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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검이 되려 했는데-104화 (104/254)

104 화

" 다행이군."

나를 잔뜩 경계하는 페퍼를 바 라보다 피식 웃었다. 내가 김을 빼자 불만스러운 건지 페퍼의 미 간이 왈칵 찌푸려졌다.

"......제 말이 장난 같으십니 까?"

"나는 지금 장난하는 것 같나?"

얼굴의 웃음기를 지우고 진중한 표정으로 그를 마주했다. 올곧게 눈빛을 보내는 날 보던 페퍼의 눈 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그대 같은 사람이 내 주군을 섬기고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페퍼가 없었다면 디에고는 진즉 에 암살당했을 것이다. 이렇게 충 성스럽고 강직한 이가 디에고를 지키고 있어서 참 다행이었다.

'주군'이라는 단어에 페퍼의 눈

동자가 더 흔들렸다. 어쩐지 갈팡 질팡하는 듯싶던 그가 애써 날카 롭게 표정을 굳혔다.

"그렇게 말하신다고 속지 않습 니다. 이미 저하께선 공녀님께 마 음을 주신 것 같지만, 저는 끝까 지 믿지 않을 겁니다."

"나는 이미 저하께 충성 맹세를 했네."

충성 맹세라는 소리에 페퍼의 눈동자가 다시금 흔들린다. 아무 래도 나를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 나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것 같았

"그, 그걸 제가 어떻게 믿습니 까!"

"저하께 직접 여쭈어 보면 되는 일 아닌가."

페퍼의 입이 턱 다물렸다.

군신의 구분이 확연한 솔라티네 제국에서 충성 맹세는 절대 가볍 지 않다. 내 말을 의심할 것도 없 이 충성 맹세를 받은 당사자에게 직접 물어보면 끝날 일이었다.

"......그래도 저는 공녀님을 끝 까지 믿지 않을 겁니다."

입술을 꾹 물었다 놓은 페퍼가 결연한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굳은 의지와 충성심으로 들끓는 연갈색 눈동자. 의심할 대상을 잘 못 잡긴 했지만, 호위 기사로선 좋은 태도였다.

"눈빛이 좋군."

옅게 웃은 나는, 꺼림칙한 표정 의 페퍼를 뒤로한 채 검을 검집에

넣었다.

"같은 주군을 섬기게 된 사람들 로서 잘해 보자고."

"흐지부지 넘어가지 마십시오! 전 공녀님을......!"

"믿지 말게."

단호하게 끊어 내자 페퍼가 흠 칫 굳었다.

그에게 나에 대한 믿음을 강요 할 생각은 없다. 호위 기사로서 아무나 믿지 않는 것은 좋은 습관 이기도 했고.

잔잔한 눈으로 그를 마주했다.

"믿지 말고, 계속 의심하게. 내 가 저하에게 방해가 되는 이는 아 닌가 끊임없이 경계하며 살피게. 나는 경을 의심할 거니까."

"••••••저를?"

"경계해 주는 사람이 있어야 더 열심히 하지 않겠나. 나는 그대가 진정 유능한지 곁에서 지켜볼 걸 세."

당당한 웃음을 입가에 걸친 채 페퍼에게 손을 내밀었다.

"내 수상한 사람이라는 걸 부정 치는 않네. 그러니 어디 의심해 보게. 의심하고 경계하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판단이 들었을 때 믿어 달라는 말이야. 그때까지 감시 잘 부탁하네. 같은 주군을 섬기는 자들끼리 잘해 보자고."

나는 길게 말하는 것을 좋아하 지 않았다. 구구절절한 대화보다 는 역시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게 확실했다. 그러니 페퍼가 날 완전 히 믿게 될 때까지 그의 경계를 기꺼이 받아들일 생각이었다.

페퍼가 내밀고 있는 내 손을 지 긋이 응시했다. 내가 조금 머쓱해 질 때까지.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눈을 들어 나와 마주했다.

