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로 돌아왔다 196화
136. 미드스쿨 슈퍼스타(5)
그날 밤.
바쁜 일정을 소화하고 간신히 퇴근한 장진영은 집으로 가는 차 안에서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차 안에 울려 퍼지는 익숙한 음성.
"야, 인마! 자식아! 너 알고 있었지?"
당연히 '뭐가요?' 혹은 '갑자기 무슨 말씀이세요?' 이런 대답이 나올 줄 알고 이어질 말을 준비했던 장진영이었다. 그런데.
-어, 회장님, 죄송합니다. 우리 대표님인데…….
김민이 깜짝 놀라 누군가에게 사과하는 게 아닌가?
'회장님?'
등줄기가 싸늘해진다.
잠시 후.
"뭐, 뭐야? 너 지금 어디야?"
-디즈니 본사 CEO 집무실이요.
"뭐? 이 시간에 왜 거기 있어? 지금 거기 오전 9시 아냐?"
-일이 좀 있어서 일찍 모였어요.
"……설마 내 목소리 들렸냐?"
-당연하죠. 다들 깜짝 놀라서 눈이 휘둥그레지던데요?
"아니…… 나와서 전화를 받았어야지, 왜 회의실에서 전화를 받고 그래?!"
-회장님이 받아도 괜찮다고 하셔서 받았죠. 지금 거기 새벽 한 시 정도 되지 않았어요? 주무실 시간 아니에요?
"일이 좀 있어서…… 아씨, 나 이상한 사람으로 찍혔겠네."
-신경도 안 쓸 거예요. 여기 회의 분위기가 굉장히 자연스럽더라고요. 아무튼, 무슨 일이에요?
"주세아 말이야. 랩 겁나 잘하는 거 알고 있었어?"
* * *
무슨 말을 하시려나 했더니…….
마침내 알게 된 모양이다.
주세아의 숨겨진 랩 실력. 재능을.
"그래서 제가 몇 번이고 말씀드렸잖아요. 세아는 전 세계에서 통할 인재라고요."
-야, 그게 그런 의미일 줄은 몰랐지. 반지희는 알고 있었던 모양인데…… 걔 빼고 다들 깜짝 놀라더라. 심지어 에버가든 다른 멤버들도 몰랐던 눈치던데.
"그러겠죠. 제가 비장의 무기로 감추고 절대 어디 가서 드러내지 말라고 당부했으니까요."
-아무리 그래도 멤버들에게까지 숨긴 건 너무하지 않았냐?
"원래 세아가 제 말을 좀 잘 들어주는 편이에요."
사실 나도 그렇게까지 철저히 내 지시를 따를 줄은 몰랐다.
-아무튼, 처음에는 그 크립토나이트 노래 듣고 의아해했거든. 아니, 왜 이렇게 난이도 높은 곡을 에버가든에게 줬을까? 그런데 세아 랩을 듣고 나니 알겠더라. 여기서 처음으로 세아의 재능을 꺼내서 임팩트를 줄 생각인 거지?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했어요. 이제는 실전을 통해서만 성장 가능한 단계까지 왔다고 판단했거든요."
-그걸 누가 판단했는데? 네가? 너 언제부터 랩 잘했다고.
아무래도 우리 대표님이 본인에게까지 세아의 재능을 숨겨져 살짝 심통이 나신 모양이다.
난 씩 웃으며 말했다.
"당연히 제가 판단했죠."
-오, 언제부터 그렇게 랩을 잘하셨어? 스승인 나는 처음 안 사실인데?
"제가 잘하지는 못해도 듣는 귀는 있어요. 프로듀싱도 가능하고요. 우리 삼돌이…… 가 아니라 레이지, 사이먼 블랙, 잭을 누가 슈퍼스타로 키웠는지 잊으셨나 봐요?"
-야, 그 친구들을 네가 키웠다고 하면 안 되지! 그 친구들은 네가 아니어도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어!
"아무튼, 걱정 말고 세아와 친구들에게 맡겨 보세요. 사라 굿의 가이드를 자신들 나름대로 해석해서 재미있는 곡으로 들려줄 수 있을 테니까요."
-음, 다 좋은데 이 곡에서 주세아 존재감이 너무 튀어나갈까 봐 걱정이다. 지금까지 밸런스 맞춘다고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그것도 본인들이 해결할 문제죠. 대표님은 애들이 가져온 결과물을 냉정하게 평가해 주시면 돼요. 저에게 그러셨듯이요."
-야, 내가 언제 너한테 냉정하게 대했다고…….
"엔 플라워 누나들도 마찬가지. 만족스럽지 않으면 1년이고 2년이고 통과시키지 말아요. 극단적인 방법일 수 있겠지만…… 두 팀 모두 성장해야 앞으로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어요. 세계로 진입할 수도 있고요."
