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3화. 에이전트 Min >
이번 여정에 다니엘, 샬럿이 함께 했다.
애초 내가 직접 디즈니를 방문한 이유부터가 이 두 사람하고 연관이 있다.
안내를 받아 도착한 곳은 디즈니 프로듀서님의 집무실.
“어서 와요! 디즈니 본사에 방문한 것을 환영해요!”
옛날 미국 감성이 그득한 공간이었다.
“잠시만 소파에 앉아서 기다려요! 먹을 것을 좀 챙겨줄게요!”
괜찮다고 말해도 끝내 마실 것, 먹을 것들을 산더미처럼 쌓아준 프로듀서님이었다.
먹고, 마시며 가볍게 근황 토크를 하다가 자연스럽게 본론으로 들어갔다.
먼저 말을 꺼낸 사람은 디즈니 프로듀서님이었다.
“일단. 짐 머레이 감독은 민의 제안을 굉장히 긍정적으로 생각했어요.”
“그럴 것 같았어요. 제 생각이 맞았군요.”
“사실 뭐... 누가 봐도 최적의 인재 아닙니까? 저도 민의 제안을 처음 듣고 이거 가능성이 충분히 있겠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우리 둘의 시선이 영문 모르고 앉아 있는 샬럿에게 향했다.
참고로 아직 두 사람은 내가 여기 왜 왔는지를 모르고 있다.
이번에는 다니엘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또 한 건은 어떻게 됐나요?”
“아, 그건.....”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렸다.
“아, 들어와요!”
우리 모두의 시선이 출입문에 쏠렸다.
문이 열리며 등장한 사람은 특이하게 은발로 탈색할 머리를 왁스로 세운 백인 미남자였다.
프로듀서님이 일어서서 반겨준다.
“오, 마침 왔군요! 소개할게요.. 우리의 새 프랜차이즈, <갤럭시 오디세이>의 감독 제임스 런 감독이에요! 제임스, 누군지 알죠?”
우리를 향한 그의 시선이 반짝인다.
그는 유쾌한 미소와 음성으로 말했다.
“와우, 세상에. 설마 여기서 노아 파티와 만나게 될 줄은 몰랐네요. 특히 민. 당신의 팬이에요. 정말 엄청난 펜이죠!”
나를 시작으로 다니엘, 샬럿 순으로 악수를 나눈뒤 우리를 마주보며 소파에 앉았다.
내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제임스 런 감독님이 유명 SF 코믹스, <갤럭시 오디세이> 1편의 감독으로 내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한 번 뵙고 오디션이라도 보게 해달라고 제가 졸랐어요.”
“민. 당신이요?”
“네. 전 제임스 런 감독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제... 작품을 좋아한다고요?”
믿을 수 없다는 얼굴.
그도 그럴 것이 미래의 그는 슈퍼스타 감독이 되지만 아직은 안습한 무명이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는 아는 사람만 알아주는 조용한 실력자라고나 할까?
저예산의 B급 공포영화 새벽의 노래로 감독 입봉을 했고 이후 게임, 애니메이션 각본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며 천천히 경력을 쌓아왔다.
이 사람은 B급 감성을 메이저로 끌어올렸다고 평가 받는 사람 중 하나였다.
내가 그의 작품을 나열하는 동안 자리에 함께 한 모두가 신기하다는 얼굴로 날 쳐다본다.
처음에는 믿을 수 없다는 반응뿐이던 제임스 런 감독은 내가 자신의 작품을 줄줄 꿰는 것을 보고부터 표정이 바뀌었다.
좋아. 슬슬 분위기가 넘어왔군.
“사실 우리 세 사람 모두 <갤럭시 오디세이>코믹스의 팬이에요. 집에 책과 굿즈도 많아요. 맞지?”
“응! 저도 읽었어요!”
“저도요!”
사실 오늘 이 순간을 위해 내가 빌드업을 한 거다.
2018년도에 개봉해서 이후 십여 년 동안 전 세계 최고의 SF 프렌차이즈로 군림하게 되는 히트 시리즈!
갤럭시 오디세이에 다니엘을 주연으로 박아 넣기 위해서!
우리 세 사람은 자연스레 갤럭시 오디세이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했다.
내가 슬며시 운을 띄우니 눈치껏 받아준 것이다.
갤럭시 오디세이.
미국 출판사 ‘노블 뱅크’에서 2011년, 비교적 최근에 발간된 SF 만화였다.
디즈니가 발 빠르게 판권을 구매해서 평소 눈여겨보던 젊은 신예, 제임스 런에게 감독을 맡겼는데 이것이 크게 대박 났다.
순항 중이던 시리즈는 3편에서 망해 버렸다.
감독의 문제가 아니라 주연 배우가 초대형 사고를 친 탓이다.
마약, 미성년자 성추행... 아주 온갖 사고를 예전부터 쳐왔다는 것이 알려진 것.
