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충직한 검이 되려 했는데-125화 (125/254)

125 화

'젠장. 두 개면...... 어떡하지? 나와 라이너가 갈라져야 하나? 아니면 같이 하나씩 제거해?'

수많은 생각으로 머릿속이 뒤엉 켰다. 폭탄이 두 개인 건 상상치 도 못한 상황이다.

내가 재빨리 머리를 굴리고 있 을 때, 티나가 말을 이었다.

[장소는 아직 전해 들은 바가 없 네. 듣는 대로 알려 주도록 흐!지. 우선 폭탄이 두 개일 거란 사실만 알고 있게. 그리고 광장 측 폭탄 설치조가 움직이기 시작했네. 그 대들도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 군.]

"......알겠습니다."

[수고하게.]

빠른 속도로 말을 마친 티나가 급하게 연락을 끊었다. 아무래도 감시를 받는 중에 은밀히 연락을

준 것 같았다.

잠시 굳어 있던 나는, 입술을 꾹 깨물며 라이너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입니까."

조금 전 보여 주었던 웃음은 온 데간데없고 차가운 무표정을 지은 라이너가 나를 직시했다. 나는 깊 게 한숨을 쉬었다.

"폭탄이...... 두 개라고 합니다."

그 순간 라이너는 진심으로 욕

을 뱉고 싶다는 표정을 지었다.

'......와.'

표정은 아주 잠시간 스치고 사 라졌으나, 라이너가 처음으로 지 어 보인 불건전한 표정은 내 머릿 속에 강렬하게 남았다.

"......중앙 광장에 두 개가 설치 되는 겁니까? 아니면 다른 곳 에?"

"아직 알 수 없다고 합니다. 현 재 중앙 광장의 폭탄은 설치가 시 작되었으며, 다른 하나가 설치되

는 위치는 전해 듣는 대로 다시 전달해 준다는군요."

내 말에 라이너가 무겁게 고개 를 끄덕였다. 나는 검 손잡이를 꽉 잡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빠르게 움직 이도록 하죠. 얘기했던 대로 저는 동쪽과 남쪽을 보겠습니다. 라이 너는 서쪽과 북쪽을 부탁합니다. 문제가 생기면 바로 연락하십시 오."

"네."

이 넓은 광장에서 무턱대고 흑 마법의 흔적만 좇는 것은 비효율 적이다. 라이너와 나는 건국기념 일 전에 서로 다른 방위를 둘러보 다가, 흑마법이 강하게 느껴지는 곳을 발견하면 상대방에게 연락을 하기로 정했었다.

라이너는 고개를 끄덕이곤 빠르 게 인파를 헤치며 서쪽으로 향했 다.

'이제...... 집중하자.'

짧게 심호흡을 한 나는 빠른 걸

음으로 동쪽의 첫 거점으로 향했 다. 축제 거리의 입구였다.

'흑마법.'

제국을 포함한 거의 대부분의 나라들이 엄격히 금하는, 저주받 은 마법.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기 에 위력이 강하지만, 그만큼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흑마법은 내가 사용하는 오러와 정반대 기 운을 띠었다.

'그리고 정반대의 것은, 오히려 읽기가 쉽다.'

부정적인 것은 때때로 긍정적인 것보다 그 흔적이 더 깊게 남았 다. 친숙하고 좋은 것보단 뼛속까 지 거부감이 들게 하는 것을 추격 하는 게 쉬웠다.

'......마치 지그문트처럼.'

잠시 내 숙적을 떠올라 눈을 느 리게 깜빡였다.

참으로 오래 이어진 악연.

갈라지기 이전에도 차마 친밀한

친우라고 부르기는 힘들었던 그 는, 이제 내게 지워지지 않는 흉 터처럼 남은 존재였다. 잊고 싶었 지만, 아직까지도 그의 얼굴부터 검을 휘두르는 방식, 작은 습관과 향기까지 똑똑히 기억에 남아 있 었다.

