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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검이 되려 했는데-113화 (113/254)

113 화

" 레오!"

무턱대고 마나를 퍼뜨리는 레오 에게 다급하게 소리쳤다.

검사가 자신의 마나를 퍼뜨린다 는 건 짐승의 으르렁거림과 비슷 한 의미를 지닌다. 지그문트의 검 으로 위협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드러내는 건 현명하지 못했

그러나 그는 내 말을 들을 생각 이 없어 보였다.

'젠장, 쟤가 왜 이러지?'

레오는 비록 난폭할지언정 멍청 하진 않다.

그와 내가 동시에 지그문트를 치면 분명 승산은 있지만, 지그문 트가 레오의 목을 위협하고 있는 지금 함부로 달려들었다간 그 자 신이 크게 다치리라는 걸 그가 모 를 리 없었다.

나는 계속 지그문트를 경계하면 서도 초조하게 레오를 살폈다.

초점이 사라진 연둣빛 눈동자는 이성 한 점 남지 않은 채 지그문 트가 들고 있는 주머니에 고정되 어 있었다. 주머니를 노려보는 레 오의 기세는 나조차도 흠칫할 정 도로 흉흉했다.

'레오는 저 정도 경지가 아니 야.'

현재 레오가 내뿜고 있는 살기

는 소드 익스퍼트보단 소드 마스 터에 근접할 정도로 위압적이었 다. 그러나 냉정하게 판단할 때, 내가 아는 레오는 저 정도 수준의 살기를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사 람이 아니었다.

'검사가 자신의 원래 경지를 일 시적으로 뛰어넘는 경우가•• ... 있 긴 하지.'

그런 상황이 일어나는 경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 경우는 사람이 죽을 위

기에 처하면 기적적인 힘을 발휘 하듯, 목숨이 위태로울 때였다.

그리고 두 번째 경우는.......

"그 주머니 내게 넘겨."

검사가 스스로의 감정을 통제하 지 못해 마나가 날뛸 때였다.

"......재밌군."

제게 검을 세운 레오를 빤히 바 라보던 지그문트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그의 눈빛엔 가소롭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점점 더 골치 아파지는 상 황에 속으로 이마를 짚었다.

"걘 보내 줘. 얘기는 나랑 해."

"아니. 나는 얘랑 얘기 좀 해 보 고 싶은데."

가시를 세운 내 말에 나긋하게 답한 지그문트가 레오의 목에 겨 누었던 검을 놀려 검 끝으로 레오 의 턱을 살짝 들었다. 어떻게 보 아도 레오를 조롱하는 행위였다.

자신의 검을 잡은 레오의 손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보였다.

지그문트가 씨익 웃었다.

"네 새로운 동료 실력 좀 봐야 하지 않겠나. 얼마나 바닥일지 대 충 예상은 가지만."

'°1 개새끼가 진짜.'

나는 으득 이를 갈았다.

지그문트의 말은 명백한 도발이 었다. 그렇잖아도 이성을 잃은 데

다 원래 성질이 불같은 레오가 그 걸 듣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쾅!

형광 연둣빛 오러가 섬광처럼 터져 나왔다. 그리고 레오가 오러 를 꺼내는 찰나를 틈타 움직이는 지그문트의 검이 보였다.

서걱.

'젠장. 이래서 섣불리 움직이지 않았던 건데!'

나는 이를 악물었다.

내가 재빨리 움직인 덕에 레오 의 목이 뚫리는 상황은 피했지만, 레오와 검의 거리가 너무 가까웠 던 탓에 검을 쳐내면서 그의 어깨 가 베였다.

자연스럽게 지그문트와 레오의 거리가 벌어지면 그때 나서려고 했건만, 레오의 돌발 행동으로 상 황이 틀어진 것이다.

" 으 "

레오의 입술 틈새로 옅은 신음 이 터져 나왔다.

그나마 검을 쓰는 오른 어깨를 베인 게 아니라는 것이 위안이었 으나, 그의 왼 어깨는 얼핏 보아 도 깊게 베여 있었다.

역하도록 비릿한 향과 함께 떨 어진 붉은 핏방울이 나무 바닥에 스며든다. 그 모습이 내 눈엔 피 를 게걸스럽게 빨아들이는 새하얀 눈과 겹쳐 보였다.

울컥 속을 게워 내고 싶어졌지

만, 입술을 짓씹어 참아냈다.

'이번엔 잃지 않아.'

또 너 때문에, 소중한 사람을 잃 고 싶지 않아.

