장을 처음부터 지켜보셨다.

여기에 디즈니 고위 관계자와 유명 감독들이 총 출동하니 현장에 긴장감이 가득했다. 제 아무리 베테랑 배우들이라도 이런 상황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고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결국 견디다 못한 몇몇 배우들이 잭 웰슨 감독님을 찾아가 사정했다.

“연기가 안 돼요. 연기가... 좀 어떻게 좀 해주세요!”

“나는 괜찮은데 다른 배우, 스텝들이 너무 경직된 것 같아서... 그냥 시사회 때 보라고 하면 안 되나?”

단호한 성정의 잭 웰슨 감독님도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미안해요. 사실 내부에서 벌써부터 후속작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고 해서....”

“엥?”

“촬영 이제 시작했잖아요?”

“아니 뭐...프리 프로덕션 과정까지만 지켜보면 어떤 영화가 나오고 성적이 대략 어느 정도 될지 짐작은 가능하니까... 제작 위원회에서 굉장히 높게 평가 중이라는 모양입니다.”

“허...!”

모두의 시선이 나를 향한다.

아니, 왜?!

난감함에 가득하던 잭 웰슨 감독님의 눈빛이 일순 부드러워진다.

“결정적으로 그래미에 노미네이트 된 우리의 어린 천재가 바로 이곳에 있지 않습니까? 바로 그 천재가 바로 세계적인 작곡가와 작가를 동원해서 이 놀라운 작품을 만들어냈죠.”

감독님이 빙긋 웃으신다.

“제가 고위 관계자였다고 하더라도 이 귀한 보물들을 어떻게든 사수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 같군요.”

감독님의 발언을 듣고 모두가 탄성을 터트렸다.

작품에 대한 관심 말고도 다른 이유가 더 있었다는 것이다.

고위 관계자들이 촬영 현장에 총출동해야 할 이유가.

감독님은 나를 따로 불러 말했다.

“아무래도 저들이 뭔가 제의를 할 것 같으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해놓는 게 좋겠군.”

그 말이 맞다 싶어 킴벌리 씨에게 전화를 걸었다.

놀랍게도 전화한 지 한 시간 만에 킴벌리 씨가 직접 촬영 현장에 행차하셨다.

잭 웰슨 감독님의 말이 맞았다.

그날, 디즈니 프로듀서님이 식사를 제안하셨다.

나, 헨리 윌리엄스 작곡가님. 그리고 올리비아 퀸 작가님께.

어떤 이야기가 오갈지 뻔히 짐작되니 킴벌리 씨도 식사 자리에 함께 했다.

프로듀서님이 굉장히 부드러운 어조로 말씀하셨다.

“저는 이 1980 브로드웨이가 우리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으로 확신하고 있습니다.”

비싸고 맛있는 스테이크를 냠냠 먹으려다 말고 조용히 포크를 내려왔다.

나 체할 것 같아.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반문하신다.

“너무 이른 판단 아닌가요? 아직 결과물이 나오지도 않았는데....”

“프리 프로덕션 준비 과정만 보면 답이 나오죠. 아, 이건 프로모션으로 승부를 봐야 겨우 본전을 뽑을 수 있겠구나. 혹은 아, 이건 딱히 뭔가 하지 않아도 알아서 입소문이 퍼져서 흥행으로 이어지겠구나!”

“우리 작품이 후자라는 건가요?”

“바로 그거죠. 사실 여기 계신 세 분도 모두 같은 생각 아닙니까? 1980 브로드웨이는... 성공하지 않을 수 없는 작품이나. 시나리오, 캐릭터, 음악, 분위기....”

그는 들뜬 모습을 감추지 못했다.

“전 대단한 작품이 나올 것으로 확신합니다. 결정적으로 잭 웰슨 감독은 작가주의에 도취되어 제 멋대로 영화를 만드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예술성만큼이나 대중성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죠.”

나는 내심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그런 부분 덕분에 훗날 최고의 뮤지컬 영화를 만들게 되었던 것이니.

“이야기가 길어질 것 같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세 분께 <1980 브로드웨이>의 후속작 작업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그는 씩 웃었다.

“이미 준비중인게 있다고 들었는데요.”

두 분의 시선이 내게 향한다.

두 분은 모르는 이야기였다.

난 당황했지만 내색하지 않고 시치미를 뗐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잘....”

“<2000 브로드웨이>.”

헉, 다 알고 있구나!

난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잭 웰슨 감독님께서 말씀하시던가요?”

“작품 관련 대화를 나누다 자연스레 흘러나온 이야기였습니다. 감독님도 내뱉고는 아차하시더군요.”

