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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검이 되려 했는데-5화 (5/254)

5 화

툭.

골목에 경악 어린 침묵이 감돌았 다. 몇몇 살수들이 무기를 떨어트 렸다.

"••••••미르?"

다친 상처를 애써 손으로 틀어막 던 남자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 얼거렸다. 나는 별말 없이 뻐근한 목을 돌렸다.

소드 마스터는 검 한 자루만을 들 고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은 자들. 대자연을 움직이는 흐름, 마나는 한계를 뛰어넘은 인간들을 존중했 다.

소드 마스터가 만들어 내는 순수 한 오러는 한계를 뛰어넘으며 찾아 낸 자신만의 답. 그 답은 모두 달 랐기에, 오러의 색은 사람마다 달 랐고, 탁할수록 거친 답을 뜻했다.

내가 찾아낸 답인 흉포한 검은 오 러가 살수들 사이로 쇄도했다.

" 아악!"

상황을 정리하는 데엔 채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예상은 했으나 상 당히 시시한 승부였다.

"왜 미르가 여기에......!"

혼자 남게 된 삼류 악당 살수의 손이 덜덜 떨렸다. 거대한 솔라티 네 제국에서 소드 마스터로 공인된 이들이 겨우 세 명뿐이었으니 놀랄 법도 했다.

"하지만 나도 소드 익스퍼트를 눈 앞에 두고 있는 검사! 내가 상대해

주지!"

온갖 폼을 다 잡은 살수의 검 위 에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채기도 어려울 만큼 옅은 푸른빛 오러가 얇게 덧씌워졌다.

" 하아아아앗!"

지나친 기합과 함께 살수의 검이 쇄도했다. 나는 가볍게 막아 냈다.

"크윽, 내 검을 막아내다니......! 이 자식 제법이군!"

'아, 제발......•'

손이 오그라들어 파이프를 놓치게 생겼다. 가면에 가려진 얼굴이 마 구 어그러졌다. 예의상 몇 번 합을 맞춰 주려 했건만, 그의 헛소리를 들어주기가 괴로웠다.

'그냥 끝내자.,

나는 내 귀를 존중해 주기로 했 다.

"이, 이익!"

장검과 파이프가 굉음을 내며 맞 부딪쳤다. 이러다 동네 사람들 다 나올 것 같아 오러의 출력을 최소 로 줄이고 날카롭게 파고들었다.

어정쩡하게 칼날을 세우는 살수를 중심으로 반 바퀴를 빙 돌아 살수 의 오금을 세게 걷어찼다.

" 악!"

털썩 무릎 꿇는 살수의 등을 꽉 밟고 그의 목 뒤를 내리쳤다. 끅, 하는 소리와 함께 그가 정신을 잃 었다. 상황 종료였다.

'마을에서 사고 치면 안 되니까.'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오러를 섬세하게 조절한 오러 줄로 살수들 을 꽁꽁 묶어 올가미 던지듯 저 멀 리 숲 밖으로 던져 버렸다.

'죽지 않을 만큼 약하게 던졌으니 지들이 알아서 살아 나가겠지.'

무심하게 생각한 나는, 파이프를 주머니에 쑤셔 넣고는 손을 탁탁 털었다.

이 세상에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 었지만, 조금 막 다뤄도 되는 인간

들은 있었다. 사람을 죽이는 걸 업 으로 삼는 살수 같은 것들 말이다.

"너...... 뭐지?"

멍하니 나를 응시하던 남자가 뒤 늦게 입을 열었다. 나는 그제야 그 를 똑바로 마주했다.

부드러워 보이는 연갈색 곱슬머 리. 매력적으로 치켜 올라간 눈매. 전체적으로 유려한 느낌이지만 시 원하고 굵직한 얼굴선. 붉고 도톰 한 입술과 심해를 닮은 푸른 눈동 자까지.

' 미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아리아를 보며 단련되었던 나조차도 순간 두 눈을 의심할 정도로 아름다운 외모 였다.

'당신 같은 미인을 잃는 것은 우 리 제국에 너무도 큰 손실이니까 요.'

무심코 튀어나가려는 외모지상주 의적 대답을 머리에 힘을 줘 참았 다.

'잠깐, 마도구?'

잠시 미간을 좁혔다. 남자에게 정 신을 집중하다 보니 그에게서 미미 한 마법의 기운이 느껴짐을 알아차 렸다.

'외향을 숨기는 마법에, 근원은 반지인가?'

외향을 숨기는 마도구는 싸구려도 상당한 고가다. 거기에 소드 마스 터조차 뒤늦게 느낄 정도로 마법의 기운을 죽이는 것이라면 상당한 값 일 게 분명했다.

'돈 많은 인간인가 보군.'

생각보다 더 귀찮아질 수도 있겠 다는 생각에 혀를 차면서도 남자에 게 성큼 다가가 그의 상처를 살폈 다. 복부에 난 상처는 꽤 깊었으나, 치료하면 살 수 있는 정도였다.

"이 악무십시오."

