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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직한 검이 되려 했는데-138화 (138/254)

138 화

꼬치 가게 앞엔 대기 인원이 두 어 명뿐이었다. 진열된 꼬치들은 맛깔스러워 보이는데도 사람이 적 은 건 아무래도 테러의 여파인 듯 했다.

가장 북적거려야 할 축제 마지 막 날에 이렇게 한산해서인지, 꼬 치 가게 주인장 부부는 조금 울적 해 보였다.

"라이너는 뭘 드시겠습니까?"

"......카슈미르랑 같은 걸로 하 겠습니다."

겉으로 많이 티가 나진 않지만 눈빛에서 이런 장소가 어색하다는 심정이 묻어나는 라이너가 말했 다. 딱 봐도 어떻게 주문하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라 나는 속으로 웃었다.

"생선 꼬치 두 개에, 고기 꼬치 두 개 부탁드립니다."

메뉴판을 읽은 나는 자연스럽게

주문했다. 나와 라이너는 검을 잡 는 사람이었기에 두 개씩으론 배 가 차지 않을 테지만, 맛이 어떨 지 모르니 맛부터 보고자 조금만 주문한 거였다. 계산은 라이너가 했다.

노점상엔 앉는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새롭게 주문하는 다른 손 님들을 피해 코너 쪽에서 음식을 기다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 장이 나와 라이너에게 꼬치를 건 네 왔다.

꼬치는 무척 맛있어 보였다. 깔

끔한 모양새에 얼핏 보기로는 조 리 과정도 청결을 유지하고 있었 으니 라이너가 먹기에 어렵지 않 을 듯했다.

문제는 나였다.

'젠장...... 이 냄새를 이제 맡다 니......

주위 사람에게 들리지 않도록 한숨을 내쉬었다.

라이너와 얘기를 하느라 어지간 히 정신이 없었던 모양이었다.

꼬치에선 강황 향이 매우 옅게 나고 있었다.

'어떻게 내가 유일하게 못 먹는 향신료를......

맹세코 난 편식을 하지 않는다. 신발 밑창을 구워 줘도 얌전히 칼 질해 먹을 자신이 있었으니.

나는 가난하게 살아와서 음식에 대한 취향이 특별히 없는 데다 강 철을 구워 먹어도 죽지 않는 몸을 가지고 있으니, 먹고 죽지만 않으

면 뭐든 주워 먹어도 된다고 생각 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내가 유일하게 꺼려하는 향신료가 바로 강황이었다.

안 좋은 기억이 있거나 한 것은 아니었다. 그랬다면 아마 이 냄새 에 더 예민하게 반응했을 거고, 이 주위로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 그냥 특유의 향을 좋아하지 않는 것뿐이었다.

' 어쩌지......

강황 냄새를 맡은 뒤로 이도저 도 못 하고 있자, 라이너가 눈을 순진하게 깜빡이며 생선 꼬치를 집어 들어 내게 건넸다.

"안 드십니까?"

"아, 네."

나는 얼떨결에 꼬치를 받아들었 다. 내 애매한 태도에 라이너가 설핏 미간을 좁혔다.

'사 준 걸 안 먹는다고 할 순 없잖아......

그것도 내가 사 달라고 한 건데.

이제 와서 취향을 문제로 안 먹 기엔 내 양심이 너무 굳건했다.

나는 독가스처럼 슬슬 올라오는 강황 향에 눈을 살짝 감으면서도 인상을 찌푸리지 않기 위해 정신 을 집중했다.

'......빨리 먹자.'

특별히 알레르기가 있는 것도 아니니 숨을 참고 먹으면 될 터였 다. 이런 것에 라이너가 신경 쓰

게 하고 싶지 않았다.

나는 나를 살피는 라이너의 시 선을 덤덤하게 받아 내며 꼬치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인류는 어째서 강황같이 악한 것을 섭취하기 시작한 거지?'

맛 자체는 나쁘지 않았으나, 입 안 가득 퍼지는 향이 끔찍했다.

강황의 학명이 악마의 발 냄새 같은 것이었던가 심각하게 고민하 며 고무를 씹듯 느리게 턱을 움직

이는데, 나를 빤히 바라보던 황금 빛 눈동자와 눈이 마주쳤다.

"라이너는, 안, 먹습니까."

내가 씹고 있는 것은 아리아의 머리칼을 닮은 솜사탕이라고 암시 하며 어눌한 발음으로 물었다. 먹 으려는 듯 고기 꼬치를 쥐고 있던 라이너는 입술을 꾹 다물더니 들 고 있던 꼬치를 그릇에 내려놓았 다.

그리고 내 입 앞으로 내밀어지 는 큰손.

"뱉으세요."