"저하께서...... 공녀님을 마음에 두신 이유를 어느 정도 알겠군 요."

금방이라도 물어뜯을 것같이 굴 던 그가 갑작스럽게 칭찬을 하니 조금 민망해졌다.

눈을 굴리며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자니 페퍼가 내 손을 턱 잡았 다. 거칠고 두툼한, 기사인 것이 티가 나는 커다란 손을 맞잡았다.

"......쉽게 믿지는 않을 겁니다. 저하와 거리를 두라는 말을 취소 한 것도 아닙니다. 하지만...... 지 켜는 봐 드리죠."

여전히 백작가 출신 기사가 공 녀에게 사용하는 말투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오만방자하다. 그럼에 도 나는 어쩐지 즐거워져서, 피식

웃으며 맞잡은 손을 흔들었다.

"살수들은 그대가 처리할 건 가?"

"네. 이런 일을 공녀님께 맡길 수는 없잖습니까."

저 퉁명스러운 말투조차 정이 들 것 같다.

입 안쪽 살을 깨물어 웃음을 참 고 살수들을 돌아보았다.

붉은 피가 낭자한 주위. 그 사이 에서 죽은 듯 기절한 살수들. 조

금 괜찮아졌던 기분이 다시 수직 으로 하락하는 것을 느끼며 입술 을 혀로 쓸었다.

"살수들은 어떻게 할 건가."

"죽여야지요."

"••••••지금?"

A 己르

' o •

페퍼가 망설임 없이 발검했다.

"아시잖습니까. 황족 살해 미수 는 즉결 처분 대상입니다."

안다. 알고 있었다. 살수들은 죽 어 마땅한 존재. 숨통을 끊어야만 했다.

그런데도.

"잠깐. 괜찮다면, 내가 가고 나 서 숨통을 끊게."

아직은, 시체를 볼 자신이 없다. 상상만으로도 무언가 울컥 치미는 느낌이었다.

단숨에 숨통을 끊으려는 듯 살 수들에게로 다가가던 페퍼가 나를

보며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살수들을 제압할 땐 망설임 없이 칼을 휘두르더니 죽이는 모습은 못 보겠다는 듯 구는 게 이상한 모양이었다.

나는 구토하고 싶은 기분을 참 으며 억지로 웃음 지었다.

"부탁하네. 조금만 뒤에 하게."

아직은 전쟁이 시작되지 않았으 니까.

나는 그렇게 스스로를 달랬다.

"......알겠습니다."

잠시 내 안색을 살피며 뜸을 들 이던 페퍼가 뒤늦게 대답했다. 그 는 군말 없이 검을 집어넣었다.

"마차가 있는 곳까지 모셔다 드 려야 하겠습니까?"

"됐네."

" 알겠습니다."

세 번까지 권하는 것이 보통이 건만, 그는 철회가 너무 빨랐다. 이런 무뚝뚝함이 이제는 페퍼의

매력 같다고 생각될 정도였다.

"그럼 들어가시지요."

"그래. 경도 수고하게."

덤덤히 허리를 굽히는 페퍼의 태도는 이전의 내 지적으로 인해 서인지, 한층 공손해져 있었다. 고개를 끄덕여 주고 발걸음을 옮 겼다.

=『• =?•

어느 정도 걸음을 옮기자 뒤쪽 에서 들려오는, 살덩이가 날카로

운 것에 뚫리는 소리. 그리고 퍼 져 오는 진득한 혈향.

소드 마스터인 나는 한참 떨어 진 거리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생 생히 느낄 수 있었다.

'괜찮아. 다들 몰랐을 거야.'

떨리는 손과 초점이 잘 잡히지 않는 눈동자가 많이 티 나지 않은 것 같아 다행이었다.

♦ **

카슈미르 크리시스가 나간 뒤.

