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5화. 데뷔조 오디션 (2) >
데뷔조 오디션 10분 전.
회의실에 대표님을 포함, 팀장급 이상의 인력들과 함께 모여 오디션을 점검했다.
“일단 이렇게 남녀 각각 열 명 정도가 기대주라는 거죠?”
“어디가도 센터로 데뷔할 수 있는 친구들이야.”
“.......”
“야! 너 그런 눈으로 보지 말라고 했지?”
“문....”
“그 놈의 문 라이트! 한 번 더 우려먹으면 너 진짜 가만 안 놔둬!”
웃음이 터져 나온다.
하지만 나와 대표님은 굉장히 진지했다.
뭐, 스승이기는 제자 없다고.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한 발 물러섰다.
그리고 벽시계를 확인하고 말했다.
“시간 됐네요. 이동하시죠.”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나를 향해 이목이 쏟아지는 게 느껴졌다.
커다란 연습실의 절반을 가득 채운 연습생들.
참고로 이게 전부가 아니다.
너무 어리거나, 아직 연습량이 턱없이 부족한 친구들은 오늘 연습에서 제외됐다고 한다.
자리에 앉고 마이크를 집어든 뒤 면면을 쭉 훑어본다. 그리고 한 곳에 시선이 멈췄다.
‘저 친구구나.’
보면 깜짝 놀랄 거라고 했던가?
그 말이 맞았다.
정말 인재가 가득한 연습생 사이에서도 단연코 군계일학!
‘제 사촌 언니를 쏙 빼닮았군.’
아직 중학교 2학년생이고, 세 달 전에 입사했다고 들었다.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인데 회사의 최고 기대주로 거듭났다고 했다.
시선을 떼고 다른 이들까지 둘러본 뒤 슥 웃었다.
그리고 첫 마디를 뗐다.
“그렇게 쳐다보니 굉장히 민망하네요. 여러분 심정은 알겠지만... 전 부끄러움이 많은 사람입니다. 너무 쳐다보지는 말아주세요.”
처음에는 의문이, 그것은 곧 웃음으로 바뀐다.
농담을 바로 알아듣지 못할 만큼 다들 긴장해 있다는 뜻이다.
“고민이 많았는데, 오디션을 한 명씩 보면 끝도 없을 것 같으니 다섯 명씩 나와서 춤, 노래, 카메라 테스트 세 개의 항목을 차례대로 체크하고 넘어가는 것으로 진행할 게요.”
웅성거림이 커진다.
당황한 얼굴들.
남자 연습생 한 명이 당당히 손을 치켜 들고 말했다.
“그냥 개인 오디션으로 진행해 주시면 안 되나요?”
시선이 쏠린다.
그림처럼 잘생긴 얼굴.
유난히도 반짝거리는 눈동자에 패기가 가득하다.
... 포스가 상당한데?
“공채 오디션에서나 보는 방식으로는 연습생들의 실력을 확실히 체크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오, 용기 있는데? 강단도 있고.
나를 향한 대표님, 팀장들의 시선에 흥미가 가득해졌다.
자, 어떻게 대처할래?
이런 눈빛이다.
난 다른 사람들에게 물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어....”
“그....”
눈치만 볼 뿐,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금단의 비법을 시행해 본다.
“난 당당하게 자기 할 말 하는 사람이 좋던데, 다들 할 말 없으면 일단 저 친구에게만 플러스 점수를....
“동의합니다!”
“개인 오디션으로 봐주세요!”
“선배님께 그 동안 갈고 닦은 실력을 모두 보여드리고 싶습니다!”
그제야 악을 쓰듯 대답을 한다.
대표님과 팀장님들은 폭소가 터졌고 나 역시 피식 거릴 수밖에 없었다.
귀엽지 않나?
그리고 요즘 애들은 참 당돌하기도 하다.
라떼와는 참 다르단 말이지!
“제일 먼저 저한테 반기 들었던 연습생 친구, 이름이 뭐예요?”
사실 외우고 있다.
방금 확인한 남녀 연습생 인재 리스트 10인에 이름을 올린 친구니까.
서울시에서 주관한 청소년 페스티벌에서 춤과 노래로 압도적 1위를 했던 친구라고 했다.
“제 이름은 박소문. 영광 고등학교 1학년에 재학 중입니다”
참고로, 경쟁사인 KM, LK로부터 제안을 받았는데 다 까버리고 우리 회사로 왔단다.
나를 굉장히 존경한다나?
