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83화 (183/205)

천재로 돌아왔다 183화

133. 김민의 맨해튼 드리밍(4)

"오디션 광경을 영상으로 촬영해도 되는 거예요?"

"회사하고 사라 굿 본인도 허락했으니 뭐……. 그리고 이런 광경 찍으러 오신 거잖아요. 당연히 협조해 드려야죠."

"정말 고마워요! 하하하!"

이른 아침. 서연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회사로 이동했다.

도착한 곳은 사방이 유리로 둘러싸인 마루 연습실.

"아! 민! 민!"

목을 풀고 있던 사라 굿이 굉장히 활기차게 손을 흔들며 반겨준다.

회색 트레이닝복에 후드를 머리에 쓰고 있었는데 워낙 자태가 빼어난지라 주변 시선을 잡아끌고 있었다.

특히 오디션 구경 온 남자 스태프들이 정신을 차리지 못하기에 한마디 했다.

"이 친구 아직 미성년자예요. 시선 간수 잘하세요."

"……!"

아이작과 킴벌리 씨가 도착했다.

"자, 어디 시작해 볼까요?"

"긴장하지 말고 편하게 해요."

아이작, 킴벌리 부부는 자상하게 긴장을 풀어준다. 사라 굿은 심호흡을 한 번 하더니.

"우선 로린 힐의 'Doo Wop'을 불러볼게요!"

놀란 표정들.

1990년대를 통틀어 최고의 뮤지션으로 꼽히는 '퀸' 로린 힐의 대표곡이 아닌가?

그녀를 여성 래퍼 중 올타임 넘버원으로 꼽히는 전설의 거장이며 동시에 알앤비 싱어이기도 했다.

"……!"

이후 그녀의 무대는 정말이지 로린 힐의 전성기를 연상케 할 정도로 굉장했다.

열여섯의 어린 나이에 뉴욕에서 생존율이 가장 극악하기로 유명한 공연장의 핫 스타가 된 이유가 있었던 것.

"……!"

나영웅 피디님과 카메라 감독님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 대한민국 최고의 예능 제작자로서, 수많은 스타들을 직접 보아왔던 그에게도 놀라운 기량이겠지.

"와하하하!"

그 아이작이 박수까지 치며 놀라움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팔을 뻗어 내 목을 휘감으며 속삭인다.

"넌 참 운도 좋다. 대체 어떻게 해야 저런 보물을 주워줄 수 있는 거야?"

랩, 노래, 그리고 춤, 심지어 카메라 테스트까지.

모든 부분에서 압도적인 모습을 보인 사라 굿은 즉석에서 만장일치로 캐스팅이 결정됐다.

"굉장해! 바로 계약서 작성합시다. 부모님 모셔왔죠?"

"네! 가족하고 함께 왔어요!"

수선을 떠는 동안 나는 카메라 앞에서 나영웅 피디님과 인터뷰를 했다.

참고로 내가 질문하는 거다.

"소감이 어때요?"

"연습이 필요가 없을 정돈데……. 미국에는 저런 실력자가 많아요?"

"뭐, 실력만 따지면 없는 건 아니죠. 문제는 비주얼과 스타성인데……. 그것까지 모두 완벽히 갖춘 사람은 정말 드물죠."

"한국에서 비교할 상대가 있을까요?"

"없을 것 같은데……. 보셨잖아요. 전성기 로린 힐이 나타난 줄 알았다니까요?"

"로린 힐이 그렇게 대단한 가수였어요? 이름은 들어봤는데……."

"압도적이죠. 현재 메이저에서 슈퍼스타로 이름 날리고 있는 흑인 뮤지션들, 특히 여성 래퍼들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거예요. 당신들에게 로린 힐이란 어떤 의미냐. 분명 이렇게 대답할 거예요. 퀸!"

"그만큼 영향력이 압도적이라는 뜻이죠?"

"그렇죠. 특히 여성 래퍼라면 로린 힐에게 영향을 받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게 불가능할 정도니까요."

작사, 작곡, 편곡 분야에서도 로린 힐의 재능과 업적은 압도적이다.

바로 그 로린 힐이 떠오르게 만드는 재능이다.

'프라스타일 랩을 들어보니 작곡에도 감각이 있는 듯 보이던데, 잘 가르치면 이른 시일 내에 어마어마한 스타 하나가 등장하겠어.'

한편으로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왜 전생에서는 사라 굿이라는 이름을 찾아볼 수 없었던 걸까?

혹시 신변에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닐까?

가족이 함께 한 계약 과정에서 곧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브롱스에 거주 중이시라고요?"