기다란 망토의 끝자락을 북 찢어 대충 뭉친 뒤 그의 상처를 벌렸다. 당황한 남자가 신음을 뱉으면서도 내 손을 턱 잡았다.

"뭐 하는 거지? 왜 날 돕는 건지 말해라!"

'털 세운 고양이 같네.'

혀를 작게 차곤 실없이 대답했다.

"말하지 않았습니까, 백마 탄 왕 자라서 말입니다."

나는 남자의 환부에 천을 쑤셔 넣 었다. 신음을 흘린 남자가 날카로 운 눈빛을 보냈지만 그의 고통을 고려해 줄 틈은 없었다.

'귀하게 자라서 고통엔 익숙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이를 악물고 익숙한 듯 고통을 참 는 남자의 태도가 의아했으나 지금 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말없이 천을 환부 끝까지 쑤셔 넣 었다. 그제야 피가 멈추었다.

"걸을 수 있습니까?"

그가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옅게 한숨을 쉬며 남자를 부축했다. 내 몸이 닿자 그는 살짝 움찔했지만 도움을 거부하진 않았다.

"미르가 대체 왜 날 살려 준 거 지? 의뢰를 받았나?"

남자는 내게 질질 끌려오면서도 끈질기게 물어왔다. 나는 눈을 굴 리다 성의 없이 대답했다.

"의뢰는 받지 않았습니다. 당신 옷과 금품을 갈취하고 인질 값을 받으려고 구해 드렸습니다. 이제 만족하십니까?"

남자를 질질 끌며 길 앞에 드리운 나뭇가지를 쳐냈다. 그가 헛웃음을 뱉었다.

"그런 말투인데 잘도 믿겠군."

"제 말투가 어떻기에."

"정말 무성의하네."

" 예리하십니다."

남자가 다시금 헛웃음을 뱉었다. 그의 푸른 눈동자가 나를 응시했 다. 내 장단을 맞춰 주는 듯한 말 투와는 다르게 그의 두 눈은 차갑 고 냉정했다.

"구해 준 이유를 말하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백마 탄 왕 자이기 때문이라고."

"허, 그럼 난 위험에 빠진 공주 고?"

"잘 아시는군요."

"어이가 없군. 난 살면서 백마 탄

왕자 역만 해 봤다만."

"이번 기회에 새로운 역할도 해 보니 좋으시겠습니다."

"하, 하하하!"

성가신 낯으로 성의 없이 답하니 남자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웃 으며 상처가 벌어진 건지 숨을 크 게 들이키던 그가 날 돌아보았다.

"그대, 이름도 말 안 해 줄 건 가?"

"아시잖습니까. 미르입니다."

"그거 말고. 그대의 진짜 이름."

담담한 남자의 물음에 미간을 살

짝 찌푸린 나는 그를 돌아보았다. 남자의 푸른 눈은 조금의 악의나 의도도 없다는 듯 잔잔했다.

'안 그래도 이렇게 의심하고 있는 데, 말하지 않으면 더하겠지.'

허나 내 실명을 말할 수는 없었 다. 지금 내 실명을 말하는 건 필 사적으로 숨기던 미르의 정체를 내 입으로 실토하는 것이나 다름없었 으니. 잠시 눈을 굴린 나는 무심하 게 답했다.

"......슈슈입니다."

사람들이 불러주는 애칭이니 이름 이긴 이름이었다. 눈을 깜빡이던 남자가 웃음기 서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거 진짜 이름 아니지?"

"당신은 이름이 뭡니까?"

물음을 가볍게 씹어 삼킨 채 말을 돌리자 남자가 멈칫했다. 한참 고 민하던 남자는 내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디디다."

크흥.

참을 새도 없이 웃음이 튀어나왔 다. 남자가 눈을 흘겼고, 나는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 진짜 이름 아닌 것 같습니 다."

"그럴 리가."

킥.

디디와 나는 함께 웃었다. 별것도 아닌 일이었음에도, 잠시 그와 나 모두 긴장을 놓은 순간이었다.

"으 "

물론 웃음은 잠시였다. 웃다가 상 처가 벌어진 디디로 인해 빨리 발 걸음을 옮겨야 했으니.

몸을 뉘일 곳이라곤 1인용 간이 침대가 전부인 오두막은 사람이 살 기엔 조금 삭막했으나, 연구실로는 완벽했다.

"그대, 의원이었나?"

온갖 약초와 실험 기구, 의학 서 적들이 가득한 오두막을 디디가 커

진 눈으로 둘러보았다. 그의 푸른 빛 눈동자가 예쁘게 반짝였다.

"의학을 조금 공부했을 뿐입니 다."

나 또한 새삼 옛 기억에 잠겨 찬 찬히 오두막을 살폈다.

이 오두막은 아리아의 병을 고치 기 위한 내 노력이 그득히 묻은 장 소였다.

' 힘들었지.'

아리아가 아프기 시작한 8살 무

렵부턴 아침엔 일을 하고, 밤엔 새 벽을 지새워 의학을 공부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곳에서 얼마나 많은 밤을 새우 고 얼마나 많은 연구를 진행했던 가. 습득한 수많은 지식 중에서도 아리아를 고치는 방법이 없어 얼마 나 절망했던가.