황후의 알현실은 고요했다. 숨 막히는 침묵 한가운데 찻잔을 든 티나 키프로스가 짙은 숨을 뱉었

"내 명예는 내가 만든다고."

작은 속삭임엔 카슈미르가 퍼트 리고 간 물감의 자국이 묻어 있었

티나는 찻물을 머금으려 찻잔을 들었으나, 입맛이 뚝 떨어져 잔을

놓았다. 그녀의 얼굴엔 시름이 가 득했다.

징 _

통신 마도구의 발신 소리가 고 요한 알현실을 가로질렀다. 주머 니에서 통신 마도구를 꺼낸 티나 키프로스는 그것을 한참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한숨과 함께 통신을 받아들였다.

-카슈미르 크리시스 포섭은 어 떻게 되었지.

감히 제국의 황후에게 인사조차 없이 말문을 여는 낮고 거친 목소 리. 티나는 그 지긋지긋한 목소리 에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그는 티나 키프로스의 아버지, 하비스트 키프로스 백작이었다.

그녀의 입은 쉬이 열리지 않았 다. 솔직한 대답 후에 돌아올 것 이 무엇인지 알기 때문이었다. 침 묵의 의미를 알아들은 하비스트가 거칠게 혀를 찼다.

"한심한 것.

-아리아 크리시스도 실패하더니, 또 실패를 해? 멍청한 어린애들 포섭하는 것이 뭐 그리 어렵다고. 그냥 예쁘고 비싼 것이나 좀 들이 밀고 꼬드기면 되는 것 아니냐!

'그렇게 쉬워 보이면 네가 해 봐, 개자식아.'

티나 키프로스는 혀끝까지 튀어 나온 욕설을 삼켰다.

그녀는 현명했기에 이 말을 뱉 었다간 수습할 수 없음을 알았다.

그녀에겐, 자신의 아비를 이길 수 있는 권력이 없었으니까.

티나 키프로스가 황후가 될 수 있었던 건 그녀가 키프로스 백작 가의 일원이었기 때문이지 황제 헬리오스와 사랑에 빠져서가 아니 었다.

그녀가 이런 옷을 입고, 이런 호 화를 누릴 수 있는 것도 그녀가 키프로스이기 때문이었다.

티나 키프로스의 모든 것은 키

프로스로부터 비롯된 것. 그러니 그녀는 키프로스에게서 받은 것을 이용해 키프로스에게 은혜를 갚아 야 했다.

그것이 그녀가 어려서부터 그녀 의 아버지에게 귀에 딱지가 앉도 록 들은 불변의 원칙이었다.

티나의 것들 중 진정한 티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피가 나도록 입술을 짓씹은 티 나는 크게 심호흡을 해 감정을 잠 재웠다.

황후가 되었음에도 백작에게 이 리 굴복해야 한다는 사실이 죽도 록 비참했지만 그런 티를 낼 수는 없었다.

"죄송합니다."

-쯧. 이래서 계집들에게 일을 시키면 안 된다니까. 제대로 해 내는 게 없군.

'그럼 네가 해 보라고.'

"......더 열심히 해 보겠습니다." -열심히만 하면 뭘 해, 성과가

없는데! 결국 디에고 그놈이 황태 자가 되었고, 크리시스를 포섭하 는 것도 실패했잖아! 이 쓸모없는 것

티나 키프로스는 쏟아지는 독설 을 담담히 받아들였다.

매일같이 오는 아버지의 연락. 그리고 쏟아지는 독설들. 그것은 매일을 마무리하는 하나의 규칙과 도 같았기에, 그녀에겐 너무도 익 숙했다.

'던져 버릴까.'

허나 익숙하다고 해서 괜찮은 것은 아니었다.

머리가 지끈거리는 것을 느낀 티나는 마도구를 던져 버리고 싶 었다.

-다음에도 실패하면 황후 자리 에서 내려올 생각을 해야 할 게

쿵.

티나의 심장이 무너졌다.