지그문트가 검을 움직이는 순간 에 거리가 살짝 벌어진 지점을 파 고들어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나는 구둣발에 묻어나는 진득한 피로부터 신경을 돌리려 노력하 며, 지그문트에게로 검을 세웠다.

짙은 보랏빛 눈동자가 빤히 나 를 응시한다. 그 시선을 흐트러짐 없이 받아치며 눈을 서늘하게 떴 다.

"잊은 모양인데, 네 상대는 나 야."

나는 레오가 지그문트의 나이가 되었을 땐 현재의 지그문트를 훨 씬 뛰어넘을지도 모른다고 예상했 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야.'

지금 당장을 봤을 때, 레오는 지 그문트에게 상대가 되지 않는다. 둘의 실력 차이는 상당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내가 앞장서 는 게 맞아.'

이유는 몰라도 레오는 지그문트 에게 상당한 살기를 내뿜고 있었 다. 웬만해선 그런 레오가 하고자 하는 대로 따라 주고 싶었으나, 그럼 레오가 더 다칠지도 몰랐다.

살짝 일렁인 보랏빛 눈동자.

이내 지그문트는 기이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래. 내 상대는 너지. 예 나 지금이나, 너뿐이지."

쾅!

두 검이 사납게 부딪쳤다. 나와 지그문트 모두 오러를 꺼내지 않 았음에도, 그저 부딪침만으로도 거대한 파동이 일대를 휩쓸었다.

'집이 산산조각 날지도 모르겠 군.'

애초에 이 집엔 정이 없었으니 유감은 없었지만.

잠시 착잡하던 마음을 빠르게 정리하고 유연하게 검을 놀렸다.

아무리 싫다 해도, 지그문트의 흔적은 내게 어떤 방식으로라도 남아 있었다.

'네 검은 뭣도 없다. 규칙도 없 고, 요령도 없고...... 쓸데없는 행 동 없이 담백하고 묵직한 게 그나 마 장점이다만...... 대체 변칙이라

는 것을 모르는군. 네가 기사인 줄 아나? 넌 용병이다, 멍청아. 네가 아무리 정직하게 검술을 펼 쳐도 사람들은 용병 주제에 기사 를 따라한다고 비난할 거다. 용병 이면 용병답게 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마. 더 비겁하고 약아져. 그래야 나를 이길 수 있을 거다.'

어려서는 정말 무식하도록 정도 만을 따르던 내 검술이 변칙적으 로 변한 것도, 마수들을 죽이며 쌓은 실전도 한몫했지만 그 이전 에 지그문트 때문이었다.

내 검술의 정반대를 걷고자 작 정한 것처럼, 지그문트의 검술은 변칙적이기 짝이 없었다.

오른쪽으로 휘두를 듯이 몸을 틀면서 정작 검은 왼쪽으로 찌르 는 속임수들이 그에겐 기본 기술 이었고, 전투 중 마법으로 시야를 가리는 정도의 일은 그에게 비겁 한 축에도 들지 않았다.

지그문트는 나와 닮았으면서도 정반대였다.

다시금 지그문트에게 검을 휘두

르려던 찰나, 지그문트가 살짝 손 을 휘둘렀다. 그의 손 아래에서 믿기지 않는 속도로 허공에 전개 되는 마법진.

마법진에서 빛이 터져 나옴과 동시에 내 시야가 암흑에 잠겼다.

시야가 차단된 순간, 내 본능이 위험을 감지하고 거세게 경고등을 울렸다. 나는 빠르게 고개를 틀었 다.

쉬익!

내 뺨 바로 옆에서 들리는 소름 끼치는 바람 소리.

피 묻은 날붙이의 냄새가 가까 이에서 풍겨왔다. 고개를 틀지 않 았다면 내 얼굴에 꽂혔을 검이었 다.

'젠장! 레오!'

내가 한눈파는 틈을 타 레오를 공격하려는 수가 분명했다.

시야를 가린 마법을 잡아 뜯듯 거칠게 파훼한 나는, 예상대로 레

오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지그문 트를 향해 사나운 오러를 날렸다.

서걱.

최대한 빨리 움직였으나, 시야가 가려진 여파로 반응이 살짝 늦었 다. 내 오러가 지그문트의 옆구리 를 베는 것과 지그문트의 검이 레 오의 허벅지를 베는 것은 거의 동 시에 이루어졌다.

쾅!

오러의 여파로 집의 한 면이 날

아가고, 허벅지를 다친 레오가 비 틀거렸다.

오러가 꽤 깊게 들어갔을 텐데 도 다친 옆구리에서 피를 툭툭 털 어내고 만 지그문트가 날 돌아보 며 미려하게 웃었다.