-오케이. 알았다. 기가 막힌 곡 만드느라 고생 많았다. 아, 나도 송 캠프에서 죽이는 곡 몇 개 뽑아서 어깨에 힘 좀 들어갔었거든. 너 깜짝 놀라게 해줄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만들어진 거 작업 다 끝나면 보내주세요. 궁금해요."
통화를 마치고 한결 가벼워진 기분으로 들어갔다. 처음 디즈니 대표님과 임원들 앞에 던져졌을 때의 긴장감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디즈니의 젊은 CEO, 존 러셀은 통화 상대에 대해 묻지 않고 바로 본론으로 들어간다.
"미드스쿨 슈퍼스타 '무비'의 음악 감독을 민, 당신에게 부탁하고 싶습니다."
회의를 마치고 나오며 로렌 감독님과 대화를 이어갔다.
"내부에서는 미드스쿨 슈퍼스타의 성공을 확신하고 있는 눈치던데요?"
"스토리보드 시사회 덕분이죠. 민이 좋은 곡들을 제때에 넘겨준 덕분에 이번 시사회에서 선보일 수 있었는데 그게 주효했어요."
세계적인 메이저 스튜디오에서는 본 촬영 돌입 전, 제작사 임원과 관계자들을 대상으로 스토리보드 시사회를 진행한다. 여기서 평가가 좋아야 바로 촬영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로렌 감독에게만 유별나게 군 게 아니라 제작 중인 거의 모든 미디어 매체에 적용되는 업무라고 한다.
이번에 1, 2화 시연회를 보드만 나열하는 방식이 아니라 '리얼타임 편집 영상' 버전으로 공개했는데 거기서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고…….
"특히 뮤지컬 씬에 대해 굉장히 만족스러워하더라고요."
그래서 드라마 외에 미드스쿨 슈퍼스타 '영화 버전'의 제작까지 이번에 확정됐다.
이번 회의는 그 이야기를 위한 자리였다.
"좋은 소식이라 다행이에요. 전 사실 나쁜 소식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각오를 하고 있었거든요."
"이를 테면요?"
"뭐…… 제작이 취소되었습니다. 혹은 제작비가 크게 감축되었습니다! 이런……."
"그럴 리가 있겠어요?"
로렌 감독님이 유쾌하게 웃으신다.
그 모습에 큰 관문을 통과한 것에 대한 안도감, 기쁨 같은 감정이 느껴진다.
"우리 뮤지컬 씬 만든다고 죽어났잖아요. 그 노력을 인정받은 게 제일 기뻐요."
"저도 마찬가지예요."
드라마 뮤지컬 버전 완성도 높인다고 나하고 감독님이 정말 고생 많았다.
"민 덕분이죠. 아무튼…… 이제 정말 중요한 절차가 남았네요."
로렌 감독이 진지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레이나와 사라 굿이 까메오 출연과 음원 녹음 참여를 허락해 줄까요?"
영화 촬영을 통보해 주며 존 러셀 CEO를 비롯, 소위 '제작위원회'에서 한 가지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영화 버전에 레이나, 사라 굿의 참여도 가능하겠냐는 것.
지금 두 사람의 인기가 워낙 좋고, 특히 레이나는 디<1980 브로드웨이> 출연 전적도 있으니 그 프로듀서인 나에게 슬며시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너라면 어느 정도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지 않느냐. 설득 좀 해달라. 이런 식으로.
로렌 감독님도 이 아이디어에 적극 찬성했고 그래서 지금 내게 질문을 던지고 조마조마한 얼굴로 대답을 기다리는 것이다.
난 씩 웃으며 말했다.
"글쎄요. 뭐…… 일단 제안은 해봐야겠죠?"
-오케이. 일정 정해지면 알려줘.
레이나는 시원하게 허락해 줬다.
문제는 사라 굿이었는데…….
-저 디즈니랜드에 데려가서 놀아줘요! 그렇게 해주지 않으면 저 출연 안 할래요!
디즈니랜드라.
난 그렇게 사람 많은 곳 질색인데.
-사랑스러운 제자가 이렇게 부탁하는데 거절할 거예요?!
-어, 잠깐만. 옆에서 통화하는 거 듣다 보니 내가 괜히 억울해지네. 나도 조건이 생겼어! 디즈니랜드 같은 거 말고 디즈니 월드에 데려가서 놀아줘! 거기가 훨씬 크고 재미있는 게 많다던데?
-와, 월드? 저도 거기로 바꿀래요! 월드 데려가 줘요!
아, 머리야.
그러나 어쩌겠나?