제 아비가 습관처럼 뱉는 협박 일 뿐, 아무리 하비스트 키프로스 라도 단번에 황후를 끌어내릴 수 없었다. 그걸 알아도, 항상 아찔 해진다.

'황후 자리는 내가 가진 유일한 권력이야.'

'황후'라는 직책은 티나 키프로 스가 자신의 것이라 칭할 수 있는 유일한 권력이었으니까. 비록 그 것을 제멋대로 휘두를 수 없을지 라도, 황후라는 이름은 온전히 그

녀의 것이었다.

"......죄송합니다, 아버지. 더 잘 하겠습니다."

티나의 순종적인 목소리에 하비 스트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티나 는 입술을 짓씹었다.

-그래야지. 아, 그리고 오늘 밤 도 황태자 측으로 암살자를 보낼 거다. 네 명 정도.

"오늘도 말입니까? 하지만 어제 도 보내지 않으셨습니까. 연속으 로 보내는 건......

-보낸다는데 왜 말이 많지? 세 레논을 황제로 만드는 가장 간단 한 방법이 디에고를 죽이는 것인 데 주저할 게 뭐 있느냔 말이다.

-세레논이 황제만 되면 모든 것 이 덮일 거다. 수단과 방법을 가 릴 필요 없어.

티나가 입술을 짓씹었다. 그녀에 겐 이 말에 반항할 수 있는 힘이 없었다.

하비스트가 음침한 웃음을 흘렸 다.

-그리고 그자와도 얘기가 잘 되 었다. 얼마 전에 제대로 얘기를 나누었지.

티나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그 녀는 저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 났다.

"서, 설마...... 북부에......?"

-그래. '하이드' 말이다.

하비스트가 확인 사살하듯 단호 히 말했다. 티나의 동공이 확장되 고, 몸이 옅게 떨려왔다.

'권력에 미쳐 있는 줄은 알았지 만 설마 이 정도일 줄은......

하비스트가 전에 한 번 언급하 기는 했으나, 정말 내통을 시도하 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이 건 미친 짓이었다.

"하지만 그자와의 내통은 너무 위험합니다! 어떻게 그런......I"

-시끄럽다! 성공만 하면 되는 일이다!

'실패하면 다 끝나니까 그렇지!'

광기 섞인 하비스트의 웃음소리 를 들으며 티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건 빼도 박도 못 할 반역죄다. 들키면 키프로스 일가가 몰살당할 지도 몰랐다.

-쯧. 네 오라비는 듣자마자 찬 성했건만 너는 왜 겁먹은 쥐새끼 처럼 구는 게냐.

하비스트가 혀를 찼다. 티나는 차오르는 울분을 간신히 억눌렀 다.

-반란은 성공한 이상 반란이 아 니다. 혁명이지.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뿐이야. 북풍이 불어올 때, 이 제국에서 살아남는 이들은 우리 키프로스다.

티나 키프로스는 눈을 꾹 감았 다.

그녀는 이렇게까지 스스로가 키 프로스가 아니기를 바란 적이 없 었다. 이런 미친놈들과, 한패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일은 디에고의 사망 소식을 기대하지.

짤막하게 내뱉은 하비스트가 연 락을 뚝 끊었다. 알현실엔 다시금 고요가 찾아왔다.

쨍그랑!

"빌어먹을......

벽에 부딪힌 찻잔이 산산조각 났다. 티나 키프로스가 한 손으로 제 눈을 덮었다.

많은 이들이 그를 권력에 미친 악랄한 황후라 불렀다. 하지만 그 호칭은 반만 맞는 것이었다.

그녀는 권력에 미쳐 있었으나, 악랄하진 못했다.

"프로피."

삐 익!

티나의 나지막한 부름에 얌전히 책상 위에 있던 종이 새가 실제 새와 무척 유사한 소리를 내며 그 녀에게로 날아왔다.

