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재로 돌아왔다-198화 (198/205)

천재로 돌아왔다 198화

136. 미드스쿨 슈퍼스타(7)

굉장히 당연한 소리지만, 항상 뚜렷한 영감이 떠오르지는 않는다.

두리뭉실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고, 오랜 시간 깎고, 다듬으며 그 형태를 온전히 구현하는 것이 상식적인 창작법이다.

'좋아. 우선은 여기까지만 해둘까?'

기타를 내려놓자 실망감 가득한 두 아이의 얼굴이 보인다.

"왜 그래?"

"아니. 뭔가……."

"기대하고 달라서……."

무슨 기대?

"주위에서 오빠보고 하도 천재라고 해서, 모차르트 베토벤 이런 위인들처럼 순식간에 명곡을 만들어낼 줄 알았거든!"

"맞아요! 저도 그걸 기대했는데……."

얘네들, 이제 보니 헛소리를 진지하게 하는 재주가 있다.

"그런 사람이 세상이 어디 있냐? 어떻게 명곡이 뚝딱 만들어져?"

"그러면 지금까지는 명곡들 어떻게 만든 거야?"

"어쩌다 얻어걸린 거지 뭐."

"에이……."

"……."

아무래도 두 아이가 나에 대해 커다란 환상을 가지고 있던 모양이다.

난 피식 웃고는 올리비아 메리에게 말했다.

"너에게 어울릴 만한 곡 하나 만들어보겠지만 너무 기대하지는 마.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니 애타게 기다리지 말고. 우선은 연기에만 집중해. 알겠어?"

"……눼."

괜히 서연이 베프가 아니구나.

저 오리주둥이…… 둘이 과가 같다!

* * *

미드스쿨 슈퍼스타 본 촬영이 시작됐다.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니 대부분은 세트장이고, 필요할 때만 인근 학교의 시설, 고급 주택가나 상업지구에서 야외 촬영을 했다.

시즌 1은 LA 특정 지역의 한 학교 인근에서 학생과 선생들이 벌이는 이야기로 구성된다. 이 드라마 성공하면 촬영지는 세계적인 관광단지로 급부상할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시에서는 물론, 학교와 상가들이 촬영 협조에 적극적이다.

우리의 두 주연.

올리비아 메리와 서연이는 처음에는 굉장히 떨어서 몇 번이나 NG를 냈다.

로렌 감독님과 촬영팀의 기지가 참 놀라웠는데, 장비를 돌리는 척, 얼마든지 실수를 할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여유를 발휘하신다.

그렇게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리고 적응을 하는 듯싶을 때 본 촬영에 들어가셨다.

역시 우리 감독님!

현장 통제하는 카리스마가 아주 보통이 아니시다.

두 번째 촬영까지는 현장에 따라왔는데, 더 이상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서연이도 <천재적인 마법사들> 소속 스태프들이 본격 케어를 시작한 터라 내가 없어도 될 것 같다.

꾸준히 신경은 써줘야겠지만…… 베프 올리비아 메리와 항상 함께하니 외로움도 조금은 덜하겠지? 집에 가면 언니 오빠도 있고.

샬럿과 다니엘 역시 본 촬영 준비에 접어들었다.

"첫 촬영작인 노아는 아직 개봉하려면 멀었는데…… 벌써 나는 세 번째 작품을 준비하네."

"CG 작업 규모가 워낙 방대하니…… 그리고 감독님이 워낙 꼼꼼하시잖아."

"그건 알지만…… 노아 빨리 좀 보고 싶어."

"첫 편 촬영이라 오래 걸리는 거지, 두 번째 촬영 때부터는 속도가 훨씬 빨라질 거야. 노하우가 충분히 쌓였을 테니까."

안 그래도 급히 런던에 갈 일이 생겼다.

가편집본이 나왔으니 여유 되면 한 번 보라는 것이다. 할 말도 있다고 하시고.

"나도 가서 보고 싶다."

"나도."

아쉬움에 입을 삐죽 내미는 샬럿과 다니엘을 달래줬다.

"내가 확인해 보고 바로 전화로 알려줄게. 그리고 집이랑 서연이 좀 잘 부탁해."

* * *

런던 날씨는 내 예상을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도시 전체에 운무가 가득했는데 비가 내렸다가 그쳤다가…… 기상이 완전 제 마음대로였다.

기후의 여신은 영국을 싫어하는 게 분명했다.

"음, 빨리 와서 앉아봐라."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이 스태프들과 함께 피시 앞에 모여 있었다. 난 살짝 서운해져서 한마디 했다.

"아무도 안 반겨주시네."

"네가 툭하면 단체 채팅방을 소란스럽게 만드니 그러는 거지. 잔소리하지 말고 빨리 앉아."