노력과 절망의 흔적이 그득히 묻 어나는 이 오두막은 내게 애증의 장소였다.

'이젠 방법을 알았지만.'

긴 시간을 연구해도 찾을 수 없던 답을 허무하게 알게 된 것이 못내 억울하기도 했으나, 보낸 시간에 후회는 없었다.

나는 아리아를 위해 쓴 시간을 절 대 후회하지 않으니까.

"편하게 있으십시오."

디디를 간이침대에 앉혀 주고 찬 장에서 약초들을 배합해 절구에 빻 기 시작했다. 어느새 오두막에 적 응한 듯 편하게 몸에 힘을 푼 디디 가 나를 지긋이 관찰했다.

"그대, 왜 나를 살려 줬는지 솔직 히 말하지 않을 셈인가."

'아직도 이러나.'

조금 짜증스럽게 고개를 돌린 나 는 푸르디푸른 눈동자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의심과 차가운 이성으로 가득 찬 푸른 눈동자는 그 채도만 큼이나 냉랭한 눈빛을 품고 있었 다.

"대답했잖습니까. 당신을 인질로 사용해서 부자가 될 겁니다."

약을 만드는데 집중하며 설렁설렁

대답하자, 가늘게 뜨인 디디의 눈 이 날카롭게 번뜩였다.

"장난하는 거 아닐세. 진지하게 묻는 거야. 황궁에서 보낸 것도 아 닌 것 같은데, 대체 왜 날 구해 준 거지?"

' 황궁••••••?'

잠시 목덜미가 싸했다.

'귀족이 위험에 처하면 황궁에서 까지 사람을 파견하던가?'

귀족들의 생리를 모르는 나로선

답을 알 수 없었다. 조금 불길해하 는 사이, 디디가 심각한 표정을 지 었다.

"그대의 오러가 확실한 검은색이 아니고 키가 더 컸다면 나는 그대 가 크리시스 공작인 줄 알았을 걸 세. 크리시스 공작은 오러가 검은 색에 가깝도록 붉으니. 차라리 그 는 신하된 자로서 날 살려 줄 이유 라도 있지만...... 미르는 날 살려줄 이유가 하등 없단 말일세."

크리시스 공작.

귓가로 들려온 익숙하면서도 어색

한 이름에 순간 약초를 빻던 손이 멈췄다. 곧바로 다시 손을 움직였 으나, 순간의 멈칫함을 발견한 디 디가 눈을 가늘게 떴다. 시선을 모 르는 척했다.

'제국의 유일한 공작, 카이사르 칼라 드 케니스 크리시스.'

남주 후보 중 하나인 칼 크리시스 의 아버지이자, 내 아버지. 그는 제 국에서 공인된 최강의 검사로서, 곧 일어날 전쟁에 지휘관으로 출전 한다.

그리고 전쟁 중에 죽는다.

'흑단 같은 고운 흑발을 휘날리며 소름 끼치게 무감각한 핏빛 눈동자 로 전장을 응시하는 살육귀라고 했 던가.'

조미료가 팍팍 첨가된 소설 속 공 작에 대한 묘사를 어렴풋이 떠올렸 다.

소설 속 그는 제 아버지를 죽이고 공작위에 오른 괴물로 서술되었다. 카이사르는 피도 눈물도 없는 잔인 한 성정과 냉정한 성격의 소유자 로, 크리시스 가엔 매일 피바람이 분다는 표현도 있었다.

'그게 바로 내가 곧바로 크리시스 공작가로 달려가지 않은 이유지.'

만약 그가 정상적인 사람이었다면 나는 전생을 기억해 낸 동시에 아 리아를 안고 공작가로 달려갔을 거 다. 그의 바지 자락을 잡고 혈연에 대한 자비를 호소했겠지.

크리시스라면 분명 아리아를 고칠 수 있는 '그' 영약을 가지고 있을 테니까.

요정 숲의 정기. 요정 숲의 충만 한 기운을 압축시켜 액체로 짜낸

것으로, 한 방울만 마셔도 환골탈 태의 효과를 볼 수 있는 영약이었 다.

'아리아는 요정으로서 기운이 부 족해서 아팠던 거니까. 한 방울만 마셔도 10년은 버틸 수 있을 텐 데......

현재 내가 아리아에게 주고 있는 요정 숲의 약수는 정기보다 요정 숲의 기운이 현저히 적었다. 원래 는 요정 숲에 주기적으로 방문해 기운을 보충해야 하지만, 정기를 마시기만 하면 즉시 정기 부족에서 헤어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지금까지 가지 않았던 건,'

자신의 아비를 베었다는 카이사르 공작이 혈연에 연연할 것 같지 않 았기 때문이었다.

크리시스 공작가는 내가 가진 최 강의 패이자, 최후까지 남겨둬야 할, 어쩌면 사용하지 않는 것이 가 장 좋은 양날의 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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