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화
"미르는 다른 녀석들이 처리한 다고 했는데......!"
"젠장! 어떻게 된 거야!"
폭탄을 만지다 말고 하얗게 질 린 테러리스트들이 믿을 수 없다 는 듯 소리쳤다.
'물러날 생각이 없나 보군. 굳이 피를 보겠다면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젠 정말 죽일 각오로 싸워 폭탄을 빼 앗아야 했다.
나는 오러를 덧씌운 검을 망설 임 없이 휘둘렀다.
콰쾅!
"다들 피해!"
모든 빛을 집어삼키는 검은색. 그 색에 걸맞게, 내 오러는 게걸 스럽다 싶을 만큼 파괴적이었다.
피하는 네 명의 테러리스트들 중 한 명이 내 오러에 스쳐 넘어 지고, 폭탄이 설치되고 있던 벽의 바로 옆면이 박살 났다. 일부러 빗나가게 날린 것이었다.
'어떤 폭탄인지 모르니 무턱대고 파괴하는 건 안 돼.'
폭탄 중엔 충격이 가해지는 순 간 폭발해 버리는 종류도 있었다. 저들이 설치하고 있는 게 그런 것 일지도 모르는 터.
우선 저들을 제압시키고 나서
폭탄을 해체할 방법을 말하라고 협박해 봐야 할 것 같았다.
'신중하게 생각하기엔 시간이 너 무 부족한 게 문제지만. 만약 해 체할 수를 찾지 못하는 최악의 상 황이 발생하면......
입술을 꾹 깨문 나는 잠시 하늘 을 바라보았다.
테러가 일어날 거란 사실을 알 게 된 뒤 축제를 기다리며 놀고만 있었던 건 아니었다. 급하게나마 폭탄 해체 방법을 배우기도 했고,
나로서는 최선을 다해 대비했다.
다만 사람 일이라는 것이 뜻대 로 되는 것이 아니기에. 폭탄을 해체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과 대 면했을 때를 대비한 방법은 있었 다.
'웬만하면 그 방법은 쓰지 않았 으면 좋겠군. 가족들을 걱정시키 고 싶진 않으니까.'
속으로 푹 한숨을 쉰 나는, 갑작 스러운 습격에 우왕좌왕하는 듯싶 다가 금방 대열을 갖춘 네 명의
테러리스트들을 향해 검을 세웠 다.
"싸울 때는 상대가 누구인지 확 실히 알아야지."
무미건조한 눈으로 그들을 훑어 본 나는, 발 위로 마나를 덧씌우 고 가볍게 도약해 빠른 속도로 검 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 악!"
"빌어먹을......! 저 괴물은 나랑 제드가 막고 있을 테니까 폭탄을 지켜!"
경악하는 테러리스트들 사이에 서 나는 애써 이성을 다잡았다.
'사람 피는...... 싫어.'
그렇게 훈련을 하고도 영 익숙 해지질 않았다.
나는 최대한 피에서 신경을 떼 려 노력하며 마나를 끌어 모았다.
두 사람이 나를 대항해 서고 남 은 하나는 폭탄을 마저 설치하려 는 듯 벽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소, 손을 댈 수가 없어."
"뭐?"
제드라고 불린 이가 눈을 부라 렸다.
폭탄 앞에 마나의 결계를 만든 장본인인 나는 씨익 웃었다.
이걸 깨뜨리려면 내 수준 이상 의 마나 사용자이거나, 나를 의식 이 없는 상태로 만들어야 했다.
그리고 그럴 수 있는 존재는 지 금 내 앞에 없었다.
"나를 앞에 두고 다른 것에 눈 을 돌리다니...... 맹랑하네."
살기 섞인 목소리에, 뻣뻣하게 굳은 테러리스트들이 기름칠 안 된 로봇처럼 버벅버벅 나를 돌아 보았다. 그들의 두 눈엔 아득한 공포가 가득했다.
나는 입꼬리를 비틀었다.
"내게만 집중해.
"크윽!"
꽤 빠른 반사신경을 가진 건지, 제드라고 불리던 이는 내 검을 막 긴 했으나 힘에서 내게 밀렸다.
" 아악!"
고통스러운 신음이 울려 퍼지고, 그의 발등에서 솟구친 액체가 검 날을 적신다.
오늘같이 사람을 베어야 하는 날에 차마 카이사르가 선물한 검 을 사용할 수 없었기에, 지금 내 가 사용하는 것은 용병으로 활동 할 때 쓰던 검이었다.
이미 이 검은 수도 없이 마수의 검은 피를 머금었고, 이젠 그 피 가 붉은색으로 바뀐 것뿐이다.
스스로 되새긴 나는 모질게 이 를 악물고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 지 않으려 빠르게 검을 움직였다.