"'오늘 밤 살수 네 명 습격 예 정'. 황태자 궁의 디에고 솔라티 네와 페퍼 엘러바인에게로."

삐익! 삑!

경쾌한 울음소리를 낸 종이 새 가 허공에서 바스러져 사라진다.

발신인의 흔적을 조금도 드러내 지 않으면서, 지정한 인물에게만 정보를 제공하는 통신용 마도구.

티나 키프로스는 그녀의 가문이

디에고의 암살을 꾀할 때마다 자 신의 정체조차 드러내지 않은 채, 황태자 궁으로 암살자의 정보를 전했다.

'권력을 원하지만, 디에고를 죽 이고 싶지는 않아. 헬리오스 도...... 죽이고 싶지 않아.'

비록 자신이 낳지 않았을지라도 디에고 솔라티네는 그녀의 아들이 다. 그녀는 세레논을 황제로 만들 고 싶었지만, 그렇다고 디에고를 죽이고 싶은 건 아니었다.

헬리오스 솔라티네 또한 마찬가 지였다. 비록 사랑 없는 결혼이었 다 한들 그는 그녀의 남편이었고, 남편이기 이전에 한 명의 인간이 었다.

티나 키프로스는 살인을 하고 싶지 않았다.

'누군가에게 알려야 해.'

이 미친 짓을 내버려 둘 수는 없다. 실패하면 그녀 또한 무사치 못할 거라는 것은 문제였으나, 성 공해도 문제였다.

'많은 이들이 죽을 거야.'

그녀는 권력을 위해 학살을 감 행할 정도로 괴물이 아니었다. 이 거대한 음모를 막아야 했다.

'누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허나 그녀에겐 도움을 청할 곳 이 없었다.

헬리오스는 분명 그녀를 도울 힘이 있었다. 허나 그는 매정한 군주였다. 내부고발자인 그녀와

반란의 핵심 인물인 세레논을 살 려 줄 거란 확신이 없었다.

디에고 또한 그녀를 도울 힘이 있다. 허나 디에고는 티나 키프로 스가 그의 암살을 의뢰하는 주범 이라 생각하고 있을 터였다. 그런 그녀를 믿어 줄 거라는 확신이 없 었다.

'나는 도움조차 남편과 아들에게 서 받아야 하나.'

힘없는 스스로에 대한 자괴감이 울컥 치밀어 오른다.

수많은 고민 사이에, 불쑥 떠오 르는 하나의 이름.

그 사람은 아주 강직한 시선을 가졌다. 지나치게 올곧고 초연해 인간보단 차라리 초월자에 가까워 보이는 이.

자연적으론 존재할 수 없을 것 만 같은 짙은 분홍빛을 담은 투명 한 눈동자. 그 시선이 제게 닿으 면 티나는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었다.

한없이 올곧고, 티나 키프로스를 도와줄 힘이 있는 사람.

'......카슈미르 크리시스.'

티나 키프로스는 카슈미르 크리 시스와 내통할 방도를 궁리하기 시작했다.

'내겐 막을 수 있는 힘이 없으니 까. 할 수 있는 거라곤 정보를 흘 리는 것뿐이니.'

이래서 그녀는 세레논을 황제로 만들고 싶었다.

덧없는 사랑과는 달리 권력은 영원하니까. 권력이 있다면, 세레 논은 이런 취급을 당하지 않을 테 니까.

티나 키프로스는 세레논 솔라티 네가 자신의 전철을 밟지 않길 바 랐다.

그녀는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눈물은 흘리지 않았다. 이 척박 한 황궁에서 살아오며 눈물샘은 말라 버린 지 오래였다.

그저 가슴이 아렸다.

두 손 가득 무언가를 쥐고 있으 나, 그중 어떤 것도 자신의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나도, 내 힘으로 내 명예를 만 들고 싶네."

뱉지 못했던 대답을 조용히 중 얼거렸다.

누구도 모를 악역의 속사정이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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