1,2억이 크게 흥했고, 서사적으로 3편에서 뭔가를 빵 터트려야 할 시점이었다. 그래서 디즈니에서도 2억 2000만 달러, 당시 환율로 2000억이 넘는 거액을 쏟아 부었다.
개봉 일자만 기다리던 상황에서 이런 이슈가 터진 것이다.
문제는 디즈니가 개봉을 강행해 버렸다는 것이다.
당연히 미국 여론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이 같은 결정을 내린 디즈니는 엄청난 비난에 시달렸고 영화는 폭망했다.
심지어 제임스 런 감독은 친한 친구이자, 자신의 출세작 주연 배우였던 인간이 그런 최악의 범죄를 저질러왔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았다.
정신과 신세를 졌다더라.
... 그러니 다니엘이 주연 자리를 빼앗는다고 해도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제임스 런 감독은 굉장한 코믹스 팬이었다. 우리 대화에 동참해서 신나게 떠들어대는데 그 모습을 통해 얼마나 순수한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
이 시점부터 다니엘도 열심히, 자신이 주연 배우에 어울리고 잘할 자신이 있다는 것을 어필하기 시작한다.
“제가 주인공 ‘데인’을 특히 더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몇 가지 있었어요. 일단 금발의 백인이고 푸른 눈동자를 지녔잖아요!”
그러면서 손가락으로 자기 얼굴을 가리킨다.
“어릴 적에는 귀엽고 예쁘장한 얼굴이었는데 큰 문제를 겪고 난 이후 운동을 열심히 해서 근육질에 무술 실력을 갖춘 멋진 상남자가 됐죠.”
일어서서 재킷을 벗고 자신의 몸을 보여주는 다니엘.
“오오....”
“이야!”
뚜렷한 근육질 몸매에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난 그 모습에 흐뭇하게 웃었다.
캡틴 브리튼 프로젝트가 내가 기대했던 것 이상으로 엄청나게 성공했던 것이다.
그 동안 존로 아카데미에서 극한의 훈련과 식단 관리를 받아 온 다니엘이었다.
아직 성장판이 닫히지 않았다는 것을 병원에서 확인하고 특히 먹을 것과 휴식에 굉장히 신경을 써줬다.
그 결과. 키가 쭉쭉 커서 180cm를 넘었고 근육질 몸매는 감히 캡틴 브리튼으로 지칭하기 무리 없을 정도로 만들어졌다. 참고로 아직 현재 진행형이다!
안 그래도 타고난 얼굴은 더욱더 멋있어 지는 중이다.
거기에....
“액션도 직접 할 줄 안다고요?”
“네. 총기 액션, 이종 격투기, 쿵푸, 검술액션... 다양하게 훈련 받았어요. 지금도 배우고 있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보여 드릴까요?”
자신만만한 미소!
잘한다 다니엘!
다니엘이 스스로를 어필하며 적극적으로 기회를 잡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뿌듯하고 대견할 수가 없었다. 샬럿 역시 그런 다니엘의 모습을 들뜬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제임스 런 감독이 흥분한 얼굴로 일어섰다.
“좋아요. 어디 가서 확인해 봅시다. 카메라는 뭐....”
스마트 폰을 꺼내 흔들며 말한다.“이거 하나면 충분하죠!”
텅 빈 공간 한복판에서.
다니엘은 그 동안 쌓아 올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아예 웃통을 까며 자신의 근육질 몸매를 어필했고, 코믹스에서 봤던 대화를 읆으며 상황을 재현한다.
총이나 칼이 없어도 실제 쥐고 있는 것처럼 연기했다.
제임스 런 감독의 열정도 다니엘 못지않았다.
“잠깐만요! 그 장면 다시 한 번 촬영해 봅시다! 카메라 지그시 내려다보면서 대사는 조금 더 묵직하게... 그렇죠!”
마치 실전처럼, 연출 구도를 다양하게 잡아가며 디테일한 주문을 하는 게 아닌가?
샬럿이 흥분한 얼굴로 속삭였다.
“저 감독님 대단한 사람이야. 실제 코믹스에서 나왔던 장면 구도를 디테일하게 따라하고 있어!”
아무래도 저 사람, 코믹스 내용과 설정뿐만 아니라 컷 하나 하나까지도 완벽히 외운 모양이다. 주문이 굉장히 디테일했는데....
“자, 다 같이 모여서 촬영한 거 모니터링 해봅시다!”
휴대폰으로 촬영한 거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결과물이 좋았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더니...!
그 후로 두 사람은 반나절 동안을 지치지 않고 열정을 불태웠다.
오죽하면 지켜보는 우리가 지칠 정도였다.
이 시점에서 결과는 뭐... 이미 정해진 거라고 봐도 무방하겠지?
“아주 마음에 들어요! 다니엘 군을 <갤럭시 오디세이> 주인공 ‘데인’ 배역으로 캐스팅하겠습니다!”
