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로 돌아왔다 184화
133. 김민의 맨해튼 드리밍(5)
어디까지나 내 생각이지만, 에드 설리반 극장을 뒤집어 놓는 데 성공했다.
"젠틀 몬스터 작전 성공!"
"오늘 우리 끝내줬던 것 같아!"
"맞아. 다들 반했을 거야."
자축하는 삼돌이들.
평상시였다면 민망한 나머지 한 걸음 떨어져 모른 척했을 것 같지만 오늘만큼은 함께였다.
어느새 어두워진 바깥에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었다.
그러나 에드 설리반 극장에는 열기가 타오르고 있었다.
-한 번 더!
엔딩 공연을 마지막으로 방송이 끝났을 텐데.
객석을 가득 채운 사람들이 열렬히 앵콜을 외치고 있었다.
모두가 날 바라보며 묻는다.
"어쩔래?"
"다들 저렇게 부르는데."
"빨리 결정해. 지금 다들 너만 보고 있어."
백 스테이지의 스태프들이 모두 날 주목하고 있다.
이번 방송을 통해 확실히 알게 된 것이다.
내가 유명세가 가장 떨어질지언정, 이 모임을 주도하는 리더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 역시 평상이 외면했던 사실이지만 오늘만큼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안 그래도 뜨거워진 이 극장을 열광의 도가니로 바꿔 놓고 싶었으니까.
"작전 변경! 방송 끝났으니 평상시 하던 대로 하자."
"평상시?"
"정말? 후회 안 할 거지?"
"좋지. 그 말만 기다렸어."
삼돌이들이 뉴욕 언더그라운드의 가장 흉악한 비스트로 되돌아오는 순간.
난 마수들을 이끌고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와아아아아!
터져 나오는 함성.
우리는 그날 밤의 지배자였다.
* * *
늦은 밤.
숙소로 돌아온 나영웅 피디와 카메라 감독은 식지 않는 흥분에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와, 진짜…… 정말 끝내주네. 나 살면서 그렇게 엄청난 무대는 처음 보는 것 같아!"
"저도 그래요. 김민 그 친구. 무대 체질이었네요."
"체질인 것 정도가 아니라 그냥 무대 위에 서야 할 엄청난 사명 같은 걸 타고난 게 아닐까 싶을 정도였어. 아, 내가 힙합을 그렇게 좋아하는 줄 오늘 처음 알았네."
수많은 이들이 무대 위의 네 사람에게 열광하는 모습은, 다시 생각해도 전율이 차오른다.
"그것 좀 다시 돌려보자."
TV와 카메라를 연결해서 촬영 분량을 돌려본다.
"……!"
현장감이 강렬하게 휘몰아쳐 온다.
정말 엄청난 광경이었다.
대한민국의 소년이, 저 거대한 쇼를 장악하고 있는 광경은.
"이거 방영되면 아마 대한민국 뒤집어지겠지?"
"당연하죠. 아주 난리가 날 걸요?"
* * *
"섭섭하네요. 뭔가 보여드릴 게 더 있었을 것 같은데……."
이른 아침.
나영웅 피디님과 카메라 감독님을 공항까지 배웅했다.
이제 굉장히 친근해진 나영웅 피디님이 목에 팔을 두르며 말했다.
"잠시 아껴뒀다가 예능 찍을 때 터트리면 되지."
"그럴까요?"
"내가 다른 건 모르겠는데, 이 특집이 엄청난 반항을 일으키리라는 사실은 알 수 있어. 기대해도 좋아."
"다다음 주 월요일 저녁 방영이랬죠?"
"시간 끝내주지?"
"시청률 잘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래야 같이 고생한 보람이 있잖아요."
"잘 나올 거야. 내가 살면서 이런 확신을 얻은 적이 몇 번 있었는데, 그때마다 잘됐거든."
"그 확신이 이번에도 맞아야 할 텐데요."
"잘 맞을 거야."
며칠 동안 계속 붙어 다니던 분들이다.