우리 감독님.

언제나처럼 퉁명스럽지만 그래도 미리 내 자리를 마련해 놓으셨다. 내심 기다리고 있던 게 분명하다.

"올 사람 다 온 듯하니 가편집 시사회 시작하자고."

……이게 시사회였어?

곧 재생되는 영상에 의문을 접어둘 수밖에 없었다.

* * *

소년 노아의 이야기.

CG까지 입혀진 편집본을 보는 건 처음인데…… 확실히 내가 기억하고 있는 이전 삶의 영화 버전과 많이 달라졌다.

퀄리티뿐만 아니라 세세한 내용에서도.

마법, 액션 연출이 특히 많이 삽입되었는데, 이전 버전에서는 갈수록 스릴러 영화처럼 변해 갔던 것을 떠올리면 놀라운 변화였다.

영국에서의 톤은 더 어두워졌고 엘로아 대륙에서는 훨씬 더 밝고 규모가 크며 디테일이 살아 있다. 정말 어딘가에 존재하는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내 이목을 가장 끌었던 건 아무래도 내가 등장하는 부분부터였다.

숲에서의 전투 씬.

노아와의 첫 만남과 일행이 되어 함께 여행을 떠나기까지.

이런 말 조금 그런데, 화면 속의 이드라실은 그야말로 아름답고 신비한 요정 그 자체였다.

조금 더 솔직히 말하면 화면 속의 존재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 같다. 내가 연기 한 게 맞는지 의구심이 들 만큼 캐릭터가 살아 있고, 거울을 보는 것과 완전히 다른 느낌이 들었다.

노아와 이드라실의 모험은 굉장히 흥미로워 내 심장을 뛰게 만든다. 볼거리가 가득하고 특히 새로운 경험을 통해 성장해 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은 엄청난 몰입감과 영화에 대한 기대감을 자아낸다.

그리고 마침내 왕국연합 수도에 도착!

현실 세계 다양한 문화를 조합하고, 창의력을 듬뿍 추가해 탄생시킨 가상의 도시는 굉장히 웅장하다.

"환상적인데?"

"이건 정말…… 어메이징하다는 표현밖에 쓸 말이 없군."

엘프 도시, 첫 전투씬에 이어 또 한 번 큰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감독님도 뿌듯하셨던지 디테일 확인을 핑계로 몇 번이나 돌려보신다.

왕국 연합 수도와 켈드리온 아카데미가 처음 공개되는 그 순간들을.

나?

나야 뭐…….

"……."

멍하게 있었지.

노아 덕후였던 나였기에 이전 버전 영화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다. 확실히 그때와 비교하는 게 민망할 정도로 지금 버전이 압도적이다.

이전 버전과 달리 살아 있는 도시 그 자체를 구현했다. 무엇보다 인상적인 도시를 가득 채운 활기!

상인과 여행객, 뛰어노는 아이들. 성벽과 망루에서 찬란한 햇살을 받으며 늠름하게 경비 임무를 수행하는 병사들.

그리고 켈드리온 아카데미!

갑자기 울컥, 뜨거운 감정이 치밀어 오른다.

너무나 아름다워서.

그리고 내가 그 일원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노아 1편의 런 타임은 무려 3시간 5분!

굉장히 긴 시간인데…… 이게 거짓말처럼 순삭되어 버렸다.

이건…… 대박이다!

초초대박!

잔뜩 흥분한 나와 스태프들을 아연실색하게 만드는 음성이 들려왔다.

"너무 긴 것 같은데…… 편집을 더 할까?"

"……?!"

감독님을 뜯어말리는 데 성공하고서야 나와 스태프들은 환호성을 터뜨렸다.

"이거 정말 대박이야!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훌륭하게 뽑혔어!"

"이거 더 만질 것도 없는데? 내가 두 눈 부릅뜨고 있었는데 문제 될 만한 요소가 전혀 보이지 않았어!"

"언론, 배급사 시사회 바로 진행해도 될 것 같아. 내가 보기에 이거 보는 순간 다들 눈물을 죽죽 쏟으며 기립 박수를 보낼 거야!"

가편집본이고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고 했었는데…… 내가 보기에는 그야말로 완벽했다.

이건 전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최고의 판타지 블록버스터였다. 그런 확신을 갖게 할 만큼 훌륭했다. 모든 면에서!

그런데.

"아냐. 조금 더 보완해야 할 부분이 있어."

"……?!"

감독님은 뭔가 성에 안 차는 부분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리고 날 보며 한마디 하신다.

"민. 네 출연 분량."

모두의 이목이 집중된다.

감독님이 진지하게 말씀하신다.

