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6화. 데뷔조 오디션 (3) >
‘주세아의 사촌 동생 주세연이라.’
언니의 추천으로 오디션을 봤고, 합격했다고 되어 있다.
인상은 주세아 미니미!
세아 어린 시절 사진을 본 적이 있었는데, 그때 모습과 꼭 닮았다.
“머, 먼저 춤부터 보여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보여준 것은 블루웨이브..
심지어 언니의 파트였다.
‘벌써 자신만의 춤선을 가지고 있군.’
굉장히 유려하다.
언니보다는 확실히 춤에 재능이 있다는 소리다.
‘마치 인어공주를 보는 느낌이야. 우아하고, 미끈한 느낌이 살아 있어.’
춤을 출 때마다 나풀거리는 길다란 흑발은 굉장히 탐스럽다. 주세아가 냉랭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면 주세연은 춤 출 때 짓는 미소가 굉장히 사랑스럽고 귀엽다.
‘정반대의 특성을 지니고 있네.’
스타성과 춤솜씨는 합격!
나이도 어리고, 입사한 지 몇 개월 되지도 않았는데도 벌써부터 여자 연습생 인재 10인에 이름을 올린 이유가 있었다.
‘노래만 어느 정도 받쳐주면 무조건 합격이다.’
이런 인재에 불합격 판정을 내리거나 유보하는 건 프로듀서로서 자격이 없다는 소리다.
“노래는 눈 내리는 밤을 보여드리겠습니다.”
평타만 쳐라.
그런데 이후 펼쳐진 광경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눈 내리는 밤.
도시가 하얗게 물들면....
“.......!”
이게 작년까지 초등학생이었던 아이의 노래 실력이라고?
얼마나 놀랐는지 난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뻔 했다.
간신히 몸을 제어하긴 했지만 놀란 표정과 들썩거린 행동은 숨기지 못했다. 모두의 시선이 나에게 쏟아지지만 난 외면하고 주세연에게만 집중했다.
이 감성, 이 목소리....
‘이제 보니 외모와 춤솜씨가 평범했다고 하더라도 무조건 데뷔조에 뽑혔겠어.’
진짜 강점이 노래였다.
비주얼뿐만 아니라 보컬도 인어공주 그 자체!
어린 티가 확연하지만 나이 탓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심지어 그 어린 나이까지도 장점으로 생각될 정도로 보컬이 뛰어나다.
인어 공주 노래 가사처럼 저 바다 밑!
누구의 손도 닿지 않아 굉장히 맑고 순수한 기운을 잔뜩 품고 있는 것 같다.
‘또 다른 타입의 보컬 천재로군.’
서연이는 평상시 말할 때는 잘 티가 안 나지만, 뱃심에서 소리를 뽑아내면 성량이 굉장히 크고, 흑인 특유의 진한 다크 초콜릿 같은 색이 묻어난다.
주세연은 말했다시피 맑고 언급한 샘물이다.
‘세아가 추천한 이유가 있었군.’
왜 이런 인재가 이전 삶에서는 연예계에 발을 담그지 않았던 걸까?
“.......”
아무래도 주세아의 영향이겠지?
당시 주세아는 세계적인 아이돌로 이름을 날리긴 했지만 연예계, 특히 소속사에 굉장히 환멸을 느끼는 듯 보였으니까.
“하아, 하아....”
“.......노래가 끝났다.
모두의 내 얼굴만 바라보고 있었다.
판정?
그야 당연히....
“주세연. 합격.”
이미 답은 예정되어 있었다.
“가, 감사합니다!”
밝은 미소로 고개를 푹 숙여 인사하는 주세연.
“아, 잠시만요.”
신나서 돌아가려는 세연을 붙잡고 보컬 트레이너에게 말했다.
“저 친구, 재즈보다는 성악 베이스로 훈련시켜주세요. 굉장히 맑고 순수한 보이스 컬러를 최대한 살릴 수 있는 방향으로요. 성량도 좀 붙으면 좋겠네요. 마이크 없이 이 공간을 쩌렁 쩌렁 울릴 수 있을 정도로 단련이 되면 좋겠어요.”
난 씩 웃었다.
“뭐, 선생님께서 어련히 알아서 잘 해주시겠지만요.”
이번에도 역시 거를 타선이 없었다.
여자 연습생 열 명의 인재들을 말하는 것이다.
비주얼, 실력, 스타성.
모든 면에서 굉장히 훌륭했다.
... 대체 이런 실력자들이 왜 이전 삶에서는 보이지 않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였다.
다음 날 아침. 회의실에서 난 고심 끝에 말했다.
“여자 팀도 열 명 모두 합격 시키죠.”
“으음.”
“왠지 저런 말 할 것 같더라.”
침음성을 흘리며 고심하는 분도, 그럴 줄 알았다며 태연한 반응을 보이는 분도 계셨다.
대표님은 어느 쪽이었냐 하면....
“야, 너 우리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지?”