사실 이 정도로 두 사람을 출연시킬 수 있다면…… 그만큼 흥행 확률도 높아진다는 뜻이니 무조건 수락해야 할 판이다.
옆에서 로렌 감독님이 부추긴다.
'돈이라면 제가 얼마든지 대 드릴 테니 빨리 수락하세요! 알겠다고 대답하라고요!'
아주 옆구리를 콕콕 찌르고 퍽퍽 치고…… 마음이 급해서 난리도 아니시다.
아이고야.
감독님이 아직 뭘 모르시네.
두 사람이 가면 당연히 떠그라이프 삼인방이 자기들도 따라가겠다고 나설 테고, 그렇게 되면 보디가드까지 고용해서 데리고 함께 다녀야 하니 돈이 무지막지하게 깨질 텐데…….
난 한숨 쉬며 말했다.
"그래. 다 같이 놀러 가자. 빠른 시일 내에 날 잡아서 올랜도 한 번 가자."
그렇게 출연 협상은 타결!
"꺄아악! 세상에, 설마 정말 이런 일이 이뤄질 줄이야!"
통화가 끝나자마자 로렌 감독님이 비명을 지르신다.
그리고 잔뜩 격양된 얼굴로 날 바라보시더니.
"민! 당신은 내 행운의 요정이야! 정말 고마워요!"
와락 끌어안고 얼굴에 쪽쪽 뽀뽀를……
음, 미녀 감독님께 받는 애정 표현이 기분 나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중요한 점은 짚고 넘어가야겠다.
"돈 대주겠다고 하셨던 거. 그건 그냥 마음만 받을게요."
"네? 어째서요?"
이유를 말씀드렸다.
아마 대규모 이동이 시작될 거라고…….
"……!"
얼굴이 하얗게 질리시더라.
추가로 말씀드렸다.
"우리끼리만 이럴 게 아니라 서연이와 올리비아를 포함한 출연진, 스텝들도 모두 데려갑시다."
"어, 그, 그렇게 되면 돈이 너무 많이 들 텐데……."
"저 돈 많아요."
"아니 아무리 그래도……."
입술을 잘근 깨물던 대표님의 얼굴이 활짝 펴진다.
"아, 방법이 생길지도 몰라요! 잠시 기다려요!"
감독님은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고, 내게 밝은 얼굴로 말했다.
"기다려요! 제가 존 러셀 CEO하고 담판을 짓고 올 테니."
"…….?"
어…… 잠깐만요.
누구랑 무슨 담판을 짓겠다고요?
이제 보니 우리 중 최고의 능력자는 바로 로렌 감독님이었다.
미모와 실력뿐만 아니라 협상 능력도 수준급이었던 것!
다음 날 아침, 전화로 기쁜 소식을 전해주신다.
-미드스쿨 슈퍼스타와 디즈니 리조트 콜라보레이션 프로모션 진행하기로 했어요! 쉽게 말해 우리 모두가 재미있게 즐기는 모습을 광고로 촬영하는 거죠!
"……."
아니,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한 거야?
이걸 광고로 퉁칠 생각을 한 것도 놀라운데 실제 그걸 이뤄낼 줄이야!
"대, 대단하시네요."
-아주 흔쾌히 허락해 주시던데요? 심지어 굉장히 좋은 아이디어라고…… 필요하면 미드스쿨 슈퍼스타 촬영 때도 얼마든지 이용해도 좋다고, 미리 계획만 알려달라고 말씀하셨어요! 큰 홍보가 될 거라며.
"……이렇게 되면 드라마하고 영화 기필코 성공시켜야 할 것 같은데요?"
-그건 제가 걱정할 일이니 민은 신경 쓰지 말아요.
아니,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가 있어?
난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러면 일정을 잘 잡아야겠네요. 드라마 방영하고, 어느 정도 인기를 끈 이후에 그런 프로모션을 진행해야 더 효과가 있을 테니까요."
* * *
미드스쿨 슈퍼스타 드라마의 관계자들이 모두 스튜디오에 집결했다.
로렌 감독님이 말했다.
"지금까지 연습한 모든 것을 확인하고 정리하는 마지막 시간이라고 생각해 주세요. 자기소개는 생략할게요. 이미 몇 번 만나서 서로 다 알고 있잖아요?"
촬영 전 최종 리허설.
"대본 리딩도 생략, 뮤지컬 파트만 확인해 봅시다. 해야 할 일이 많으니 모두들 정신 똑바로 차려요!"
그녀는 최종 리허설 현장을 완벽히 장악하고 있었다.
내심 그 모습에 감탄하며 기대하는 마음으로 지켜본다.
과연 나와 감독님이 열과 성을 다해 만들어낸 뮤지컬 파트를, 배우와 댄서, 트레이너들은 어떤 식으로 구현해 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