처음에는 부담스러웠던 그들이지만, 지금 이렇게 떠나보내려니 너무나도 아쉽다.
"들어가."
"네. 가시는 거 보고 갈게요."
두 분도 아쉽기는 마찬가지였나 보다. 입국장으로 향하면서 몇 번이나 날 돌아보신다.
이렇게 아쉬울 줄 알았으면 맛있는 것도 많이 대접해 드리고 그럴걸.
* * *
한국에 돌아온 나영웅 피디와 카메라가 감독은 곧장 방송국 편집실로 향했다.
"국장님에게 먼저 들려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 형도 바빠. 우리도 마찬가지고. 빨리 해서 주말에 가편집본 시사회 준비해야지."
그 시점부터 두 사람은 짐도 풀지 않은 패 편집에 매달렸다.
"하, 이거 버릴 장면이 없네."
"새삼 느끼는 건데…… 민이가 정말 신경 많이 써줬어요. 분량 만들어주겠다고 노력하는 게 곳곳에서 보여요."
"맞아. 참 기특한 녀석이야. 그렇게 성공했는데도 거만한 기색 전혀 없이 착하고 겸손하잖아."
주말.
가까스로 편집을 마친 뒤 딱 세 시간을 자고 가편집본 시사회를 열었다.
방송국 주요 인물들이 총출동했다.
예능 국장 김병만이 물었다.
"영웅이 너 꽤나 자신 있나 보다? 얼굴이 굉장히 의기양양한데?"
"두고 보세요. 제가 민이를 왜 예능 페르소나로 삼으려고 했는지 이해하게 되실 테니까요."
"어디 보자. 빨리 시사회 시작해 봐."
한 시간 분량, 총 세 편으로 나뉜 특집이었다.
인천 공항에서 출발해서 다시 인천공항에 돌아올 때까지의 긴 여정이 몰입감 있게 펼쳐진다.
네 편을 숨도 쉬지 않고 그 자리에서 모두 감상한 뒤 사람들은 힘껏 박수를 쳤다.
"야, 네가 왜 그런 말 했는지 알겠다. 김민 저 친구 대단하네."
힘껏 박수를 치던 예능국장 김병만이 조심스레 운을 띄운다.
"네 편으로 끝내기에는 좀 아쉬운 데, 잘라낸 거 많지?"
"많죠. 그것만 엮어도 방송 몇 개 더 만들 수 있을 텐데……."
"그러면 그렇게 하자."
"……네?"
"다섯 편으로 만들어 보는 거 어때?
"……그렇게 해도 괜찮아요?"
"안 될 거 뭐 있어? 재미있고 감동적이면 다 용서되는 게 이 바닥인데."
김병만 예능국장은 뉴욕 공항 정지 화면을 보며 말한다.
"인생 살 만큼 산 나도 보는 내내 깊은 감동이 몰려오더라. 그리고 반성하게 되더라고. 난 얼마나 열심히 살아왔나 싶은 생각도 들고…… 이게 재능이 있다고 다가 아니야. 사람이 확실한 목표를 가지고 노력하는 게 중요하더라니까."
모두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교육적으로도 좋아. 요즘 애들, 그냥 꿈만 꿀 줄 알지 그걸 어떻게 이뤄야 하는지 방법을 모르잖아. 내 생각에 이 방송이 좋은 지표가 될 거야."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러면 그렇게 하는 걸로. 알았지?"
"여섯 편 만들고 가편집 시사회 또 해야 해요?"
"그럴 필요 있나? 그리고 그럴 시간도 없잖아. 당장 방송에 내보내야 하는데."
"그건 그렇죠."
"진행해. 정말 고생한 거 아는데 조금만 더 고생하자. 응?"
* * *
레이나의 새 정규 앨범 예약 판매가 시작됐다.
KPOP 패키지 버전에 대한 예약 판매였고, 가격은 30불.
비싼 감이 없잖아 있긴 하지만 구성품을 살펴보면 납득하게 된다.