묘하게 언짢아 보이는 표정을 한 라이너는 아무런 거리낌도 없 이 그리 말했다.

"••••••네?"

나는 악한 향이 나는 생선 살점 을 볼에 한가득 문 채 어안이 벙 벙해져 되물었다. 분명 싫은 티가 나지 않게 먹고 있다고 생각했는 데 티가 났던 건가 싶어 혼란스러 웠다.

'아닌데...... 완전 평소 표정인 데......

고개를 살짝 돌려 노점상에 걸 린 거울을 확인한 나는 더 아리송 해졌다. 거울에 비친 내 표정은 아리아가 북부 대공 같다고 평하 던 평상시의 무표정 그 자체였다.

머리 위로 물음표를 여러 개 띄 운 채 라이너를 올려다보고 있자 니, 라이너가 푹 한숨을 쉬었다.

"그거, 먹기 싫지 않습니까."

" 어떻게......

입 안 음식물을 보이지 않기 위 해 입을 다문 채 복화술처럼 물으 니, 라이너가 설핏 입꼬리를 당겼 다.

"표정을 잘 숨겼다고 생각하시 는 것 같습니다만, 카슈미르는 싫 어하는 걸 마주했을 때 코를 찡긋 거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음식을 보자마자 그러시더군요."

'내가 평소에 그런다고?'

나도 몰랐던 내 습관이었다. 나 는 눈을 깜빡였다.

"라이너는...... 참 사려 깊군요."

민망함보단 그런 걸 하나하나 다 관찰하고 기억하고 있는 라이 너에 대한 신기함이 앞섰다. 역시 상냥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찰 나, 라이너가 한숨처럼 웃음을 흘 렸다.

"사실 상냥하다든가, 사려 깊다 든가 하는 말은 카슈미르에게서 처음 듣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럴 리가...... 라이너가 얼마나 상냥한데.'

내가 여태껏 봐 온 라이너는 투 박하지만 정성스럽고, 묵묵하지만 상냥하며, 다채롭진 않으나 선명 한 원색을 품은 사람이었다. 그라 면 여러 번 이런 종류의 칭찬을 들어 왔으리라 예상했건만, 라이 너의 말은 무척 의외였다.

라이너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이 곤 따사로운 금빛 눈동자로 나를

응시했다.

"저는 평생 무심하고 딱딱하다 는 소리만 들어 왔습니다. 저 또 한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고요."

라이너는 아주 태연하게 스스로 를 낮추며, 음식을 먹느라 흘러내 린 내 옆머리를 귀 뒤로 넘겨주었 다.

나는 그 말을 믿기 힘들었다. 그 야 나를 향하는 그의 눈길과 손길 은 다정스럽기 짝이 없었으니까.

"상냥하고 사려 깊은 게 아니라 그냥 당신한테 관심이 많은 겁니 다. 아직도 모르시겠습니까."

라이너의 나직한 한마디가 가슴 위로 무겁게 떨어졌다. 내가 무어 라 말하려 입을 뻐끔거렸을까, 라 이너가 손을 더 가까이 내밀었다.

"그러니까 뱉으세요. 카슈미르가 싫은 걸 억지로 먹고 있는 게 싫 습니다."

어쩐지 어디서 휴지 같은 걸 주 워 먹은 철없는 강아지를 질책하

는 투다.

라이너의 큰 손을 잠시 내려다 본 나는, 내용물을 뱉지도 삼키지 도 못한 채 어물어물 답했다.

"더러운데......

"괜찮으니까 뱉으세요."

다정하게 채근하는 라이너 때문 에 더 민망해져 귀가 달아올랐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사약 삼킨 다 생각하고 삼켜 버리고 싶었지 만, 그랬다간 라이너가 내 목구멍

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도로 토해 내게 만들 것 같았다.

'오, 라이시여......

결국 나는 질끈 눈을 감고 라이 너의 손에 삼키지 못한 생선 꼬치 를 뱉어 냈다. 얼굴이 화끈거리다 못해 욱신거렸다.

'젠장, 나이가 한 자리 수였을 적에도 이런 만행을 보인 적이 없 는데......

나는 어리광이나 투정과는 거리

가 먼 아이로 자랐다. 애초에 그 런 걸 부릴 수 있는 대상도 없었 고.

'......오랜만에 애같이 군 것 같 네.'

새삼스레 그런 감상이 들었다.

내가 민망함으로 시들거리든 말 든, 라이너는 노점상 한편에 준비 되어 있는 수도꼭지로 능숙하게 손을 정리했다.

"저...... 사 주셨는데 먹지 못해

서 죄송합니다."