“만세!”
“해냈다!”
“으하하!”
... 예상은 했는데, 그래도 막상 결과를 통보 받으니 굉장히 기쁘더라.
우리 세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고 한참을 방방 날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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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에는 샬럿의 캐스팅 결정을 위한 미팅이 이어졌다.
올해로 55세인 가이 피어스 감독.
1983년에 스릴러 영화로 감독 입봉 했고, 1986년 로맨스 영화로 성공한 이후에 뮤지컬 영화를 주로 제작해온 명장이었다.
그가 이번 디즈니 애니메이션의 실사화 영화감독을 맡게 되었다.
제목은 티아라.
이웃 왕국과의 전쟁.
수도 중앙군에 병사로 차출된 오빠로 인해 집안 분위기가 엉망이 되자 오빠를 돌려보내고 대신 자기가 전선에 투입될 생각으로 여정을 떠나는 ‘티아라’에 대한 이야기.
티아라는 여정 중 사귄 친구들에 의해 마법에 대한 재능을 깨우치게 되고, 오빠는 물론, 왕국의 위기를 구해내며 영웅 된다.
오빠가 보호하던 1왕자와 눈이 맞아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은 덤이다.
판타지적인 요소와 로맨스, 모험, 액션, 그리고 멋진 음악까지.
모든 것이 갖춰진 1990년대 최고의 히트 애니메이션이었다.
참고로, 이전 삶에서도 샬럿은 이 티아라 역할을 했었다. 비주얼은 훌륭했지만 연기, 노래, 춤, 액션... 이런 부분이 전반적으로 떨어져서 아쉬움이 많았지.
하지만 이젠 걱정 없다.
왜냐면 이번에는 내가 옆에 붙어 있었으니까!
“오디션을 한 번 봅시다.”
전날과 달리, 미리 설치된 촬영 장비가 설치되어 있었고 영화 주요 스텝들이 모두 모여 앉아 있었다.
나와 다니엘은 한편에 서서 조용히 샬럿을 응원했다.
이번 오디션은 두 가지로 진행된다.
지정 연기와 자유연기.
먼저 주어진 상황을 연기한다.
이미 완성된 작품의 대본 일부였다.
“흐음.”
“오호?”
가이 피어스 감독님과 스텝들의 반응이 괜찮았다.
이전 삶에서야 어땠을지 모르지만 이번에는 연기에 대한 내공과 훈련도 부터가 차원이 다르다!
노아에 이어 1980 브로드웨이 촬영을 거치면서 그녀는 이미 이전 삶을 뛰어 넘는 연기 내공을 갖췄다.
그런 상태에서 존로 아카데미를 함께 다니며 다양한 트레이닝과 관리를 받아왔다. 내가 직접 케어한 것도 상당했고.
덕분에 미모, 몸매, 연기력, 액션에 대한 감각 등등.
지금의 샬럿 왓슨은 모든 면에서 남다른 배우가 되어 있었다.
당연히.
“아주 좋습니다!”
“완벽하네요. 티아라 그 자체에요!”
모든 이들로부터 기립 박수를 끌어냈다.
그 순간 나와 다니엘은 힘껏 하이 파이브를 했다.
“됐다!”
“완벽했어! 샬럿 정말 잘했어!”
놀랍게도, 샬럿은 만장일치로 주연 배우에 낙점됐다.
현장에서 바로 통보를 받은 것이다.
심지어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계약 조건도 굉장히 좋았다.
계약을 마친 뒤 샬럿과 다니엘은 뉴욕 맨해튼의 우리 집으로. 나는 한국으로 떠나게 됐다.
공항에서 다니엘이 말했다.
“회사는 언제 세울 거야?”
“음?”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이번에 우리 영화 계약한 거, 네가 영업해 준 덕분에 가능했던 거잖아. 미국 에이전시는 10%를 수수료로 받아간다고 하던데, 우리도 그 정도는 해줘야 할 것 같아.”
“맞아! 그리고 회사 세우면 우리가 제일 먼저 계약해 줄게!”
에이전시 말하는 거구나.
음, 계획은 있지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
미국에서 에이전시는 하고 싶다고 누구나 설립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나이가 어린 것도 있고, 군대, 학교, 나만의 인맥 구축, 대중적인 인지도 업 등등.
해야 할 퀘스트가 산적해 있었다.
무엇보다도 내 자금 대부분이 코인과 주식에 몰려 있어서....
생각을 정리하고 웃으며 말했다.
“그런 이야기는 나중에 하자. 지금은 때가 아니야.”
“회사 설립 생각이 있긴 하구나?”
샬럿의 예리한 질문에 난 씩 웃었다.
“물론이지.”
“좋아. 그러면 그때 꼭 말해줘. 그 동안 기다리고 있을게!”
“나도!”
고마운 녀석들.
난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알았어. 준비 완벽하게 끝나면 제일 먼저 제안할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