화보와 가사, 음악에 대한 해설집 등이 담긴 두툼한 포토 북에 스티커, 포토 카드 세트, 인덱스 포토 페이퍼, ID 카드, 포스터 등등.
사양이 알차다.
이 정도면 가격이 아깝지 않지!
그 날은 하루 종일 앨범 예약 판매 현황에 모든 관심이 쏠려 있었다. 레이나 역시 떨린 건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사무실로 오면 안 될까? 우리 같이 있자. 나 혼자 있는 거 싫단 말이야!
아침부터 전화로 투정을 부린다.
하지만 그 마음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나조차도 데뷔 싱글을 발매했을 때보다 긴장하고 있는데 그녀는 오죽할까?
"오후에 갈게요."
사실 일과에 집중 못 하기는 나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일찌감치 스케줄을 정리하고 오후 시간에 맞춰 레이나 사무실로 넘어갔다.
그런데 나에게만 전화를 돌렸던 게 아니었던 모양인지, 레이지를 포함한 친구들이 모두 모여 있었다.
"민!"
"요즘 잘나가던데?"
"제키 로저스 쇼 봤어. 엄청나던걸?"
아니, 이렇게 많이 모여 있을 줄 알았다면 음식을 넉넉하게 사왔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에 피자, 치킨 등등을 대거 주문했다.
하여튼 레이나도 문제다.
손님 불렀으면 먹을 거라도 챙겨줘야지!
"역시 민이밖에 없어!"
"아침부터 아무것도 못 먹고 불려와서 서러웠는데……."
"레이나. 친구 대접은 민처럼 하는 거야. 좀 보고 배워!"
친구들의 지탄에 레이나는 뻔뻔하게 대응했다.
"내가 이런 걸 잘 못하니까 민이를 부른 거라고. 아무것도 모르면서."
아하.
그런 거였구나!
그렇게 중요한 사실을 나도 이제야 처음 알았네?!
그날 저녁.
"자, 이쯤에서 일일 매출 점검 한 번 해봅시다!"
인터넷 예약 판매였기에 오프라인 샵과 달리 집계가 신속 정확했다.
쏟아지는 시선 속, 레이나의 매니저가 본인 휴대폰을 보며 긴장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우선…… 50만 장 클리어!!"
"우와아……!"
누군가 소리를 지르려다 말고 머쓱한 얼굴로 자리에 앉는다.
아직 환호할 때가 아니었다.
"70만 장 클리어!"
꿀꺽.
과연 저 수치는 어디까지 올라갈지…….
"100만 장 클리어!"
여기서 한 번 함성과 박수가 터져 나온다.
레이나도 굉장히 만족한 얼굴이었다.
패키지 버전 첫날 예약 판매만으로 이 정도라면 그녀에게도 굉장한 성과였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120만 장 클리어!"
"130만 장 클리어!"
"140만 장 클리어!"
"……."
이쯤 되니 모두 긴장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킨다.
난 심장이 멎을 것 같다.
나란히 앉아 있던 레이나, 레이지 커플이 함께 달달 떨며 서로 손을 모으고 있는 광경이 보였다.
"160만 장 클리어!"
대체 어디까지 올라갈 셈이야?!
"185만 장!"
매니저가 우리를 보고 씩 웃는다.
"일일 판매량은 여기까지야."
"……!"
잠시 후.
"우오오오!"
"185만 장? 하루 만에? 이게 사실이야?"
"굉장한데?!"
"이 정도면 레이나 커리어 전체를 따져도 역대급 아니야?!"
그야말로 난리가 났다.
다들 모자나 물건을 허공에 집어 던지며 미친 듯 방방 날뛴다. 저녁에 합류한 사이먼 블랙도 마찬가지.
잭은 이 자리에 없다.
녀석은 전 세계 주요 차트 1위를 유지하고 있는 현재, 가장 몸값이 비싸고 최고로 핫한 아티스트로 전 세계를 돌아다니는 중이다.