“좋아요. 박소문 연습생에게 스타트를 끊을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
놀라는 친구들.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난 씩 웃으며 도발했다.
“왜요? 본인 실력에 자신 있어서 그런 말을 한 거 아니었어요?”
그 말에 불이 붙었는지, 냉큼 앞으로 나와 나에게 USB를 건네준다.
난 그것을 우리 스텝에게 전해주며 말했다.
“오늘을 위해 준비한 음원인가요?”
“네!”“좋아요. 한 번 봅시다.”
미리 말을 안 했는데...
원래부터 데뷔조 오디션은 단체가 아닌 개인, 그것도 공개로 진행하기로 예정되어 있었다,
5인 어쩌고는 그냥 장난치려고 던졌던 말이지.
잠시 후 울려 퍼진 노래에 나는 헛웃음을 짓고 말았다.
이 당돌한 소년의 첫 오디션 곡은....
“이거 이잖아?”
“바로 며칠 전에 레드 트라이브가 발표한 그 노래 아냐?”
“아니, 여기서 랩을 한다고?”레드 트라이브의 Bang!
내가 만들었고, 레드 트라이브가 바로 며칠 전에 발표했던 드릴 힙합 음악이었다.
어디서 또 모형 마이크 소품을 준비한 박소문은 잭 녀석처럼 위로 꼬나들고 격렬한 랩을 퍼부었다.
오호, 이거 제법...?
난 진지하게, 어린 새싹의 랩에 집중했다.
랩에 이어 프리 스타일 댄스를 선보이는데 힙합, 웨이브, 파핑, 재즈 댄스... 정말 다양한 장르의 춤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더라.
위에서 최고 기대주로 뽑은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실력도 실력이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공연을 하는 동안의 비주얼.
찡그리고, 온 몸이 땀에 푹 젖어 헐떡이는 모습까지도 싱그러워 보였다.
사실 이거야말로 아이돌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저런 게 바로 최고의 입덕 포인트거든!
난 주저 없이 외쳤다.
“박소문 합격!”
“응?”
“으잉?!”
모두가 경악, 심지어 팀장님들도 당황한 얼굴로 날 바라보신다.
반면.
“됐다! 아자! 아자!”
당사자는 기뻐 날뛰고 있다.
모두가 멍한 가운데, 난 당당하게 말했다.
“누가 봐도 1티어 급 인재잖아요? 랩이면 랩, 춤이면 춤, 비주얼이면 비주얼, 그리고 필요할 때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당돌함까지....”
그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간 사실에 다급히 물었다.
“아, 박소문 연습생! 혹시 학교 폭력 같은 이슈 될 만한 일을 저지른 전적이 있나요?”
“그런 거 절대 없습니다!”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던 박소문이 순식간에 엄근진한 얼굴로 대답했다.
“정말요? 조사하면 다 나와요!”
“믿으셔도 됩니다. 무엇보다 저는 이슈에 휘말릴 수가 없는 이유가 있어요!”
“그게 뭔데요?”
“아버지께서 복싱 선수셨고 지금은 체육관 관장님이십니다. 형은 격투기 선수에요. 그런 짓 하다가 걸리면 다리몽둥이가 부러질 겁니다!”
당당하게 무시무시한 소리를 내뱉는 박소문!
대표님이 싱글 벙글 웃으며 말씀하신다.
“소문이 아버지가 WBC 브리저 급 챔피언이었던 박대형 선수야. 형님은 지금 굉장히 핫한 UFC 헤비급 4위의 랭커 박중문 선수고.”
헐, 뭐냐?
이 무시무시한 집안 내력은?!
“원래 소문이를 태권도 선수로 키울 생각이었다나 봐. 실제 재능이 굉장해서 중학교 때까지는 온갖 대회를 휩쓸었다고....”
“헐, 그런데 왜 갑자기 진로 변경을...?”
“그게....”
“전 김민 선배님을 존경해서 가수가 되기로 결심했습니다!”
“.......?”
“그래서 일반고에 진학해서 춤과 노래를 시작했고 실력을 점검할 겸 서울시 청소년 페스티벌에 출연했던 겁니다!”
“아...!”
난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전도유망했던 태권도 유망주를 타락시켰구나!”
“.......”
회심의 농담이었는데 반응이 썰렁했다.
다들 긴장하고 있는 까닭이다.
아무튼, 그런 환경에서 자랐다면 이슈될 만한 일은 저지르고 싶어도 못했겠네.