내가 테러리스트 하나를 공격할 때를 틈타 내 등을 향해 내질러지 는 검을 상체를 숙임으로 가볍게 피하고, 옆구리로 날아오는 단검 을 검으로 쳐냈다.
퍽!
나를 향해 동시에 달려드는 두 사람 중 하나의 다리를 가볍게 걸 어 넘긴 나는, 그가 중심을 잃고 상체를 굽히는 순간 그의 등을 밟 고 뛰어올라 다른 하나의 얼굴을 걷어찼다.
나는 주머니에서 단검을 꺼내 그를 전투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 으로 마무리 지었다.
고통으로 신음조차 내지 못하고 숨을 몰아쉬는 테러리스트를 뒤로 한 채, 나는 어느새 다시 중심을 되찾아 내게 달려드는 이의 검을 막아 냈다.
챙! 챙!
날붙이가 부딪치는 시린 마찰음 이 몇 번 터져 나온다.
"이익!"
이를 악문 테러리스트가 일격을 가하려는 듯 내게 달려드는 순간, 난 골목에 자욱하도록 살기를 내 뿜었다.
"허억."
"커 흑!"
내 몸에서 독 안개처럼 터져 나 오는 검은 연기. 전투 불능 상태 로 땅에 널브러져 있던 두 테러리 스트가 가쁘게 숨을 몰아쉬었다.
살기는 피 흐르는 것이라면 모 두 본능적으로 느끼는 가장 날것 의 감정, 공포를 자극한다. 공포 에 지배되지 않는 생물은 없었다.
내 살기에 정통으로 노출된 테 러리스트가 내게 일격을 가하려다 말고 뻣뻣하게 굳는다.
푹
그 틈을 타, 나는 거침없이 그의 다리를 베었다.
"헉! 윽, 으아악!"
분수처럼 솟구치는 핏줄기. 잠시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내쉰 나는 침잠한 눈으로 골목길을 돌아보았 다. 날 공격한 세 놈 모두 전투불 능 상태였다.
'......힘들어.'
거칠게 마른세수를 했다. 끼고 있는 검은 장갑엔 피가 짙게 스며 들어 있어 피로 세수를 하는 느낌 이었다.
나는 울렁이는 속을 애써 잠재 우고 심호흡을 했다.
몸이 힘든 것이 아니었다. 내가 겨우 이 정도 움직임으로 지칠 리 없었으니.
힘든 것은 정신이었다. 아직도 익숙하지 않은 인간의 붉은 피가 내 죄악감에 부채질을 하고 과거 의 망령을 떠올리게 했다.
피가 자욱한 이곳에서 도망치고 싶었다. 인간의 혈향은 내 속을 뒤집었고, 붉은 피는 누구의 피든
그곳을 새하얀 설원으로 만들었 다.
나는 진심으로, 사람을 해치고 싶지 않았다.
'사람의, 숨통을, 끊을 땐...... 절대 그의 눈을 피해선 안 된다. 네가 앗아가는 생명의 무게를 반 드시 짊어져야 해...... 그게 상처 받을지언정 괴물이 되지 않는 방 법이다.'
피에 대한 거부감이 내 정신을 지배할 때면, 어김없이 내 스승의
가르침이 떠오른다. 평생을 보내 도 절대 잊을 수 없을 카라쇼의 유언이.
잊을 수도, 거부할 수도 없는 그 녀의 마지막 가르침이었다.
'나약함이 다.'
피가 배어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눈을 부릅떴다.
나는 내가 만들어 낸 참상을 하 나하나 다 눈에 담았다. 당장이라 도 속을 게워 내고 싶었지만 눈을
감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져야 하는 피의 무 게다. 앞으로 더, 더 무거워질 터 였다.
나는 이 무게를 회피해선 안 됐 다.
"그래. 테러리스트들. 함부로 덤 벼든 건 미련했지만...... 무모함만 큼은 인정해 주지."
나는 성큼성큼 폭탄을 향해 다 가갔다.
쉬이익!
"이 포기하지 않는 끈기도 말이 야."
탁
측면에서 날아오는 단검을 보지 않고 잡은 나는 무미건조하게 중 얼거렸다.
장갑을 낀 덕분에 검날을 그대 로 움켜쥔 손이 크게 다치진 않았 으나, 날이 워낙 날카로웠던 탓에
장갑이 뚫려 희미하게 피가 배어 났다.
"목숨을 붙여 놨더니 손을 놀리 는군. 목숨이 아깝지 않은 건가."
나는 단도를 툭 놓으며 온도 없 는 시선으로 가장 먼저 제압했던 테러리스트를 바라보았다.