"반응이 빨라졌구나, 슈슈. 어려 서는 그 수법에 속절없이 당하더 니."

'빌어먹을......

분한 감정이 솟구치는 것을 느

끼며 이를 악물었다.

지그문트는 참으로 여전했다.

'레오! 괜찮아?'

감정을 애써 억누르며 레오에게 전언을 보냈다. 지그문트의 뒤로 살짝 보이는 레오는 어깨와 허벅 지에서 터져 나온 피로 뒤덮여 있 었다.

'괜, 찮아.'

전언이 띄엄띄엄 들려왔다. 레오

는 조금도 괜찮지 않아 보였다. 나는 목울대를 움직여 침을 삼켰 다.

더는 지그문트가 레오를 공격해 선 안 된다. 내 선에서 처리해야 했다.

"......그래. 빌어먹을 지그문트."

화악!

내 몸 속의 마나를 한가득 끌어 올려 검으로 불어넣었다. 찢어질 것 같은 파공음과 함께 검은 오러

가 긴 뱀처럼 검 위를 휘감았다.

"오늘은 반드시 네가 오러를 꺼 내게 해 주지."

나는 서늘한 기세로 검을 다잡 았다.

문득 눈에 들어온 먼지 낀 창문 에 내 모습이 비쳤다. 내 두 눈은 원래의 진분홍빛을 잃고 신화 속 검은 용의 눈처럼 짙은 붉은빛으 로 기이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그만큼 내가 열받았다는 건가.'

지그문트가 내게 무슨 짓을 했 는지 생각하면 이상할 것도 없었 다. 나는 그를 노려보며 땅을 박 찼다.

'비겁한 수에 대항하는 방법으론 두 가지가 있지.'

첫 번째는 상대와 같이 비겁하 게 나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챙! 챙!

비겁한 수를 쓸 틈도 없이 밀어 붙이는 것.

쾅!

빛을 게걸스럽게 집어삼키는 난 폭한 암흑이 초승달 모양을 그리 며 지그문트의 목을 향해 날아갔 다가 벽에 부딪쳐 폭발했다.

지그문트는 가까스로 고개를 몸 을 낮춰 피했으나, 그의 검은 머 리카락이 오러에 잘려 나가 허공 에 나풀거릴 정도로 아슬아슬한

움직임이었다.

'어제 나로 인해 오른팔이 다쳤 지. 주로 쓰는 오른팔도 멀쩡하지 않은 상태에서 오러까지 꺼내지 않는다면 내가 압도적으로 위야.'

짧게 심호흡을 한 나는 오러를 갈무리했다. 난폭함은 줄이고, 정 밀하게.

'네 오러는 그 터져 나오는 난폭 함이 최강점이긴 하지만...... 모든 전투에서 난폭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법이다. 오러를 좀 더 정밀

하게 운용할 수 있도록 연습해 라.'

언젠가 아버지에게 들었던 말.

마음을 정리한 나는, 군더더기 없는 몸짓으로 빠르게 지그문트를 밀어붙이기 시작했다.

챙! 챙!

지그문트가 선 곳에서 점점 뒷 걸음질 치기 시작했다. 반격은커 녕, 한층 더 정밀해진 내 오러를 힘겹게 막아내는 것이 지그문트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휙!

나는 검날을 아래로 세운 채 지 그문트의 오른쪽 어깨를 벨 듯 파 고들어 갔다.

지그문트가 내 검을 막으려 오 른쪽을 방어하던 순간.

퍽!

나는 마나로 감싼 오른발을 들 어 지그문트의 왼손을 거세게 걷

어찼다.

내 움직임을 예상치 못한 건지, 지그문트의 두 눈이 혼들렸다. 싸 움에 정신이 팔려 그다지 힘을 주 고 있지 않던 그의 왼손이 속절없 이 벌어지고 문제의 가죽 주머니 가 허공을 날았다.

"윽!"

나는 주머니를 향해 다급하게 손을 뻗는 지그문트의 복부를 걷 어차며 허공으로 도약해 주머니를 낚아챘다.

"젠장! 그거 이리......!"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소리치던 지그문트가 턱 말을 멈췄다. 그가 잠깐 방심한 틈을 타 내가 그의 몸을 오러로 옭아맨 탓이었다.

입을 파고든 검은 오러에 말조 차 하지 못하고 나를 불태울 듯 노려보는 지그문트를 향해 씨익 미소를 지었다.

"왜. 비겁한 짓은 네 전유물인 줄 알았나? 멍청한 지그문트 하

이드."

'비겁해지라고 한 건 너면서, 예 상 못 했나 보지? 멍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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