나는 내 머릿속을 어지럽히는 보랏빛 눈동자를 떨쳐 내려 노력 하며,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쉬익

눈을 부릅뜨고 마나를 방출하자,

내 주변으로 거센 바람이 불어 닥 쳤다. 갑작스러운 바람에 놀란 사 람들이 주위를 두리번거렸지만 난 신경 쓰지 않고 흑마법 기운을 읽 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많은 기운들이 단숨에 내 머 릿속을 뒤덮으며 잠시 숨이 막혔 다. 홍수처럼 넘쳐 들어오는 기운 들 사이에서 흑마법의 기운을 찾 아내는 건 수천수만 색의 뜨개실 들이 얽히고설킨 곳에서 단 하나 의 검은색 실타래를 찾는 것 같았 다.

'......있긴 있군.'

집중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얼 굴을 일그러트렸다. 안 그래도 가 느다란 명주실 한 가닥을 10갈래 로 쪼개고, 그걸 다시 빙빙 꼬아 놓은 듯 희미하고 애매한 기운이 분명 존재하고 있었다.

'왼쪽.'

나는 그 기운을 따라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마나를 방출하면서 극도로 집중

하면 모든 것을 세밀하게 느낄 수 있다.

시야를 어지럽히는 화려한 색감 의 옷들과 여러 장식들로 다채롭 게 꾸며진 노점상들. 아이들의 웃 음소리, 음식이 조리되는 소리, 시끄러운 목소리들과 발걸음 소 리.

이리저리 뒤섞여 얼핏 악취처럼 느껴지는 여러 사람의 향수 냄새, 각종 음식 냄새, 길을 훑고 지나 간 바람의 내음과 길가에 살랑거 리는 꽃향기.

걸음을 옮길 때마다 몸 이곳저 곳에 스치는 천의 촉감과 피부 위 로 무겁게 와 닿는 공기의 무게. 내 등 뒤로 내리꽂히는 누군가의 시선.

사방이 방해물인 가운데, 나는 모든 주변 상황들을 무시한 채 닭 쫓는 개처럼 나를 가장 불쾌하게 만드는 기운만을 따라 하염없이 움직였다.

Q 르쪼

발걸음을 옮길수록 기운이 진해 졌다. 물론 그래도 여전히 옅었지 만, 조금씩 진해지는 기운은 내 속도를 올리기에 충분했다.

나는 사람들 사이를 뚫으며 실 오라기 같은 흐름에 집중했다.

그렇게 기운을 좇는 것에 열중 해 있을 때.

' 아.'

나는 문득 익숙한 향기에 고개 를 들었다.

"미르 님."

나와 같이 기운을 추적해 온 라 이너와 맞닥뜨렸다.

"아인하르트 경께서도 느끼신 모양이군요."

"네."

나는 그를 반갑게 맞이했고, 그 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래서야 갈라지지 말걸 그랬 네.'

광장이 무척 넓은 탓에 감을 잡 지 못할 것을 대비해 탐색 장소를 나누었건만, 라이너와 내가 감이 좋아서인지 슬슬 방향을 잡고 있 었다. 걱정했던 것보다 진전이 빨 라 만족스러웠다. 난 시계를 확인 했다.

"앞으로...... 행차까지 50분입니 다. 서둘러야겠군요."

얼핏 보면 꽤 넉넉한 것 같지만 폭탄 설치조의 전력을 알지 못하 는 상태라 전투가 어떻게 이어질

지 모르기 때문에 최대한 빨리 폭 탄을 찾아야 했다.

라이너와 내가 함께 움직이려 할 때.

지잉-

귀걸이에서 다시금 진동이 울려 왔다.

"......연락이 왔군요."

라이너와 나 사이에 무거운 공 기가 흘렀다. 그와 한차례 눈빛을

주고받은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귀걸이를 툭 건드렸다.

"각하. 무슨 일이십니까."

[젠장. 큰일 났네!]

이리저리 갈라져 금방이라도 찢 어질 것 같은 티나의 목소리가 내 고막을 때렸다. 티나의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옆에서 잠자코 기 다리던 라이너도 그 소리를 듣고 놀랄 정도였다.

'무언가...... 크게 잘못된 모양이 군.'

불길한 느낌이 온몸을 감쌌으나, 극도로 흥분한 것 같은 티나를 진 정시키는 게 우선이었다. 난 차근 한 목소리로 말했다.