내게 단도를 던져 마지막 발악 을 보여 준 그는, 내 시선에 흠칫 몸을 떨다가 독기 서린 얼굴로 웃 었다.
"하! 대단하신 미르 님께서 인정 해 주신다니 영광이네. 하지만 어 쩌면 좋지? 폭탄은 해체하지 못 할 텐데. 폭탄은 이미 설치됐어!"
나를 약 올리는 듯한 말투였다. 분노가 울컥 치밀었지만 입 안 살 을 깨물어 참고, 폭탄을 확인했 다.
'••••••7분.'
검은색 덩어리 같은 외형에 가 까이 다가가기 싫을 정도로 불길 한 흑마법의 기운을 흩뿌리는 폭
탄 위엔 타이머가 달려 있었다.
'젠장! 처음 보는 형식이야!'
폭탄 해체 방법에 대해 알아봤 던 시간이 무색해졌다.
스스로 폭탄을 해체하는 플랜 A 가 박살 났으니, 난 바로 플랜 B 로 방향을 돌렸다.
쾅
내게 단도를 던졌던 테러리스트 가 벽에 등을 크게 부딪치며 신음 을 흘렸다.
그의 멱살을 잡아 쥔 나는, 서슬 퍼런 검을 그의 얼굴 바로 옆 벽 에 박아 넣고 서늘하게 굳힌 얼굴 을 들이밀었다.
"저 폭탄, 어떻게 해체하지? 빨 리 말하는 게 좋을 거다."
"컥, 무척, 불안해 보이네, 미르. 폭탄이 터질까 봐 두렵나? 천하 의 미르가 두려워하는 것도 있고, 크윽, 세상이 놀랄 일이야."
그는 숨이 막힌 듯 불규칙적인 숨소리를 냈지만, 두렵지도 않은 건지 잔뜩 비아냥거렸다.
초조함과 분노로 등 뒤에서 식 은땀이 흘렀다. 나는 거칠게 검을 놀려 검 끝으로 그의 가면을 들췄 다.
툭.
인상을 희미하게 하는 마법이 걸린 가면이 떨어지며 그의 본연 의 얼굴이 드러났다.
나는 크게 흠칫하고 말았다.
평범하던 검은색 눈은 가면이 벗겨지는 순간 하늘빛으로 물들었 다. 청아하고 맑은, 내가 가장 사 랑하는 아이의 눈 색과 똑 닮은 색이었다. 가면에 가려 제대로 보 이지 않던 이목구비는 내 예상보 다 훨씬 여렸다.
제국 수도를 노린 테러리스트의 정체는, 내 또래로 보이는 소녀였 다.
"그래. 직접 보니까 예상보다 더 어리지? 네가 무자비하게 공격한 나는 이런 사람이야, 미르."
내 동요를 읽은 아이가 조롱하 듯 내뱉었다. 나는 움찔 검을 물 리고 말았다.
홍수처럼 죄악감이 밀려온다. 이 홍수를 벗어날 방주는 내게 없었 다.
"너희에겐 우리가 악역이지? '북부인' 하면 다들 짐승만도 못 한 야만족을 떠올리잖아. 하지만
우리에겐 제국이 악역이야, 발어 먹을 놈■아.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을 억눌리고 짓밟히며 지냈는 지 알아? 얼마나 많은 우리 민족 이너희 손에 죽어 갔는지 알 아?"
나는 폭탄을 해체해야 한다는 사실조차 잊은 채 멍하니 아이의 말을 듣고만 있었다. 가시덩굴이 내 온몸을 서서히 옥죄는 것 같았 다.
"어쩜 좋아, 미르. 우리 영웅님 께선 늘 그랬듯 악역을 죽이고 세
상을 멋지게 구해 내셔야 할 텐 데, 이번엔 실패를 해 버리셔서 말이야. 물론 우리로선 잘된 일이 지. 너희가 실패한다는 건 우리가 성공한다는 뜻이거든."
아이의 비아냥거림이 내 심장을 푹푹 찔렀다. 나는 숨을 멈추었 다.
'내가 무슨 짓을 한 거지.'
내가 검을 겨눈 것은 앳됨이 채 사라지지도 않은 아이였다. 지킴 받아 마땅한 약자였다.
제국이 승리하면 북부는 패배하 고, 제국민이 살면 북부인은 죽는 다. 그걸 알면서도 나는 여태껏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켜야 한다는 집념 하에 이를 외면하고 있었다.
허나 아이에게 검을 겨누었음을 깨달은 현재, 나는 강제로 현실과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패닉에 빠진 나를 보며 비죽 웃 은 아이가 고개를 기울여 나와 얼 굴을 가까이 했다.