"네가 꾸준히 보내주는 훈련 영상 받아보고 느낀 건데…… 지금 다시 분량을 추가 구성해서 재촬영하면 더 멋진 장면을 뽑을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

감독님이 스태프들을 보며 동의를 구하신다.

"다들 훈련 영상 같이 봤잖아. 나만 그렇게 생각한 거야?"

"으음. 하긴……."

"그것도 그러네."

고개를 끄덕이는 스태프들.

액션 연출 감독님도 한마디 하신다.

"사실, 지금 크리스토퍼 말한 건 내 아이디어인데…… 민, 촬영 때 했던 몇 가지 동작, 지금 다시 해볼래? 다 기억하지?"

"그야……."

"당연히 기억하겠지. 이 녀석 몰라? 한 번 본 동작은 완벽히 기억해서 구사할 수 있잖아."

"원래 그런 말도 안 되는 재능을 지니고 있었는데, 존로 아카데미 강훈련을 통해 신체 능력도 전반적으로 크게 향상되고 액션 연출 스킬도 이때와 비교도 안 되게 좋아졌을 거란 말이지."

"맞아. 특히 이드라실 액션은 굉장히 아크로바틱하고 깃털처럼 가벼워서 인간과 결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게 핵심이야. 물론 촬영 당시에도 좋았지만…… 지금 하면 훨씬 더 좋아질 것 같아."

두 분 감독의 대화에 스태프 전원이 격하게 동의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나 역시 마찬가지.

"네 생각은 어때?"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님의 물음에 나는.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아니, 확신해요."

씩 웃으며 자신감을 보였다.

"지금이라면 저 때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훨씬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요!"

"좋아. 그러면 내일 오전에 바로 촬영하도록 하고…… 오늘은 우리가 수정하고 새로 추가한 씬들을 확인하며 리허설을 좀 해보자고."

확실히 연출 난이도가 이전과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높아졌다.

마치 인간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듯한 구성!

"할 수 있겠어?"

"일단 해볼게요."

머릿속에 장면을 그려본다.

요정족은 활과 레이피어를 사용하는데 주변 지형지물을 자유자재로 활용하고 깃털처럼 가벼운 몸으로 훨훨 날아다니며 상대의 신경을 분산시킨다.

무엇보다 동작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매끄럽고 신속하게 이어져야 한다.

"우선 레이피어로 싸우는 장면부터……."

시범을 보여줄 사람이 없으니 콘티를 통해 내 스스로 완벽한 장면을 그려야 한다.

눈을 감고, 계속해서 머릿속에 그림을 그려본다.

선이 그어지고, 색이 칠해지며 하나의 캐릭터가 완성된다.

요정 이드라실이었다.

뒤이어 그가 태어나고 자란 숲이 조성되고, 온갖 몬스터들이 생겨나 나를 공격한다.

그렇게 시작된 전투.

"……좋아."

난 한참이 지나서야 비로소 눈을 떴고, 내가 그린 그림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 * *

"과연 해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난이도를 너무 높게 잡은 것 같은데……."

"일단 하는 거 보고, 정 안 될 것 같은 부분을 쳐나가는 거지."

액션 감독은 눈을 감은 채 서 있는 김민을 보며 말했다.

"사실 구성하면서 이건 좀 무리수가 아닌가 생각했던 부분이 꽤 많아. 나도 민이 백 퍼센트 해낼 거라고 생각 안 해."

곧 김민이 눈을 뜨고, 레이피어를 휘두르기 시작했다.

"……!"

두 감독과 스태프들의 입이 점점 벌어진다.

베고, 찌르고, 휘두르고.

저게 정말 레이피어 사용법이 맞나 싶을 만큼 굉장히 창의적인 활용법들을 보여주는데 그게 어색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검술과 투술의 기본이 딱 잡혀 있다.

존로 아카데미에서 피땀 흘려 훈련을 받은 성과가 여기서 드러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본인의 육체를 활용하는 방법!

반걸음 물러섰다가 용수철처럼 퉁기듯 앞으로 튀어나고 레이피어를 깊숙이 찌르고, 이 동작 뒤에 빙글 휘두르며 마치 춤을 추듯 사방에 검을 내지른다.

그렇게 모든 동작이 마무리됐을 때.

"우, 우와아아!"

"방금 봤어? 아, 아니 촬영했어? 이거 정말 굉장한데?!"

"환상적이야!"

스텝들이 환호성을 터뜨린다.

멍하니 있던 크리스토퍼 잭슨 감독이 액션 감독에게 물었다.

"아까…… 뭐라고 했지?"

"……."

"백 퍼센트 해낼 거라고 생각 안 한다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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