"많이 놀라신 것 같습니다만, 우 선 조금만 진정해 주십시오. 상황 을 차근차근 설명해 주시면 저희 쪽에서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제기랄. 빌어먹을! 그러니 까......J

품위에 얽매인 듯 늘 뻣뻣하게 움직이며 우아한 언행만 하던 티

나의 욕설을 듣는 건 이번이 처음 이었다. 어디서 급하게 뛰어나온 건지 거칠게 숨을 고르는 소리가 이어진 끝에, 가라앉은 티나의 목 소리가 들려왔다.

[이쪽에서 심상치 않은 움직임을 눈치챘네. 그래서 폭탄 폭발 예정 시간이 20분 앞으로 당겨졌어! 행 차 직전에 터트릴 생각이야!]

" 네?"

움직임을 눈치챘다는 말에 한차 례 굳었다가, 시간이 앞당겨졌다 는 말엔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젠장, 대체 어떻게?'

나와 라이너는 물밀 듯이 밀리 는 인파 사이에 완벽하게 섞여 있 었다. 혹여 이상해 보일까 봐 마 나조차 발에 두르지 않은 채 움직 였다.

그런데도 이상한 움직임을 눈치 챘다는 건 경위를 이해하기 힘들 었다.

'남은 시간이...... 고작 30분.'

움직임이 발각된 데다, 시간까지 촉박해졌다. 최악의 상황이 아닐 수 없었다.

수많은 의문점들이 풀리지 않았 으나, 나는 우선 모든 걸 무시한 채 침착하게 심호흡을 했다.

"......알겠습니다. 촉박해진 시간 은 저희 쪽에서 어떻게든......

[이게 끝이 아닐세.]

시간이 촉박해진 만큼 마음도 급해져 빠르게 연락을 끊으려는 데, 티나가 말허리를 끊고 들어왔

다.

[두 번째 폭탄이 설치될 장소가 어디인지 알았네.]

'젠장. 폭탄이 하나 더 있었지.'

나는 머리를 부여잡았다. 점점 더 심각해지는 이 사건을 정말 내 가 수습할 수 있을지 확신이 가지 않았다.

나는 걱정과 두려움, 불안들이 솟구치려 하는 생각의 수도꼭지를 억지로 잠그고 대답했다.

"어디입니까."

[......행차를 기다리는 황제와 황 태자가 머무는 마차일세. 그곳의 폭탄은 이미 설치되었어. 상황을 보아 이미 설치를 했는데 내겐 통 보를 하지 않았던 것 같네. 폭탄 은 딱 마차 하나만 날릴 위력이 며, 20분 뒤에 터지네.]

' 미친.'

나는 앞머리를 거칠게 쓸어 넘 겼다.

행차는 황제파, 귀족파, 신전파 중 어디 파벌에 속하는지에 따라 시작하는 위치가 달랐다. 각각 황 궁과 건국기념비, 신전에서부터 마차를 타고 이동하기 시작해 수 도 중심에 모였을 때 비로소 본격 적으로 시작하는 것이다.

'황제와 황태자는 보통 한 마차 에 타고, 당연히 행차 시작 위치 는 황궁. 황궁에서 이곳까지는 약 20분 거리이며, 행차 시작 30분 전쯤에 도착하는 편이니 행차가 50분 남은 지금은 슬슬 출발할 시점.'

테러리스트들은 행차에 가는 중 인 황제와 황태자의 마차를 터트 리려고 하는 것이었다.

'이 새끼들 완전히 미친 거 아니 야?'

나는 이 상황에 대해서 환멸과 불신과 분노와 당혹을 한 번에 느 끼고 있었다. 건국기념일 축제 광 장에서 폭탄을 터트리는 것도 충 분히 미친 짓이지만, 황제와 황태 자가 탄 마차를 터트리는 것은 미 친 짓을 넘어 곧바로 교수형이 가

능한 반역죄였다.

'정말 반역을 저지르려는 모양이 군.'

디에고가 황태자로 책봉된 시점 에서도 세레논을 황제로 만드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 것을 보며 설 마 싶었고, 북부와 손을 잡았다는 것을 듣고 반쯤 짐작했던 것이 이 것으로 확실해졌다.

