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로 돌아왔다 187화
134. 천재의 등장(2)
그날 받은 두 개의 파일들을 다음 날, 팀장 회의 시간에 공개했다.
마치 자신의 작품인 양 열성을 다해 프레젠테이션을 하는 장진영.
중간에 몇 번이나 강조했다.
"청량한 하이틴 컨셉! 여기 보면 90년대 미국 드라마 여주인공 패션을 현대식으로……!"
그놈의 하이틴…….
'귀가 아플 정도네.'
'어휴, 완전히 꽂혔나 봐.'
징글징글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말 멋지게 잘 만들었네.'
저대로만 나오면 남녀 데뷔조 모두 크게 성공하겠다.
머릿속에 그려진다.
실패할 수 없는 불패의 공식이!
그렇게 프레젠테이션이 끝났다.
이제부터는 긴장해야 할 시간이다.
대형 3사 중 JJ 엔터테인먼트는 잦은 수정 요청으로 유명하다. 대부분은 대표인 장진영의 완벽주의 성향을 지목하지만…….
'난 억울해!'
그런 이미지가 생긴 건 자신 때문이 아닌 바로 A&R 팀. 그중에서 특히 이정연 팀장으로 인한 것이다.
그녀의 꼼꼼하고, 철두철미한 성격은 작은 오류나 의문조차도 용납하지 않으니까.
과연, 이번에도 역시 회의실 내 이목이 그녀에게 몰린다.
너무나도 아름답지만 그 실체는 검과 저울을 들고 심판을 담당한다는 어느 대천사처럼.
지금 이정연 팀장의 표정은 그 어느 때보다도 매서웠다. 크고 맑은 눈동자에 불길이 타오르는 듯하다.
그녀의 결정은…….
"이대로 가죠. 아주 좋네요."
"……!"
모두의 입가에 미소를 띠게 했다.
가장 도달하기가 어려운 첫 관문을 통과한 이상, 이후 작업은 신속하게 진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장진영은 잔뜩 신이 나서 소리쳤다.
"여자 팀 이노센트, 남자 팀 유니크. 다들 열심히 달려 봅시다!"
* * *
지하층에 도착한 장진영은 기세등등하게 문을 열었다.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남자 데뷔조의 우렁찬 인사 소리.
막 연습을 끝낸 탓인지 공기가 후끈했고 온 몸이 땀에 흠뻑 젖어 있었다.
"에어컨 좀 틀자."
그 한마디에 열 명이 사방으로 튀어나가 분주하게 움직인다.
'애들 교육 너무 잘되어 있는데?'
내가 다 당혹스러울 정도로…….
장진영은 애들 앞에서는 말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하며 본인은 이동식 대형 TV를 끌고 와 본인의 휴대폰과 페어링을 했다.
"다들 모여 앉아 봐. 보여줄 게 있으니까."
동영상을 띄운다.
잠시 후, 화사한 파스텔톤 바탕에 청량한 블루 색상으로 디자인된 타이포그래피 화면이 떠오른다.
[Unique.]
벌써부터 무언가를 직감하고 눈이 휘둥그레진 소년들에게 장진영이 의미심장한 한마디를 던진다.
"김민이 직접 만든 너희 팀 이름이야."
"……!"
"여기서 놀라면 안 돼. 계속 지켜봐."
잠시 후 김민이 화면에 등장했다.
아름다운 옥상정원을 배경으로 하이틴 패션으로 꾸민 상태였다.
"잘 봐. 너희들 데뷔 컨셉이야."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었던 소년들이 TV에 가까이 모여든다. 당장에라도 화면 속으로 다이빙을 할 듯 몰입한다.
영상 속 김민은 다양한 하이틴 패션 의상을 바꿔 입고 등장한다.
'스타일 시안이구나.'
'와, 진짜 센스 있으시다!'
'우리가 저 패션을 하게 된다는 거지? 좋다!'
벌써부터 심장이 미칠 듯 뛰기 시작했다.
그동안 막연하게 느꼈던 데뷔라는 단어가 이제는 피부로 느껴질 만큼 가까워진 것이다.
"스타일 시안은 여기까지. 자 이제부터가 중요하니까 귀 열고, 눈 똑바로 뜨고 제대로 쳐다봐."
다음 영상을 재생하기 전, 장진영은 씩 웃었다.
"너희 데뷔곡이야. 제목은 We are. 들어 봐."
가슴까지 시원해지는 트로피컬 팝 댄스 음악이 흘러나온다.
BPM이 그렇게 빠르지도 않았고, 자극적인 악기도 전혀 없었으며 얼핏 듣기에 사용된 악기 가짓수도 굉장히 적었다.
하지만 굉장히 멜로디컬 하다.
눈을 감고 들으면 무대 위에서, 자유분방하게 춤을 추며 다 함께 노래를 즐기는 자신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부르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아무 부담 없이.
백 번이고 천 번이고 반복해서 들어도 쉽게 물리지 않을 그런 음악.
'소리가 시원한데 맛있어.'
'이 음악이 바로 우리의 정체성이야!'