아리아를 닮은 그 두 눈이 나를 향한 증오로 형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소드 마스터는 강하니 저 정도 폭탄에 죽진 않겠지? 하지만 이 곳은 저 폭탄 하나에 산산조각 날 거야. 축제가 지옥이 되는 모습을 똑똑히 지켜봐, 미르. ......내가 제국군이 내 부모를 찔러 죽이는 것을 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듯 이."
아이의 두 눈에 눈물이 고였다.
슬픔과 회의, 분노로 찌든 그 눈 을 보며, 나는 내 속에 나를 지탱 하던 무언가가 무너지는 것을 느 꼈다.
'나는 여태껏 무얼 지키려고 한 거지.'
내 신념은 약자를 지키는 것이 아니었던가. 이것이 내 신념의 결 과인가?
숨이 막혀 불규칙적인 호흡을 반복하고 있을 때, 비소를 흘린 아이가 자신의 멱살을 잡아 쥔 떨
리는 내 손을 부드럽게 잡아 왔 다.
"내 이름, 글렌이야. 잊지 마. 네가 죽인 사람의 이름이니까."
작게 속삭인 아이는 이내 혀를 굴리더니 혀 아래에서 작은 환을 꺼내고 비틀린 미소를 지었다.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해 멍 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던 내 머릿 속에 어떤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암살자들은 늘 혀 아래에 독약
을 넣고 다닌다. 임무에 실패하면 자결로 스스로의 입을 막기 위 해.'
"안 돼••••••I"
나는 다급하게 글렌의 입에 손 을 넣어 환을 빼내려고 했다.
푹
그리고 어깨로 느껴지는 끔찍한 고통. 등 뒤의 다른 테러리스트 중 하나가 던진 것 같았다.
나는 잠시 멈칫했을 뿐 다시 움 직이려 했으나, 이미 늦은 후였 다.
으득.
작은 환이 새하얀 치아에 무참 히 씹히고 목구멍으로 넘어간다. 나는 무언가에 집어삼켜지며 그 모습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 었다.
죽음 앞에서, 글렌은 편안한 얼 굴로 웃었다.
"이제 눈보라가 몰아닥칠 거야."
그리고 감기는 눈.
단번에 눈앞 인영이 숨을 멈췄 다.
"아......
풀썩.
손이 풀린 내가 글렌의 멱살을 놓치자, 글렌은 끈 풀린 인형처럼 땅바닥 위로 무너졌다. 그 무너지 는 소리가 내 세계의 파열음 같았
다.
독이 묻은 단검을 던진 건지, 단 검이 꽂힌 어깨가 불에 타오르는 듯 아파 온다. 허나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내 시선은 아직 산 자의 온기가 남아 있는 글렌의 시체에서 떨어 지지 못했다.
내가, 죽인 사람이었다.
"으, 윽......
온몸이 떨리고, 헛구역질이 올라 온다. 세상이 핑 돌고 눈물이 고 였다. 나는 입을 틀어막은 채 뒷 걸음질 쳤다.
툭.
그리고 발 뒤로 닿는 것은, 또 다른 시체 두 구였다.
그들은 모두 자결했다. 내게 졌 기 때문에.
내가 그들을 죽인 것이다.
'사람의, 숨통을, 끊을 땐...... 절대 그의 눈을 피해선 안 된다. 네가 앗아가는 생명의 무게를 반 드시 짊어져야 해...... 그게 상처 받을지언정 괴물이 되지 않는 방 법이다.'
귓가로 스승의 마지막 가르침이 울려 퍼진다. 내가 평생을 지고 가야 하는 가르침. 허나 나는 그 들과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나를 수몰시키려 차오르는 물기 로, 시야가 온통 희미해진 탓이었 다.
'대체, 생명의 무게는 어떻게 지 는 건가요, 카라쇼. 차라리 괴물 이 되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마주하는 것만으로도 세상이 무 너지는 것 같았다. 나로 인해 죽 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버 거웠다.
내가 지켜 온 모든 신념이 무너 지는 느낌이었다.
내가 숨조차 쉬지 못하고 눈물 과 땀을 뚝뚝 흘리며 비틀거리고
있을 때.
"......르, 미르 정신 차리십시 오! 젠장, 카슈미르! 나를 봐!"
내 어깨를 잡고 흔드는 손길이 있었다. 순간 휘청거린 내 몸을 그 손길이 단단히 붙잡았다.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대상을 마주했다.
흐르는 눈물로 온통 시야가 흐 리다. 얼굴의 윤곽조차 보이지 않 았지만, 모든 게 희미한 와중에도
딱 하나는 분명히 보였다.
나를 담아내는 깊은 금빛.
"......라, 이너."
내가 아는 가장 올곧은 사람, 라 이너 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