이런....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대화에 끼어 드신다.

“그게 도대체 무슨 말일까요? 난 처음 듣는 소린데...?”

“나도 처음 듣는 소리군.”

나를 향한 두 분의 시선에 책망의 빛이 가득하다.

난 황급히 변명했다.

“두 분 몰래 작업을 한 게 아니예요! 1980년도 브로드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하던 중 20년 건너뛰어서 2000년도 브로드웨이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면 어떨까. 재미있지 않을까... 아이디어 정도만 주고받았을 뿐이에요!”

“흐으음.....”

“........”

미심쩍은 눈빛.

“정말이에요!”

으하하!

내가 억울해서 항변하는 모습이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다들 웃음을 터트렸다.

디즈니 프로듀서님이 은근한 어조로 말했다.

“세 분은 환상의 창작팀 아니겠습니까? 2000 브로드웨이. 저를 포함한 우리 회사에서는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작, 프로모션 비용도 아낌없이 지원할 의사가 있고요. 원하시는 배우가 있다면 말씀만 하십시오. 누구든 캐스팅할 자신이 있습니다.”

작곡가님과 작가님의 눈빛이 흔들리는 게 보인다.

이건 뭐... 게임 끝이군.

조용히 상황을 관전하던 킴벌리 씨가 나섰다.

“자세한 이야기는 저와 함께 하는 게 어떨까요?”

“그럴까요?”

두 분이 자리를 떠나자 올리비아 퀸 작가님이 말씀하신다.

“나 아무래도 2000 브로드웨이 소설 집필도 준비해야 할까봐.”

굉장히 들떠 보이신다.

머릿속이 복잡해서 그 말을 무심코 넘겼다는 나는...

“어? 잠깐만. 2000 브로드웨이 소설 집필도... 라는 말씀은 혹시...?”

경악했다.

원래 이렇게 부지런히 집필하는 분이 아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

1월 31일.

그러니까 1980 브로드웨이 촬영 중간 그래미 어워드가 개최됐다.

이미 대비하고 있었기에 시간을 뺄 수 있었다.

나는 아이작, 레이나, 레이지와 함께 시상식 장으로 향했다.

차 안에서 레이나가 말했다.

“한 가지 말해줄까? 그래미... 너무 기대하지마.”

갑자기 이게 무슨 소리야?

곰곰이 생각하다가 그 말뜻을 깨달을 수 있었다.

맞아. 그래미는 굉장히 보수적인 성향으로 유명했었지?

그 최대의 피해자가 바로 눈앞에 있었다.

빌보드의 여왕 레이나.

천부적인 음악성과 빼어난 스타성.

이 두 가지를 모두 갖춘 덕분에 빌보드의 여왕이라는 별명까지 갖출 정도였지만 그녀는 본상을 단 하나도 수상하지 못했다.

장르 필드인 팝, 알앤비에서만 다섯 개 정도를 간신히 수상했을 뿐.

그녀가 이룬 업적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작 역시 마찬가지였다.

재즈와 힙합에서 각각 하나씩을 수상했을 뿐이었다.

“그렇다고 그래미가 흑인 음악을 아예 취급도 안 해주는 건 아니야. 마이클 잭슨, 스티비 원더, 퀸시 존스 정도 되면 챙겨주니까.”

그건 그 사람들이 초 울트라 슈퍼 레전드니까 눈치 보여서 어쩔 수 없이 준 거지.

“심지어 민 너는 동양인이잖아. 어린 소년이고. 미리 각오 단단히 해두는 게 좋아. 현장에서 충격 받지 말라고 미리 말해주는 거야.”

듣고 보니 이전 삶에서 그래미가 저질렀던 온갖 만행들이 떠올랐다.

인종 차별, 투표 조작, 보복... 열거하기도 힘들 정도로 많다.

그래. 지금 내가 참여하러 가는 시상식이 바로 그런 곳이었지.

... 그냥 좋아하던 뮤지션들 만날 수 있다는 것에 의의를 두는 게 좋겠다.

“.......”

... 아니, 그래도 하나 정도는 챙겨주지 않을까?

지금 대한민국이 나 그래미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며 축제 분위기던데, 여기서 하나도 못 타고 돌아가면 쪽팔리잖아!

속물이라고 욕해도 좋다.

그래미는 뮤지션들의 꿈이다.

본상은 감히 넘보지 않을 테니 장르 필드라도 하나 주면 안 될까?

나 딱 하나만 주라!

전지전능하신 그래미님. 제발,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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