날 당장이라도 때려잡을 듯 매섭게 노려보는 쪽이었다.
“뭐가 문제에요?”
“총 스무 명... 숙소, 식비, 이동비, 의상비... 야! 이거 다 어떻게 부담해?”
“에이, 엄살은...우리 회사 돈 많잖아요. 주가도 꾸준히 오르고 있던데.”
“아....”
뒷목을 잡는 시늉을 하던 대표님은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하고.
“잘 들어. 네가 아직 그룹을 키워본 적이 없어서 그렇게 쉽게 말하는 것 같은데... 돈도 돈이지만 관리가 더 큰 문제란 말이야. 관리. 한창 혈기 넘치는 애들이 한 두 명도 아니고, 열 명씩 붙어 있다면 계속 사고가 터지지 않겠냐. 그러면 그거 누가 수습해야 할까?”
“대표님이죠!”
“........”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대표님은 곽 휴지통을 집으려 손을 벋었다. 그 순간 주위에 있던 팀장님들이 붙잡고 말렸다.
“그러시면 안 된다니까요!”
“놔봐. 저 자식 딱 한 대만 때릴게. 진짜 딱 한 대만....”
장난은 여기까지만 할까?
우리 대표님 진짜 뒷목 잡고 쓰러지겠네.
“본업은 가수지만, 다방면에서 활동할 수 있는 전천후 엔터테이너 그룹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아요. 남녀 두 팀 모두요.”
“........?”
남녀 인재 리스트를 받아들자마자 떠올린 아이디어였다.
“구성을 자유롭게 가면 좋을 것 같아요. 그룹으로도 활동시키고 유닛이나 솔로로도 활동시키고, 제가 보니 방송 활동이나 영화 쪽에서도 두각을 보일 멤버들이 있어요. 박소문 같은 경우는 체육 집안이고 본인도 체육에 상당한 재능이 있으니 체육 예능을 하면 1순위로 투입시켜보는 것도 좋겠죠. 아니면 액션 영화에 출연을 시켜보던가요.”
내가 줄줄이 쏟아내는 아이디어에 회의실 공기가 달라졌다.
당장 대표님의 표정부터가 달라졌다.
“너 이 자식... 역시 계획이 있었구나?!”
“물론이죠!”
“그래. 믿고 있었다!”
엔 플라워, 에버가든이 철저히 기획을 통해 활동이 이뤄지는 그룹이라면, 두 신인 팀은 자유롭게 풀어볼 생각이다.
활동하다보면 때로 서로 반복하고 싸우고 그럴 수도 있겠지.
‘극단적으로 치닫지만 안으면 돼.’
원래 싸우면서 더 친해지는 거니까.
무엇보다....
‘떠그 트리오들에게 단련이 된 덕분에 웬만한 망나니라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어.’
국제적인 미친놈들하고 친하게 지내다 보니 나 역시 어느 정도는 단련이 됐다.
예전의 내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데뷔조 스무 명에 대한 아티스트 계약이 진행됐다.
미성년자 연습생들의 경우에는 부모님들이 와서 계약을 진행했는데 가장 인상 깊었던 사람은 역시 박소문의 부모님이었다.
“안녕하십니까. 박소문 아버지 박대형입니다!”
“소문이 엄마 진유정이예요.”
근육질 거구에 무시무시한 인상.
강자의 포스가 느껴졌다.
그런데 어머니도 예사롭지 않았다.
“박대형 선수. 진유정 선수. 정말 팬입니다! 이렇게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운동 덕후 대표님을 열광하게 만드는 분들!
알고 보니 어머니가 젊은 시절 굉장히 유명했던 세계적인 수영 선수였다는 모양이다.
빼어난 비주얼로 당시 어지간한 톱스타 수준의 인기를 얻었다고....
... 소문이 미모가 어머니에게서 온 거였구나!
대표님이 날 소개하신다.
“여기 이 친구가 김민. 나이는 어리지만 굉장히 실력 있는 아티스트에요. 소문이를 가수로 선발한 장본인이고 앞으로 프로듀서이자 스승으로서 활동을 지도하게 될 거예요.”
두 분은 한참 어린 나에게 고개까지 숙이셨다.
“잘 부탁드립니다. 선생님!”
“우리 소문이 잘 좀 이끌어 주세요.”
나 역시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최선을 다해 지도하겠습니다.”
데뷔조로 선발된 남녀 연습생 스무 명이 지하층에 입성했다.
“와, 내가 여기에 오다니....”
“엄마 아빠는 모르지? 이곳이 어떤 곳이냐면 정식 아티스트들만 올 수 있는...!”
부모님과 함께였다.
회사 구경을 시켜드렸고 구내식당에서 함께 식사도 했으며 카페테리아에서 음료도 마셨다.
친구들이 평소 연습하던 연습실도 둘러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곳에 온 것이다.
모아서 할 말이 있었으니까.
“자, 주목!”
모두들 들뜬 표정이다.