잘나가는 주제에 외로웠던 모양인지 수시로 영상 통화를 걸어와서 귀찮았는데 지금은 좀 아쉽네.
나도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있는데 누군가 내 팔목을 잡더니 확 끌어당긴다.
레이나였다.
그녀가 온 힘을 다해 날 끌어안고 펑펑 울고 있었다.
"믿을 수가 없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 거지? 대체 무슨 마법을 부린 거냐고!"
기뻐하는 건 알겠는데…… 살려줘. 이러다 가장 좋은 날에 질식사하게 될지도 몰라!
주위의 만류로 날 살려준 레이나의 얼굴이 눈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네가 해달라는 거 다 해줄게. 내가 뭘 해줬으면 좋겠어? 말만 해!"
……어조가 조금 미묘한데.
이쯤 되면 레이지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지.
난 어색한 미소로 말했다.
"그냥 사고만 치지 말아줘요. 좋을 때일수록 행동 조심, 입조심 해야 하는 거 알죠?"
레이나의 KPOP 패키지 앨범 예약 판매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됐다.
특히 레이나의 팬들이 난리였다.
-레이나가 이제야 본인의 매력이 무엇인지 깨달은 느낌인데…… 이번 앨범 정말 마음에 들어. 대체 누가 어떤 마술을 부린 거야?
└김민이야. 곡도 쓰고 아트 디렉팅까지 전담했다고 하더라고. 패키지 앨범 건도 그 녀석 아이디어라던데?
└곡만 잘 쓰는 게 아니었군. 아무튼 중요한 건 레이나의 매력을 굉장히 잘 알고 있다는 거야! 앞으로도 아트 디렉팅은 그 녀석이 해줬으면 좋겠어!
└그 녀석? 위대한 김민 프로듀서님이 네 친구냐??
일단 팬들은 이번 아트디렉팅과 패키지 구성에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는 눈치였다.
곧 라이트 버전이 오프라인 샵에 뿌려졌고 판매가 시작됐다.
여기서 소소한 문제가 발생했다.
-뭐야, 패키지 버전 왜 없어?
-하도 말이 많아서 그거 사러 온 건데 인터넷으로만 주문받겠다니…… 이게 무슨 일이야?!
항의가 쏟아졌다.
심지어 그녀가 소속된 레이블에서도 내게 문의를 해온다.
-그냥 패키지 버전도 오프라인 샵에서 판매하면 안 될까요? 다들 그것만 찾는데…….
사실 인터넷 예약 판매를 진행했던 것은 재고를 최대한 줄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그런데 그걸 걱정할 수준을 넘어서게 됐으니…….
"좋아요. 대신 예약 특전은 빼요. 그거까지 줘 버리면 기껏 시간 맞춰서 인터넷으로 예약 구매한 이유가 사라지잖아요."
-그건 그렇죠.
결국 KPOP 패키지 버전까지 시장에 같이 풀렸다.
시장 반응이 뜨거웠는데 그보다 더 열광적인 것은 뮤직비디오!
북 마리아나 제도 로타 섬에서 촬영한 영상 반응은 놀랍다 못해 무서울 정도로 반응이 컸다.
공개 24시간 만에 2억 뷰를 돌파한 것.
음원 차트는 그녀의 정규 앨범이 줄 세우기 중이다.
이렇게 되면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부터 줄 세우기 위업도 달성 가능할 것 같다.
내 입장에서도 감회가 새롭다.
지금까지 이런 식으로 대박이 터지면 가수들 덕분이라고, 나는 그저 그들의 유명세 덕을 크게 본 것뿐이라고 생각해 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이야기가 달랐다.
내 기획이, 의도가, 모든 것이 굉장히 적절하게 먹혀들어 갔던 것이다.
물론 레이나의 이름값이 아니었다면 예약 판매만으로 200만 장을 넘길 수는 없었겠지만…… 내가 큰 역할을 했음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나는…… 먹힌다!
이제야 강렬한 확신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