"네.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고."

브롱스.

뉴욕 최악의 슬럼가.

그 흉악하다는 엘살바도르, 푸에트리코 갱단이 판을 치고 다니는 곳이다.

여기에 비하면 할렘가는 양반이다.

일전에 할렘가에서 만났던 갱 친구들도 절대 브롱스에는 발을 들이지 말라고 경고했었다.

그런데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으니…… 이 브롱스가 바로 힙합의 고향이라는 것!

그 유명한 쿨 허크와 밤바타가 브롱스 출신이고 힙합 역사에 상징적인 모리스 헤이츠 아파트 건물도 여기에 있다.

"친구들도 다 이곳에 있고……. 춤과 노래도 이곳에서 익힌 거예요! 나름…… 살기 좋아요."

사라 굿의 해맑은 말에 누구도 공감하지 않았다.

심지어 부모님과 오빠조차도.

문득 가설이 떠올랐다.

어쩌면 사라 굿은 이 치안이 안 좋은 동네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한 게 아닐까?

그래서 활짝 피기도 전에 져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난 심각한 어조로 질문했다.

"지금 어디에 살아요?"

"사진 있는데 보여 드릴까요?"

사라 굿이 자신 있게 보여준 사진 속 집과 동네는 그야말로 최악!

사실 브롱스도 전 지역이 위험한 건 아니다.

백인들이 거주하는 리버데일 같은 곳은 관광지로도 유명하니까. 이 외에도 좋은 동네는 나름 좋은데, 문제는 이런 곳은 집값이 비싸다!

가난한 이민자들이 살 수 있는 곳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필 사라 굿이 사는 지역은 치안 안 좋고 험악하기로 유명한 곳이었다.

아이작의 신음이 증명한다.

"내 친구가 이 지역 출신인데 갱단에게 두들겨 맞아서 거리에서 죽었지."

"……."

갑자기 분위기가 싸늘해졌다.

난 고민하다가 말했다.

"이 동네에서 빠져나오는 게 좋겠어요. 치안 좋은 곳으로 오시죠."

"우리도 그러고는 싶은데……."

"저희가 능력이 부족해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사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렌트비가 점점 올라서 버티기가 힘들어요."

분위기가 더더욱 처졌다.

기본 텐션이 높던 사라 굿도 시무룩한 얼굴이었다.

"일단 이사, 정착 비용은 제가 대겠습니다."

"……!"

모두가 크게 놀라 날 바라본다.

사라 굿과 가족의 눈동자가 휘둥그레졌다.

아이작이 만류한다.

"한두 푼 들어가는 일이 아닌데……."

"사라 굿은 이제 제 아티스트예요. 전 프로듀서이자 스승이 될 사람으로서 그녀의 인생을 책임질 필요가 있어요."

난 아이작과 킴벌리를 보며 쓱 웃었다.

"제가 처음 미국에 건너왔을 때 두 분도 저에게 지원을 아끼지 않았죠. 저는 두 분께 보고 배운 대로 행하려는 것뿐이에요."

난 힘 있게 말했다.

"내 아티스트는 내가 챙긴다! 뭐, 이런 거죠."

난 사라 굿에게 말했다.

"스타가 돼서 가족 호강시켜 주고 싶어요?"

"네, 네!"

"그러면 딱 한 가지만 하면 돼요. 당분간 이 연습실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죽어라 연습하고 공부할 것."

"……저 공부도 해야 해요?"

"곡은 쓸 줄 알아야죠."

"아, 음악 공부……. 그거라면 좋아요! 민이 직접 가르쳐 줄 거예요?"

"물론이죠. 이제부터 제가 사라 굿, 당신의 프로듀서이자 선생님이에요."

"와아……!"

"뮤지션으로서 살아가는 법을 가르쳐 줄게요. 대신 제 말 잘 들어야 해요. 알았어요?"

"물론이죠! 민 말을 잘 들을게요!"

이때는 몰랐다.

이 미묘한 어감의 차이를.

이게 내 말만 잘 듣겠다는 뜻이라고 누가 짐작이나 했겠나.

부모님과 오빠가 짓는 복잡 미묘한 표정을, 난 이때는 이렇게 해석했다.

"제가 겉보기에 어려 보이고 실제로 나이도 어리니 못 미덥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래도 정신연령은 사라 굿보다 몇 배는 높고 책임감도 강한 사람입니다."

"아, 네에……."

"그, 그렇군요. 하하하……."

이때의 나는 참 어리석었다.

누구 인생 책임지겠다는 소리 함부로 해서는 안 되는 거였는데…….

계약을 마치고 말했다.