스포츠 엘리트 집안 아닌가?
운동선수들은 그런 부분에 굉장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들이다.
가정교육을 엄격하게 받아왔겠지.
그리고 본인도 태권도 선수였고, 대회를 휩쓸고 다녔다니 평범한 친구들과 어울릴 시간조차 없었을 것이다.
... 전사의 피가 흐르고 있었군!
“아무튼 합격! 팀장님들, 박소문 연습생은 오늘부터 바로 남자 팀 데뷔조로 올려주세요. 박소문 연습생은 계약서 새로 작성해야 하니 이틀 후에 부모님 모시고 오도록 하세요.”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정말 최선을 다해서 선배님 실망시켜드리지 않겠습니다!”
첫 오디션에서 등장한 합격자!
난 씩 웃으며 다른 연습생들에게 말했다.
“봤죠? 잘하면 바로 이렇게 합격 판정 받을 수 있어요.”
“.......!”
침을 꿀꺽 삼키며 심기일전하는 연습생들.
기분이 좋아졌다!
박소문.
굳이 등급을 매기자면 S급에 해당하는 저 인재는 전생에 등장하지 않았던 친구였다.
스포츠 쪽에서는 어떨지 모르겠는데... 가요계에서는 본 적이 없다.
그런 인재가 뽑혔으니 어찌 좋지 않으랴?
과연.
박소문 이후로도 즉석에서 합격판정을 받은 인재들이 등장했다.
하나 같이 만화를 찢고 나온 듯한 미소년 들이고 춤과 노래 실력 역시 수준급이었다.
그런데 합격 판정을 너무 남발했던 걸까?
“잠깐 타임. 모두 회의실로.”
난 회의실로 끌려갔다.
대표님이 내게 소리쳤다.
“내가 너 처음부터 불안했어. 야! 열 명을 다 뽑으면 어떻게 해?!”
그래.
인재 리스트에 올린 연습생들.
그 중 남자 연습생 열 명을 다 뽑아 버렸다.
하지만 난 당당하다!
“다 좋은 인재였는데 어쩌라고요?!”
“뭐 인마?!”
“모두 팀으로 만들어서 데뷔 시키면 되지 뭐가 문제에요? 열 명을 한 팀으로 만들던가, 다섯 명씩 잘라서 서로 다른 두 팀으로 만들던가!”
대표님과 팀장님들이 묘한 시선을 주고받는다.
이정연 팀장님이 물으신다.
“민이 씨, 계획이 있나요?”
“그야....”
없죠!
“....있죠! 그 친구들 딱 보는 순간 머릿속에 엄청난 그림이 절로....”
그려질 리가 있냐. 그게 가능하면 천재지.
“... 쓱쓱 그려지더라고요!”
허허.
난 모르겠다.
일단 지르고 보자.
“열 명이 팀이다?”
두 팔을 좌우로 벌리고 자애롭게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 중에 네 취향이 하나쯤은 있겠지?”
“.......”
“다섯 명씩 두 팀이다?”
두 손을 양 볼에 붙인 뒤, 왼손을 쥐고 오른손을 펼친다.
“댄스, 발라드!”
이번에는 반대로!
“발라드, 댄스!”
짝짝!
손뼉을 친 뒤 엄지를 내밀었다.
“굿!”
“........”
잠시 후.
“이거 놔! 야 인마! 너 이리 안 봐?!”
“대표님 참으세요!”
“민아! 도망쳐!”
@
사실 팀이 모두 나온 시점에서 오디션을 끝내고 싶긴 했지만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하루 종일 오디션을 진행했다.
무려 저녁 아홉 시까지!
이것 대문에 저녁 식사 전 미리 부모님께 전화를 돌려야했고, 끝난 뒤에 셔틀 버스를 운영해 직접 집에 데려다 주기까지 했다.
다음 날은 여자 연습생 오디션을 진행했다.
‘요 근래에 들어온 인재들이 하나같이 굉장하구나.’
특히 인재 리스트에 올린 친구들은 합격 판정을 주지 않을 수가 없는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오디션을 진행하는데 마침내 기다렸던 한 명이 나왔다.
가까이에서 마주한 순간 절로 웃음이 나왔다.
‘완전... 언니 미니미가 따로 없네.’
친 자매도 아닌데 이렇게 닮을 수가 있나?
내게 웃음을 선사한 소녀는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아, 안녕하세요! 저는 올해 중학교에 입학한 주세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