지하층에 입성하고서야 데뷔 조에 들어온 것이 실감이 되는 모양이다.
“저는 딱 세 가지만 강조하겠습니다.”
손가락을 하나씩 펴며 말했다.
“사고치지 말자. 정치질 하지 말자. 성장하자.”
한 명씩, 눈을 마주친 뒤 말을 이어갔다.
“다른 거 아무리 해봐야 소용없어요. 노력하고 성장하면 알아서 끌어주고 기회를 제공할 겁니다. 여기서 성장에 실력뿐만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도 포함됩니다. 아시죠? 우리 회사 인성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거.”
“네!”
우렁찬 대답.
무슨 군대도 아니고....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이제부터 배워야 할 게 많을 거예요. 곡 쓰는 법. 악기 연주하는 법. 노래 부르고 춤추는 법. 자기 관리 하는 법. 등등.”
“........”
“그런데 이런 게 아무리 훌륭해도 무식하면 확 깨요. 세상 제대로 살아가려면 정치, 사회, 경제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기본 상식이 있어야 해요.”
난 검지로 이마를 톡톡 두드리며 말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 들어 보셨죠?”
“네!”
“아는 게 많은 만큼 깊이 있는 창작을 할 수 있고 공연을 보여줄 수 있어요. 재능? 그런 거 아무리 뛰어나봐야 머릿속에 든 게 없으면 다 허사에요. 그런데 재능이 좀 부족해도 아는 게 많으면 그걸 이용해 역량 이상의 무언가를 보여줄 수 있는 법이죠.”
부모님들이 내 말에 공감하듯 열심히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런데 애들은 살짝 공감이 안 되는 것 같다.
교장 선생님이나 할 법한 뻔한 소리라 그런 것 같은데... 자극을 좀 줘볼까?
“세계에서 활약하고 싶죠?”
“........!”
“빌보드 싱글 차트, 할리우드 이런 곳.”
역시 이게 스위치였군.
바로 표정부터가 달라졌다.
하나 같이 이글 이글 타오르는 듯한 눈으로 날 바라본다.
그렇지.
이전 생에서는 이름조차 찾아 볼 수 없었던 인재들이 갑자기 튀어나와 우리 회사로 몰려든 건 아무래도 이것 때문이겠지.
“자, 미국에 가려면 뭘 해야 할까요? 한 명씩 말해 봐요.”
“영어를 잘해야 해요!”
“현지 사람들의 문화를 잘 이해할 수 있어야 해요!”
“춤, 노래 실력이 굉장히 좋아야 해요!”
온갖 대답들이 나온다.
“맞아요. 그게 다 되면 미국에 진출하는 것도 가능해요. 저처럼 빌보드 싱글 차트에 들 수도 있고,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에 출연할 수도 있을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지금은 그거 안 돼요?”
“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노력해야죠!”
“공부해야 해요!”
역시, 애들은 이렇게 말해야 반응을 좀 보인다니까?
“예를 들어 내가 레이나와 만나게 해줬는데 영어를 하나도 못해서 대화 못하고 돌아오면 억울할 거 아니야. 안 그래요?”
“맞아요!”
“원통해서 못 살아요!”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 만나게 해줬는데 영어도 못해, 연기력도 엉망이야. 액션 연기를 요구했는데 아무것도 못했어. 몸도 비리비리해. 그래서 떨어졌어. 두 번 다시 지원하지 말래. 앞으로 안 보고 싶데.”
“......!”
감독님이라면 진짜 이렇게 말할 거다.
우리에게야 자상하지, 본래는 굉장히 냉정한 분이니까.
그리고 미국에는 이런 제작자가 사방에 널려 있다.
거긴 정말 강자지존의 세계거든.
“생각만으로도 끔찍하죠?”
“네!”
“기회 잡고 싶으면 죽어라 노력합시다.”
결의가 가득한 얼굴.
순둥 순둥했던 친구들도 지금은 독기를 불태우고 있었다.
이제야 표정들이 좀 마음에 든다.
이후 남녀 팀을 나눠 다른 연습실에 집어넣은 뒤 데뷔조 첫 트레이닝을 진행했다.
부모님들은 조금 지켜보다가 안내를 받고 각자 집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모처럼 내 작업실로 돌아와 곡, 컨셉 구상을 시작했다.
비축해 둔 곡이 몇 곡 있지만 이 팀들에 쓰기는 적절하지 않았다.
... 그런데 이제 데뷔조가 결성됐는데 벌써 곡과 컨셉을 구상하는 게 말이 되나?
멤버 성격, 특징, 케미, 잠재력... 아무것도 모르는데?
“........”
“그걸 확인해 볼 수 있는 판을 깔아야겠군.”
캐릭터를 확실히 파악할 수 있고, 덤으로 팬들을 입덕시킬 수 있는 콘텐츠라면 좋을 것 같다.
그래.
험난하고 치열한 경쟁 시대!
성공하려면 강하게 커야지!
“........”
리얼리티 예능 가즈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