안무 영상이 끝나고 장진영이 물었다.
"어때? 마음에 들어요!"
"너무 좋아요!"
우렁찬 대답이 터져 나온다.
장진영이 웃으며 말했다.
"민이가 보름 후에 한국에 돌아와서 연습 상태 확인하고 녹음을 직접 주관하겠다고 했거든. 어떻게 해야겠어?"
"죽어라 연습해야 해요!"
"미친 듯이 노력하겠습니다!"
악을 쓰듯 대답하는 열 명의 소년들.
"김민의 전달사항 한 가지. 이 곡을 완벽히 너희들의 것으로 만들 것!"
"……?"
"쉽게 말하면 어떤 포지션에 투입시켜도 자연스럽게 해낼 수 있을 정도로 모든 것을 숙달하라는 뜻이야. 그래야 진짜 자유롭게 무대 위에서 놀면서 해도 문제 안 생기지."
"아……."
"앞으로 이게 너희들만의 규칙이야. 모든 파트, 포지션을 완벽히 숙달할 것! 이해했지?"
"네!"
"연습해. 보름 후에 보자."
그렇게 장진영이 나가 버리고, 소년들은 우르르 모여 몇 번이고 영상을 돌려보기 시작했다.
장진영은 문틈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자연스러운 게 좋다고 가르쳐 준 게 나긴 한데…… 정말 이런 식으로 연습이 되나 모르겠네."
그 시각.
여자 데뷔조 연습실에서도 똑같은 일이 펼쳐지고 있었다.
* * *
-네가 시킨 대로 했고, 애들이 진짜 마음에 들어 하더라.
이른 아침, 대표님으로부터 걸려 온 전화에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네요. 사실 전반적으로 힘을 쫙 빼고 쓴 곡이라 어떻게 들릴지 확신이 없었는데……."
-야. 걱정할 거 하나도 없어. 이거 분명히 먹힐 테니까.
"제발 그래야 할 텐데요."
-네가 보름 후에 와서 연습 상태 검사하고 녹음 진행할 거라고 말해놨어. 그런데 정말 그 정도로 충분한 거야? 따로 연습 안 시켜도 돼?
"자연스러운 게 좋다면서요?"
-야, 아무리 그래도…….
"제가 사라 굿에 대해 말해줬죠?"
-응. 엄청난 천재라며?
"그 친구에게 시험해 본 방법인데, 곡 던져주고 알아서 연습하라고, 나중에 테스트 보자고 했더니 많은 게 바뀌어서 오더라고요. 그런데 그게 굉장히 좋았어요."
-흐음…….
"남녀 데뷔조 친구들도 하나같이 재능이 뛰어난 친구들이잖아요. 천재일지 어떨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기대에 부응하는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 생각해요."
-그게 아니면?
"뭐…… 그때 가서 다시 연습시키면 되죠. 아니면 아예 시간을 더 주던가."
-하긴, 급할 건 없으니…….
"개인적으로 기대돼요. 그 친구들이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아무튼 고생 많았고…… 계속 수고해라.
"대표님도요."
통화를 마치고 힘껏 기지개를 켰다.
큰 산 하나 넘었구나!
* * *
사라 굿은 재즈 피아노 레슨 한 달 만에 자기 곡을 마음대로 연주하며 부를 정도까지 익혔다.
……아니, 솔직히 이건 좀 너무하지 않나?
아무리 천재라도 그렇지.
나 같은 보통 사람들이 저런 모습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어?
묘한 탈력감을 느끼면서도 노래에, 그 모습에 몰입한다.
사라 굿은 음악을 할 때 가장 생기가 넘치는 아이다.
맛있는 것도 좋아하고 예쁜 옷이나 액세서리를 사줘도 좋아하지만 노래 부를 때 제일 행복해 보인다.
"잠시 멈추고 나 좀 따라와."
"깜짝이야. 왔으면 인기척을 좀 내라니까 정말……!"
별로 놀라지도 않았으면서…….
대충 후드를 눌러 쓰고 '외출 준비 끝!'이라고 외치는 사라 굿의 이마에 딱밤을 날린다.
"아야!"
"이제 곧 가수 데뷔하니까 스타일리시하게 다녀 버릇하라고 몇 번이나 말했어?"
"전 이게 가장 스타일리시한데요?"
"꼬질꼬질해가지고 무슨……."
"아, 옷이나 좀 사주고 그런 소리를 하던가!"
그 말이 나오길 기다렸지.
난 씩 웃으며 말했다.
"사주면 그런 소리 얼마든지 해도 되는 거지?"
"……네?"
"나가자. 내가 이것저것 좀 사줄게."
우리나라 사람들을 소호를 미국의 가로수길이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그만큼 패션으로 유명한 장소다.
"어어, 뭐, 뭐예요? 절 이런 곳에 왜 데리고 온 거예요?"
"너 꼬질꼬질하게 다니는 게 못마땅해서 세팅 좀 새로 해주려고."
도착한 곳은 떠그라이프 3인방에게 소개받은…… 이제는 내 전용 편집샵이 된 바로 그 장소다.