나는 힐끔 라이너의 눈치를 보 며 쭈뼛쭈뼛 말했다. 가지고 있던 손수건으로 손을 닦은 라이너가 고개를 저었다.

"미리 카슈미르의 호불호를 알 지 못했던 제 잘못입니다. 혹시 해산물을 못 드십니까?"

"아뇨. 강황을 좋아하지 않아 서......

"그렇군요. 기억하고 있겠습니 다."

평소 날카롭게 굳어 있는 라이 너의 눈매가 나를 향해 슬쩍 휘었

"다음에 식사를 할 땐 강황을 향신료로 쓰는 음식은 피하도록 하죠."

자연스럽게 다음을 예고하는 목 소리는 낮으면서도 부드러웠다.

결국 남은 꼬치는 모두 라이너 가 먹었다. 꼬치 하나를 한 입에

해치우곤 빠르게 자리를 뜨자고 권하는 그의 모습에서 강황 향을 싫어하는 나를 향한 배려가 엿보 였다.

나는 괜찮다고 했지만, 라이너는 꼬치를 먹지 못한 내가 신경 쓰인 건지 노점상 거리를 지나며 이것 저것 먹을 것을 사 내게 쥐여 주 었다. 길거리 음식에 대해서 잘 모르면서도 나를 먹이겠다고 뻘뻘 거리며 음식을 주문하는 라이너를 보는 건 또 다른 재미가 있었다.

그렇게 한참 거리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자정에 가까운 시간 이었다. 라이너와 나는 둘 다 북 적거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고, 이쯤 되면 호숫가에 사람이 많이 빠졌을 것 같아 호수를 향해 발걸 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아, 라이너. 검에 대해서 궁금 한 게 있는데 말입니다, 여쭈어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알고 있는 것이라 면 얼마든지 답해 드리겠습니다."

어색하지 않은 침묵 속에서 여 유롭게 발을 놀리던 나는, 문득

떠오른 의문에 입을 열었다.

지독한 검 마니아인 라이너라면 이에 대해 대답해 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생각대로 라이너는 혼 쾌히 수락했다.

"혹시 한 검사의 오러 색이 두 개인 경우를 아십니까?"

조금 주저하며 묻자, 라이너의 눈이 흥미롭다는 듯 빛났다. 역시 그는 검에 대해 말할 때 가장 싱 그러워 보였다.

사실 내 질문은 보통 사람들이 들으면 우습다고 할 만한 질문이 었다. 검사에게 오러 색은 고유의 색, 하나뿐. 크리시스의 서재에서 따로 서적을 찾아본 적도 있지만, 역시 오러 색이 두 개인 경우는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직접 두 눈으로 봤으니 까. 라이너라면...... 알 수 있을지 도 몰라.'

사실 아직도 내가 본 것이 진짜 였나 가물가물하지만, 그래도 확 인하고 싶었다.

내가 아는 모든 사람들 중 검의 이론에 가장 빠삭한 라이너라면 답을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안고 라이너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었을까, 그가 느리게 입을 열었 다.

"아시다시피 보통 검사는 오러 색이 한 개입니다. 오러 색이 두 개 이상인 것은 이론적으로 불가 능하다고 여겨지고, 저도 살면서 그런 경우를 단 한 번도 본 적 없 지만......

"역시 그런가요."

"이전에 오러 색이 두 개 이상 인 경우에 대해 적은 서적을 딱 한 번 읽어본 적 있습니다."

"••••••네?"

라이너의 서문에 역시 잘못 본 거라고 결정지으려던 찰나, 라이 너가 놀라운 말을 건넸다. 나는 눈을 크게 떴다.

"책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 다. 무척 오래된 고대 서적인 데 다 신비한 이론들을 나열해 놓은 소설에 가까운 책이라 신빙성은 떨어집니다만, 오러가 두 개 이상

인 경우의 이야기가 있긴 있었습 니다."

오래된 기억을 천천히 되짚듯 눈을 좌우로 굴리던 라이너가 차 근히 말했다. 나는 다급히 귀를 기울였다.

"'정상적으로 검술을 연마하고 자연의 흐름을 따라 검을 휘두르 는 검사들의 오러는 단 하나의 형 태다. 정답은 하나인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 때문이다. 다만 세상에 서 가장 정결한 오러의 흐름에 다 른 기운이 섞일 때, 자연의 이치

가 뒤틀리며 수많은 오류를 정답 으로 인식한다. 나는 오러의 색이 두 개인 검사를 본 적이 있다. 그 는 내가 생전에 봐 온 모든 검사 중 가장 불결한 기운을 품고 있었 다.'"

나는 논문을 그대로 옮겨 읽는 듯한 라이너의 말을 귀에 담아 들 으며 굳은 입가를 쓸어내렸다. 머 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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