"계약금은 오늘 바로 입금해 드리죠. 그리고 제가 최대한 이른 시일 내에 집을 구해 드릴 테니 이사 준비는 미리 해두세요."

* * *

오후에는 에드 설리반 극장으로 이동했다.

맨해튼 내에 위치한 곳으로, 비틀즈의 미국 진출 첫 데뷔 무대 장소로도 유명한 곳이다.

내가 이곳에 온 이유?

여기서 매주 촬영이 진행되는 어떤 프로그램에 출연하기 위함이다.

레이트 쇼 위드 제키 로저스!

미국 3대 네트워크 중 하나인 CBS의 간판 프로그램으로, 최고의 코미디언이자 MC인 제키 로저스가 진행하는 심야 토크쇼다.

슈퍼스타뿐만 아니라 미국 대통령과 장관들도 심심찮게 출연할 정도로 인지도가 어마어마한 방송이다.

그런 굉장한 방송에 내가 출연하게 된 것이다.

물론 혼자 출연하는 건 아니다.

레이지, 사이먼 블랙, 레드 트라이브.

이렇게 세 명도 함께 출연한다.

<뉴욕의 힙합> 특집으로.

차 안에서 긴장감을 달랠 겸, 애써 웃으며 농담을 건넨다.

"이제야 두 분이 기대하셨던 장면을 보여 드릴 수 있게 됐네요. 기대되시죠?"

"……."

"……."

대답이 없어서 뒤를 돌아봤다.

나영웅 피디님과 카메라 감독님이 바짝 굳어 있는 게 아닌가?

저 양반들, 설마 긴장한 거야?

"지금 뭐 하세요?"

"너무 긴장돼서 미치겠어요."

"어우 떨려."

"아니, 출연하는 건 전데 왜 두 분이 더 긴장해요?"

"아니, 레이트 쇼 위드 제키 로저스 잖아요! 지난 수십 년간 최고 자리를 지켜 온 토크쇼……. 그런 촬영장에 방문한다는데 당연히 긴장 되죠!"

"제키 로저스는 말할 것도 없고, 그쪽 스태프들이 미국 방송사를 통틀어 톱클래스로 꼽히는 사람들이에요. 각 분야에서 손꼽히는 명성과 역량을 지닌 이들만이 참여할 수 있는 방송이라고요!"

아…….

그래. 그럴 수도 있겠네.

바로 납득하고 마음을 다스린다.

수많은 청중과 시청자 앞에서 라이브로 진행되는 방송이다.

아,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간만에 공황증이 피어오르는 것 같아!

대기실에 도착해서 친구들과 만나고, 촬영 현장을 둘러보며 다시 한번 생각했다.

이거…… 내가 출연하는 게 맞나?

사실 처음에는 저 셋에게만 출연 제안이 왔단다.

당연하지. 언더와 오버를 통틀어 뉴욕에 배출한 가장 핫한 힙합 스타들이니까.

반면 나는 프로듀서 포지션이고 힙합 스타가 아니다.

저 세 명에 비해 유명세도 한참이나 뒤처진다.

특집 컨셉도 그렇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갈 곳이 아닌데 저 세 명이 우겨서…… 날 출연 안 시키면 자기들도 안 나가겠다고 뻐겨서 지금 이런 상황이 된 것이다.

고맙기는 한데 그보다는 민망함이 더 크다.

그리고 책임감도 느껴진다.

이렇게 된 이상 뭔가 보여줘야 한다.

이런 엄청난 방송에 날 욱여넣어 준 친구들을 위해서라도.

저녁 시간.

극장이 가득 찼고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

오프닝 시간이 가까워졌다.

깔끔한 정장으로 한껏 멋을 부린 우리 네 사람은 백 스테이지 뒤에 모였다.

잭이 쓱 웃으며 말한다.

"한마디 해야지?"

"내가?"

"네가 리더잖아."

"내가?!"

"프로듀서기도 하고 이래라저래라 잔소리 엄청 심하기도 하고……."

"……."

그래서 내가 리더라고?

어이가 없지만 왠지 수긍이 되기도 한다.

난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오버하지는 말고, 쓸데없는 제스처 같은 거 하지 말고. 오늘 컨셉은 젠틀 몬스터로 가자고."

"……?"

"기품 있고 우아하게 엎어버리자는 뜻이야."

"아하."

"마음에 들어."

"그거 좋군."

마침 큐 사인이 떨어졌다.

한편에서 촬영 중인 나영웅 피디님과 카메라 감독님을 향해 씩 웃어 보인 뒤 소리쳤다.

"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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