마치 갱단 두목을 연상케 하는 외형이지만 알고 보면 섬세하고 자상한 오너가 말한다.
"민.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내 제자 세팅 좀 부탁하려고."
오너의 시선이 닿자 사라 굿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뭘 그렇게 훑어봐? 이씨, 내가 만만해 보여? 어?!"
얜 또 왜 이래?
갑자기 왜 발작이야?
"저 자식이 제 몸 막 여기저기서 훑어봤단 말이에요!"
"……."
난 한숨을 쉬며 말했다.
"코디를 부탁했으니 당연하지."
"……어?"
"너 무슨 패션이 어울릴지 견적 뽑고 있는 거잖아."
"……."
"여기 오너가 겉보기에는 마피아 두목처럼 보이지만 알고 보면 뉴욕에서 이름 난 스타일리스트라고! 너 그렇게 보면 실례야!"
"……민, 방금 네 말이 더 실례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마피아 두목이라니……."
어, 상처받았나 보다.
그런데 거대한 덩치가 축 늘어지는 모습에 사라 굿은 비로소 긴장을 푼 모양이다.
"어, 미안! 난 누가 내 몸을 자세히 훑어보면 화내는 게 습관이 돼서……."
"혹시 브롱스 출신이야?"
"어? 어떻게 알았지?"
"나도 그곳 출신이야."
"이야? 그랬어? 진작 말하지! 하하핫!"
사라 굿 얘 진짜 뭐지?
아까는 대뜸 화를 내며 발톱을 세우더니 지금은 금방 또 기분이 좋아져서 바보처럼 웃는다.
……얘 이대로 데뷔시켜도 되는 거 맞나?
"또 찾아줘."
어지간해서는 배웅하는 법이 없는 우리 오너 분께서 먼 곳까지 나와 손을 흔들어 준다.
그만큼 돈을 많이 썼다는 소리다.
사라 굿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이거…… 이래도 되는 거예요?"
"뭐가?"
"돈을 너무 많이 썼잖아요! 나 아까 들었어요. 가격이 무려……."
"어허. 스승이 주면 제자는 그냥 고맙습니다! 하고 받는 게 도리야."
"도리가 뭐야?"
"그런 게 있어."
"……."
이게 끝이 아니다.
난 서성그룹 매장으로 데려가서 최신형 안드로이드 폰과 타블렛 피시, 스마트 워치 같은 것들을 가족 수에 맞게 구매해 줬다.
"나 휴대폰 있는데요?!"
"거의 다 박살 나서 오늘내일하는 거? 불쌍한 폰 괴롭히지 말고 그냥 새거 써."
"……."
"스승이 선물하면 웃으며 고맙습니다! 하고 받아."
우습게도, 이 소리를 신발 편집샵에서 조던 1 운동화들을 사줄 때에야 들을 수 있었다.
"어? 이거 정말 저 사주는 거예요? 정말? 진짜로? 우와 고마워요! 땡큐 땡큐! 으히히히!"
……자식이 겁나 좋아하는구먼.
혹시나 싶어서 데리고 온 게 먹혔다.
내 주위 흑인 친구들 대부분이 에어조던1 시리즈와 덩크 로우에 환장하더라고.
사고 싶어 하는 거 다 사줬더니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이다.
……음악 할 때가 제일 행복해 보였는데 그 말 취소.
지금이 최고로 행복한 것 같다.
"너는 내 제자야. 어디 가서 꿀리지 말라고 사주는 거야. 그리고 앞으로 꼬질꼬질하게 다니지 마. 알았어?"
"나 어디 가서 한 번도 꿀려 본 적 없는데요?!"
"그건 나도 아는데, 이왕 좋게 하고 다니면 네 기분도 좋고, 더 당당해질 수 있잖아."
"그건 그렇죠. 으히히!"
마지막으로 이어폰도 녀석이 사고 싶어 하는 모델로 선물했다.
그게 하필 닥터 뭐시기 모델…….
아오!
얘는 음악 한다는 애가 사도 꼭 그런 걸…….
"나 이거 진짜 가지고 싶었는데…… 오늘이 태어나서 세 번째로 행복한 순간이에요!"
세 번째?
"첫 번째하고 두 번째는 뭔데?"
"첫 번째는 오디션 통과하고 가수 계약서에 사인했을 때! 두 번째는 좋은 집으로 이사 갔을 때!"
녀석이 하늘을 올려다보니 결연한 얼굴로 말한다.
"저 결심했어요!"
"……아냐. 하지 마."
"네? 왜요?"
"또 사고 칠 거잖아."
"아 그런 거 아니에요! 내가 무슨 맨날 사고만 치고 사는 앤 줄 아나?"
투덜거리던 녀석이 다시 활짝 웃으며 말한다.
"아무튼, 무슨 결심 했는지 궁금하죠?"
"그래. 뭔데?"
"들으면 선생님도 아마 깜짝 놀랄걸요? 너무 기쁜 나머지 기절할지도 몰라요!"
"대체 뭔데? 무슨 어마어마한 결심을 한 거야?"
"그게 뭐냐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