키프로스는 북부와 손을 잡고 현 정권을 완전히 뒤집어엎으려는 게 분명했다.

'대체...... 어떻게 감당을 하려는 거지?'

복잡해지는 상황에 따라 머리가 터질 것만 같았다. 나는 숨을 고 르며 정신을 붙잡았다.

"......확인했습니다. 두 폭탄 모 두...... 어떻게든 해보겠습니다. 염려, 하지 마십시오."

나는 정말 힘겹게 티나를 진정 시켰다. 내 목소리도 덜덜 떨리는 상황인지라 허세에 불과했지만,

그녀라도 진정하기를 바라서였다.

[......그래. 믿고 있겠네.]

티나의 목소리가 무겁게 떨어진 다. 티나 또한 상황이 얼마나 극 악인지 이해한 건지 반쯤 체념한 목소리였으나, 분명 남은 반은 신 뢰로 차 있었다.

이 상황에서도 티나는 나를 믿 고 있었다.

통신이 끊기고 티나의 목소리는 멈추었으나 이번 사건의 무게감은 여전히 내 어깨를 짓눌렀다.

미르로서 마수들과 상대하며 몇 번이고 그래 왔듯, 나는 다시 불 가능 앞에 섰다.

불가능의 벽은 여전히 두꺼웠고, 내게 닥치는 시련은 내 힘으로 넘 을 수 있는 높이를 까마득히 넘어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차라리 마수를 상대할 때가 나 았다. 그때는 내 목숨만 지키면 됐으니까.

버틸 만해 보이면 덤벼들고, 반 쯤 죽을 것 같아도 덤벼들고, 죽 을 것 같아도 덤벼들고, 진짜 죽 을 것 같을 때에도 머리를 써서 덤벼들어 악착같이 살아남으면 되 었다.

하지만 이번 일은 다른 사람의 목숨을 살려야 하는 일이었다.

아무리 시간을 계산해도 광장과

마차, 두 곳의 폭탄을 모두 제거 할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하나 는 포기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둘 모두 포기할 수 없었다.

'어떻게...... 사람 목숨을 두고 저울질을 해.'

광장에 사람들이 많다고 하여 마차에 있는 두 사람이 가치 없는 건 아니다. 또 마차에 있는 두 사 람이 황제와 황태자라고 하여, 광 장에 있는 수많은 평민들보다 귀

하진 않았다. 적어도 내게는 그러 했다.

'......디에고.'

문득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내 가 아는 이들 중 가장 완벽한 군 주에 가까운 이, 화사한 태양을 닮은 이.

아마 그였다면, 이 문제 앞에서 광장의 사람들을 구하라고 했을 것이다. 디에고는 제국민을 최우 선시하는 사람이니까. 헬리오스에 게 물었어도 그 역시 디에고와 같

은 대답을 했으리라는 것을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나는 그 들을 놓을 수 없었다.

"......르 님. 미르 님! 미르!"

그리고 내 생각을 깨트린 것은 나를 부르는 익숙한 목소리였다.

가장 올곧고, 가장 강직한 이의 목소리.

눈을 들자 혼들림 없는 한 쌍의

황금빛 불꽃이 나를 비추고 있었 다.

'라이너.'

그와 마주한 나는 탄식을 뱉었 다.

잠시 착각하고 있었다. 내가 혼 자 있다고. 아득한 불가능과 맞설 때는 대부분 혼자였던지라, 잠시 그의 존재를 배제한 채 생각하고 있었다.

한때 나와 함께 하라바나를 처

치한 이. 재앙의 순간에 나를 도 와주고, 곁에 있어 주었던 이. 내 안전을 그 누구보다 간절히 바라 주었던 이.

'내겐 라이너가 있다.'

나는 혼자가 아니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라이너의 손 을 꽉 잡았다. 흐트러짐 없이 맞 붙는 온기가 차갑게 질려 있던 내 몸을 녹였다.

갑작스러운 내 행동에 당황한

표정을 지은 라이너와 똑바로 마 주한 채, 나는 입을 열었다.

"라이너. 당신이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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